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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30 08:10:37 |
Name | 최우엉 |
Subject | 공장식 축산과 동물에게 주어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 |
아래 오쇼 라즈니쉬님의 글과 댓글을 보고 여기저기 끼어서 댓글을 남기다가, 다른 분이 쓴 평화로운 게시글(?)에 민폐를 끼치지 말고 제 나름의 발제를 파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씁니다. - 먹는 문제에 있어 자신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려는 잡식인이라면, 동물을 먹기 위해 동물이 치르는 고통을 인식해야 하고, 그 고통을 동물에게 강제할 수 있는 적절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물에게 아예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려면 모를까, 불필요하게 학대받지 않을 권리 등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 동의하시는 분이라면 공장식 축산의 산물을 소비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왜냐하면 공장식 축산은 (1) 그 침해의 수준이 전례 없이 극단적이고 광범위한데다 자기은폐적이고 (2) 단지 먹기 위한 침해가 아닐 뿐더러 (3)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받기 위한 침해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1) 공장식 축산의 광범위하고 극단적이며 자기은폐적인 동물권 침해에 관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에 대해 알만큼 알고, 접할 만큼 접했으며, 채식주의자들의 장광설을 통해 충분히 들어왔다. 대중 역시 대체로 그렇고, 그러니 공장식 축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멜라니 조이는, 현대 축산체계가 대중에게서 밀집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 factory farm)의 실체를 대중에게서 감추어 비가시성을 획득하는 방어기제를 지녔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공장식 축산이 비가시성을 통해 산업의 현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대중은 자신들이 동물의 사체를 소비하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알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동물을 소비하는 행위에 관한 규범판단을 행할 실질적 근거를 얻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드넓은 목장에서 풀을 뜯는 젖소를 제품 뒤에 그려넣는 실체 없는 마케팅에 휘둘릴 뿐이고, 동물들은 인간의 연민에 호소할 기회를 상실합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행하는 지도 모르는 채 동물에 대한 폭력과 학살을 존속시키는 일을 돕게 됩니다. 멜라니 조이는 비가시성을 실제적 비가시성과 상징적 비가시성으로 분리합니다. 상징적 비가시성은 자신이 먹는 육류와 먹히는 동물을 연결짓지 못하는 일을 말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도시인들은 대체로 돼지의 생태와 삶을 알거나 목격해 본 적 없으므로, 마트에서 포장되어 눈앞에서 조리된 동물의 사체와 돼지의 모습을 연결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먹을 때면, 다수의 한국인은 눈앞에 놓인 고양이 고기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친구네 고양이, 유튜브에서 본 고양이의 이미지를 결부시켜 그 고기에 일정 부분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 불편한 감정에 대해 "돼지도 먹기 때문에 고양이를 먹는 것에 관한 불편한 감정은 해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먹히는 고양이에게 연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양이 뿐 아니라 돼지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로 나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논점과 더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실제적 비가시성입니다. 실제적 비가시성은, 육류생산시설에의 접근불가능성으로 확인됩니다. 멜라니 조이가 제시하는 예시는 언론인 대니얼 즈워들링이 '구어메(미식가)' 지에 닭고기 산업에 대한 기사를 쓸 작정으로, 농장주들에게 닭 농장과 가공 농장 등을 돌아보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농장주들의 답변은 상대가 채식주의자이기라도 한 듯 부정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수록된 기사 '어 뷰 투 킬'에서 즈워들링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닭이 어떻게 키워지는지 직접 보고 싶었으나 5대 닭고기 회사의 대변인들은 닭을 키워 그들에게 공급하는 농장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도축장을 보여주는 일도 거부했다. 그들이 닭을 어떻게 죽이는지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회사 간부들은 심지어 닭을 키우고 죽이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어 멜라니 조이는 식육가공공장이 접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국 여러 주에서 동물기업(animal enterprise) 내의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법으로 금한다는 점을 실질적 비가시성의 또다른 근거로 제시합니다. 언론매체의 동물기업 접근이 거부되기에 일반에게 공개되는 영상은 대부분 몰래 조사하며 찍은 것인데, 2008년 동물보호단체인 미국인도주의협회(HSUS)가 잠입 조사를 통해 인부들이 병든 젖소를 쇠사슬로 묶어가 지게차로 뒤집는 장면 등을 알렸을 때 미국 역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 또한 평상시에는 대중에게 알려질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축산공장 내부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의 근거가 됩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동물보호활동가들의 잠입취재가 없다면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먹는 동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러 의미에서 명성 높은 PETA가 한국 제주에서 찍은 영상이 아니었다면, 말고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경주마들이 어떻게 도축되는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눈앞에서 다른 말이 도축당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치는 말과, 그런 말을 도축장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얼굴을 막대로 구타하는 등의 과정은 '도축장에서는 가스를 주입해 느낄 수 없게 만든 후 도축한다'는 일부 대중의 생각이 틀렸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 "경기 뒤 3일 만에 도축장으로…경주마들의 비극적 최후"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farm_animal/892574.html 경남 사천의 돼지농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기돼지 망치살해 역시, '인간은 돼지를 키워서 새끼를 치게 하고, 다 자란 돼지를 먹으며, 어린 돼지를 성장시켜 이 사이클을 반복한다'라는 일부 대중의 생각이 틀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죽은 돼지들과 아직 죽지 않는 돼지들이 좁은 길에 쫙 깔린 채 순서대로 망치로 두드려 맞으면서 다리를 부르르 떨어대는, 이 '도태'의 과정은, 카라에 제보한 제보자에 따르면 하루에 50-300마리 돼지에게 적용된다고 합니다. 일부 농장에서 일어나는 임의 선별과 잔인한 도태의 과정은 이런 내부고발자나 단체가 아니면 알려질 수 없으며, 처음 있는 일이 아닐 것임에도 제도권 언론을 통해서는 보도되지 않습니다. — "망치로 매일 수십 마리 아기돼지들을 때려죽이고 있는 대규모 공장식 농장을 고발했습니다. 돼지의 고통스러운 도태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https://www.ekara.org/activity/farm/read/10866 이런 사건은 실질적 비가시성의 불완전한 장막을 뚫고 등장하는 몇 가지 사실의 파편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 만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동물의 삶과 현실에 관심을 갖고 최대한 동물학대의 현실을 알아두려 애쓰는 사람들도 결코 축산공장 안에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100억마리의 닭들이 살해당하고, 한국에서는 해마다 10억마리의 닭이 살해당합니다. 이 닭들 각각이 경험하는 고유한 삶과 죽음의 과정이 어떠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알 방법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을 통해 축산농장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잘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각 동물별 습성과 그 습성에 가해지는 제약, 폭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용은 주로 멜라니 조이의 상기한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내용이 많지만 애써 간추렸고, 더 많은 내용을 보고 싶다면 원서를 보시거나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다큐멘터리 도미니언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도미니언(지배자들) Dominion 2018 full documentary https://youtu.be/zqGFl2HIMXU 도미니언(지배자들) Dominion 2018 full documentary — 돼지 : 돼지는 생후 3주가 되면 이름을 알아듣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훈련을 시킬 경우 코로 조이스틱을 움직여 80%의 타겟을 적중시키는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있습니다. 배를 긁어주는 것을 몹시 좋아하고 자연 상태에서는 하루 50km를 뛰어다니며, 같은 집단 내의 돼지를 서른 마리까지 구별하고, 서로 친밀하게 지냅니다. 출산을 앞둔 어미돼지는 아기 낳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느라 홀로 10km를 돌아다니다가, 장소를 찾으면 10시간동안 공을 들여 꾸미고 아기를 낳아 돌봅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내다 아기를 낳으면 낳은 아기를 데리고 본 집단으로 돌아갑니다. 사육 : (멜라니 조이는 미국을 기준으로 쓰고 있지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도 대체로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돼지들은 전 생애를 밀집사육시설에 갇혀 지내며 도축장행 트럭에 오를 때까지 한 번도 바깥 구경을 못 합니다. 아기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마취도 없이 거세되고 꼬리가 잘립니다. 꼬리는 뭉툭한 펜치로 끊게 돼 있는데, 이렇게 하면 절단면이 짓눌려 피가 덜 난다고 합니다. 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의 꼬리를 끊는 신경증 때문이고, 업계에서는 이를 돼지 스트레스 증후군(porcine stress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증상은 인간의 PTSD와 흡사합니다. 붙잡혀 지내면서 독방 감금 등 다양한 고문을 당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돼지들은 자해를 하거나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때로는 하루에 수천 번씩이나 합니다. 많은 경우 배설물 가스로 인해 돼지들은 폐 질환으로 조기사망하기도 합니다. 다 자라 도살하기 알맞은 상태가 된 돼지들은 슈트(shute)라고 불리는 좁은 통로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도살 라인을 향해 나아갑니다. 돼지들은 몰이꾼들에 의해 몰려 도축장으로 향하며 앞서간 돼지들의 비명과 생산 라인 작업자들의 고함을 듣습니다. 도축장 일꾼은 이렇게 말합니다. "돼지들이 피 냄새를 맡으면 앞으로 가려 들지 않지요. 돼지들을 제어기에 넣기 위해 채찍질하고 머리를 발로 차는 것을 많이 봤어요. 어느 날 밤에는 몰이꾼이 화가 난 나머지 판자 조각으로 돼지의 등을 내리쳐서 부러뜨리더군요. 돼지를 움직이게 하려고 몰이에 쓰는 봉을 항문에 쑤셔 넣는 걸 본 적도 있어요. 그런 돼지는 나한테 왔을 때 두 배는 더 난폭해지기 때문에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싶은데 말이지요." 원칙적으로 가축들은 도살전 의식을 상실시키지만, 컨베이어 벨트 족쇄에 발목이 걸린 채 거꾸로 매달려 가는 돼지들 중에는 의식이 멀쩡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칼로 목동맥이 끊길 때까지 발부림을 치고 몸부림칩니다. 이 상태로 끓는 물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고, 대롱대롱 매달려 꽥꽥 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 소 : 소들은 의사소통을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하고 사교적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발성법과 제스처가 있으며 자연적인 환경에서는 서로 우정을 쌓곤 합니다. 소들은 천성적으로 순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풀을 뜯고 되새김질하는 데 보냅니다. 송아지들은 어미젖을 빨지 않을 때는 서로 어울려 놉니다. 사육 :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쓰기 위해 수소 한 마리, 534라는 번호가 붙은 육우의 일생을 추적했습니다. 이 소는 출산용 헛간에서 태어나 마취 없이 칼로 음낭의 아랫부분을 잘라내어 고환을 하나씩 제거하는 거세와 뿔 제거를 겪습니다. 이들은 이른 시기에 젖을 떼어 어미들과 강제 분리되고, 예비 우리를 거쳐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비육장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도살장에서 소들은 죽음의 통로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 버티기에 일꾼들은 전기봉을 휘둘러 앞으로 나아가도록 밉니다. 돼지의 경우처럼 적지 않은 소들이 눈 뜬 채로 죽음을 겪습니다. 발에 사슬이 둘러져 거꾸로 매달리고, 피를 뽑히며, 내장이 들어내지고, 가죽이 벗겨내집니다. — 닭 : 반려로 키우는 닭을 유튜브로 본 적 있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닭은 붙임성이 좋고 주인과 같이 놀며 쓰다듬어주는 등 애정표현을 바랍니다. 무리 내에서 닭은 다른 개체들을 분별하고 서열에 따른 상대적 지위를 인식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닭과 가까이 있으려 합니다. 집에서는 개와 어울려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연에서의 수명은 10년, 최대 20년 가량입니다. 사육 : 사육장에서 닭은 7주 내외의 생을 삽니다. 사육장은 닭을 최대 5만 마리까지 수용합니다. 밀집사육장의 포화도 탓에 닭들은 모이도 쫄 수 없고 횃대를 찾아 뛰어오를 수도 없습니다. 서로를 부리로 쪼는 정신병적인 행동 탓에 뜨거운 날로 부리 앞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멜라니 조이가 보고하는 미국의 경우, 닭은 가축을 의식이 없도록 만드는 절차를 가하지 않아도 되므로, 의식이 완전한 상태에서 도살됩니다. 산 채로 목이 따이거나 털이 뽑히기 위해 끓는물에 입수됩니다. — 현대 공장식 축산은 더 많이, 더 싸게 먹기 위해서, 동물의 삶과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환경에 동물을 노출시키고, 밀집사육과 무마취 신체절단과 불완전한 기절상태에서의 도축이 이루어집니다. 그나마 있는 법이 준법되고 있는지 감시되지도 않고, 은폐된 장소에서 농장 노동자들이나 농장주들이 어떤 종류의 폭력을 휘두르든간에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조직되어 있습니다. 동물의 생애 전체를 고통 하에 두며, 그 동물이 낳는 동물의 삶마저 고통으로 만들어 고통의 반복을 영구화하고, 전지구적으로 매년 몇천억 단위의 동물이 이렇게 희생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폭력의 명분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먹기 위한 죽음'인데, 동물의 고통 중 상당한 부분이 '식이'와 무관하거나 적어도 '먹기 위한 죽음'은 아닙니다. (2) 식이와 무관한 죽음, 또는 먹기 위한 죽음이 아닌 죽음 한국에서 망치로 얻어맞는 아기돼지들은, 전문성을 확인할 수 없는 농장노동자가 선별하여 잔혹한 방법으로 몸을 비틀며 죽었습니다. 이 아기돼지들은 먹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좋게 봐 줘야 '먹는 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채산성이 안 나오니' 죽은 겁니다. 그마저도 확실치 않지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 아무도 모릅니다. 도축장의 열악하고 과밀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죽어가는지는, 통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혼탁한 사육장의 공기로 인한 폐질환, 밀집사육 스트레스와 무마취 절단으로 인한 감염으로 도축장에 도달하기 전에 죽은 동물들은 '먹기 위한 죽음'이 아닙니다. 이 동물들은 사육비용을 절감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그냥 죽는 겁니다. 수평아리들은 많은 경우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던져져서 산채로 갈립니다. 인간은 이 병아리들을 먹기 위해 죽이는 게 아니라, 생산성이 없으니 그냥 죽이는 겁니다. 이것은 '먹는 과정'에서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지언정 먹기 위해 죽이는 건 아닙니다. 해마다 40-60억 마리의 수평아리가 죽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 "수컷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죽는 거 앎?ㅠㅠ /스브스뉴스" https://youtu.be/UU7ca4Ooi4o 수컷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죽는 거 앎?ㅠㅠ /스브스뉴스 한편, 아예 식이용의 과정과 무관한 '입기 위한 죽음'도 일상입니다. 대체제들이 넘쳐나고 심지어 가격 또한 동물의 사체를 활용한 경우보다 더 저렴한 경우가 잦은데, 어떤 경우에는 '고급스러운 질감'을 위해, 어떤 경우에는 '보온성'을 위해 이 동물들이 죽어나갑니다. 각종 모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고발이 이루어져 왔지만 그중 가장 충격적인 영상은 앙고라 토끼 털을 입겠다고 토끼를 기둥에 묶어둔 채, 끔찍한 비명을 쉴새없이 내지르는 토끼의 털을 손으로 북북 뜯어내는 영상입니다. 어지간한 영상에는 굳이 주의 표시를 달지 않는데 이 영상은 심각하므로 주의하세요. — The Truth Behind Angora Fur [잔혹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PtAFHyXS31M The Truth Behind Angora Fur SBS와 KOTTI가 시행한 실험에 따르면 거위털, 오리털, 웰론의 보온성은 3-4%p 차이이며, 복원성의 경우는 웰론이 더 우수하다는 실험까지 있는데, 새들의 털을 입겠다고 살아있는 동안 5-15회에 걸쳐 거위와 오리의 털을 산채로 북북 뜯어댑니다. 롱패딩 한 벌을 만드는 데 오리나 거위가 일생동안 생산하는 털 20마리분이 필요합니다. 양모의 경우에는 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고환을 잘라내는 일도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겨울은 거위에겐 '죽음의 계절'...구스다운 롱패딩 한 벌에 20마리 산 채로 털 뽑혀"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48 — SBS "[취재파일] 패딩, 3%의 보온성 차이에 1,000%의 가격 치른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577769 — JTBC "산 채로 털 뽑히며 발버둥…구스다운 '거위들의 비명'" https://youtu.be/Y8TbkR7qJt0] (https://youtu.be/Y8TbkR7qJt0 산 채로 털 뽑히며 발버둥…구스다운 '거위들의 비명' —"PETA Asia’s Latest Findings of Cruelty in the Australian Wool Industry" https://youtu.be/TOt3EWbbM1s] (https://youtu.be/TOt3EWbbM1s PETA Asia’s Latest Findings of Cruelty in the Australian Wool Industry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연간 410만톤입니다. 단체급식 등을 시행하고 남아 버리는 육류, 식당에서 버려지는 육류, 개인이 버리는 육류, 심지어 농업과정에서도 일정량의 동물들이 희생당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동물들은 '버려지기 위해'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저는 비건이 되기 전에도 동물의 사체는 남기는 것을 금기로 여겼지만 이런 실천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흔하겠지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은 먹기 위한 동물들에게도 주어지고, 먹히지 않는 채 죽음을 맞는 동물들에게도 주어지며, 입혀지는 동물들에게도 주어지며, 버려지는 동물들에게도 주어집니다. 먹기 위한 죽음이라는 정당화 자체도 의문에 부쳐져야 할 일이지만, 일단 모든 동물들이 먹혀지기 위해서 인간에 의해 고통받거나 죽어간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먹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어서, 다른 동물학대는 금기시하는 사람들조차 먹는 것이 연관된 문제에서는 얼마든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걸까요? 이 생각은 주로 생존이나 건강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3) 육식과 건강의 통념 이 게시판에서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비건은 자기 건강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통념은 안티비건들 사이에서 흔합니다. 이 통념은 대개 MBC가 만든 열댓명의 채식인을 표본 삼아 만든 영상과 EBS '명의'에 등장하는 고지혈증을 앓는 스님의 짤로 지지됩니다. 그러나 영미를 대표하는 영양학 전문가단체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영양학자가 아닌 데다, 이 문제는 길게 다뤄질만한 핵심 논점도 아닌 듯하니 짧막한 링크들로 대체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It is the position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that appropriately planned vegetarian, including vegan, diets are healthful, nutritionally adequate, and may provide health benefits for the prevention and treatment of certain diseases. (적절히 계획된 채식주의 식단-비건 식단을 포함하여-은 건강에 좋고, 영양학적으로 적합하며,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관리에 이점을 줄 수 있다.)" — Position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Vegetarian Diets https://pubmed.ncbi.nlm.nih.gov/27886704/ "One of the UK’s longest-standing organisations that represents dietetics and nutrition, the British Dietetic Association, has affirmed that a well-planned vegan diet can “support healthy living in people of all ages” in an official document signed by its CEO." — British Dietetic Association confirms well-planned vegan diets can support healthy living in people of all ages https://www.bda.uk.com/resource/british-dietetic-association-confirms-well-planned-vegan-diets-can-support-healthy-living-in-people-of-all-ages.html 육식을 하지 않아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어째서 '먹기 위함'이 동물에게 그 모든 고통을 줄 수 있는 근거가 될까요? 표준 한국인이 육식을 할 이유 중 남는 것은 미각적 쾌락의 문제 뿐입니다. 이제 '먹기 위해 폭력을 가한다'는 이 문장은 바꿔 말해 '쾌락을 누리기 위해 폭력을 가한다'가 됩니다. 내가 미각적 쾌락을 누리기 위해 축산공장 동물이 치러야 하는 고통을 저울에 올려두고 본다면, 그 차이는 현저할 것입니다. 일년에 열 네 마리의 닭을 먹는 표준 한국인이라면, 열 네 끼의 쾌락을 위해 열 네 번의 생이 황폐화되고 비참한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열 네 번의 끼니를 위해 도합 140년의 수명까지 기대할 수 있는 닭들이, 밀집사육장에서 약 98주(7*14)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 고통의 추는 동물복지 육류를 선택한다면 조금이나마 경감될 겁니다. 물론 '고기를 포기했을 때의 상실케 되는 미각적 비용' 또한, 지배적 문화로서의 육식문화에 의해 그 계산이 쉽지 않습니다. 잡식인은 채식으로 맛있는 요리를 하는 법을 모르고, 채식 식당에 자주 방문하지 않으며 레시피를 찾아보지도 않으니 채식 재료를 응용하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모릅니다. 적어도 폭력의 절차를 극단화하는 공장식 축산의 산물을 소비하지 않는, 일종의 불매운동 경향이 짙은 페스카테리언(생선만 먹는 부분채식주의자)이나, 외부에서는 육류를 먹고 집에서는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이 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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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의 개념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 생존이나 건강 등 보다 긴요한 욕구에 의해 요청되는 것으로 좁혀 썼는데, 일반적인 개념이나 의미로는 모순되는 게 맞습니다. 비용절감은 하나의 큰 필요이죠. 글에서는 비용절감이라는 필요가 동물의 극단화된 고통을 허용할만한 정당성을 갖는 필요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요. 이 부분에서는 지적하신 대로 글을 더 다듬었더라면 좋았겠네요.
