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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24 13:55:09수정됨
Name   Velma Kelly
Subject   체스에 대해 배워봅시다 4편 - 오프닝, 지우오코 피아노
1편 - 행마와 규칙 (https://kongcha.net/pb/pb.php?id=recommended&no=1035)
2편 - 수읽기 (https://kongcha.net/pb/pb.php?id=free&no=11251)
3편 - 각종 용어와 전략 (https://kongcha.net/pb/pb.php?id=free&no=11256)




안녕하세요
원래는 게임을 끝내는 방법(후반부 체크메이트)에 대해 쓸 생각이었지만, 이걸 찾는 분들이 더 많을거 같고, 극후반 체크메이트는 엔드게임에서 다뤄도 될 거 같아서 주제를 바꿨습니다.

드디어 [오프닝]까지 왔습니다! 오프닝이란, 체스 한 게임의 세 단계 (오프닝, 미드 게임, 엔드 게임) 중 첫 번째입니다. 오프닝이란, 기물과 기물이 제대로 맞붙는 중반을 위한 준비 단계로, 바둑으로 치면 포석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세상엔 별별 오프닝이 다 있습니다. Encyclopedia of Chess Opening(ECO)라는 물건이 있는데, 일단 여기 실린 오프닝만 해도 500개입니다. 그랜드마스터들은 이름은 물론이고 변형 버전까지 웬만하면 싹 다 외운 미친 인간들이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렇게 외우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1) 그럴 시간에 지난 게임을 복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2) 기껏 오프닝을 외워봤자 그 오프닝을 모르는 상대가 틀린/다른 수를 두면 응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프닝은 뭘 배워야 할까요? 오프닝을 보는 족족 다 외우는 것보다는 오프닝의 기본 개념을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오프닝에는 공통된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을 잘 기억해두면 상대가 모르는 오프닝을 꺼내들어도 큰 손해 없이 대응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프닝 관련 글을 쓸때는, 시시콜콜하게 모든 변형을 다 커버하기보다는 자주 보이는, 가장 보편적인 (main line) 수만을 소개해 드리고 매 수에 담긴 오프닝 개념을 설명하는 식으로 쓰려고 합니다.


오프닝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프닝에는 세 가지 목적 (Opening principles)이 있습니다.

1. 중앙을 (폰과 마이너 피스로) 장악
2. 마이너 피스를 좋은 위치로 진출
3. 킹의 안전 확보 (주로 캐슬링을 통해)



(하이퍼 모던 오프닝이라고 센터를 안 잡는 오프닝이 있긴 한데, 그런 건 우리 레벨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ㅎㅎ;;)

여러분이 앞으로 제 글에서 보게 될 오프닝은 대부분 나열한 세 개의 목적을 따르게 될 겁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오프닝을 외우기 싫더라도 초반에 저 세가지만 이루려고 노력해 보세요. 저걸 의식적으로 수행하는것 만으로도 승률이 오를 정도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늘의 오프닝은 [지우오코 피아노 (Giuoco piano)]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으로 배운 오프닝입니다 :)

1. e4 e5


e4-e5는 아마 모든 오프닝 중 가장 인기 있는 처음 두 수일겁니다.
흑 백 모두 e폰을 진출시켜 중앙의 세력에 도전합니다. 폰이 움직임과 동시에, 양 측의 비숍이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2. Nf3 Nc6


백은 선수를 활용, 나이트를 중앙으로 진출시키는 동시에 e5의 흑 폰을 공격합니다. Ne2 같은 수도 엄밀히 말하면 진출이지만 훨씬 더 소극적이고 비숍의 길을 막게 되므로 좋지 않습니다.

흑 또한 나이트를 진출시키면서 e5의 폰을 보호합니다.

3. Bc4 Bc5 (세 번째 수는 여러 가지로 갈립니다. Bb5는 루이 로페즈, Nc3은 Four knights opening, d4는 스카치 오프닝으로 진입합니다.)


지우오코 피아노는 비숍을 중앙으로 진출시키는 Bc4로 이어집니다.

