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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4/14 10:35:58
Name   바보왕
File #1   typingDog.gif (3.96 MB), Download : 23
Subject   어떤 어려운 게임들 이야기


파이어 엠블렘, 다키스트 던전, 다크 소울, 세키로.


모두 어려운 게임의 예시로 자주 언급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시에 [작심하고 강행하면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다]는 의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잘 아는 분이라면 이 게임 쉽다는 게 무슨 말인지 바로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래도 한번 설명을 해보죠.

파이어 엠블렘의 게임오버 조건은 생각보다 빡빡합니다. 주인공 및 특정 소수 인원이 죽거나 부상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무지하게 약해서 전선 담당이 아니거나, 반대로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웬만해선 죽지 않습니다.

다른 캐릭터야 물론 난수크리 상성크리 한 방에 쓰러지고, 한 번 쓰러지면 그대로 죽거나(클래식) 일정 시간 후방에 남겨지지만(현재) 그래서 게임오버가 되진 않습니다. 그냥 사람 하나 없어지는 거고 게임은 계속 갑니다. 그리고 난수나 상성에서 오는 크리티컬 한 방에 잘못될 수 있는 건 적들도 같습니다.

이건 다키스트 던전도 마찬가지. 레이널드가 죽어도 파티는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모험가 새로 들여서 키우는 건 노가다고 페널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중후반 가면 돈이 없어서 초중반 던전을 반복해야 되는 건 똑같습니다. 얹혀가는 저레벨 멤버 하나 있으나 없으나 그거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다크 소울과 세키로의 경우는 플레이어가 죽거나 지긴 합니다만 그것 때문에 게임오버가 되진 않습니다. GMTK 영상이나 게임스팟의 정리에서도 종종 언급하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죽어도 의외로 잃는 게 없어요. 아이템 그대로 있지. 레벨 그대로 있지. 스폰 위치도 그대로 있지. 아이템이 박살도 안나지.

끽해야 소울(화폐) 몇 개 떨어뜨리는 게 플레이어가 잃는 것의 전부요 적 스폰이 된다는 거 정도가 화딱지 날 건데 전자는 죽은 데까지 돌아만 가면 잃은 걸 100% 되돌려 받으니까 문제도 안 됩니다.

후자도 정도의 차이지, 결국 플레이어에게 정보라는 귀중한 자산을 주거든요. 스폰 지점이 똑같고 적들 하는 짓이 똑같으니까. 현실 루프물인 거죠.

더구나 다른 게임에선 게임오버 화면 후에 타이틀 화면 혹은 로드 절차를 통해서 게이머의 집중력을 흩어버리는 것과 달리 소울 시리즈와 세키로는 죽는 즉시 재도전이라 정신만 잘 차리면 오히려 죽을 때마다 플레이어가 각성을 시작함. 다시 말하지만 각성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


요는 "죽는 것과 죽음에서 게임 배우는 것을 적절히 감수만 하면 게임 강행돌파는 의외로 쉽다"는 게 지금 언급한 게임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시간이 지나도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플레이어가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이어 엠블렘으로 돌아가죠. 말씀드렸듯 이 게임은 극소수 인원만 살면 어떻게든 게임 깨집니다. 근데 이 작품에서 한 번 죽은 사람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클래식이면? 영원히 죽는 겁니다. 현재는 그래도 몇 번 전투 후에는 복귀합니다만, 그 몇 번 동안에는 없는 사람 되는 건 같습니다.

엔딩을 보면 이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서사가 나오는데, 대충 요약하면 이럽니다. 아무개는 마르스를 따라 종군했고 어디서 죽었다. 혹은 아무개는 린디스와 함께 싸웠다가 뼈가 부러져 결전의 날에는 그냥 병원에서 자고 있었다. 아무개는 루키나의 곁을 지켰으나 전장에서 이하 생략.

저기 나온 아무개가 내 최애라고 생각해봅시다. 혹은 서사에서 밀어주는 주인공의 가족/연인/대충 비슷한 거나.

다크 소울의 경우에도 죽음에 따른 플레이 페널티는 없지만, 서사의 변화가 존재합니다. 주인공의 얼굴이 점점 죽상으로 바뀌거나, 퀘스트의 진행이 미묘하게 바뀐다거나.

세키로의 경우 조금 더 서사 변화가 직관적인데, 기침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리면서 서브퀘스트 진행이 뭐 하나 되질 않습니다. 특히나 액션 게임이라고 퀘스트=전체 서사에 영향을 주는 것만 골라서 추려놓은 게임입니다. 퀘스트가 진행이 안되면 엔딩까지 내가 원하는 걸 못 볼 가능성도 높다는 말입니다.

이런 부차적 요소를 접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대체로 게임의 목표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향 조정합니다. 파이어 엠블렘이라면 "적어도 시다는 살리고 엔딩본다" 좀 더 나아가면 "우리편 뒤지는 꼴은 절대 못 본다!"를 부동의 목표로 잡습니다. 난수 엉킨 걸 봐도 차라리 게임을 리셋하지 저 목표는 양보 못 합니다.