다만 본문에 언급된 내용들 중 어떤 고통이나 죽음은 비용절감의 필요와도 무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웰론 대신 거위털이나 오리털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행동은 비용절감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요.
다만 본문에 언급된 내용들 중 어떤 고통이나 죽음은 비용절감의 필요와도 무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웰론 대신 거위털이나 오리털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행동은 비용절감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요.
농장에 질병이라도 퍼지면 끝장이고, 당연하게도 외부인의 출입은 질병이 유입될 수 있는 주요 경로입니다. 대규모 축산 농장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부정적 기사를 쓰려고 접근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인터뷰를 받아줘야 할 이유는 전무하지요.
소에서 가끔 보이는 시커멓고 잘 상하는 고기인 DFD, 물퇘지라 불리는 육즙이 줄줄 새는 PSE, 들어보셨습니까? 도축 직전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이런 고기는 도매 단계에서 반품되므로 가공용으로도 못 쓰고 버려야 합니다.
고기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도 도축을 주먹구구식으로 ... 더 보기
소에서 가끔 보이는 시커멓고 잘 상하는 고기인 DFD, 물퇘지라 불리는 육즙이 줄줄 새는 PSE, 들어보셨습니까? 도축 직전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이런 고기는 도매 단계에서 반품되므로 가공용으로도 못 쓰고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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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서 가끔 보이는 시커멓고 잘 상하는 고기인 DFD, 물퇘지라 불리는 육즙이 줄줄 새는 PSE, 들어보셨습니까? 도축 직전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이런 고기는 도매 단계에서 반품되므로 가공용으로도 못 쓰고 버려야 합니다.
고기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도 도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과학적인 쇠고기 등급제를 가진 호주 식육협회의 프로토콜을 한 번 보시지요.
https://www.mla.com.au/globalassets/mla-corporate/marketing-beef-and-lamb/documents/meat-standards-australia/msa08-beef-tt_the-effect-of-ph-on-beef-eating-quality-lr.pdf
스트레스가 근육의 pH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것이 고기 품질에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이걸 피하려면 도축장에서 소를 어떻게 몰아가고, 인도하는 사람이 어느 위치에 서는 것이 좋은지까지 나와 있는 간명하고 과학적인 메뉴얼입니다.
잘못된 케이스를 찾아내 악마화하는 것은 쉽고, 해당 분야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악용하여 잘못된 일부의 행동이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기도 쉽지요. 거짓 악마를 빚어내기는 쉽지만, 해명은 지난한 일 아니겠습니까.
임의 선별과 도태. 농장에서는 사람이, 자연에서는 "기아와 죽음이라는 자연의 전쟁이" 담당하는 일이지요. 돼지의 삶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묘사하셨던데, 돼지가 태어나자마자 몸싸움을 벌여 어미 젖꼭지를 빠는 순서를 정한다는 건 아십니까? 젖이 잘 안 나오는 번호로 밀려난 돼지는 비실비실하게 자라거나 아예 굶어죽습니다. 이게 10시간 동안 단장하여 새끼를 기르는, 서로를 친밀하게 여긴다는 돼지들의 또 다른 본성입니다. 자연이 행하는 도태는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이 행하는 도태는 잔인한 것입니까?
채산성, 그거 참 중요한 거지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니 병으로 죽으나 망해서 한강가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소리가 슬슬 나옵니다. 자동차를 없애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어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를 만들고 차를 탑니다. 의보적용이 안 되는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게 아니라 의보 재정이 없어서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 일에도 채산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니, 채산성이 나빠지면 사람이 죽습니다.
동물권,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아이의 손에서 닭다리를 뺏고, 회사원의 식탁에서 삼겹살을 빼앗는 것이군요.
네. 사람은 "먹는 존재"입니다. 구운 고기를 먹고 원시인이 사람이 된 이래, 인류는 더 많은 고기를 위해 투쟁해 왔지요. 어쩌겠습니까. 제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구운 고기에 대한 갈망에 따라 이 납득 불가능한 주장에 맞설 수 밖에요.
소에서 가끔 보이는 시커멓고 잘 상하는 고기인 DFD, 물퇘지라 불리는 육즙이 줄줄 새는 PSE, 들어보셨습니까? 도축 직전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이런 고기는 도매 단계에서 반품되므로 가공용으로도 못 쓰고 버려야 합니다.
고기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도 도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과학적인 쇠고기 등급제를 가진 호주 식육협회의 프로토콜을 한 번 보시지요.
https://www.mla.com.au/globalassets/mla-corporate/marketing-beef-and-lamb/documents/meat-standards-australia/msa08-beef-tt_the-effect-of-ph-on-beef-eating-quality-lr.pdf
스트레스가 근육의 pH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것이 고기 품질에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이걸 피하려면 도축장에서 소를 어떻게 몰아가고, 인도하는 사람이 어느 위치에 서는 것이 좋은지까지 나와 있는 간명하고 과학적인 메뉴얼입니다.
잘못된 케이스를 찾아내 악마화하는 것은 쉽고, 해당 분야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악용하여 잘못된 일부의 행동이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기도 쉽지요. 거짓 악마를 빚어내기는 쉽지만, 해명은 지난한 일 아니겠습니까.
임의 선별과 도태. 농장에서는 사람이, 자연에서는 "기아와 죽음이라는 자연의 전쟁이" 담당하는 일이지요. 돼지의 삶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묘사하셨던데, 돼지가 태어나자마자 몸싸움을 벌여 어미 젖꼭지를 빠는 순서를 정한다는 건 아십니까? 젖이 잘 안 나오는 번호로 밀려난 돼지는 비실비실하게 자라거나 아예 굶어죽습니다. 이게 10시간 동안 단장하여 새끼를 기르는, 서로를 친밀하게 여긴다는 돼지들의 또 다른 본성입니다. 자연이 행하는 도태는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이 행하는 도태는 잔인한 것입니까?
채산성, 그거 참 중요한 거지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니 병으로 죽으나 망해서 한강가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소리가 슬슬 나옵니다. 자동차를 없애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어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를 만들고 차를 탑니다. 의보적용이 안 되는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게 아니라 의보 재정이 없어서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 일에도 채산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니, 채산성이 나빠지면 사람이 죽습니다.
동물권,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아이의 손에서 닭다리를 뺏고, 회사원의 식탁에서 삼겹살을 빼앗는 것이군요.
네. 사람은 "먹는 존재"입니다. 구운 고기를 먹고 원시인이 사람이 된 이래, 인류는 더 많은 고기를 위해 투쟁해 왔지요. 어쩌겠습니까. 제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구운 고기에 대한 갈망에 따라 이 납득 불가능한 주장에 맞설 수 밖에요.
주신 자료에서 소의 도축과 관련되어 나타나 있는 내용은, 글리코겐 보존을 위해 소의 도축과정 스트레스와 이동과정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매뉴얼 정도이고, 실제 도축장에서 소가 도축되는 방식에 대한 평가는 전혀 나와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자료에서는 돼지와 소가 평균 3-14%의 빈도로 불안정한 기절 상태에서 도축된다고 알려져 있고, 소의 경우 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In a large-scale study by von Wenzlawowicz et al. (2012), stunning effectiveness was assessed in over 37 000 pigs a... 더 보기
한 자료에서는 돼지와 소가 평균 3-14%의 빈도로 불안정한 기절 상태에서 도축된다고 알려져 있고, 소의 경우 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In a large-scale study by von Wenzlawowicz et al. (2012), stunning effectiveness was assessed in over 37 000 pigs a... 더 보기
주신 자료에서 소의 도축과 관련되어 나타나 있는 내용은, 글리코겐 보존을 위해 소의 도축과정 스트레스와 이동과정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매뉴얼 정도이고, 실제 도축장에서 소가 도축되는 방식에 대한 평가는 전혀 나와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자료에서는 돼지와 소가 평균 3-14%의 빈도로 불안정한 기절 상태에서 도축된다고 알려져 있고, 소의 경우 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In a large-scale study by von Wenzlawowicz et al. (2012), stunning effectiveness was assessed in over 37 000 pigs and cattle, stunned by different methods. The mean percentages for animals showing signs compatible with insufficient stunning ranged from 3 to 14%, depending on the stunning method and with a high variability between slaughter plants. Gregory (2008b) found that 8% of electrically stunned cattle (n=67) were not deeply stunned and showed signs of consciousness at 20 and 90 s post stunning.
https://edepot.wur.nl/388582
국내의 경우에는 돼지 12.3%가 불완전한 기절 상태를 경험하며 도축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 도축되는 돼지 10마리 가운데 1마리는 의식이 있는 채로 도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기절을 시킨 뒤 온몸의 피를 빼는 방혈 작업을 시작하지만, 기절이 제대로 안 되거나 다시 깨어나는 개체가 10%를 넘고 있는 것이다.
9일 <한겨레>가 입수한 ‘도축시 동물복지 평가기준 확립에 관한 연구’를 보면, 도축장에서 전기기절시킨 돼지 7089마리 가운데 12.3%인 874개체가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국내 최초로 2009년 전국 23개 도축장에 대해 동물복지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18472.html#csidxd662a12cf1b31e98e77b3202aec00f3
저는 도축을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축 과정에서 여러 동물들이 불완전한 기절로 인해 의식을 회복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잘못된 케이스를 찾아내어 드러내는 일 자체가 어렵고, 사육도축과정에 대해 적절한 감시와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제도적으로 많은 동물들이 '내부고발'이나 '잠입'없이는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위에서 지적한 비가시성에 관한 설명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점에 대한 반론 없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 악마화하기는 쉽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잠입과 내부고발이 어째서 쉬운 일인지 여쭤봐야겠네요. 또한 아기돼지를 망치로 두드려 죽이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 악마화'인 이유에 대해서도요.
자연이 도태를 행한다는 것은 비유입니다. 실제로는 자연은 행위주체가 아니니까요. 호랑이도 돼지를 먹고, 인간도 자연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인간을 미식을 위해 먹었지만, 자연에서 어떤 현상이 존재하는가 하는 예시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이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자연주의의 오류입니다. 자연에서 일이 어떠어떠하다는 사실이, 규범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인간이 행하는 돼지 도태의 방식이, 다른 아기돼지 개체들이 서로의 죽음을 목격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기절 등 인도적 조치가 전혀 없는 잔혹한 방식으로, 그것이 제대로 된 도태가 맞는지 자체가 입증될 수 없는 인물의 손에 의해 임의적으로 행해진다고 지적하며 아기돼지 망치학살 사례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이런 사례가 '제보자'가 없다면 알려질 수 없었으므로,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도 말했고요.
동물의 채산성이 줄어든다고 사람이 죽는다는 말의 입증근거는 없습니다. 도리어 동물의 채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공장식 사육으로 인해 증대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환경오염이 죽음과 더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활용 가능한 증거들은 오히려 대량의 육류 소비를 줄인다면 수명이 증대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Most strikingly, impacts of the lowest-impact animal products typically exceed those of vegetable substitutes, providing new evidence for the importance of dietary change.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
"Following public health objectives by adopting energy-balanced, low-meat dietary patterns that are in line with available evidence on healthy eating led to an adequate nutrient supply for most nutrients, and large reductions in premature mortality (reduction of 19% [95% CI 18–20] for the flexitarian diet to 22% [18–24] for the vegan diet)."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pla/article/PIIS2542-5196(18)30206-7/fulltext#%20
자연주의적 오류를 피하면서 동물을 먹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근거가 필요해 보입니다.
한 자료에서는 돼지와 소가 평균 3-14%의 빈도로 불안정한 기절 상태에서 도축된다고 알려져 있고, 소의 경우 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In a large-scale study by von Wenzlawowicz et al. (2012), stunning effectiveness was assessed in over 37 000 pigs and cattle, stunned by different methods. The mean percentages for animals showing signs compatible with insufficient stunning ranged from 3 to 14%, depending on the stunning method and with a high variability between slaughter plants. Gregory (2008b) found that 8% of electrically stunned cattle (n=67) were not deeply stunned and showed signs of consciousness at 20 and 90 s post stunning.
https://edepot.wur.nl/388582
국내의 경우에는 돼지 12.3%가 불완전한 기절 상태를 경험하며 도축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 도축되는 돼지 10마리 가운데 1마리는 의식이 있는 채로 도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기절을 시킨 뒤 온몸의 피를 빼는 방혈 작업을 시작하지만, 기절이 제대로 안 되거나 다시 깨어나는 개체가 10%를 넘고 있는 것이다.
9일 <한겨레>가 입수한 ‘도축시 동물복지 평가기준 확립에 관한 연구’를 보면, 도축장에서 전기기절시킨 돼지 7089마리 가운데 12.3%인 874개체가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국내 최초로 2009년 전국 23개 도축장에 대해 동물복지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18472.html#csidxd662a12cf1b31e98e77b3202aec00f3
저는 도축을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축 과정에서 여러 동물들이 불완전한 기절로 인해 의식을 회복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잘못된 케이스를 찾아내어 드러내는 일 자체가 어렵고, 사육도축과정에 대해 적절한 감시와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제도적으로 많은 동물들이 '내부고발'이나 '잠입'없이는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위에서 지적한 비가시성에 관한 설명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점에 대한 반론 없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 악마화하기는 쉽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잠입과 내부고발이 어째서 쉬운 일인지 여쭤봐야겠네요. 또한 아기돼지를 망치로 두드려 죽이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 악마화'인 이유에 대해서도요.
자연이 도태를 행한다는 것은 비유입니다. 실제로는 자연은 행위주체가 아니니까요. 호랑이도 돼지를 먹고, 인간도 자연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인간을 미식을 위해 먹었지만, 자연에서 어떤 현상이 존재하는가 하는 예시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이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자연주의의 오류입니다. 자연에서 일이 어떠어떠하다는 사실이, 규범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인간이 행하는 돼지 도태의 방식이, 다른 아기돼지 개체들이 서로의 죽음을 목격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기절 등 인도적 조치가 전혀 없는 잔혹한 방식으로, 그것이 제대로 된 도태가 맞는지 자체가 입증될 수 없는 인물의 손에 의해 임의적으로 행해진다고 지적하며 아기돼지 망치학살 사례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이런 사례가 '제보자'가 없다면 알려질 수 없었으므로,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도 말했고요.
동물의 채산성이 줄어든다고 사람이 죽는다는 말의 입증근거는 없습니다. 도리어 동물의 채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공장식 사육으로 인해 증대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환경오염이 죽음과 더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활용 가능한 증거들은 오히려 대량의 육류 소비를 줄인다면 수명이 증대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Most strikingly, impacts of the lowest-impact animal products typically exceed those of vegetable substitutes, providing new evidence for the importance of dietary change.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
"Following public health objectives by adopting energy-balanced, low-meat dietary patterns that are in line with available evidence on healthy eating led to an adequate nutrient supply for most nutrients, and large reductions in premature mortality (reduction of 19% [95% CI 18–20] for the flexitarian diet to 22% [18–24] for the vegan diet)."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pla/article/PIIS2542-5196(18)30206-7/fulltext#%20
자연주의적 오류를 피하면서 동물을 먹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근거가 필요해 보입니다.
쇠고기 메뉴얼에 도축을 평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도축 과정에 농장주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 한 가지이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기절을 시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굳이 평가할 필요조차 없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 또 한 가지입니다. 이것에 실패하면 차후 등급판정 과정에서 근육의 pH를 측정하여 등급을 박살냅니다.
물퇘지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도축 시 기절시키는 과정을 정교화할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런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선을 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극적 영상을 찍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입하기 위해 감염원이 될 위험 따위 무시하고 농장에 잠입하는 ... 더 보기
물퇘지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도축 시 기절시키는 과정을 정교화할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런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선을 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극적 영상을 찍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입하기 위해 감염원이 될 위험 따위 무시하고 농장에 잠입하는 ... 더 보기
쇠고기 메뉴얼에 도축을 평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도축 과정에 농장주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 한 가지이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기절을 시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굳이 평가할 필요조차 없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 또 한 가지입니다. 이것에 실패하면 차후 등급판정 과정에서 근육의 pH를 측정하여 등급을 박살냅니다.
물퇘지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도축 시 기절시키는 과정을 정교화할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런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선을 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극적 영상을 찍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입하기 위해 감염원이 될 위험 따위 무시하고 농장에 잠입하는 것보다 더 건전한 방향의 노력이 존재하며,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새끼 돼지를 마취나 기절 없이 망치로 때려잡는 것에 찬성한 바 없습니다. 제가 문제삼은 것은 일부의 잘못된 행위를 바탕으로 그것이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는 행위입니다. 논란이 된 그 한 건 말고 최근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바 있습니까? 1건의 문제로 산업 전체를 매도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지존파의 예를 들어 한국인을 상종 못할 악독한 종자들이라 말해도 되겠군요.
