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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0/01 11:02:10 |
Name | 쉬군 |
Subject | 빈자리가 마냥 채워지는건 아니다. |
작년 8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번 추석까지 세번의 명절을 지냈고 명절이 한번씩 지날때 마다 할머니의 눈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빈자리는 다른 시간으로, 생활로 채워진다고 했던가. 편찮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생활하시기 위해 마련했던 서재는 양장점을 하셨던 할머니의 재봉틀과 미싱, 그리고 원단들로 채워졌다. 이제 외가집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은 사진과 차마 할머니가 버리지 못하신 할아버지의 가장 아끼던 정장 한벌 정도뿐이다. 그렇게 빈자리가 채워진다고 생각했다. 이번 추석, 외가집을 갈때마다 꼬박꼬박 들렀던 단골 목욕탕을 찾았다. 여느 시골 목욕탕이 그렇듯 그곳에도 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목욕바구니가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목욕바구니를 꺼내었고 그 순간 머리를 한대 맞은듯 멍함이 몰려왔다. 바구니가 비어있다. 항상 철두철미 하셨던 할아버지가 살아계실적 바구니는 샴푸니 비누니 치약이니 가득가득 채워두셨고, 언제나 물때하나 없이 깨끗했던 바구니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 들고있는 바구니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지않는다. 샴푸, 비누는 없어진지 오래고 치약도 바짝 마른채 굴러다닌다. 바구니는 물때와 먼지로 가득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난다. 그래 빈자리는 마냥 채워지는것은 아니다. 어느곳에서는 시간과 생활로 빈자리가 채워지고 있지만 어디서는 이렇게 점점 빈자리가 더 크게 존재하고 있다. 사람을 기억한다는건 이런것인가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에서 잊고있는듯 하지만 어디선가 존재하는 이런 빈자리의 존재감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리움을 던져주고 간다. 그리고 그런 그리움을 품고 잊지않고 살아가는것인가 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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