백의 이 비숍은 꽤 중요합니다. 만약 흑이 손해 없이 이 비숍과 다른 기물을 교환할 수 있으면 흑의 이득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기물이거든요. 그 이유는 체스에서 흑의 고질적인 약점, f7 폰에 있습니다. (이 약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쓰겠습니다.) 아무튼 Bc4는 비숍을 중앙으로 진출시키면서 흑의 d5를 방지하고, f7의 폰을 공격합니다. 동시에 백의 킹은 이제 킹 사이드 캐슬링을 할 수 있습니다.

흑 또한 비숍을 중앙으로 진출시켜 백의 d4를 방지하고, 킹 사이드 캐슬링에 한발짝 다가섭니다.

* 여기서 흑이 3. …Bc5 대신 나이트를 진출시키겠다고 …Nf6을 두는건 꽤 위험합니다. 글 밑부분에 있으니 나중에 참조해 주세요.

4. c3 Nf6


백은 여기서 마이너 피스 진출 대신 중앙에 집중합니다. 지금 당장 d4를 두면 …exd4 5. Nxd4 Bxd4 로 손해죠? 그렇기 때문에 d4의 폰을 보호해줄 c3을 둡니다. 흑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이트를 중앙으로 내보냅니다.

5. d4 exd4 6. cxd4


당장 e4의 폰이 공격받고 있지만 백은 신경쓰지 않고 중앙의 흑 폰과 비숍을 동시에 공격합니다.  흑은 사실상 exd4가 강제되고, 백은 계획대로 c3의 폰으로 중앙을 장악합니다.

6. …Bb4+ 7. Bd2 Bxd2 8. Nbxd2


흑이 여기서 Bb6이나 Be7 같은 수로 비숍을 무르면 중앙을 완전히 내주고 소극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됩니다. 대신 Bb4로 시작되는 비숍-비숍 교환을 하는게 최선입니다. 퀸이 아니라 나이트로 비숍을 잡는것에 주목해 주세요!

* 가끔 여기서 흑이 7. Bd2 이후 …Nxe4를 두는 실수를 합니다. 겉보기엔 공짜 폰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8. Bxb4 Nxb4 9. Bxf7+ Kxf7 10. Qb3+ 이면 백이 잃은 폰을 되찾을뿐만 아니라 흑은 킹을 움직였기 때문에 이제 캐슬링을 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진행하게 됩니다.

(10. Qb3+ 직후 장면. 흑은 무조건 나이트를 잃게 돼 있습니다)


8. …d5 9. exd5 Nxd5


Nbxd2 직후 상황은 백이 중앙을 완전히 지배한 상황입니다. 흑의 d5는 그걸 어느 정도 상쇄하는 수입니다. 백의 exd5가 강제되고, Nxd5 이후엔 백의 중앙이 좀 약화된 걸 볼 수 있습니다.

10. Qb3 Nce7


백은 퀸과 비숍을 한 줄에 놓아서 d5의 나이트를 공격합니다. 여기서 나이트가 피하면 11. Bxf7+로 백이 개이득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은 Nce7로 나이트를 보호합니다.

11. O-O O-O


서로 캐슬링으로 킹을 보호하는 동시에 구석의 룩이 게임에 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정식 오프닝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후로는 서로의 취향따라 입맛따라 두게 됩니다. (제가 백이라면 Rfe1을, 흑이라면 백의 수 이후 c6을 둡니다.)

백은 마이너 피스 셋 다 중앙으로 진출해 있고, 센터에 위치한 폰을 활용한 공격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특히 a2에서 g8로 이어지는 대각선이 흑에게는 위협적입니다.

