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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23 08:46:29 |
Name | 거소 |
Subject | 편향이 곧 정치 |
민주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들에서 제가 가장 많이 읽는 수사는 '상식, 정의, 자유, 평등'같은 단어들입니다. 저런 캐치프레이즈로 정권을 먹었으니 그 댓가를 치루네 싶기도 하지만서도 비판하는 이들이 정치나 사회를 다 자기 입맛대로만 소화하는 거 같아서 싫습니다. 정치는 언제나 자원을 누군가에게서 빼앗고 누군가에게 분배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치는 없습니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들, 자기가 손해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치가 가진 속성을 그동안 운 좋게 못 느꼈을 뿐입니다. 그 전에는 어쩌면, 자기는 노력과 성실로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정치와 사회의 결정이 자신의 편을 들어줬을거란 상상을 해봤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완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져 있으면서도, 능력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사상들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 참 잘 어울리는 이념이다 보니 여러 수사를 쥐고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윤리의 탈을 쓰고 상식의 탈을 연기할때면 짜증이 납니다.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증오의 대상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시장에 비해 이미 한 가지 약점을 더 갖고 갑니다. 시장과 시민의 작용을 비판하는 것은 마치 허구와 같습니다. 그건 일종의 자연스러운 것들, 내지는 본능이라고 꾸밉니다. 저는 그런 것들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시장을 내버려뒀을때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특수한 집단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정치가 실질적으로 손해를 준다고 생각하여, 특정 정치를 반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게 곧 상식이나 옳음의 위치까지 얻어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어떤 편향은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줍니다. '발언할 수 있는' 이들의 위치는 상대적인 위치에 있어 존중은 받을지언정 그럴 수 없는 이들의 절대적인 위치까지 넘봐선 안됩니다. 정치가 비판받을 때는 내 삶에 손해를 끼칠때이기도 하지만 내 삶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해악이 더 크다고 느낄때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고요. 지금 정부도 그 경계에 선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굵직한 이슈들이 많았고 스택이 적립되어 왔죠. 기존의 '상식'은 누군가들에게 유리한 '상식'이었습니다. 그게 꽤 다수일 수는 있죠. 그리고 그런 상식이 유지되면 사회는 그 자체로 예측가능성을 지닙니다. 예측가능성에 맞게 성실하게 살아가면 성공하는 일은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사회는 그런식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 예측가능성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익은 명확하게 각자에게 다른 비율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과 부딪히는 과정에서의 맘에 들지 않는 것이나 실책들, 이를테면 조국이슈나 추미애 이슈나 부동산 이슈 같은 것들이 있겠죠. 그것들에 비판이 쏟아질때도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비판을 하는 시민들이 바로 정치의 핵심이니까요. 그렇게 흔들리면서 시도되고 좌절하고 교정되는 것이 정치이고 그 비용을 내는 것이 사회의 합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상식으로, 정의로운것으로 만드는 일은 헤게모니와 정치적 아젠다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런면에서 특정 집단에게 무척 편향적이고, 특정한 상식과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상대를 하나의 악인으로 만드는 것은 좀 주저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로 어떤 결정들은 누군가의 악의가 쌓여서 라기보다는 각자의 최선의 이해가 악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체 왜 그 자리에 가면, 그 상황이 되면 밖에서 보기에는 머저리같은 짓들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는가. 의심은 늘 거기서 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저 초인인 누군가가 그 모든것을 타파하기를 바랍니다. 민주정이라는 특징 앞에서, 그런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이 하필이면 누구보다도 더 초인의 와꾸를 가졌기에 이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십시오. 그 편향이 곧 정치입니다. 그런데, 그 이익을 자꾸 모두의 상식과 정의로 포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는 그래서 갑자기 과거의 보수정당을 미화한답시고 온갖 근거와 사장된 이슈를 끌어오는 사람들이나, 정치인을 하나의 퓨어하고 일관된 악으로 규정하고 사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 모두 정확하게 지금 비난받는 그 정치인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늘 분명 사람이 바뀌었고 안그럴 사람이었는데 거기만 가면 그러고 있는 일이 누구에게든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는 이익 이상의 것이 있다고, 그리고 어떤 시민들은. 혹은 다수의 시민들은 자기의 이익 이상의 무언가를 사고할 수 있다고 믿었던 20대였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사익을 정의로 포장만 안해도 지구상에 유래없는 발전된 시민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혐오와 역겨움으로 공격하기 위해 상식과 정의를 사익에 기반해 구성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서 써 봤습니다. 그런거 없이도, 나한테 좆같은 정치에는 좆같다고 말할 수 있는게 훨씬 건강한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깔때도 어지간하면 정의니 상식이니 가지고 깔게 아니라 그냥 그 결정의 손해와 이익, 결정 과정에서의 이유를 가지고만 까야겠다고 반성도 합니다. 자본가를 악마로 만드는 편리함이 어떤식으로 사람들에게 자기 입맞에 맞춰 돌고 도는지 매우 잘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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