자연이 도태를 행하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것이 냉엄한 자연의 법칙이고 진화가 이루어져 온 원동력입니다. "기아와 죽음이라는 자연의 전쟁"이라는 문구 자체가 종의 기원 에필로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연의 전쟁은 자연다큐멘터리 한 편만 봐도 참으로 잔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존재가 당위를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본성대로 막 사는 것에 동의할 필요는 없고, 저도 거기엔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지극히 자의적인 윤리적 잣대를 들고와서 남들의 본성에 대해 훈계를 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목 말고 목축으로만 한정해도 7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것이 축산업입니다. 7000년간 이어져 온 일을 문제삼는 이에게 자의적 윤리 말고 조금 더 정교한 근거를 바라는 것이 과한 요구일까요?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07884
게다가 '건강한 채식'이라는 것이 잘 뚫린 도로, 규모가 커진 영농, 구석구석 엮인 도소매망이 공급해주는 다종다양한 야채와 과일들의 공급, 때로는 잘 발달된 제약산업에 의존적이라는 걸 생각해 봅시다. 인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반박할 것도 없이,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마술과 같은 기술적 혁신과 막대한 부, 가혹한 육체노동이 강제되지 않은 삶 없이는 건강한 채식이라는 것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지요. 애시당초 자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동물은 '자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사람들에게는 자연적이지 않은 방식인 채식을 권하십니까? 농경과 목축이 자연적이라면 불의 발견도, 산업혁명도, 밀집사육도 자연적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렵채집만 남습니다. 자연적인 인류는 중세도 아니고 구석기로 가야 하는군요.
관습은, 그것도 오래 유지되어 사회에 녹아든 관습은, 사회를 유지하는 부품으로 쓰여왔다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증명 불가능한 '옳음'이 아니라 유용성 때문입니다. 극히 자의적인 윤리 외에 채식을 정당화할 유용성은 무엇입니까?
채산성이란 모든 경제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경제가 망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죽어나가기까지 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농림축산업의 총매출이 2018년 기준 52조원이고, 그 중 37.6%를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20조원짜리 산업이란 소립니다. LG전자 2018년 총매출이 61조원이었다죠. 지금 LG전자 1/3짜리 산업을 죽이자고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 이걸 정당화할 만한 경제적 유용성이 존재합니까?
그리고 고기 양을 줄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중 한국인이 소위 서구 선진국보다 훨씬 적은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찾기 어렵더군요. 2017 식품수급표에 명시된 연간 1인당 식품공급량 기준, 미국 대비 계란은 67%, 우유류는 27%, 육류는 49%를 소비하며, 채소류는 125% (중국이 압도적이고 우리가 주요국 중 2위), 생선류는 307%를(일본을 아득히 제치고 세계 1위) 소비중입니다.
http://www.atfis.or.kr/article/M001080000/view.do?articleId=3369&boardId=18&page=&searchKey=&searchString=&searchCategory=
보신 바와 같이 우리는 고기를 줄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이 먹고 있지 않습니다. 통풍이나 고지혈증 같은 병이 있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평균 수치의 고기를 먹는 건강한 사람이 고기를 줄여야 할 영양학적 이유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시면서 사람의 삶의 질은 가볍게 여기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이팝에 고깃국"이라는 오랜 말이 있지요. 그 오랜 숙원을 이뤄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신선한 고기는 귀족들 식탁에나 오르고, 서민들은 축제 때 얻어먹는 걸 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중세적 상황을 강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인류가 이루어낸 현대적 성취를 버리고 중세적 상황으로 퇴보해야 합니까?
먹는 것과 수명 증가에 대한 연구 중에서 반론의 여지없이 확실한 걸 꼽자면 극단적인 칼로리 제한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수명이 증가하는데, 평소의 1/3만 먹으면 됩니다. 간단하죠? 제가 그런 논문은 많이 봤습니다만 그렇다고 이걸 마구 권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럴 바엔 몇 년 빨리 죽겠다고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을 것이 자명하니까요.
저도 위 주장에 같은 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누리다 몇 년 빨리 가겠습니다.
온실가스 문제 중요하지요. 그런데 온실가스를 걱정하신다면 고기를 줄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전을 찬양하십시오. 대한민국 CO2 발생량의 80% 이상이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데, 대규모 발전을 하면서 CO2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원전이니까요. 농림축산업은 싸그리 모아서 3.6% 입니다.
http://www.keei.re.kr/main.nsf/index.html?open&p=%2Fweb_keei%2FNationComm.nsf%2F0%2F8F9C6749284E87B149256DFD000C3318&s=%3Fopendocument%26menucode%3DSS10%26category%3D%25EC%2598%25A8%25EC%258B%25A4%25EA%25B0%2580%25EC%258A%25A4%2520%25EB%25B0%25B0%25EC%25B6%259C%25ED%2586%25B5%25EA%25B3%2584
아, 이건 곁다리입니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돼지를 골라냈다면 (최소한 경제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도태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임의적이라.. 영어로는 random인데 돈이 되는 돼지를 마구잡이로 내다버렸다고 추정하는 것보다야 제 추론이 맞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물퇘지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도축 시 기절시키는 과정을 정교화할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런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선을 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극적 영상을 찍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입하기 위해 감염원이 될 위험 따위 무시하고 농장에 잠입하는 것보다 더 건전한 방향의 노력이 존재하며,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새끼 돼지를 마취나 기절 없이 망치로 때려잡는 것에 찬성한 바 없습니다. 제가 문제삼은 것은 일부의 잘못된 행위를 바탕으로 그것이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는 행위입니다. 논란이 된 그 한 건 말고 최근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바 있습니까? 1건의 문제로 산업 전체를 매도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지존파의 예를 들어 한국인을 상종 못할 악독한 종자들이라 말해도 되겠군요.
자연이 도태를 행하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것이 냉엄한 자연의 법칙이고 진화가 이루어져 온 원동력입니다. "기아와 죽음이라는 자연의 전쟁"이라는 문구 자체가 종의 기원 에필로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연의 전쟁은 자연다큐멘터리 한 편만 봐도 참으로 잔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존재가 당위를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본성대로 막 사는 것에 동의할 필요는 없고, 저도 거기엔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지극히 자의적인 윤리적 잣대를 들고와서 남들의 본성에 대해 훈계를 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목 말고 목축으로만 한정해도 7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것이 축산업입니다. 7000년간 이어져 온 일을 문제삼는 이에게 자의적 윤리 말고 조금 더 정교한 근거를 바라는 것이 과한 요구일까요?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07884
게다가 '건강한 채식'이라는 것이 잘 뚫린 도로, 규모가 커진 영농, 구석구석 엮인 도소매망이 공급해주는 다종다양한 야채와 과일들의 공급, 때로는 잘 발달된 제약산업에 의존적이라는 걸 생각해 봅시다. 인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반박할 것도 없이,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마술과 같은 기술적 혁신과 막대한 부, 가혹한 육체노동이 강제되지 않은 삶 없이는 건강한 채식이라는 것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지요. 애시당초 자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동물은 '자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사람들에게는 자연적이지 않은 방식인 채식을 권하십니까? 농경과 목축이 자연적이라면 불의 발견도, 산업혁명도, 밀집사육도 자연적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렵채집만 남습니다. 자연적인 인류는 중세도 아니고 구석기로 가야 하는군요.
관습은, 그것도 오래 유지되어 사회에 녹아든 관습은, 사회를 유지하는 부품으로 쓰여왔다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증명 불가능한 '옳음'이 아니라 유용성 때문입니다. 극히 자의적인 윤리 외에 채식을 정당화할 유용성은 무엇입니까?
채산성이란 모든 경제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경제가 망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죽어나가기까지 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농림축산업의 총매출이 2018년 기준 52조원이고, 그 중 37.6%를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20조원짜리 산업이란 소립니다. LG전자 2018년 총매출이 61조원이었다죠. 지금 LG전자 1/3짜리 산업을 죽이자고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 이걸 정당화할 만한 경제적 유용성이 존재합니까?
그리고 고기 양을 줄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중 한국인이 소위 서구 선진국보다 훨씬 적은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찾기 어렵더군요. 2017 식품수급표에 명시된 연간 1인당 식품공급량 기준, 미국 대비 계란은 67%, 우유류는 27%, 육류는 49%를 소비하며, 채소류는 125% (중국이 압도적이고 우리가 주요국 중 2위), 생선류는 307%를(일본을 아득히 제치고 세계 1위) 소비중입니다.
http://www.atfis.or.kr/article/M001080000/view.do?articleId=3369&boardId=18&page=&searchKey=&searchString=&searchCategory=
보신 바와 같이 우리는 고기를 줄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이 먹고 있지 않습니다. 통풍이나 고지혈증 같은 병이 있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평균 수치의 고기를 먹는 건강한 사람이 고기를 줄여야 할 영양학적 이유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시면서 사람의 삶의 질은 가볍게 여기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이팝에 고깃국"이라는 오랜 말이 있지요. 그 오랜 숙원을 이뤄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신선한 고기는 귀족들 식탁에나 오르고, 서민들은 축제 때 얻어먹는 걸 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중세적 상황을 강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인류가 이루어낸 현대적 성취를 버리고 중세적 상황으로 퇴보해야 합니까?
먹는 것과 수명 증가에 대한 연구 중에서 반론의 여지없이 확실한 걸 꼽자면 극단적인 칼로리 제한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수명이 증가하는데, 평소의 1/3만 먹으면 됩니다. 간단하죠? 제가 그런 논문은 많이 봤습니다만 그렇다고 이걸 마구 권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럴 바엔 몇 년 빨리 죽겠다고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을 것이 자명하니까요.
저도 위 주장에 같은 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누리다 몇 년 빨리 가겠습니다.
온실가스 문제 중요하지요. 그런데 온실가스를 걱정하신다면 고기를 줄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전을 찬양하십시오. 대한민국 CO2 발생량의 80% 이상이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데, 대규모 발전을 하면서 CO2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원전이니까요. 농림축산업은 싸그리 모아서 3.6% 입니다.
http://www.keei.re.kr/main.nsf/index.html?open&p=%2Fweb_keei%2FNationComm.nsf%2F0%2F8F9C6749284E87B149256DFD000C3318&s=%3Fopendocument%26menucode%3DSS10%26category%3D%25EC%2598%25A8%25EC%258B%25A4%25EA%25B0%2580%25EC%258A%25A4%2520%25EB%25B0%25B0%25EC%25B6%259C%25ED%2586%25B5%25EA%25B3%2584
아, 이건 곁다리입니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돼지를 골라냈다면 (최소한 경제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도태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임의적이라.. 영어로는 random인데 돈이 되는 돼지를 마구잡이로 내다버렸다고 추정하는 것보다야 제 추론이 맞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1)
미비한 도축절차에 따라 등급판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손실이 큰지, 미비한 도축절차를 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도축을 진행해 생산성을 높이는 이익이 큰지에 대해서 저는 모릅니다. BibGourmand님이 알고 계시다면 어째서 생산성의 원리를 따르는 도축업이 '정교화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좀 알려주세요. 단지 어떤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다고 해서 산업이 개선되리라는 것은 낙관적으로 논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현실 한국에서는, 금지된 전기봉이 사용되고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 역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게 짜여 있으며 이산화탄소 가스실의 높은 마취성공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전기스턴이 쓰입... 더 보기
미비한 도축절차에 따라 등급판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손실이 큰지, 미비한 도축절차를 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도축을 진행해 생산성을 높이는 이익이 큰지에 대해서 저는 모릅니다. BibGourmand님이 알고 계시다면 어째서 생산성의 원리를 따르는 도축업이 '정교화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좀 알려주세요. 단지 어떤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다고 해서 산업이 개선되리라는 것은 낙관적으로 논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현실 한국에서는, 금지된 전기봉이 사용되고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 역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게 짜여 있으며 이산화탄소 가스실의 높은 마취성공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전기스턴이 쓰입... 더 보기
(1)
미비한 도축절차에 따라 등급판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손실이 큰지, 미비한 도축절차를 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도축을 진행해 생산성을 높이는 이익이 큰지에 대해서 저는 모릅니다. BibGourmand님이 알고 계시다면 어째서 생산성의 원리를 따르는 도축업이 '정교화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좀 알려주세요. 단지 어떤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다고 해서 산업이 개선되리라는 것은 낙관적으로 논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현실 한국에서는, 금지된 전기봉이 사용되고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 역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게 짜여 있으며 이산화탄소 가스실의 높은 마취성공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전기스턴이 쓰입니다.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계류장으로 옮겨진다. 돼지들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이때 전기봉이 사용된다. 전기봉을 맞은 돼지는 계류장으로 쫓겨간다. 지난해 대한양돈협회가 전기봉 사용이 육질을 떨어뜨린다며 사용 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정부도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사용 금지를 명문화했지만, 일부 도축장에서는 아직도 작업 편의를 위해서 전기봉이 이용되곤 한다."
"정부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근거를 마련해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을 만들 방침이다. 국내 제도 미비로 한-유럽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지적당했던 부분이다. 이달께 시행규칙이 확정되는 대로 전문가 협의체를 만들어 제정에 나서면, 이 기준은 내년께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을 상정하고 있어서, 고통 없이 죽을 동물들의 권리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18472.html
게다가 저는 도축장의 근거를 들어 산업 전체를 매도한 것이 아니라 배터리 케이지나 임신용 우리와 같은 밀집사육시설, 시설 내부에서 일어나는 동물 습성에 대한 억압을 산업 전체를 비판하는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아기돼지 망치 외에 추가 사례를 요구하셨는데, '일부의 잘못된 행위'라고 말씀하시는 그 기준 자체를 이해할 수 없으니 뭐라 답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명시했고 본문에 폭넓게 썼습니다. 저는 종돈장에서 폭넓게 쓰이는, 돼지를 몸 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살게 만드는 gestation crate가 잘못된 처우라고 여깁니다. 산채로 마취 없이 거위와 오리와 토끼의 털을 뜯는 것, 수평아리들을 분쇄기에 의식이 있는 채로 던져버리는 것이 잘못된 처우라고 여기며, 닭들이 의식을 지닌 채 도축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돼지들을 망치로 때려죽이는 일과 닭들을 마취없이 잘라죽이는 것, 부적절한 마취로 인해 소와 돼지들이 도축과정에서 깨어나는 것, 오리 스무마리의 고통을 추출한 패딩을 입는 것을 변별할 적절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인간이 쾌락과 효율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며 생존이나 건강과는 무관하고, 동물의 최소한의 권리를 전제하면서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자라면 적절하게 지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2)
그 아래 자연에 관한 내용은 제가 한 말이 있는 말인가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대체로 한 적 없는 말들이더군요. 저는 동물이 자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자연이 규범영역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고 말했지 '농경과 목축이 자연적이라면 밀집사육도 자연적이다'라는 주장에 무슨 응답을 드릴 주장을 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자연이 도태를 행한다는 "행위주체"로서의 자연을 설정하는 것은 비유라고 말한 것이지, 냉혹한 도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게다가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이익(interest)과 습성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과, 채식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을 수사학적으로 묶어둔 주장에 불과해 보입니다. 다른 댓글에도 링크했지만 인간이 인간을 먹고 강간하며 노예로 삼는 것이 자연적인 행동입니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행위를 지지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성차별이나 노예의 역사가 목축의 역사보다 짧았을까요? 노예제 역시 아주 오래된 습성이며 노예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유용하지만 정당화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축산업의 소멸은 현실사회에서 결코 즉각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채식으로의 점진적 전환은 새로운 산업구조를 창출해 낼 것이고, 이미 창출중에 있습니다. 동등 규모의 채식자와 육식자가 있을 때 요구되는 산업규모가 어떠한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적절한 논증이 없습니다. 또한 그에 앞서, 경제적 유용성은 도덕적 부당성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노예제 역시 노예주들에게는 막대한 규모의 산업을 가동시키는 수단이었습니다.
온실가스 관련하여 주신 keei 링크의 경우, 추정치가 제가 확인해온 자료들보다 너무 낮게 나와서 sceince지에 2018년 발표된 J.poore등의 연구에서 IPCC 측정이 언급된 부분을 확인했더니 "IPCC의 AR 4 chracterization factors (CFs)는 이산화탄소의 기후-탄소 피드백(climate-carbone feedback)만을 포함하고, 모순적으로 다른 온실가스는 포함하지 않는다.(GHGs)"라고 설명하네요. 제가 이 분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기는 해도 이 자료가 최신인데다, 국내 IPCC 측정보다 좀 더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했으리라 기대할만한 저널에 발표됐으면서도(?) IPCC 측정기준을 비판하는 사유를 설명하고 있고, 3만개의 농장에서의 실측데이터에 기반한 자료이므로 좀 더 신뢰성이 높을 겁니다. 이 자료에서는 전지구적 인류발생 온실가스의 26%를 식품공급체인이 만들어내고 있고, 생태회복력과 생물학적 종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토지산성화(terrestrial acidification)의 32%, 부영양화(eutrophication)의 78%까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도표 1의 각 식품항목별 분석을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량과 토지산성화, 부영양화에 동물성 식품이 기여하는 비율이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ref-41
또다른 댓글에서는 FAO가 식량생산을 60% 증산해야 한다고 말한 점, 동일농토당 단백질생산효율비는 콩을 직접 심었을 때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도 설명한 적이 있는데, 프레시안 링크 함께 참고해주세요. 이제 무엇이 육식산업의 환경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무시할만큼의 '경제적 유용성'을 만들어내는지 알려주세요. 또한 이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주장이, 남부 노예주들이 내놓았던 경제논리상의 변론과 동일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다른 분께 남긴 댓글에도 링크를 첨부해 말씀드렸던 바이지만, 동물복지 육류를 선택한다고 해서 서민의 생활수준이 중세 수준이 된다는 논증은 황당한 과장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는 한시간 최저임금으로 2등급 복지란 28개, 1등급 복지란 12개 가량을 구매할 수 있고, SBS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일반 삼겹살과 동물복지 삼겹살의 가격차이는 10% 내외까지 좁혀졌다고 하네요. 물론 실제 가격은 안 알아봐서 모르겠습니다. 알아보실 생각이면 좀 알려주세요.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53622&plink=COPYPASTE&cooper=SBSNEWSEN
(추가)
논리의 자의성을 두고 본다면, "나는 내가 씹고 즐기기 위해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 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오히려 자의적입니다. 일반적인 자유주의의 원칙을 미루어 적용해본다면 타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기자유의 행사에는 입증이 필요치 않지만, 타자의 삶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려 한다면 입증책임은 오히려 개입하려는 쪽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동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나는 주장을 논증한다면, 이는 피터 싱어가 벤담을 사용했던 방식을 따릅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제가 다른 데에 작성했던 글을 긁어오겠습니다. 제게 논증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더 자세하고 정교한 논증을 원하신다면 동물해방의 1장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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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에 따르면, 이성이나 담화의 능력은 권리 부여의 진정한 기준이 될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아이보다 네 살 짜리 개나 말이 더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갓 태어난 아이보다 개나 말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로, 인간 아이에게 이성 또는 담화의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 아이의 권리를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은 누가 권리를 지녔는지를 판별해내는 올바른 기준이 아니다.