흑은 비숍이 진출하지 못해서 당장은 소극적이지만, 모든 폰이 연결돼 있습니다. 백의 d4 폰은 중앙에 있지만 고립되어 있죠? 그러므로 흑은 무난하게 교환이 이루어지고 폰 하나하나가 중요한 엔드게임으로 가면 조금 더 수월한 진행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백은 중앙의 이점을 살려 미드게임에서 이득을 봐야 하고, 흑은 백의 공세를 막아내거나 고립된 d4 폰을 집요하게 노리는 진행이 됩니다.

제가 이 오프닝을 처음 보여드린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백의 입장에서) 바리에이션이 많지 않음
흑 입장에선 위에 언급한 루이 로페즈나 스카치 같은 변형도 생각해야 하지만, 백 입장에선 흑의 변수가 그닥 많지 않기 때문에 초심자가 배우기에 좋습니다.

2. 오픈 게임 (open game)
마지막 장면을 보면 딱 봐도 체스판이 좀 비어 있죠? 교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클로즈드 게임 (closed game)은 초보자가 보기에 직관적이지 않은 수읽기를 필요로 하고, 경험이 많이 필요한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거든요.

3. 모든 수가 직관적임
어떻게 보면 흑백 양쪽에게 가장 정직한 오프닝입니다. 양쪽 다 중앙을 노리면서 마이너 피스를 진출시키고 안정적으로 킹 사이드 캐슬링을 하기 때문에, 오프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이걸 두면서 좋은 습관을 익히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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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Fried liver attack


위에서 흑의 세 번째 수로 Nf6은 위험하다고 썼죠? 이 경우에 백은 4. Ng5를 둡니다.
비숍과 나이트가 둘 다 f7의 폰을 공격하고 있죠? 여기서 흑이 폰을 잃지 않는 수는 하나 뿐입니다.


4. …d5 5. exd5 Nxd5



여기서 백은 나이트를 희생합니다. 6. Nxf7 Kxf7 (킹이 잡지 않으면 룩이나 퀸 둘 중 하나가 죽습니다)




7. Qf3+ Ke6


퀸이 킹과 d5의 나이트를 동시에 공격합니다. 여기서 킹이 e6 말고 다른 곳으로 가면 Bxd5로 나이트를 잡아서 결과적으로 이득입니다. 흑은 당장 나이트를 지키긴 하지만 킹이 중앙에 나왔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입니다.


8. Nc3 Nb4 (Ne7은 더 위험합니다)


백은 교환을 늦추고 최대한 공세로 나섭니다. 이미 나이트를 희생했기 때문에 동률 교환이 나오면 흑이 무난하게 이기거든요. d5의 나이트는 핀에 걸렸기 때문에 Nxc3은 안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서로 두기 나름인데요, 킹이 중앙에 있다는 약점 때문에 흑이 실수할 여지가 훨씬 많습니다. 백은 비록 나이트 하나만큼 손해인 상태지만 여러가지 공격으로 나이트 이상의 이득을 보곤 합니다. 일단 캐슬링을 해서 Re1을 둘 수도 있고, 그 뒤에 d4를 둬서 폰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어요. 주의할 점은, 백은 이미 나이트를 희생시킨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이득을 보는 교환을 노려야 한다는 겁니다. (퀸을 잡는다던가, 체크메이트를 강제한다던가…)



8. ...Nb4 9. O-O c6 이후 백이 주로 노리는 공격루트. a1에 있는 룩을 제외하면 모든 기물이 킹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주 조심스러운 수읽기가 아니면 큰 손해를 보거나 체크메이트를 당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결론: 흑이라면 Nf6 말고 얌전히 Bc5를 두는게 좋습니다 :)



다음 편에는 뭐에 대해 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프닝 (퀸즈 갬빗, 시실리안 디펜스 중 하나) 아니면 엔드게임의 기초에 대해 쓰고 싶은데...읽어주시는 분들이 원하시는게 있다면 그걸로 쓰고 아니면 쓰기 쉬운 것부터 쓰겠습니다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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