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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10/01 20:38:16
Name   mchvp
Subject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리뷰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문명의 붕괴>는 환경재앙으로 붕괴한 고대 사회들과,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환경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의 환경문제들을 12개로 분류했습니다.

아래의 8가지는 고대 사회들이 무너진 원인이었습니다.

1. 벌목과 서식지 파괴
2. 토양 문제(침식, 염류화, 토양 비옥도 상실)
3. 물 관리 문제
4. 과잉 사냥
5. 과잉 어획
6. 침입종이 토착종에게 가하는 영향
7. 인구과잉
8. 증가하는 1인당 영향력

현대 사회는 위의 8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아래의 4개의 새로운 문제들도 겪고 있다고 합니다.

9. 인류세의 기후변화
10. 환경 오염 축적
11. 에너지 부족
12. 지구 광합성 능력을 전부 사용하려는 인류의 시도


이 책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UCLA에서 환경재앙으로 붕괴한 과거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할때마다, UCLA 학생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적었습니다.

환경위기가 찾아오기 전에 분명히 그 징후가 보였을 것이고, 사회가 그 징후를 인지했다면 대응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을텐데, 왜 무너졌느냐는 겁니다.

이는 학부생들 뿐만 아니라, 학자들조차도 당혹스럽게 했던 의문이라고 합니다.

고고학자 조지프 테인터(Joseph Tainer)는 자신의 책 <문명의 붕괴(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에서, 고대 사회들이 환경재앙으로 인해 붕괴했다는 가설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조지프 테인터가 보기에, 문명들이 환경위기로 인해 무너졌다는 주장은 인간의 경험칙과 직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이었습니다.

조지프 테인터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런 견해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 사회가 점점 다가오는 쇠약성에 대해 아무런 대응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가정해야 한다. 여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문명 사회는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 체계, 높은 정보 흐름, 각 부분의 탁월한 통합, 명령을 내리는 공식적인 채널의 존재, 자원의 공동 이용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런 구조로 인해 문명 사회는, 고의적인 목적이 있지 않는 한, 생산성 면에서의 변동과 결함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 조직과 노동력 및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문명 사회로서는 열악한 환경 자원 문제를 다루는 일이야말로 그리 어렵지 않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문명 사회가 실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붕괴하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자원 토대가 악화되고 있다는 징후가 문명 사회 구성원들이나 행정 관료들에게 분명하게 보였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외의 다른 가정들, 예를 들어 재앙에 직면해서도 게으름에 빠져 있었다는 등의 설명은 사실 대안으로 제시하기에는 너무나 비약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환경문제야 말로 문명 사회가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이고, 이런 문제에 대응하지 못해 문명이 붕괴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가 너무 게을렀거나 자살하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가정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입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고대 문명들이 환경위기에 대응하지 못했던 여러 개의 이유들을 제시하지만, 그 중 가장 공들여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엘리트들의 단기적 이익과 전체 사회의 장기적 이익의 충돌" 입니다. 이 현상이 바로 환경재앙으로 무너진 고대 문명들(노르웨이령 그린란드, 이스터 섬, 핏케언 섬, 마야, 아나사지 문명)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설령 어떤 결정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파국적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러한 결정으로 인해 그 사회의 엘리트들이 단기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엘리트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일이지만, 경제학적으로 대단히 "합리적인 행위(rational behavior)"라고 합니다. 마야의 왕들, 이스터 섬의 족장들은 더 화려한 장신구, 더 큰 석상을 가질 수록 더 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기에, 당장의 이익을 얻기 위해 환경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경쟁했고, 장기적인 환경문제를 고려해 벌목을 자제했던 족장들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족장의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엔론(Enron) 같은 회사에서도, 경영진은 주주들에게 해가 되더라도 회사 재산을 약탈함으로써 자신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으며, 자신들의 행동이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대단히 잘 알고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문명이 환경재앙에 대응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로는 태평양의 섬 티코피아, 에도 시대 일본이 있습니다. 에도 시대 일본은 극심한 벌목으로 인한 환경위기에 처했는데, 에도 막부는 영아살해를 통한 산아제한, 그리고 벌목에 대한 구체적인 법령을 내려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가 삼림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일본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이 없었고, 내부에서의 갈등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쿠가와 가문 입장에서는 일본을 위협하는 외세가 없고, 일본 내에서도 도쿠가와 가문을 위협할만한 세력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대대손손 일본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이익과 도쿠가와 가문의 이익이 일치했던 것입니다. 만약 일본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 또는 도쿠가와 가문을 위협하는 일본 내부의 세력이 존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환경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로 "적대적 이웃"의 존재를 들고 있습니다. 적대적 이웃이 존재할 경우, 적대적 이웃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고,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는 후순위로 밀려버립니다. 우리가 장기적 환경문제를 고려해 경쟁을 자제한다고 해도, 상대방은 계속해서 환경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성장할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패배하게 될테니까요.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현대 사회 역시 환경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근미래(우리의 자녀가 중장년이 될 무렵)에 문명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현재 지구 곳곳에서 환경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음을 지적하며 자신은 "희망의 조짐"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신중한 낙관론자"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책을 마칩니다.

글쎄요, 저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결론에 회의적입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스스로 지적했듯이, 티코피아 섬, 에도 시대 일본이 환경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회 모두 당시 외부의 적도, 내부갈등도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태평성대라고 볼 수 있나요? 지금 세상은 크게 보면 미-중 패권경쟁, 동남아시아의 군사정권들, 동북아 군비경쟁, 중동의 탈레반 정권과 테러단체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마약 카르텔들로 인해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좌파와 우파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고, 대한민국 역시 극심한 세대갈등, 계층갈등, 성별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의 세상은 티코피아 섬이나 에도 시대 일본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 끊이질 않던 마야, 이스터 섬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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