따라서 벤담은 말한다. "적절한 질문은 '그들이 이성을 갖고 있는가?'도 아니고,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싱어는 이러한 벤담의 견해가 옳다고 판단한다. 싱어가 생각하기에는, 쾌고감수성이야말로 우리의 직관과 과학적 상식이 보증하는 바 최소한의 기준선이다. 오직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고통스러운지를 아는 개체만이, 자신에게 도덕적인 고려가 이루어지기를 원할 수 있으며, 보다 나은 대우가 이루어지기를 원할 수 있으며, 존중받기를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쾌고감수성의 보유 여부가 도덕적 고려에 있어서 근본 조건으로 자리잡는다. “공리주의적 입장은 최소한의 것이며, 이기적인 의사결정을 보편화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첫 번째 지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가 문젯거리인 도덕 판단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한, 도덕 판단의 원칙은 반드시 불편부당해야 할 것이다. 당파적으로, 또는 특정 개체의 이익에 기울어진 판단이어서는 정당한 원칙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고려대상의 모든 이익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연스레 따라나온다. 이를 피터 싱어는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이 원칙은 도덕적 판단을 위해 나 자신 또는 특정 집단에 이익이 되거나 손실이 되는 관점을 넘어서서, 영향을 받는 모든 개체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야만 윤리적 원칙이 너와 나, 또는 당파를 넘어서는 보편적 윤리 법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인종이나 성, 지적 능력이나 여타의 요인들을 근거로 개체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우리는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우리가 만약 이들의 고통 감수성을 모르는 척 하려 한다면, 오직 피흘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며 '당신이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고 회의론적 철학자의 포즈로 말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는 고통이 본질적으로 '심리적 상태'이기에 생기는 한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매를 맞을 때, 주먹질을 당할 때, 칼과 각종 고문도구로 신체적 위해가 가해질 때, 감금당해서 일생동안 자유를 박탈당할 때, 눈물과 콧물과 침을 쏟아낼 때, 그들이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파!"라는 언어적 신호야말로 고통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겠지만, 싱어는 이를 곧장 반박한다. 사람들은 꾀병을 부리고, 거짓으로 아파하기도 하며, 실제로 아픈 것보다 과장해서 아프다는 신호를 표현하기도 한다. 오히려 더욱 믿음직한 신호는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반응인 경우가 많다. 피 흘리고 몸부림치며 감금당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파!"라는 언어적 신호보다 보편적으로 신뢰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어적 신호는 보다 우월한 판별기준이 아니다.
척추동물들 역시 인간들처럼 고통의 징후를 드러낸다. 척추동물들은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며, 눈이 까뒤집히고, 발버둥치며, 살아남기 위해 저항한다. 털을 쥐어뜯기며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앙고라 염소나 토끼, 동족의 도살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겁에 질려 떠는 말들이,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다고 말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척추동물들만 그러한가? 오늘날의 연구들은 어류들이나 게 조차도 고통을 피하고(전기충격을 피하는 등)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는 쪽(고통을 가하면 모르핀을 원하는 등)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반면 식물에 대해서는, 식물이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식물이 통증을 느낀다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감응한다는 주장 등은 대표적인 유사과학에 속한다.
따라서 이토록 분명한 쾌고 감수성을 지닌 동물들의 이익을 인간과 평등하게 배려하지 않는 도덕 원칙을 정당화 할 어떤 방법도 없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그 누구도, 동물과 인간이 고통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처우(treatment)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인류는 성별 또는 인종에 따라 권리의 부여 방식을 조정해왔다. 당시에 그러한 권리부여의 방식은 매번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관념은 서양 사회에서 18세기-19세기까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흑인이 백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관념은 19세기의 미국 남부에서는 지배적인 상식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성별 또는 인종이 권리 부여에 있어서 합리적 기준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한낱 임의적인 기준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성'이라는 임의적 기준이 억압하는 쪽과 지배하는 쪽을 가를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인간임'이라는 파벌적인 기준이 어떻게 보편적인 정당화가능성을 철칙으로 하는 도덕판단의 원칙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성'이나 '인간성'을 기준으로 도덕적 배려의 적용 대상을 가르는 것은, '성별'이나 '인종'을 중심으로 그러한 분리를 행하는 것만큼이나 임의적인 일이며, 정당하지 못한 차별이라고, 피터 싱어는 생각한다.
미비한 도축절차에 따라 등급판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손실이 큰지, 미비한 도축절차를 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도축을 진행해 생산성을 높이는 이익이 큰지에 대해서 저는 모릅니다. BibGourmand님이 알고 계시다면 어째서 생산성의 원리를 따르는 도축업이 '정교화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좀 알려주세요. 단지 어떤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다고 해서 산업이 개선되리라는 것은 낙관적으로 논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현실 한국에서는, 금지된 전기봉이 사용되고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 역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게 짜여 있으며 이산화탄소 가스실의 높은 마취성공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전기스턴이 쓰입니다.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계류장으로 옮겨진다. 돼지들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이때 전기봉이 사용된다. 전기봉을 맞은 돼지는 계류장으로 쫓겨간다. 지난해 대한양돈협회가 전기봉 사용이 육질을 떨어뜨린다며 사용 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정부도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사용 금지를 명문화했지만, 일부 도축장에서는 아직도 작업 편의를 위해서 전기봉이 이용되곤 한다."
"정부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근거를 마련해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을 만들 방침이다. 국내 제도 미비로 한-유럽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지적당했던 부분이다. 이달께 시행규칙이 확정되는 대로 전문가 협의체를 만들어 제정에 나서면, 이 기준은 내년께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을 상정하고 있어서, 고통 없이 죽을 동물들의 권리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18472.html
게다가 저는 도축장의 근거를 들어 산업 전체를 매도한 것이 아니라 배터리 케이지나 임신용 우리와 같은 밀집사육시설, 시설 내부에서 일어나는 동물 습성에 대한 억압을 산업 전체를 비판하는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아기돼지 망치 외에 추가 사례를 요구하셨는데, '일부의 잘못된 행위'라고 말씀하시는 그 기준 자체를 이해할 수 없으니 뭐라 답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명시했고 본문에 폭넓게 썼습니다. 저는 종돈장에서 폭넓게 쓰이는, 돼지를 몸 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살게 만드는 gestation crate가 잘못된 처우라고 여깁니다. 산채로 마취 없이 거위와 오리와 토끼의 털을 뜯는 것, 수평아리들을 분쇄기에 의식이 있는 채로 던져버리는 것이 잘못된 처우라고 여기며, 닭들이 의식을 지닌 채 도축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돼지들을 망치로 때려죽이는 일과 닭들을 마취없이 잘라죽이는 것, 부적절한 마취로 인해 소와 돼지들이 도축과정에서 깨어나는 것, 오리 스무마리의 고통을 추출한 패딩을 입는 것을 변별할 적절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인간이 쾌락과 효율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며 생존이나 건강과는 무관하고, 동물의 최소한의 권리를 전제하면서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자라면 적절하게 지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2)
그 아래 자연에 관한 내용은 제가 한 말이 있는 말인가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대체로 한 적 없는 말들이더군요. 저는 동물이 자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자연이 규범영역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고 말했지 '농경과 목축이 자연적이라면 밀집사육도 자연적이다'라는 주장에 무슨 응답을 드릴 주장을 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자연이 도태를 행한다는 "행위주체"로서의 자연을 설정하는 것은 비유라고 말한 것이지, 냉혹한 도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게다가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이익(interest)과 습성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과, 채식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을 수사학적으로 묶어둔 주장에 불과해 보입니다. 다른 댓글에도 링크했지만 인간이 인간을 먹고 강간하며 노예로 삼는 것이 자연적인 행동입니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행위를 지지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성차별이나 노예의 역사가 목축의 역사보다 짧았을까요? 노예제 역시 아주 오래된 습성이며 노예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유용하지만 정당화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축산업의 소멸은 현실사회에서 결코 즉각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채식으로의 점진적 전환은 새로운 산업구조를 창출해 낼 것이고, 이미 창출중에 있습니다. 동등 규모의 채식자와 육식자가 있을 때 요구되는 산업규모가 어떠한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적절한 논증이 없습니다. 또한 그에 앞서, 경제적 유용성은 도덕적 부당성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노예제 역시 노예주들에게는 막대한 규모의 산업을 가동시키는 수단이었습니다.
온실가스 관련하여 주신 keei 링크의 경우, 추정치가 제가 확인해온 자료들보다 너무 낮게 나와서 sceince지에 2018년 발표된 J.poore등의 연구에서 IPCC 측정이 언급된 부분을 확인했더니 "IPCC의 AR 4 chracterization factors (CFs)는 이산화탄소의 기후-탄소 피드백(climate-carbone feedback)만을 포함하고, 모순적으로 다른 온실가스는 포함하지 않는다.(GHGs)"라고 설명하네요. 제가 이 분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기는 해도 이 자료가 최신인데다, 국내 IPCC 측정보다 좀 더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했으리라 기대할만한 저널에 발표됐으면서도(?) IPCC 측정기준을 비판하는 사유를 설명하고 있고, 3만개의 농장에서의 실측데이터에 기반한 자료이므로 좀 더 신뢰성이 높을 겁니다. 이 자료에서는 전지구적 인류발생 온실가스의 26%를 식품공급체인이 만들어내고 있고, 생태회복력과 생물학적 종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토지산성화(terrestrial acidification)의 32%, 부영양화(eutrophication)의 78%까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도표 1의 각 식품항목별 분석을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량과 토지산성화, 부영양화에 동물성 식품이 기여하는 비율이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ref-41
또다른 댓글에서는 FAO가 식량생산을 60% 증산해야 한다고 말한 점, 동일농토당 단백질생산효율비는 콩을 직접 심었을 때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도 설명한 적이 있는데, 프레시안 링크 함께 참고해주세요. 이제 무엇이 육식산업의 환경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무시할만큼의 '경제적 유용성'을 만들어내는지 알려주세요. 또한 이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주장이, 남부 노예주들이 내놓았던 경제논리상의 변론과 동일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다른 분께 남긴 댓글에도 링크를 첨부해 말씀드렸던 바이지만, 동물복지 육류를 선택한다고 해서 서민의 생활수준이 중세 수준이 된다는 논증은 황당한 과장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는 한시간 최저임금으로 2등급 복지란 28개, 1등급 복지란 12개 가량을 구매할 수 있고, SBS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일반 삼겹살과 동물복지 삼겹살의 가격차이는 10% 내외까지 좁혀졌다고 하네요. 물론 실제 가격은 안 알아봐서 모르겠습니다. 알아보실 생각이면 좀 알려주세요.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53622&plink=COPYPASTE&cooper=SBSNEWSEN
(추가)
논리의 자의성을 두고 본다면, "나는 내가 씹고 즐기기 위해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 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오히려 자의적입니다. 일반적인 자유주의의 원칙을 미루어 적용해본다면 타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기자유의 행사에는 입증이 필요치 않지만, 타자의 삶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려 한다면 입증책임은 오히려 개입하려는 쪽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동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나는 주장을 논증한다면, 이는 피터 싱어가 벤담을 사용했던 방식을 따릅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제가 다른 데에 작성했던 글을 긁어오겠습니다. 제게 논증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더 자세하고 정교한 논증을 원하신다면 동물해방의 1장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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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에 따르면, 이성이나 담화의 능력은 권리 부여의 진정한 기준이 될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아이보다 네 살 짜리 개나 말이 더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갓 태어난 아이보다 개나 말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로, 인간 아이에게 이성 또는 담화의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 아이의 권리를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은 누가 권리를 지녔는지를 판별해내는 올바른 기준이 아니다.
따라서 벤담은 말한다. "적절한 질문은 '그들이 이성을 갖고 있는가?'도 아니고,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싱어는 이러한 벤담의 견해가 옳다고 판단한다. 싱어가 생각하기에는, 쾌고감수성이야말로 우리의 직관과 과학적 상식이 보증하는 바 최소한의 기준선이다. 오직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고통스러운지를 아는 개체만이, 자신에게 도덕적인 고려가 이루어지기를 원할 수 있으며, 보다 나은 대우가 이루어지기를 원할 수 있으며, 존중받기를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쾌고감수성의 보유 여부가 도덕적 고려에 있어서 근본 조건으로 자리잡는다. “공리주의적 입장은 최소한의 것이며, 이기적인 의사결정을 보편화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첫 번째 지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가 문젯거리인 도덕 판단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한, 도덕 판단의 원칙은 반드시 불편부당해야 할 것이다. 당파적으로, 또는 특정 개체의 이익에 기울어진 판단이어서는 정당한 원칙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고려대상의 모든 이익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연스레 따라나온다. 이를 피터 싱어는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이 원칙은 도덕적 판단을 위해 나 자신 또는 특정 집단에 이익이 되거나 손실이 되는 관점을 넘어서서, 영향을 받는 모든 개체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야만 윤리적 원칙이 너와 나, 또는 당파를 넘어서는 보편적 윤리 법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인종이나 성, 지적 능력이나 여타의 요인들을 근거로 개체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우리는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우리가 만약 이들의 고통 감수성을 모르는 척 하려 한다면, 오직 피흘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며 '당신이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고 회의론적 철학자의 포즈로 말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는 고통이 본질적으로 '심리적 상태'이기에 생기는 한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매를 맞을 때, 주먹질을 당할 때, 칼과 각종 고문도구로 신체적 위해가 가해질 때, 감금당해서 일생동안 자유를 박탈당할 때, 눈물과 콧물과 침을 쏟아낼 때, 그들이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파!"라는 언어적 신호야말로 고통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겠지만, 싱어는 이를 곧장 반박한다. 사람들은 꾀병을 부리고, 거짓으로 아파하기도 하며, 실제로 아픈 것보다 과장해서 아프다는 신호를 표현하기도 한다. 오히려 더욱 믿음직한 신호는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반응인 경우가 많다. 피 흘리고 몸부림치며 감금당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파!"라는 언어적 신호보다 보편적으로 신뢰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어적 신호는 보다 우월한 판별기준이 아니다.
척추동물들 역시 인간들처럼 고통의 징후를 드러낸다. 척추동물들은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며, 눈이 까뒤집히고, 발버둥치며, 살아남기 위해 저항한다. 털을 쥐어뜯기며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앙고라 염소나 토끼, 동족의 도살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겁에 질려 떠는 말들이,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다고 말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척추동물들만 그러한가? 오늘날의 연구들은 어류들이나 게 조차도 고통을 피하고(전기충격을 피하는 등)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는 쪽(고통을 가하면 모르핀을 원하는 등)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반면 식물에 대해서는, 식물이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식물이 통증을 느낀다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감응한다는 주장 등은 대표적인 유사과학에 속한다.
따라서 이토록 분명한 쾌고 감수성을 지닌 동물들의 이익을 인간과 평등하게 배려하지 않는 도덕 원칙을 정당화 할 어떤 방법도 없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그 누구도, 동물과 인간이 고통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처우(treatment)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인류는 성별 또는 인종에 따라 권리의 부여 방식을 조정해왔다. 당시에 그러한 권리부여의 방식은 매번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관념은 서양 사회에서 18세기-19세기까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흑인이 백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관념은 19세기의 미국 남부에서는 지배적인 상식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성별 또는 인종이 권리 부여에 있어서 합리적 기준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한낱 임의적인 기준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성'이라는 임의적 기준이 억압하는 쪽과 지배하는 쪽을 가를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인간임'이라는 파벌적인 기준이 어떻게 보편적인 정당화가능성을 철칙으로 하는 도덕판단의 원칙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성'이나 '인간성'을 기준으로 도덕적 배려의 적용 대상을 가르는 것은, '성별'이나 '인종'을 중심으로 그러한 분리를 행하는 것만큼이나 임의적인 일이며, 정당하지 못한 차별이라고, 피터 싱어는 생각한다.
고품질 고기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일단 고기면 좋다는 시대에서 맛있는 고기를 찾는 시대가 되었음은 명백합니다. 경제적 유인이 도살의 정교화를 견인할 겁니다. 전기봉 사용을 '육질'을 근거로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대신 CO2를 쓰는 건 별로 가망이 없습니다. 가스가 비싼 건 아닌데 시설비가 엄청나거든요. 게다가 쓸만한 기계는 외산인데, 고장이라도 나면 답 없습니다. 그리고 도축 시간이 길어져 내장 등의 부산물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 적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돼지에서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는 예도 있지요. CO2 기절방이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더 보기
아,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대신 CO2를 쓰는 건 별로 가망이 없습니다. 가스가 비싼 건 아닌데 시설비가 엄청나거든요. 게다가 쓸만한 기계는 외산인데, 고장이라도 나면 답 없습니다. 그리고 도축 시간이 길어져 내장 등의 부산물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 적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돼지에서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는 예도 있지요. CO2 기절방이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더 보기
고품질 고기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일단 고기면 좋다는 시대에서 맛있는 고기를 찾는 시대가 되었음은 명백합니다. 경제적 유인이 도살의 정교화를 견인할 겁니다. 전기봉 사용을 '육질'을 근거로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대신 CO2를 쓰는 건 별로 가망이 없습니다. 가스가 비싼 건 아닌데 시설비가 엄청나거든요. 게다가 쓸만한 기계는 외산인데, 고장이라도 나면 답 없습니다. 그리고 도축 시간이 길어져 내장 등의 부산물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 적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돼지에서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는 예도 있지요. CO2 기절방이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gestation crate, 흔히 스톨이라 하는 것이군요. 그 스톨이 어미돼지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무시한 채 악으로 규정하고 계십니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게 악이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수평아리 갈아버리는 것도 문제 없다고 봅니다. 그 대안은 수컷을 이유없이 키우거나 암컷만 나오도록 만드는 미지의 기술 뿐이지 않습니까. 오리털을 뜯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니 넘어가지요.
누군가에게는 악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닌 행위라면 후자가 극소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도덕의 기초가 삼기는 어렵겠지요.
채식의 부자연성에 대한 부분은 동물의 삶과 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면서, 사람의 삶과 습성은 왜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전자를 주장하는 것은 자연주의 논증이고 후자를 주장하는 건 자연주의 오류입니까?
그리고 노예제조차 경제논리로 생겼다 경제논리로 사라졌다는 분석이 있지요. 경제적 유용성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4/05/821012/
채식주의 하에서 요구되는 산업 규모에 대한 것은 채식을 주장하는 쪽에서 밝혀내야 할 근거입니다. 하던 대로 육식을 한다면 지금까지 존재하는 그래프를 그냥 들고오면 됩니다. 채식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근거 없이 괜찮을 것이라고 하는 쪽이 어디입니까?
해당 온실가스 데이터가 CO2에만 국한된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여타 산업에 비해 농업 및 축산업의 규모와 비중이 작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전 세계 기준으로, 메탄 등의 온실가스를 더하고 농림축산업이 아니라 food supply chain, 그러니까 생산 가공 운송을 싸그리 합쳐서 나온 값이 26%입니다. 순수 축산업의 비중은 그보다 낮지요. 그리고 축산부분이 에너지 부분에 훨씬 못 미치는 것임은 명백합니다. 원전 이야기는 축산업을 축소하는 파격적인 대안 대신 더 손쉽고 덜 불편한 방법을 택하자는 것일 뿐입니다.