다키스트 던전도 캐릭터 서사가 강하진 않지만, 플레이어가 받는 심리적 보상이 매우 클 것이라는 관찰은 여러 번 나오거든요. 던전을 끝까지 가면서, 그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영구적인 상처까지 받아 가면서도 끝내 생환해서 레벨 올리고 쎄진 멤버를 다음 전투에서 주사위 한 방에 보내버리고 싶어 안달난 플레이어가 있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멤버가 위험에 처해도 간단히 버리기보단 기를 쓰고 살리려 하고, 그만큼 주사위 한 번에 일희일비 폭을 크게 겪게 됩니다.

다크 소울에서는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혹은 "어떻게 되돌린 인간성인데" "렙업 더 해버리면 멀티할 사람 없는데" 등의 번뇌가 플레이에 끼어들면서 플레이어는 다크 소울이라는 게임의 페널티를 실제보다 크게 인지하고, 죽는 것에 대해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엔딩 보려면 용윤 아껴 써야 되는 세키로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게임의 난이도를 정하는 것이 게임 속의 요소만은 아닙니다. 플레이어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게임의 난이도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엔딩 이상의 것을 바라고 추구하면서 만든 자기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선언이 마음 속에서 굳어진 나머지 생겨난 게임에 대한 선입견, 고정관념일 수도 있습니다.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이런 속성은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게임은 도미닉 코브처럼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의식 변화와 경험의 자가 조정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원할 만한 것을 제시하거나, 가끔은 트라우마를 쑤시기도 하면서요.

게이머도 마찬가집니다. 어려운 게임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단순히 피지컬과 뇌지컬이 뛰어난 사람 외에도 이 게임이 [왜] 어려운지를 찾아보고, 시행착오를 만들어보고, 쓸데없이 사서 고생하고, 그 끝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주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없던 실력이 생기진 않죠. 하지만 어려운 게임을 하느라 수도 없이 고꾸라지면서도 계속해서 자기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순 있을 겁니다. 그냥 남이 추천했으니까, 갓겜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의지, 자기 마음에서 찾아낸 게이머 나름의 이유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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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estro
    전 세키로를 먼저 접하고 다크소울3를 이후에 진행했는데 그 특유의 답답함을 못견디고 결국 무슨 나무 나오는 두번째 보스에서 하차해버렸습니다.
    세키로는 꽤 재밌게 했어서 기대했는데 아쉽더라구요... 차라리 다크소울3를 먼저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을
    윤지호
    어렸을 적에는 비교적 다양한 게임을 했던 것 같은데 .. 이젠 결국 PvP나 PvE 컨텐츠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는 뇌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본문에 있는 다키스트 던전 다크소울같은 경우는 정말 재밌게 잘 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엔딩 근처도 못가보고 접었고, 그렇게 접은 게임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근데 또 직장 다니면서 PvP나 PvE 컨텐츠를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게임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네요.
    프롬 소프트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은 말씀하신대로 내 플레이 한두번에 나도 모르게 엔딩 분기가 일어나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1회차는 진짜 아무신경안쓰고 막플레이로 아무엔딩이나 보고 두번째는 검색해서 공략보면서 깨고 했거든요.
    근데 나이가 더 들고 게임 할 시간이 줄어드니 그냥 공략을 어느정도 보면서 1회차에 제가 가장 만족할 루트로 엔딩을 봐버립니다.
    했던 게임을 2회차까지 할 체력과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에 비하면 다키스트던전은 진짜 별 생각없이 플레이하기 좋았어요.
    물론 다이스신 강림 한번에 제가키운 캐릭... 더 보기
    프롬 소프트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은 말씀하신대로 내 플레이 한두번에 나도 모르게 엔딩 분기가 일어나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1회차는 진짜 아무신경안쓰고 막플레이로 아무엔딩이나 보고 두번째는 검색해서 공략보면서 깨고 했거든요.
    근데 나이가 더 들고 게임 할 시간이 줄어드니 그냥 공략을 어느정도 보면서 1회차에 제가 가장 만족할 루트로 엔딩을 봐버립니다.
    했던 게임을 2회차까지 할 체력과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에 비하면 다키스트던전은 진짜 별 생각없이 플레이하기 좋았어요.
    물론 다이스신 강림 한번에 제가키운 캐릭이 급사하고 다시 키워야하는 빡침은 있지만 어쨌든 그놈 죽는다고 제가해야하는 플레이 방향성이 바뀌는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몬헌 라이즈를 하고 있는데 참 만족합니다.
    적당한 난이도에 방향성도 명확하고 노가다를 해도 게임의 본질인 헌팅을 하는게 노가다가 되는거라 순수한 재미 자체를 느낄수 있는거 같읍니다.
    1
    정중아
    정말 파엠할때 딱 그렇게 되더라구요. 아무리 상황이 유리해지고, 아무리 귀찮은 매듭을 풀어낸다 하더라도 내 편 뒤지는꼴은 내 눈 뜨고 못봐요. 플레이 양상들이 전통적인 턴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체스, 장기와는 또 많이 다르죠. 이 게임들은 얼마나 유리하게 교환을 이끌어내는지가 관건이니
    BlazePsiki
    세키로 모든 엔딩 보기 위해서 4회차하고 특히 3회차에 노부적+종귀(게임에서 설정 가능한 최고 난이도)로 깨면서 진짜 힘들었지만... 깨고 나니 뿌듯하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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