농토 당 생산량을 따지면 당연히 고기보다 작물이 큽니다. 생물학까지 갈 것도 없이 효율 100%의 기관은 없다는 열역학만 따져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경제적으로 유용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총량으로 따지면 세계 인구가 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양의 곡물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고기를 없애가며 농토당 생산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경제적 유인이 없습니다.
그리고 2등급 계란과 1등급 계란의 차이가 벌써 2배를 넘는군요. 복지란이 아닌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그냥 2배 가격만 적용한다 친들, 월급이 반토막이 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동물복지 돼지라고 해봤자 최우엉님께서 원하는 수준에는 못 미칠겁니다. 돈사사육 아닙니까. 1등급 계란은 실외사육입니다. 그 수준으로 돼지를 키우면 얼마가 될까요? 최소한 그걸 원하셨던 것 아닙니까?
불가능한 것을 강요해 본들,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대신 CO2를 쓰는 건 별로 가망이 없습니다. 가스가 비싼 건 아닌데 시설비가 엄청나거든요. 게다가 쓸만한 기계는 외산인데, 고장이라도 나면 답 없습니다. 그리고 도축 시간이 길어져 내장 등의 부산물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 적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돼지에서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는 예도 있지요. CO2 기절방이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gestation crate, 흔히 스톨이라 하는 것이군요. 그 스톨이 어미돼지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무시한 채 악으로 규정하고 계십니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게 악이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수평아리 갈아버리는 것도 문제 없다고 봅니다. 그 대안은 수컷을 이유없이 키우거나 암컷만 나오도록 만드는 미지의 기술 뿐이지 않습니까. 오리털을 뜯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니 넘어가지요.
누군가에게는 악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닌 행위라면 후자가 극소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도덕의 기초가 삼기는 어렵겠지요.
채식의 부자연성에 대한 부분은 동물의 삶과 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면서, 사람의 삶과 습성은 왜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전자를 주장하는 것은 자연주의 논증이고 후자를 주장하는 건 자연주의 오류입니까?
그리고 노예제조차 경제논리로 생겼다 경제논리로 사라졌다는 분석이 있지요. 경제적 유용성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4/05/821012/
채식주의 하에서 요구되는 산업 규모에 대한 것은 채식을 주장하는 쪽에서 밝혀내야 할 근거입니다. 하던 대로 육식을 한다면 지금까지 존재하는 그래프를 그냥 들고오면 됩니다. 채식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근거 없이 괜찮을 것이라고 하는 쪽이 어디입니까?
해당 온실가스 데이터가 CO2에만 국한된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여타 산업에 비해 농업 및 축산업의 규모와 비중이 작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전 세계 기준으로, 메탄 등의 온실가스를 더하고 농림축산업이 아니라 food supply chain, 그러니까 생산 가공 운송을 싸그리 합쳐서 나온 값이 26%입니다. 순수 축산업의 비중은 그보다 낮지요. 그리고 축산부분이 에너지 부분에 훨씬 못 미치는 것임은 명백합니다. 원전 이야기는 축산업을 축소하는 파격적인 대안 대신 더 손쉽고 덜 불편한 방법을 택하자는 것일 뿐입니다.
농토 당 생산량을 따지면 당연히 고기보다 작물이 큽니다. 생물학까지 갈 것도 없이 효율 100%의 기관은 없다는 열역학만 따져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경제적으로 유용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총량으로 따지면 세계 인구가 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양의 곡물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고기를 없애가며 농토당 생산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경제적 유인이 없습니다.
그리고 2등급 계란과 1등급 계란의 차이가 벌써 2배를 넘는군요. 복지란이 아닌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그냥 2배 가격만 적용한다 친들, 월급이 반토막이 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동물복지 돼지라고 해봤자 최우엉님께서 원하는 수준에는 못 미칠겁니다. 돈사사육 아닙니까. 1등급 계란은 실외사육입니다. 그 수준으로 돼지를 키우면 얼마가 될까요? 최소한 그걸 원하셨던 것 아닙니까?
불가능한 것을 강요해 본들,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1) 이상한 설명 같습니다. CO2 기절 실패율은 기사에 따르면 1%대이고, 스터닝 기절 실패율은 기사에 따르면 12% 이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용 때문에 동물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기절절차가 제대로 완수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는데, 이것이 희망 없는 얘기라 말씀하시면서 엉뚱하게도 앞으로 도살이 정교해질거라고 말씀하시네요. 이 낙관적 기대의 근거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전기봉 사용이 금지된 건 PSE 탓이라 해도, 사육장과 도축장의 모든 학대적 절차들이 '동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 겁니다. 전기봉-PSE를 제외하고도 동물기업들이 도살과정에서 기절실패율을 낮추게 할만한 유인이 ... 더 보기
전기봉 사용이 금지된 건 PSE 탓이라 해도, 사육장과 도축장의 모든 학대적 절차들이 '동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 겁니다. 전기봉-PSE를 제외하고도 동물기업들이 도살과정에서 기절실패율을 낮추게 할만한 유인이 ... 더 보기
(1) 이상한 설명 같습니다. CO2 기절 실패율은 기사에 따르면 1%대이고, 스터닝 기절 실패율은 기사에 따르면 12% 이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용 때문에 동물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기절절차가 제대로 완수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는데, 이것이 희망 없는 얘기라 말씀하시면서 엉뚱하게도 앞으로 도살이 정교해질거라고 말씀하시네요. 이 낙관적 기대의 근거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전기봉 사용이 금지된 건 PSE 탓이라 해도, 사육장과 도축장의 모든 학대적 절차들이 '동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 겁니다. 전기봉-PSE를 제외하고도 동물기업들이 도살과정에서 기절실패율을 낮추게 할만한 유인이 일어나는 현상이 존재하나요? 도살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이 적을수록 '전체 맛'을 상승시킨다는 증거가 있나요? 뿐만 아니라, 사육장에서의 동물복지가 고기 맛을 더 좋게 만드나요?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동물복지등록제가 시행된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왜 여전히 돼지 동물복지농장비율은 0%대에서 성장하지 않는 걸까요? 이 비율이 상승하리라는 희망을 지지할 수 있는 소비자 선택경향에 대한 분석이 있나요? BibGourmand님이 주장하시는 바가 너무 거대해서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는지 제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도살이 정교해질지 그렇지 않을지'는 제가 제시한 논점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도살이 동물에게 잔혹한 방식으로 남아있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죠. CO2가 배제된 채 남아있으면서도 '더 나은 도살법이 생겨날 것이다'라는 희망에 기대는 건, 지금 이 시간 기절당하지 않은 채 사망당한 12%의 돼지에게는 무의미한 얘기입니다. 도살과정 자체가 부당하다는 전제 하에 돼지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미 비용을 고려하여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말씀하신들, 선결문제인 '비용이 돼지의 고통 수준을 결정하게 두어도 좋다'는 논증이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축동물들 중 가장 광범위하게 희생당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과 고통에 노출되며, 의식이 있는 채로 도축당하고 짧은 수명을 경험하는 닭들, 특히 배터리 케이지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2)
돼지를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 가두는 임신용 우리(스톨)이 모돈을 서로간의 다툼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실증적 연구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제 검색능력으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있다면 알려주세요. 임신용 우리는 돼지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임신기 돼지의 욕망을 이로 인한 건강상의 악영향을 초래합니다. EU는 임신용 우리,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하고 추방한 상태입니다. 한국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어 보이죠.
달걀선별기술은 미지의 기술이 아닙니다. 이 역시 이미 존재하며, 더 넓은 소비자들의 지지가 있을 수록 더 빠르게 도입될 수 있고 사용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인류에게 미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미지'라면 뭐 그런 의미로 납득하겠습니다만...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440166&memberNo=30293492
(3) 도덕의 기초는 구체적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설정한 적이 없고요. 만약 어떤 동물권 지지자가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를 자기 도덕의 기초로 삼는다면 그건 좀 비실용적이고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기초일 겁니다. 무엇이 동물권 지지자들의 기초인지는 윗 댓글 추가 항목에 자세히 설명했다 봅니다.
(4) 아니요. 동물의 습성은 그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동물의 이익(interest)에 속하기에 배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연으로 뭘 논증한 적이 없고 내내 자연주의를 비판하고만 있는데, 뭐가 자연주의 논증이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노예제가 경제적 유용성에 의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시사해내는 점은 기껏해야 '경제적 유용성이 중요하다'이지,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이 정당하다'거나 '경제적으로 유용하지 않게 되면 더이상 정당하지 않게 된다'가 아닙니다. 이런 게 자연주의적인 착각입니다. 게다가, 남부 노예주들에게 노예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유용했을걸요. 북부가 산업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는 이유로 남부의 노예해방을 종용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노예제의 정부당성에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왜 동물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가 정당화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증은 윗 댓글 추가 항목에 해두었다 봅니다.
(5) 산업구조에 관한 논증책임은 BibGourmand님이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채식으로의 전환이 전체 산업 총생산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라는 주장을 한 사람이 이 주장의 입증책임을 갖습니다(그게 아니면 BibGourmand님은 이런 주장을 함축하시면서 동물기업의 총생산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아니었나요?). "하던 대로 한다면 하던 대로 될 것이다"라는 근거가 "채식으로의 전환은 산업 총생산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를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전체 산업이 단숨에 붕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라는 주장만을 했고, 이 주장은 지금 성장하고 있는 Plant-based food 시장의 현실로 쉽게 입증됩니다. BibGourmand님의 주장은 무엇으로 입증되나요?
좀 당혹스럽게도 "근거 없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산업구조가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 다시 읽어보셔요. BibGourmand님이 "근거 없이 다 망할지도 모름"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 제 반론이었고요.
(6) food supply chain에서의 총온실가스 감축이 쉬울지 에너지사용량의 감축이 쉬울지는 BibGourmand님의 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일 뿐입니다. 가령 채식주의자에게는 채식이 제일 쉽습니다. 특히 개인으로서 행하기에는 가장 쉽죠. 옥스퍼드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비건채식으로의 전환이 식품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82%까지 감축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상 총이득(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보건비용 지출 감소)을 계산하면 2050년 예측 GDP의 0.4-13%에 해당하리라는 점이 설명됩니다. 이 연구가 비교적 식단 전환의 이익을 높게 예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환경영향과 관련해 전세계의 지역적 데이터를 종합하여 분석한, 활용가능한 유일한 예측자료이기도 합니다.
에너지 부문에서 동량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대가를 사회가 기꺼이 '더 쉽게' 치르리라는 BibGourmand님의 입증은 없습니다. 게다가 육류 생산이 미치는 산성화와 부영양화 등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https://www.pnas.org/content/113/15/4146
(7) 생산되는 곡물 총량이 전 인구를 먹이기에 족하면 뭐하겠습니까. FAO는 그 생산량의 절반이 선진국 가축의 입에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경제적 유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은 것도 아니고, 경제적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은 것도 아니며, "사람의 삶의 질"을 말씀하시기에 육류를 적게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편익 향상"에 근접하는 농토활용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Almost 50 percent of the grains produced in the world are fed to livestock, yet there remain about 800 million people suffering from hunger and malnutrition mostly in the developing countries. Because surplus grains are produced in developed countries, it has been assumed that increasing livestock production will be based on grains at the expense of poor people. Is this true?
· About 85 percent of total grains fed to livestock throughout the world are fed to livestock in industrialized countries, but at an enormous environmental cost in terms of fossil fuel. Grain importation into developing countries has steadily increased, however, particularly to feed animals that are consumed by the minority higher-income sectors of society. The problem is twofold: first, the poor cannot afford to purchase these cereals because of their low income, and, second, the importation of grains distorts the market for locally produced feed resources.
http://www.fao.org/3/v8180t/v8180T07.htm
(8) 월급 반토막 얘기는 왜 나온 걸까요...? 돼지 안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기냐고요? 적어도 인간의 건강에는 아무 일도 안 생깁니다. 본문의 (3)을 참고하세요. 또한 채식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필요합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국가에서는 급진적으로 채식주의를 고려하거나 실천하는 인구의 수가 증대되고 있으니까요.
* 논점이 너무 많아졌네요. 댓글 하나를 쓰는 데 거의 본문 절반 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저녁 이후에는 추가 피드백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고, 대화의 서로 다른 기초전제가 화합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므로, 추가 의견 주시면 한 개 정도의 의견만 더 남기고 슬슬 정리할 생각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전기봉 사용이 금지된 건 PSE 탓이라 해도, 사육장과 도축장의 모든 학대적 절차들이 '동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 겁니다. 전기봉-PSE를 제외하고도 동물기업들이 도살과정에서 기절실패율을 낮추게 할만한 유인이 일어나는 현상이 존재하나요? 도살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이 적을수록 '전체 맛'을 상승시킨다는 증거가 있나요? 뿐만 아니라, 사육장에서의 동물복지가 고기 맛을 더 좋게 만드나요?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동물복지등록제가 시행된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왜 여전히 돼지 동물복지농장비율은 0%대에서 성장하지 않는 걸까요? 이 비율이 상승하리라는 희망을 지지할 수 있는 소비자 선택경향에 대한 분석이 있나요? BibGourmand님이 주장하시는 바가 너무 거대해서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는지 제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도살이 정교해질지 그렇지 않을지'는 제가 제시한 논점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도살이 동물에게 잔혹한 방식으로 남아있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죠. CO2가 배제된 채 남아있으면서도 '더 나은 도살법이 생겨날 것이다'라는 희망에 기대는 건, 지금 이 시간 기절당하지 않은 채 사망당한 12%의 돼지에게는 무의미한 얘기입니다. 도살과정 자체가 부당하다는 전제 하에 돼지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미 비용을 고려하여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말씀하신들, 선결문제인 '비용이 돼지의 고통 수준을 결정하게 두어도 좋다'는 논증이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축동물들 중 가장 광범위하게 희생당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과 고통에 노출되며, 의식이 있는 채로 도축당하고 짧은 수명을 경험하는 닭들, 특히 배터리 케이지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2)
돼지를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 가두는 임신용 우리(스톨)이 모돈을 서로간의 다툼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실증적 연구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제 검색능력으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있다면 알려주세요. 임신용 우리는 돼지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임신기 돼지의 욕망을 이로 인한 건강상의 악영향을 초래합니다. EU는 임신용 우리,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하고 추방한 상태입니다. 한국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어 보이죠.
달걀선별기술은 미지의 기술이 아닙니다. 이 역시 이미 존재하며, 더 넓은 소비자들의 지지가 있을 수록 더 빠르게 도입될 수 있고 사용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인류에게 미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미지'라면 뭐 그런 의미로 납득하겠습니다만...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440166&memberNo=30293492
(3) 도덕의 기초는 구체적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설정한 적이 없고요. 만약 어떤 동물권 지지자가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를 자기 도덕의 기초로 삼는다면 그건 좀 비실용적이고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기초일 겁니다. 무엇이 동물권 지지자들의 기초인지는 윗 댓글 추가 항목에 자세히 설명했다 봅니다.
(4) 아니요. 동물의 습성은 그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동물의 이익(interest)에 속하기에 배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연으로 뭘 논증한 적이 없고 내내 자연주의를 비판하고만 있는데, 뭐가 자연주의 논증이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노예제가 경제적 유용성에 의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시사해내는 점은 기껏해야 '경제적 유용성이 중요하다'이지,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이 정당하다'거나 '경제적으로 유용하지 않게 되면 더이상 정당하지 않게 된다'가 아닙니다. 이런 게 자연주의적인 착각입니다. 게다가, 남부 노예주들에게 노예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유용했을걸요. 북부가 산업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는 이유로 남부의 노예해방을 종용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노예제의 정부당성에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왜 동물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가 정당화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증은 윗 댓글 추가 항목에 해두었다 봅니다.
(5) 산업구조에 관한 논증책임은 BibGourmand님이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채식으로의 전환이 전체 산업 총생산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라는 주장을 한 사람이 이 주장의 입증책임을 갖습니다(그게 아니면 BibGourmand님은 이런 주장을 함축하시면서 동물기업의 총생산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아니었나요?). "하던 대로 한다면 하던 대로 될 것이다"라는 근거가 "채식으로의 전환은 산업 총생산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를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전체 산업이 단숨에 붕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라는 주장만을 했고, 이 주장은 지금 성장하고 있는 Plant-based food 시장의 현실로 쉽게 입증됩니다. BibGourmand님의 주장은 무엇으로 입증되나요?
좀 당혹스럽게도 "근거 없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산업구조가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 다시 읽어보셔요. BibGourmand님이 "근거 없이 다 망할지도 모름"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 제 반론이었고요.
(6) food supply chain에서의 총온실가스 감축이 쉬울지 에너지사용량의 감축이 쉬울지는 BibGourmand님의 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일 뿐입니다. 가령 채식주의자에게는 채식이 제일 쉽습니다. 특히 개인으로서 행하기에는 가장 쉽죠. 옥스퍼드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비건채식으로의 전환이 식품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82%까지 감축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상 총이득(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보건비용 지출 감소)을 계산하면 2050년 예측 GDP의 0.4-13%에 해당하리라는 점이 설명됩니다. 이 연구가 비교적 식단 전환의 이익을 높게 예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환경영향과 관련해 전세계의 지역적 데이터를 종합하여 분석한, 활용가능한 유일한 예측자료이기도 합니다.
에너지 부문에서 동량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대가를 사회가 기꺼이 '더 쉽게' 치르리라는 BibGourmand님의 입증은 없습니다. 게다가 육류 생산이 미치는 산성화와 부영양화 등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https://www.pnas.org/content/113/15/4146
(7) 생산되는 곡물 총량이 전 인구를 먹이기에 족하면 뭐하겠습니까. FAO는 그 생산량의 절반이 선진국 가축의 입에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경제적 유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은 것도 아니고, 경제적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은 것도 아니며, "사람의 삶의 질"을 말씀하시기에 육류를 적게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편익 향상"에 근접하는 농토활용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Almost 50 percent of the grains produced in the world are fed to livestock, yet there remain about 800 million people suffering from hunger and malnutrition mostly in the developing countries. Because surplus grains are produced in developed countries, it has been assumed that increasing livestock production will be based on grains at the expense of poor people. Is this true?
· About 85 percent of total grains fed to livestock throughout the world are fed to livestock in industrialized countries, but at an enormous environmental cost in terms of fossil fuel. Grain importation into developing countries has steadily increased, however, particularly to feed animals that are consumed by the minority higher-income sectors of society. The problem is twofold: first, the poor cannot afford to purchase these cereals because of their low income, and, second, the importation of grains distorts the market for locally produced feed resources.
http://www.fao.org/3/v8180t/v8180T07.htm
(8) 월급 반토막 얘기는 왜 나온 걸까요...? 돼지 안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기냐고요? 적어도 인간의 건강에는 아무 일도 안 생깁니다. 본문의 (3)을 참고하세요. 또한 채식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필요합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국가에서는 급진적으로 채식주의를 고려하거나 실천하는 인구의 수가 증대되고 있으니까요.
* 논점이 너무 많아졌네요. 댓글 하나를 쓰는 데 거의 본문 절반 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저녁 이후에는 추가 피드백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고, 대화의 서로 다른 기초전제가 화합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므로, 추가 의견 주시면 한 개 정도의 의견만 더 남기고 슬슬 정리할 생각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1) 전기 기절법이 정교화될 것이라는 것이고, 비용 문제로 CO2 대중화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인데요. 비용이 사람의 목숨도 좌우하는데, 돼지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도축은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잡아먹는 '자연적' 방식에 비하면 훨씬 인도적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케이지 없이는 저렴한 달걀의 충분한 공급이 어려우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가로 도축 직전의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고기 품질 간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동물복지 농장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볼 수 있겠지... 더 보기
모든 도축은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잡아먹는 '자연적' 방식에 비하면 훨씬 인도적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케이지 없이는 저렴한 달걀의 충분한 공급이 어려우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가로 도축 직전의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고기 품질 간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동물복지 농장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볼 수 있겠지... 더 보기
1) 전기 기절법이 정교화될 것이라는 것이고, 비용 문제로 CO2 대중화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인데요. 비용이 사람의 목숨도 좌우하는데, 돼지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도축은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잡아먹는 '자연적' 방식에 비하면 훨씬 인도적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케이지 없이는 저렴한 달걀의 충분한 공급이 어려우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가로 도축 직전의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고기 품질 간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동물복지 농장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볼 수 있겠지요. 비용은 확실한데 품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하니까요. 제가 도축 과정에만 한정지어 이야기한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동물복지는 대부분 비용입니다. 동물복지와 관련된 조치들 중 일부가 돼지의 생산량을 약간 늘린다는 보고는 있으나, 비용 대비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현 상황 하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복지라는 서사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 외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경제적 유인은 전무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도축과정은 별개입니다.
2) 스톨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dailyvet.co.kr/interview/76216
3)4) 동물의 이익을 위해 사람의 이익을 희생하라 말씀하고 계시는 이상 제 논지는 동일합니다. 동물보단 사람을 먼저 보시지요.
5) 모두가 채식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육식산업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같습니다.
6) 채식도 선호일 뿐이죠. 채식주의자들에게 채식이 쉬운 선택이라면 육식주의자들에게 고기를 끊게 만드는 것보다 천기차를 팔고 원전을 짓는 게 쉬운 선택일 수밖에요.
그리고 채식은 저개발국에서 토양 산성화에 부정적인 효과를 냅니다. 저 위에 직접 링크하신 란셋 논문 Fig.4에 있습니다.
7) 고기를 먹는 행복이 많은 인간들의 편익을 증진시킵니다.
8) 계란값이 두 배가 된다면 계란에 대한 구매력은 반토막이 나지요. 물건 값이 오르고 월급이 불변이면 월급이 깎인 것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채식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고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모든 도축은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잡아먹는 '자연적' 방식에 비하면 훨씬 인도적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케이지 없이는 저렴한 달걀의 충분한 공급이 어려우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가로 도축 직전의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고기 품질 간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동물복지 농장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볼 수 있겠지요. 비용은 확실한데 품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하니까요. 제가 도축 과정에만 한정지어 이야기한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동물복지는 대부분 비용입니다. 동물복지와 관련된 조치들 중 일부가 돼지의 생산량을 약간 늘린다는 보고는 있으나, 비용 대비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현 상황 하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복지라는 서사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 외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경제적 유인은 전무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도축과정은 별개입니다.
2) 스톨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dailyvet.co.kr/interview/76216
3)4) 동물의 이익을 위해 사람의 이익을 희생하라 말씀하고 계시는 이상 제 논지는 동일합니다. 동물보단 사람을 먼저 보시지요.
5) 모두가 채식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육식산업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같습니다.
6) 채식도 선호일 뿐이죠. 채식주의자들에게 채식이 쉬운 선택이라면 육식주의자들에게 고기를 끊게 만드는 것보다 천기차를 팔고 원전을 짓는 게 쉬운 선택일 수밖에요.
그리고 채식은 저개발국에서 토양 산성화에 부정적인 효과를 냅니다. 저 위에 직접 링크하신 란셋 논문 Fig.4에 있습니다.
7) 고기를 먹는 행복이 많은 인간들의 편익을 증진시킵니다.
8) 계란값이 두 배가 된다면 계란에 대한 구매력은 반토막이 나지요. 물건 값이 오르고 월급이 불변이면 월급이 깎인 것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채식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고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실험쥐의 경우에는 1/3에서 1/5 정도 밥을 줄이고, 약 25% 정도의 수명 증가를 일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사람의 경우에는 애매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실험이 없습니다. 쥐는 죽을때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그 식단이 유지되느냐도 문제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연구 하다가는 연구자가 먼저 늙어죽을겁니다...
둘째는 가성비입니다. 쥐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대입하면 한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미국인에 비해 40%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고작(?) 4년 정도 오래 삽... 더 보기
단, 사람의 경우에는 애매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실험이 없습니다. 쥐는 죽을때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그 식단이 유지되느냐도 문제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연구 하다가는 연구자가 먼저 늙어죽을겁니다...
둘째는 가성비입니다. 쥐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대입하면 한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미국인에 비해 40%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고작(?) 4년 정도 오래 삽... 더 보기
실험쥐의 경우에는 1/3에서 1/5 정도 밥을 줄이고, 약 25% 정도의 수명 증가를 일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사람의 경우에는 애매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실험이 없습니다. 쥐는 죽을때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그 식단이 유지되느냐도 문제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연구 하다가는 연구자가 먼저 늙어죽을겁니다...
둘째는 가성비입니다. 쥐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대입하면 한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미국인에 비해 40%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고작(?) 4년 정도 오래 삽니다. 칼로리 제한이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된 위험인자를 줄이고, 어렸을 때 고도비만이 되면 기대수명이 크게 깎이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13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수 년의 수명 증가를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나 몇 년 더 살자고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이 추천할 만한 일인가는 모르겠습니다.
https://nyaspub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96/annals.1396.005
단, 사람의 경우에는 애매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실험이 없습니다. 쥐는 죽을때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그 식단이 유지되느냐도 문제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연구 하다가는 연구자가 먼저 늙어죽을겁니다...
둘째는 가성비입니다. 쥐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대입하면 한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미국인에 비해 40%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고작(?) 4년 정도 오래 삽니다. 칼로리 제한이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된 위험인자를 줄이고, 어렸을 때 고도비만이 되면 기대수명이 크게 깎이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13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수 년의 수명 증가를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나 몇 년 더 살자고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이 추천할 만한 일인가는 모르겠습니다.
https://nyaspub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96/annals.1396.005
식물이 클래식을 들으면 잘 큰다는 것은 유사과학의 대표격인 백스터 효과입니다...ㅠ.ㅠ 검색해보시면 나올 겁니다. 식물이 쾌고감수성이나 자기 나름의 이익(interest, 먹히지 않고자 하는 이익이라든지)을 가질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회의주의자 사전 관련 항목을 두고 갑니다...
http://skepdic.com/plants.html
식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있는 생물로서, 신경이나 감각 기관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셀룰로오스... 더 보기
http://skepdic.com/plants.html
식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있는 생물로서, 신경이나 감각 기관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셀룰로오스... 더 보기
식물이 클래식을 들으면 잘 큰다는 것은 유사과학의 대표격인 백스터 효과입니다...ㅠ.ㅠ 검색해보시면 나올 겁니다. 식물이 쾌고감수성이나 자기 나름의 이익(interest, 먹히지 않고자 하는 이익이라든지)을 가질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회의주의자 사전 관련 항목을 두고 갑니다...
http://skepdic.com/plants.html
식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있는 생물로서, 신경이나 감각 기관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없고, 신경이나 감각 기관을 갖고 있다. 동물은 지각력이 있다(sentient). 식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뇌와 신경 체계는 지각력을 위해 필수적이다. 식물은 뇌나 지각 기관을 갖고 있지 않다. 식물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 자극에 반응한다. 그렇지만 식물이 그러한 반응에 대해 지각하고 있다는(aware of) 주장, 식물이 자기-의식적이고 의식적인 존재라는 주장에 대한 정당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은 DNA를 지니고 있고, 자연선택 또는 인간선택에 의해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어떤 식물 진화형은 '지능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식물을 지능적이라고 말하는 것, 또는 "식물 신경 생물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하자면 주목을 받거나 연구비를 얻기 위한 비유 또는 기믹에 불과하다.
식물학자, 또는 동물생리학자가 식물 의식이나 ESP에 대해 실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구자들의 지식은, 식물이 인간 계열의 감각 혹은 지각을 갖고 있다고 볼 가능성을 배제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식물에게는 뇌가 없고 또는 뇌와 유사한 종류의 그 어떤 것도 없다.
http://skepdic.com/plants.html
식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있는 생물로서, 신경이나 감각 기관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셀룰로오스 세포벽이 없고, 신경이나 감각 기관을 갖고 있다. 동물은 지각력이 있다(sentient). 식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뇌와 신경 체계는 지각력을 위해 필수적이다. 식물은 뇌나 지각 기관을 갖고 있지 않다. 식물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 자극에 반응한다. 그렇지만 식물이 그러한 반응에 대해 지각하고 있다는(aware of) 주장, 식물이 자기-의식적이고 의식적인 존재라는 주장에 대한 정당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은 DNA를 지니고 있고, 자연선택 또는 인간선택에 의해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어떤 식물 진화형은 '지능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식물을 지능적이라고 말하는 것, 또는 "식물 신경 생물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하자면 주목을 받거나 연구비를 얻기 위한 비유 또는 기믹에 불과하다.
식물학자, 또는 동물생리학자가 식물 의식이나 ESP에 대해 실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구자들의 지식은, 식물이 인간 계열의 감각 혹은 지각을 갖고 있다고 볼 가능성을 배제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식물에게는 뇌가 없고 또는 뇌와 유사한 종류의 그 어떤 것도 없다.
(1) 우선 링크의 논문(Reducing food’s environmental impacts through producers and consumers)의 Fig 1.의 대지사용(landuse) 항목을 참고해주세요.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 같은 양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요구되는 식물의 양은 식물을 직접 먹을 때보다 동물을 통해 먹을 때 훨씬 큽니다. 식물에 이익(i... 더 보기
(1) 우선 링크의 논문(Reducing food’s environmental impacts through producers and consumers)의 Fig 1.의 대지사용(landuse) 항목을 참고해주세요.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987 같은 양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요구되는 식물의 양은 식물을 직접 먹을 때보다 동물을 통해 먹을 때 훨씬 큽니다. 식물에 이익(interest)이 있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식물의 이익을 덜 침해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먹지 않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2) 다시 말씀드리면, 그런데 식물이 쾌고감수성이나 자기 나름의 이익(interest)을 가질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피터 싱어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의 발에 돌이 차여 굴러갔는데, 이것이 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주장은 허튼소리가 될 것이다. 돌은 이익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돌은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에게 행하는 것 중 돌의 복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최소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과 관련된 이익-은 한 존재자가 이익을 갖는다고 할 때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예를 들어 쥐는 차여서 길에 굴러다니지 않을 이익을 분명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쥐는 차일 경우 고통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과학적 자료는 다음 링크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veganstudies.github.io/2019/10/22/sentience-table.html
생명은 유기질로 형성되어 있는 물질이 재생산 등 일정한 특성을 발현할 때 인류가 추상화하여 붙인 이름으로, 그 자체가 '잔혹행위'를 경험하거나 어떤 경험을 '잔혹행위'로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행위가 무엇이든간에 관심을 가질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식물에 대해 "차별을 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도리어 "나를 차별하지 말라"라고 명확한 증거를 드러내는 동물들을 차별하는 정당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이상합니다. 현재의 과학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식물과 돌의 이익관심능력을 명확히 변별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령 우리는 돌과 돼지 중 하나를 망치로 두드려야 할 때, 돌이 인지와 감정을 느끼는 무기체 종족이라는 사실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돼지를 두드리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식물이 생명이라는 것이 몸부림치고 비명지르는 존재를 얼마든지 고통스럽게 만들 환경에 노출시킬 정당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2) 다시 말씀드리면, 그런데 식물이 쾌고감수성이나 자기 나름의 이익(interest)을 가질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피터 싱어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의 발에 돌이 차여 굴러갔는데, 이것이 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주장은 허튼소리가 될 것이다. 돌은 이익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돌은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에게 행하는 것 중 돌의 복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최소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과 관련된 이익-은 한 존재자가 이익을 갖는다고 할 때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예를 들어 쥐는 차여서 길에 굴러다니지 않을 이익을 분명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쥐는 차일 경우 고통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과학적 자료는 다음 링크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veganstudies.github.io/2019/10/22/sentience-table.html
생명은 유기질로 형성되어 있는 물질이 재생산 등 일정한 특성을 발현할 때 인류가 추상화하여 붙인 이름으로, 그 자체가 '잔혹행위'를 경험하거나 어떤 경험을 '잔혹행위'로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행위가 무엇이든간에 관심을 가질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식물에 대해 "차별을 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도리어 "나를 차별하지 말라"라고 명확한 증거를 드러내는 동물들을 차별하는 정당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이상합니다. 현재의 과학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식물과 돌의 이익관심능력을 명확히 변별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령 우리는 돌과 돼지 중 하나를 망치로 두드려야 할 때, 돌이 인지와 감정을 느끼는 무기체 종족이라는 사실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돼지를 두드리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식물이 생명이라는 것이 몸부림치고 비명지르는 존재를 얼마든지 고통스럽게 만들 환경에 노출시킬 정당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200년 전쯤의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이 느끼거나 이익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의 지위를 '짐승'으로 격하시켰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식물이 잘 안 자란다고 채찍질을 하거나 모종의 고문을 하지는 않지만, 도망노예나 일을 게을리 하는 노예에 대해서는 채찍질로 고통을 줌으로써 특정한 행위를 유도한 것으로 알거든요. 노예주들이나 인종주의자들이 흑인이 잔혹행위를 잔혹행위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 문헌이나, 당대의 노예제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식물이 동물보다 돌에 가깝다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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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쯤의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이 느끼거나 이익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의 지위를 '짐승'으로 격하시켰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식물이 잘 안 자란다고 채찍질을 하거나 모종의 고문을 하지는 않지만, 도망노예나 일을 게을리 하는 노예에 대해서는 채찍질로 고통을 줌으로써 특정한 행위를 유도한 것으로 알거든요. 노예주들이나 인종주의자들이 흑인이 잔혹행위를 잔혹행위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 문헌이나, 당대의 노예제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식물이 동물보다 돌에 가깝다는 것은 식물의 이해관심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인류가 과학적 방법으로 평가한 50여개 항목에서, 그 능력이 돌보다 동물에 가깝다고 말할 만한 현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을 함축한 말입니다. 동물은 인간만이 수행하는 고급인지작용을 제외한 40여개 이상의 항목에 대해 반응증거를 보여주는데, 식물은 그 반응의 수준이 극히 낮으니까요.
또한 여전히, 식물의 이익이나 권리(저는 이런 것을 믿지 않지만, 이런 것이 있다고 가정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겁니다)를 덜 침해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직접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식물이 동물보다 돌에 가깝다는 것은 식물의 이해관심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인류가 과학적 방법으로 평가한 50여개 항목에서, 그 능력이 돌보다 동물에 가깝다고 말할 만한 현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을 함축한 말입니다. 동물은 인간만이 수행하는 고급인지작용을 제외한 40여개 이상의 항목에 대해 반응증거를 보여주는데, 식물은 그 반응의 수준이 극히 낮으니까요.
또한 여전히, 식물의 이익이나 권리(저는 이런 것을 믿지 않지만, 이런 것이 있다고 가정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겁니다)를 덜 침해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직접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짐승으로 격하시켰다는게 사회적으로 노예라는 지위를 받아들여도 된다고 치부한거죠. 마치 지금 식물을 무생물에 가깝다고 치부하시려는 것 처럼요. 여튼 이게 중요한건 아니고,
식물이 반응수준이 낮다고 식물은 함부로 대해도 되고 동물은 안된다는 부분이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인지로는 그 사이를 가를수 없거든요. 근거로 드시는것들도 반응이 낮다('없다'가 아님). 증거가 없다. 수준인데, 그정도 근거로 동물과 식물의 경계를 칼같이 나누는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제 입장을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 하자면, 육식이든 채식이든 어차피 다 살생인데 반응이 적은걸 먹는 정도로 도덕적 우위를 느끼는건 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식물이 반응수준이 낮다고 식물은 함부로 대해도 되고 동물은 안된다는 부분이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인지로는 그 사이를 가를수 없거든요. 근거로 드시는것들도 반응이 낮다('없다'가 아님). 증거가 없다. 수준인데, 그정도 근거로 동물과 식물의 경계를 칼같이 나누는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제 입장을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 하자면, 육식이든 채식이든 어차피 다 살생인데 반응이 적은걸 먹는 정도로 도덕적 우위를 느끼는건 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직접먹으면 식물을 적게 먹으니 권리를 덜 해친다는 류의 공리적인 사고로 이야기를 하는게 아녜요.
횟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동물대신 식물을 먹는게 원칙적으로 정당한지 이야기 하자는거죠. 그러므로 직접섭취나 간접섭취는 중요하지 않아요.
횟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동물대신 식물을 먹는게 원칙적으로 정당한지 이야기 하자는거죠. 그러므로 직접섭취나 간접섭취는 중요하지 않아요.
먹어본 적 없지만 인간 고기도 참 맛있을 겁니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news/2010/9/100831-cannibalism-cannibal-cavemen-human-meat-science/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news/2010/9/100831-cannibalism-cannibal-cavemen-human-meat-science/
아랫글도 그렇고 쓰신 분들의 의도는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결국 배부른 1세계 국가에서나 가능한 사유가 아닐까 싶네요. 뒤를 돌아볼 여유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 의무인 양 주입하는 사람들이 늘 문제이지요. 시혜를 내리는 듯한 태도도 문제구요. 1세계 국가가 아니다 = Uneducated가 아닐테니까요. 수십 수백억 두수의 수요를 과연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그 대안이 교육받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한다 혹은 공장 배양육을 기다린다 이런 결론일수만은 없을겁니다.
대규모로 사료작물과 농토를 흡수해버리는 공장식 축산에 관한 비판은 '배고픈 3세계 시민'들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주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근거가 FAO의 livestock's long shadow인데, FAO는 2050년까지 60%의 식량증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동일 농토에서 획득가능한 단백질의 양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는 경제학적인 지식도 없지만, 동일 농토가 더 많은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단백질 100g당 가격이 하락하여 기아 문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09년, 밀, 쌀, 보리, 옥수수와 함께... 더 보기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09년, 밀, 쌀, 보리, 옥수수와 함께... 더 보기
대규모로 사료작물과 농토를 흡수해버리는 공장식 축산에 관한 비판은 '배고픈 3세계 시민'들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주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근거가 FAO의 livestock's long shadow인데, FAO는 2050년까지 60%의 식량증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동일 농토에서 획득가능한 단백질의 양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는 경제학적인 지식도 없지만, 동일 농토가 더 많은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단백질 100g당 가격이 하락하여 기아 문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09년, 밀, 쌀, 보리, 옥수수와 함께 5대 곡물의 하나인 콩의 생산 비중이 식용과 사료용을 합쳐 8% 정도였지만 콩에서 인류가 섭취한 단백질량은 총 단백질 섭취량의 30%나 됐고, 육류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콩의 식물성 단백질에서 얻었다고 보고(콩 단백질량 8900만 톤/육류 단백질 5700만 톤)했다. FAO의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2006)'는 축산업이 배출한 탄소량이 지구 총배출의 18%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편 1에이커(ac)의 농토에서 콩(대두)은 161킬로그램(㎏), 쌀은 118㎏, 옥수수는 96㎏의 식물성 단백질을 얻을 수 있지만, 쇠고기는 겨우 9㎏의 동물성 단백질만 얻게 될 뿐이다. 이 막대한 차이 때문에 육식은 오늘날 지구 기후와 인류의 식량 안보를 해치고 있다.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961년부터 2011년까지 60년간 세계 식단의 변화를 추적한 결과, 세계적으로 육식은 2배 늘어났고 곡물에서 얻는 칼로리(㎉)는 4% 줄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기간 육식은 6배 늘고 곡물 섭취량은 50% 이하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육식을 줄이고 콩 섭취를 늘리는 것이 기후변화를 막고 식량 안보를 지키는 길이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09년, 밀, 쌀, 보리, 옥수수와 함께 5대 곡물의 하나인 콩의 생산 비중이 식용과 사료용을 합쳐 8% 정도였지만 콩에서 인류가 섭취한 단백질량은 총 단백질 섭취량의 30%나 됐고, 육류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콩의 식물성 단백질에서 얻었다고 보고(콩 단백질량 8900만 톤/육류 단백질 5700만 톤)했다. FAO의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2006)'는 축산업이 배출한 탄소량이 지구 총배출의 18%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편 1에이커(ac)의 농토에서 콩(대두)은 161킬로그램(㎏), 쌀은 118㎏, 옥수수는 96㎏의 식물성 단백질을 얻을 수 있지만, 쇠고기는 겨우 9㎏의 동물성 단백질만 얻게 될 뿐이다. 이 막대한 차이 때문에 육식은 오늘날 지구 기후와 인류의 식량 안보를 해치고 있다.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961년부터 2011년까지 60년간 세계 식단의 변화를 추적한 결과, 세계적으로 육식은 2배 늘어났고 곡물에서 얻는 칼로리(㎉)는 4% 줄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기간 육식은 6배 늘고 곡물 섭취량은 50% 이하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육식을 줄이고 콩 섭취를 늘리는 것이 기후변화를 막고 식량 안보를 지키는 길이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결국 "고기 먹지 말고 콩 먹어라" "콩으로 단백질 채우는 삶에 만족해라" 로 느껴집니다. 누군가에겐 취사선택이지만 누군가에겐 강요겠지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기맛의 즐거움을 알아버렸고 현실적으로 육류가 대체 가능한 대체재로 가기까진 기술적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우리에게 10퍼센트 20퍼센트의 가격 인상이 아무것도 아닐지언정 그게 더 크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수억 수십억명일겁니다...
그럼 앞으로 저같은 평민들은 그냥 쌀밥하고 김치만 먹고 살아야겠네요. 저도 동물복지 축산물 좋아하고, 좋은 것을 알지만 그 비싼 것을 어떻게 자주 사먹겠습니까. 이미 냉동해물믹스와 참치캔 이외에 수산물은 끊은지 오래고, 한우고기도 일년에 2~3번 먹으면 많이 먹은 것인 상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동물에게 친절하게만 축산업을 돌리면 친환경/동물복지 육류 이외에는 다 퇴출일텐데 그러면 고기값이 너무 올라서 봉건시대처럼 왕족이나 대귀족들이나 고기를 먹고, 평민들은 결혼식, 장례식날 아니면 고기구경도 못하고 살아야 할 겁니다. 전 나쁜놈 소리 듣더라도 고루고루 챙겨먹으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동물에게 친절하게만 축산업을 돌리면 친환경/동물복지 육류 이외에는 다 퇴출일텐데 그러면 고기값이 너무 올라서 봉건시대처럼 왕족이나 대귀족들이나 고기를 먹고, 평민들은 결혼식, 장례식날 아니면 고기구경도 못하고 살아야 할 겁니다. 전 나쁜놈 소리 듣더라도 고루고루 챙겨먹으렵니다.
어머니 계란 대신 주문해드리면서 동물복지란 가격을 보는데, 2등급란은 알당 250-300원 수준이었습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동물복지 육류가격은 가격 차이가 10% 내외라고도 합니다. 물론 제가 육식을 안해서, 실제 소비자가 접근가능한 시장가격이 이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물론 좁은 곳에 가둬 놓고, 화학 약품의 세례를 듬뿍 받은 상품보다는 비쌉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물복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동물복지 삼겹살은 100g에 2,830원으로 일반 삼겹살 2,600원에 비해 8.8%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10%... 더 보기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물론 좁은 곳에 가둬 놓고, 화학 약품의 세례를 듬뿍 받은 상품보다는 비쌉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물복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동물복지 삼겹살은 100g에 2,830원으로 일반 삼겹살 2,600원에 비해 8.8%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10%... 더 보기
어머니 계란 대신 주문해드리면서 동물복지란 가격을 보는데, 2등급란은 알당 250-300원 수준이었습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동물복지 육류가격은 가격 차이가 10% 내외라고도 합니다. 물론 제가 육식을 안해서, 실제 소비자가 접근가능한 시장가격이 이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물론 좁은 곳에 가둬 놓고, 화학 약품의 세례를 듬뿍 받은 상품보다는 비쌉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물복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동물복지 삼겹살은 100g에 2,830원으로 일반 삼겹살 2,600원에 비해 8.8%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10% 안쪽까지 좁혀진 겁니다. 물론 여전히 물량이 딸려서 전국 모든 매장에 깔지 못하지만, 동물복지 삼겹살 매출은 꾸준히 늘어온 겁니다. 지난 1분기 4억1천만 원에서 2분기에는 4억9천만 원까지 매출이 늘었다고 합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53622&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AT-Lancet 위원회는 개선된 보건 상태와 식량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세계 육류 소비량이 현 소비량에서 50% 이상 감축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래 서머리의 13p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eatforum.org/content/uploads/2019/07/EAT-Lancet_Commission_Summary_Report.pdf
즉 같은 육류소비예산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대개는 복지육류를 선택하고 총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쾌감 이외의 편익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좀 과장 같습니다.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물론 좁은 곳에 가둬 놓고, 화학 약품의 세례를 듬뿍 받은 상품보다는 비쌉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물복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동물복지 삼겹살은 100g에 2,830원으로 일반 삼겹살 2,600원에 비해 8.8%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10% 안쪽까지 좁혀진 겁니다. 물론 여전히 물량이 딸려서 전국 모든 매장에 깔지 못하지만, 동물복지 삼겹살 매출은 꾸준히 늘어온 겁니다. 지난 1분기 4억1천만 원에서 2분기에는 4억9천만 원까지 매출이 늘었다고 합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53622&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AT-Lancet 위원회는 개선된 보건 상태와 식량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세계 육류 소비량이 현 소비량에서 50% 이상 감축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래 서머리의 13p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eatforum.org/content/uploads/2019/07/EAT-Lancet_Commission_Summary_Report.pdf
즉 같은 육류소비예산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대개는 복지육류를 선택하고 총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쾌감 이외의 편익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좀 과장 같습니다.
동물복지 제품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고 댓글을 쓴 것 같습니다.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동물복제 제품이 대중화된 상태라면 단순히 공장제 축산업이 도태된다고 해도 식품가격이 극적으로는 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홍차넷 유게에도 도축시설 영상이 올라오는데요?
닭고기 가공공장이 스스로 홍보하는 영상입니다.
https://redtea.kr/?b=13&n=33399
불필요와 필요를 가리는데 비용절감이 필요냐 불필요냐
먹을 사람의 감정이 필요냐 불필요냐
제 생각은 둘다 '필요'로군요. 가격보다 감정비용이 큰 분들은
더 내고 감정이 상하지 않는 고기를 드시면 되겠고
가격 비용이 더 큰 사람들 먹을 길은 안 막으시면 좋겠습니다.
닭고기 가공공장이 스스로 홍보하는 영상입니다.
https://redtea.kr/?b=13&n=33399
불필요와 필요를 가리는데 비용절감이 필요냐 불필요냐
먹을 사람의 감정이 필요냐 불필요냐
제 생각은 둘다 '필요'로군요. 가격보다 감정비용이 큰 분들은
더 내고 감정이 상하지 않는 고기를 드시면 되겠고
가격 비용이 더 큰 사람들 먹을 길은 안 막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랬군요. (추가) 저는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필요가 정당화되었는지 물은 것이죠. 둘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기를 사고 싶은 데도 못 사게 하는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고기를 사고 싶다면 질문 자체를 무시하고서 사면 됩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옹호하려는 사람이라면" 먹는 문제에 대해 어떤 정당화를 내놓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글을 시작한 것이고요. 그런 데 관심 없거나, '답을 내놓긴 할텐데 네 앞에선 안 내놓을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그냥 지나치면 될 일입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옹호하려는 사람에게 있어, 정당화는 연민과 쾌락 사이 선호의 문제가 아닌 정합적 규범근거의 문제입니다. 만약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거라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물론 수컷이 죽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보가 아니라 비건을 선택한 것이고요. 물론 비건 역시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한 동물의 죽음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채식주의의 각 단계는 각자의 최선대로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백을 죽이다가 하나를 죽이는 식으로 감축하는 행동을 두고 인간의 규범이 뭐라 평가하건간에, 동물의 총이익에는 현저한 영향이 갈 테니까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채식주의에 관한 논쟁에서 가끔 나오는 "마장동에 가서 따져라"라는 말을 희한하게 생각합니다. 규제는 정부가 하고, 무엇이 존속될 산업인가에 대한 투표는 돈을 든 소비자가 하는 거니까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채식주의에 관한 논쟁에서 가끔 나오는 "마장동에 가서 따져라"라는 말을 희한하게 생각합니다. 규제는 정부가 하고, 무엇이 존속될 산업인가에 대한 투표는 돈을 든 소비자가 하는 거니까요.
지금이 100인지도 모르겠고, 1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1을 달성하면 후안무치해도 될 지도 모르겠고, 1에 해당하는게 어느정도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이전에 이걸 죄책과 도덕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위에선 스캐빈저나 아사라고 했는데 둘 중에 스캐빈저가 되는것 역시 옳은건가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결국 도덕에 대한 책임전가에 불과한게 아닐지.
그이전에 이걸 죄책과 도덕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위에선 스캐빈저나 아사라고 했는데 둘 중에 스캐빈저가 되는것 역시 옳은건가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결국 도덕에 대한 책임전가에 불과한게 아닐지.
연간 개인이 소비하는 돼지, 소, 닭의 수를 합산하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15-16마리쯤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닭 소비량 평균이 14마리입니다). 이를 자신의 현 수명에서 한국인 평균 수명까지 남은 햇수로 곱하면, 남은 수명이 50년 정도로 기대되는 사람은 750마리의 동물을 죽이게 되며, 치킨 애호가라면 더 심해지겠죠. 이 과정에서 사료작물의 소모량은 더 많아지므로 덩달아 더 많이 소모되는 곤충의 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 반면 식습관이 더 채식쪽으로 기울수록, 죽이는 동물의 수가 줄어들고 농작물의 요구량이 줄어듭니다. 100:1은 그냥 수사학적으로 제시한 표현이... 더 보기
연간 개인이 소비하는 돼지, 소, 닭의 수를 합산하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15-16마리쯤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닭 소비량 평균이 14마리입니다). 이를 자신의 현 수명에서 한국인 평균 수명까지 남은 햇수로 곱하면, 남은 수명이 50년 정도로 기대되는 사람은 750마리의 동물을 죽이게 되며, 치킨 애호가라면 더 심해지겠죠. 이 과정에서 사료작물의 소모량은 더 많아지므로 덩달아 더 많이 소모되는 곤충의 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 반면 식습관이 더 채식쪽으로 기울수록, 죽이는 동물의 수가 줄어들고 농작물의 요구량이 줄어듭니다. 100:1은 그냥 수사학적으로 제시한 표현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료로 어림짐작한 산술적 최소수치에 가깝습니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동물권 이론가들은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동물에 대한 침해의 수준을 가능한 한 낮춰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완벽해 질 수 없다는 것이, 도덕 규범 자체를 방기하는 근거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132
동물권 이론가들은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동물에 대한 침해의 수준을 가능한 한 낮춰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완벽해 질 수 없다는 것이, 도덕 규범 자체를 방기하는 근거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죽지는 않겠지만 그거랑 별개로 저는 별로 해보고싶지 않은데... 왜냐면 전 이걸 죄책과 도덕의 범주로 넣고싶지 않으니까요
저는 제가 먹고싶은 만큼 먹고싶은 음식을 먹고싶을 뿐이에요
저는 제가 먹고싶은 만큼 먹고싶은 음식을 먹고싶을 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지요. 돼지를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한국의 삼겹살 섭취자들이 미덥지 못 하겠지만, 삼겹살 섭취자들이 그걸 수용하는건 별개니
권리 ↔ 의무
동물에게 "의무"가 있을 리 없으니, "권리" 또한 있을 리 없다고 봅니다.
빈대, 벼룩, 이, 파리, 모기,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등에게 인간은 사육하는(?) 가축입니다. 뭐가 다를지...
이른바 "동물권"이란 "동물애호론자의 표현의 자유권, 신앙의 자유권"일 뿐이지요.
동물에게 "의무"가 있을 리 없으니, "권리" 또한 있을 리 없다고 봅니다.
빈대, 벼룩, 이, 파리, 모기,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등에게 인간은 사육하는(?) 가축입니다. 뭐가 다를지...
이른바 "동물권"이란 "동물애호론자의 표현의 자유권, 신앙의 자유권"일 뿐이지요.
의무가 있어야 권리가 있다는 말은 대개 그리스나 로마 등에서 전승되는, 귀족들의 군역을 두고 시작된 말로 아는데, 이때 군역을 치르지 않아 의무를 갖지 못한 것은 노예들이었습니다. 노예들은 권리가 없으니 그저 시키는 대로 편익을 제공할 뿐이었고요. 노예가 제공하는 노동과 편익은, 마치 동물이 강요당하는 고통과 죽음이 의무가 아니듯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의 여성들은 군역 의무를 수행하는 가부장의 명령을 들어야 했고요. 그렇지만 노예제는 잘못됐고, 성차별은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제도를 성립시키고 유지해... 더 보기
의무가 있어야 권리가 있다는 말은 대개 그리스나 로마 등에서 전승되는, 귀족들의 군역을 두고 시작된 말로 아는데, 이때 군역을 치르지 않아 의무를 갖지 못한 것은 노예들이었습니다. 노예들은 권리가 없으니 그저 시키는 대로 편익을 제공할 뿐이었고요. 노예가 제공하는 노동과 편익은, 마치 동물이 강요당하는 고통과 죽음이 의무가 아니듯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의 여성들은 군역 의무를 수행하는 가부장의 명령을 들어야 했고요. 그렇지만 노예제는 잘못됐고, 성차별은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제도를 성립시키고 유지해 온 '의무가 있어야 권리가 있다'는 말에는 별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신앙이라는 표현은 육식정상성에 대한 믿음에 더 적절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식은 정상적이고(normal), 자연적이고(natural), 필수적(necessary)이라는 이 믿음을 멜라니 조이는 육식문화의 3N 이데올로기라고 부릅니다.
저는 신앙이라는 표현은 육식정상성에 대한 믿음에 더 적절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식은 정상적이고(normal), 자연적이고(natural), 필수적(necessary)이라는 이 믿음을 멜라니 조이는 육식문화의 3N 이데올로기라고 부릅니다.
1 2 보다는 3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저 논문도 그렇고 다른 영양학 단체에서 내놓은 포지션 페이퍼를 보시면 항상 빠지지 않는 전제조건이 두 가지 있읍니다
하나는 well-planned, 그리고 또 하나는 몇몇 영양소에 대해 supplement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well-planned라는게 지역마다 문화마다 그리고 채식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갈리니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좀 부족하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잘못된 계획을 세... 더 보기
하나는 well-planned, 그리고 또 하나는 몇몇 영양소에 대해 supplement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well-planned라는게 지역마다 문화마다 그리고 채식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갈리니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좀 부족하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잘못된 계획을 세... 더 보기
1 2 보다는 3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저 논문도 그렇고 다른 영양학 단체에서 내놓은 포지션 페이퍼를 보시면 항상 빠지지 않는 전제조건이 두 가지 있읍니다
하나는 well-planned, 그리고 또 하나는 몇몇 영양소에 대해 supplement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well-planned라는게 지역마다 문화마다 그리고 채식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갈리니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좀 부족하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잘못된 계획을 세운 삐뚤어진 극단주의자들 사례가 나와서 조리돌림당하고 채식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 나빠지고 등등...
그리고 성인이 되기 이전에 채식은 안 했으면 좋겠읍니다. 영양학자들이 주목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성인 단계에서 건강을 유지하고 만성질환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느냐 쪽이거든요.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채식 only 식단은 소아과학계에서 대사쪽이나 소아 영양 세부전공 하시는 의학자들에게는 (성인과 달리)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보다 더 앞서는 편입니다
하나는 well-planned, 그리고 또 하나는 몇몇 영양소에 대해 supplement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well-planned라는게 지역마다 문화마다 그리고 채식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갈리니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의지는 충분하지만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좀 부족하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잘못된 계획을 세운 삐뚤어진 극단주의자들 사례가 나와서 조리돌림당하고 채식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 나빠지고 등등...
그리고 성인이 되기 이전에 채식은 안 했으면 좋겠읍니다. 영양학자들이 주목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성인 단계에서 건강을 유지하고 만성질환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느냐 쪽이거든요.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채식 only 식단은 소아과학계에서 대사쪽이나 소아 영양 세부전공 하시는 의학자들에게는 (성인과 달리)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보다 더 앞서는 편입니다
BDA는 채식주의자 건강식단 매뉴얼을 설명하면서 "다른 어느 식단이든 healthy하기 위해서는 well-planned 해야 한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 well-planned를 정의하는 지침은 A4 두 페이지 분량으로 영양소와 식품군에 대해 설명할 뿐, 복잡하다거나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비건을 위한 supplement는 쿠팡이나 아이허브에서 1주일에 100원짜리 한 알을 먹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장됩니다. 이는 주로 식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B12를 먹기 위함인데, Watanabe F의 연구에서는 김에도 활성 B12가 ... 더 보기
BDA는 채식주의자 건강식단 매뉴얼을 설명하면서 "다른 어느 식단이든 healthy하기 위해서는 well-planned 해야 한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 well-planned를 정의하는 지침은 A4 두 페이지 분량으로 영양소와 식품군에 대해 설명할 뿐, 복잡하다거나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비건을 위한 supplement는 쿠팡이나 아이허브에서 1주일에 100원짜리 한 알을 먹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장됩니다. 이는 주로 식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B12를 먹기 위함인데, Watanabe F의 연구에서는 김에도 활성 B12가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다른 연구자들의 재검증을 받지 않았으므로 채식주의에 관심 있는 영양학자들은 김을 통해 B12를 섭취할 경우 3년마다 한번 혈액검사로 B12 수치를 측정하기를 요구합니다. 전 그냥 귀찮아서 supplement 먹습니다.
영양학자들 사이에 소아채식에 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 또한 애매합니다. 일단 제시된 영양학 단체들은 영아에게도 채식이 적합하다고 말하지만(영양 모니터링등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NHS등 일부 기관은 2세 이하 소아채식은 반대합니다. 독일 영양학 단체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요. 그 이외에 의학자 단체가 명시적으로 단체의 이름을 걸고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벨기에왕립의학원(ARMB)이 이 문제에 관해 채식주의자 부모를 공격했다가 발을 뺐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 이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소아에게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나 락토오보를 시행했을 때 영양학적 결핍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미/영 영양학회의 판단을 반론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인의 경우에는 뭐... 영양학상의 논란거리가 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양학자들 사이에 소아채식에 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 또한 애매합니다. 일단 제시된 영양학 단체들은 영아에게도 채식이 적합하다고 말하지만(영양 모니터링등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NHS등 일부 기관은 2세 이하 소아채식은 반대합니다. 독일 영양학 단체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요. 그 이외에 의학자 단체가 명시적으로 단체의 이름을 걸고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벨기에왕립의학원(ARMB)이 이 문제에 관해 채식주의자 부모를 공격했다가 발을 뺐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 이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소아에게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나 락토오보를 시행했을 때 영양학적 결핍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미/영 영양학회의 판단을 반론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인의 경우에는 뭐... 영양학상의 논란거리가 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고기를 먹든 안 먹든 well-planned는 중요합니다. 그래도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 것 같고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미국소아과협회AAP 에서도 잘 계획된 비건 식이는 아이들에게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말씀대로 지금 한국에서 적용하기에는 채식 영양교육이 부족하므로 부모들이 well-planning 하기 쉽지 않겠죠. 교육 및 인프라가 확산되면서 점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 가능한 사안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인천교육청에서도 채식급식 실험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것 같고,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겠죠.
미국소아과협회AAP 에서도 잘 계획된 비건 식이는 아이들에게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말씀대로 지금 한국에서 적용하기에는 채식 영양교육이 부족하므로 부모들이 well-planning 하기 쉽지 않겠죠. 교육 및 인프라가 확산되면서 점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 가능한 사안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인천교육청에서도 채식급식 실험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것 같고,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겠죠.
동물의 권리를 켈로그김님처럼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관점이, 우리의 일상적 실천과 반하는 경우는 이런 식으로 드러납니다 : 우리는 길을 가던 고양이를 별 이유 없이 발로 차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물권의 전적인 반대자들은 이것이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것을 목격하는 인간의 기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격자 없는 곳에서라 할지라도, 이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반대자들은 다시 한 번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행위를... 더 보기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관점이, 우리의 일상적 실천과 반하는 경우는 이런 식으로 드러납니다 : 우리는 길을 가던 고양이를 별 이유 없이 발로 차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물권의 전적인 반대자들은 이것이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것을 목격하는 인간의 기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격자 없는 곳에서라 할지라도, 이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반대자들은 다시 한 번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행위를... 더 보기
동물의 권리를 켈로그김님처럼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관점이, 우리의 일상적 실천과 반하는 경우는 이런 식으로 드러납니다 : 우리는 길을 가던 고양이를 별 이유 없이 발로 차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물권의 전적인 반대자들은 이것이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것을 목격하는 인간의 기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격자 없는 곳에서라 할지라도, 이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반대자들은 다시 한 번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행위를 허용함으로써 배양될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도 이상한 말입니다. 가령 어떤 폭력적 게임은 특정 계층의 인구에게는 더 큰 폭력성을 유발시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GTA 플레이어에게 "왜 경찰을 죽였느냐"라고 책임을 묻지는 않습니다. 동물에게 정말 아무런 권리가 없다면 동물의 권리 상태는 GTA 속 경찰과 동등하다고 할 수 있을진대, 반대자들의 수정된 주장 역시 사회적 실천관행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위에서는 고양이를 이유 없이 발로 차는 사례를 예시했지만, 사람들은 먹기 위한 폭력이 아닌 경우에는, 이유를 갖추었더라도 비난합니다. 이때 인간의 기분이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발현하기 용이해진다는 류의 잔혹성 발달 논리는 별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 폭력적 게임이 공격성 높인다? "하지만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합의된 부분도 있다. 특정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폭력적 게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http://factcheck.snu.ac.kr/v2/facts/1113
뿐만 아니라 태국의 파잔(pajan)등 코끼리 트레킹을 위한 폭력, 실내동물원, 투견 합법화 요구, 유튜브 동물학대 컨텐츠 합법화 요구 등 동물학대적인 전시환경, 수익창출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동물학대 강요에 대해서는, 동물권에 대한 일정한 전제 없이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 보입니다. 오직 인간의 이익만이 중요하다면 상기의 모든 행동들은 허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저는 채식과 비건 의류는 인간의 생존이나 건강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기에 의약품, 동물성 원료 약제, 백신, 동물실험의 금지보다 훨씬 선택하기 쉬운 동물권 존중의 옵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 대한 최소 침해'는 사회적 단위에서 한번에 이루어질 종류의 아니라 사회적 숙의를 우선해야 하는 의제니까요.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관점이, 우리의 일상적 실천과 반하는 경우는 이런 식으로 드러납니다 : 우리는 길을 가던 고양이를 별 이유 없이 발로 차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물권의 전적인 반대자들은 이것이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것을 목격하는 인간의 기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격자 없는 곳에서라 할지라도, 이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반대자들은 다시 한 번 '고양이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행위를 허용함으로써 배양될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물에게 아무런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도 이상한 말입니다. 가령 어떤 폭력적 게임은 특정 계층의 인구에게는 더 큰 폭력성을 유발시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GTA 플레이어에게 "왜 경찰을 죽였느냐"라고 책임을 묻지는 않습니다. 동물에게 정말 아무런 권리가 없다면 동물의 권리 상태는 GTA 속 경찰과 동등하다고 할 수 있을진대, 반대자들의 수정된 주장 역시 사회적 실천관행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위에서는 고양이를 이유 없이 발로 차는 사례를 예시했지만, 사람들은 먹기 위한 폭력이 아닌 경우에는, 이유를 갖추었더라도 비난합니다. 이때 인간의 기분이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발현하기 용이해진다는 류의 잔혹성 발달 논리는 별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 폭력적 게임이 공격성 높인다? "하지만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합의된 부분도 있다. 특정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폭력적 게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http://factcheck.snu.ac.kr/v2/facts/1113
뿐만 아니라 태국의 파잔(pajan)등 코끼리 트레킹을 위한 폭력, 실내동물원, 투견 합법화 요구, 유튜브 동물학대 컨텐츠 합법화 요구 등 동물학대적인 전시환경, 수익창출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동물학대 강요에 대해서는, 동물권에 대한 일정한 전제 없이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 보입니다. 오직 인간의 이익만이 중요하다면 상기의 모든 행동들은 허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저는 채식과 비건 의류는 인간의 생존이나 건강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기에 의약품, 동물성 원료 약제, 백신, 동물실험의 금지보다 훨씬 선택하기 쉬운 동물권 존중의 옵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 대한 최소 침해'는 사회적 단위에서 한번에 이루어질 종류의 아니라 사회적 숙의를 우선해야 하는 의제니까요.
딱히요(...)
쥐도 백단위로 잡아봤고
닭도 십만단위로 도축하고
개도 키워봤는데 '현재의 인간위주 문명의 기준' 이라는 틀에서 충돌없이 소화되기도 했습니다.
곤충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도
내 손, 신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이고
중형동물들을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도 내 안전을 위해서 그것이 나은 행동전략이기 때문이지요.
폭력경험의 반복으로 더 강한 폭력이 쉽게 행해진다는 반론은
아주 지엽적이고 제한적인 경우일 뿐.
타인의 동물학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라는게
종 다양성, 식량문제(먹이사슬),... 더 보기
쥐도 백단위로 잡아봤고
닭도 십만단위로 도축하고
개도 키워봤는데 '현재의 인간위주 문명의 기준' 이라는 틀에서 충돌없이 소화되기도 했습니다.
곤충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도
내 손, 신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이고
중형동물들을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도 내 안전을 위해서 그것이 나은 행동전략이기 때문이지요.
폭력경험의 반복으로 더 강한 폭력이 쉽게 행해진다는 반론은
아주 지엽적이고 제한적인 경우일 뿐.
타인의 동물학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라는게
종 다양성, 식량문제(먹이사슬),... 더 보기
딱히요(...)
쥐도 백단위로 잡아봤고
닭도 십만단위로 도축하고
개도 키워봤는데 '현재의 인간위주 문명의 기준' 이라는 틀에서 충돌없이 소화되기도 했습니다.
곤충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도
내 손, 신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이고
중형동물들을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도 내 안전을 위해서 그것이 나은 행동전략이기 때문이지요.
폭력경험의 반복으로 더 강한 폭력이 쉽게 행해진다는 반론은
아주 지엽적이고 제한적인 경우일 뿐.
타인의 동물학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라는게
종 다양성, 식량문제(먹이사슬), 애완용 사육가능성이 높은 동물 위주로 관심을 갖지(그마저도 무관심한 사람이 대다수고) 동물권을 전제로 한 비판은 그들만의 리그 아니었던가요?
쥐도 백단위로 잡아봤고
닭도 십만단위로 도축하고
개도 키워봤는데 '현재의 인간위주 문명의 기준' 이라는 틀에서 충돌없이 소화되기도 했습니다.
곤충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도
내 손, 신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이고
중형동물들을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도 내 안전을 위해서 그것이 나은 행동전략이기 때문이지요.
폭력경험의 반복으로 더 강한 폭력이 쉽게 행해진다는 반론은
아주 지엽적이고 제한적인 경우일 뿐.
타인의 동물학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라는게
종 다양성, 식량문제(먹이사슬), 애완용 사육가능성이 높은 동물 위주로 관심을 갖지(그마저도 무관심한 사람이 대다수고) 동물권을 전제로 한 비판은 그들만의 리그 아니었던가요?
네 어차피 본문에서부터 논쟁을 회피해주셨으니
제가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는거고요.
동물학대로 인한 동물의 고통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건 어긋난 서술입니다.
순위가 밀린다는게 좀 더 적확하겠죠.
예컨데 부작용 가능성이 있지만 치료확률이 높은 약물이 처방된 것을 두고
'저 의사는 나의 고통을 즐겨' 라고 하면 틀린 말인 것 처럼 말입니다.
제가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는거고요.
동물학대로 인한 동물의 고통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건 어긋난 서술입니다.
순위가 밀린다는게 좀 더 적확하겠죠.
예컨데 부작용 가능성이 있지만 치료확률이 높은 약물이 처방된 것을 두고
'저 의사는 나의 고통을 즐겨' 라고 하면 틀린 말인 것 처럼 말입니다.
동물은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동물에 대한 폭력도 같은 인간을 눈쌀찌프리게 하는게 문제일 뿐, 인간끼리의 폭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상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물론 권리란 것이 본디 실존하는 것이라기보다 합의입니다. 인간의 권리도 수천년간 지지고 볶아서 간신히 대충 합의한 발명품이죠. 그러니 동물권도 뭐 미래에 인간끼리 합의할려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인권과 다른 점이라면, 동물들이 그 당사자로써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동물권에 동물들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식민제... 더 보기
물론 권리란 것이 본디 실존하는 것이라기보다 합의입니다. 인간의 권리도 수천년간 지지고 볶아서 간신히 대충 합의한 발명품이죠. 그러니 동물권도 뭐 미래에 인간끼리 합의할려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인권과 다른 점이라면, 동물들이 그 당사자로써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동물권에 동물들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식민제... 더 보기
동물은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동물에 대한 폭력도 같은 인간을 눈쌀찌프리게 하는게 문제일 뿐, 인간끼리의 폭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상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물론 권리란 것이 본디 실존하는 것이라기보다 합의입니다. 인간의 권리도 수천년간 지지고 볶아서 간신히 대충 합의한 발명품이죠. 그러니 동물권도 뭐 미래에 인간끼리 합의할려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인권과 다른 점이라면, 동물들이 그 당사자로써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동물권에 동물들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식민제국 국가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 동물원에 넣어두고 '최소한의 처우'에 대해 논하던 과거의 사례로 반추해 봅시다. 정말로 천부적 권리를 지닌 객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발상인거죠(실제로 동물권 지지자들이 세상을 그렇게 끔찍히 여기는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동물권이란 것은 실제로 동물에게 좋건 나쁘건 인간들이 자기 좋을데로 만들어가는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쇼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쇼란 걸 모르면 곤란하지만요.
동물에게 측은지심이 들고, 더 나아가 동물의 고통에 역시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동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공감능력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지키고 사는 도덕심의 원천이죠. 하지만 같은 원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같은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때리는 것과 동물을 때리는 것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해서, 그 둘이 같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기본 전제를 붕괴하고 보면, 축산 산업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적 고통이란 그냥 그 개인의 감정적 문제일 뿐, 사회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환경보호나 유전적 다양성 같은 목표는 별개의 이슈니 논외입니다.
물론 권리란 것이 본디 실존하는 것이라기보다 합의입니다. 인간의 권리도 수천년간 지지고 볶아서 간신히 대충 합의한 발명품이죠. 그러니 동물권도 뭐 미래에 인간끼리 합의할려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인권과 다른 점이라면, 동물들이 그 당사자로써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동물권에 동물들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식민제국 국가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 동물원에 넣어두고 '최소한의 처우'에 대해 논하던 과거의 사례로 반추해 봅시다. 정말로 천부적 권리를 지닌 객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발상인거죠(실제로 동물권 지지자들이 세상을 그렇게 끔찍히 여기는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동물권이란 것은 실제로 동물에게 좋건 나쁘건 인간들이 자기 좋을데로 만들어가는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쇼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쇼란 걸 모르면 곤란하지만요.
동물에게 측은지심이 들고, 더 나아가 동물의 고통에 역시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동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공감능력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지키고 사는 도덕심의 원천이죠. 하지만 같은 원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같은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때리는 것과 동물을 때리는 것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해서, 그 둘이 같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기본 전제를 붕괴하고 보면, 축산 산업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적 고통이란 그냥 그 개인의 감정적 문제일 뿐, 사회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환경보호나 유전적 다양성 같은 목표는 별개의 이슈니 논외입니다.
당연히 권리는 숙의/합의로 부여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드시 권리주체가 숙의/합의에 참여가능한 주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권을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동물권에 대한 비판을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위안하기 위한 쇼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이렇게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주신 비난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데다 좀 과도해 보입니다.
당연히 인간을 때리는 것이... 더 보기
그런데 동물권을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동물권에 대한 비판을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위안하기 위한 쇼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이렇게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주신 비난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데다 좀 과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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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권리는 숙의/합의로 부여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드시 권리주체가 숙의/합의에 참여가능한 주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주장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권을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동물권에 대한 비판을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위안하기 위한 쇼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이렇게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주신 비난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데다 좀 과도해 보입니다.
당연히 인간을 때리는 것이 동물을 때리는 것과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흑인을 노예화하는 것과 백인을 노예화하는 것도 같은 문제가 아니고, 남성을 억압하는 것과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같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런데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같은 권리가 부여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차별에는 합리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흑인 노예주들은 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성차별주의자들도 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규범영역에서 정당화에 실패했죠. 동물에게 인류 역사상 어떤 타자에게도 가하지 않았던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을 가하는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인종과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임의적 기준에 의한 차별이라면, 종을 근간으로 한 차별도 임의적 기준에 의한 차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물권을 감정적 위안의 쇼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동물권에 대한 비판을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위안하기 위한 쇼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이렇게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주신 비난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데다 좀 과도해 보입니다.
당연히 인간을 때리는 것이 동물을 때리는 것과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흑인을 노예화하는 것과 백인을 노예화하는 것도 같은 문제가 아니고, 남성을 억압하는 것과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같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런데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같은 권리가 부여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차별에는 합리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흑인 노예주들은 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성차별주의자들도 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규범영역에서 정당화에 실패했죠. 동물에게 인류 역사상 어떤 타자에게도 가하지 않았던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을 가하는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인종과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임의적 기준에 의한 차별이라면, 종을 근간으로 한 차별도 임의적 기준에 의한 차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아나 어떤 장애인이 권리의 예외가 되지 않은 건, 지성과 의식을 가진 인간과 연속적인 존재였던 덕분이지요. 모든 인간은 유아이었던 시절이 있고, 선천적인 경우가 아님에도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즉 엄밀히 말하면 아동과 장애인의 권리를 일부러 확보해준 것이라기보다, 보편 인간의 인권을 정의하다보니 덩달아 권리가 확보된 예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의 권리가 발생하는 원천은 그들이 '인간'이라서이지 유아나 장애인이라서가 아닙니다.
동물권은 감정적 위안의 쇼 라는 말은 제가 하는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 더 보기
동물권은 감정적 위안의 쇼 라는 말은 제가 하는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 더 보기
유아나 어떤 장애인이 권리의 예외가 되지 않은 건, 지성과 의식을 가진 인간과 연속적인 존재였던 덕분이지요. 모든 인간은 유아이었던 시절이 있고, 선천적인 경우가 아님에도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즉 엄밀히 말하면 아동과 장애인의 권리를 일부러 확보해준 것이라기보다, 보편 인간의 인권을 정의하다보니 덩달아 권리가 확보된 예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의 권리가 발생하는 원천은 그들이 '인간'이라서이지 유아나 장애인이라서가 아닙니다.
동물권은 감정적 위안의 쇼 라는 말은 제가 하는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쇼라는 단어가 거슬리실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윤리구조를 차용해 인외의 대상에게 적용해 가공의 도덕률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목적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적 불편함 때문이죠. 그 감정은 도덕성의 근간이지만, 그 감정이 작동했다고 윤리적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는 게 제가 말하는 요체입니다.
한편 동물권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대개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에 대해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정당화하려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눈 앞에서 동물이 도축되는 걸 보여주면 불편을 느끼겠지만 보지 않음으로써 대개 별 생각없이 삽니다. 이건 동물권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타자의 권리에 둔감한 이들이 보이는 패턴입니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권리가 부여되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흑인도 인간이고, 여성도 인간이라서 흑인과 여성을 대상으로 인권이 확장한 것입니다. 즉 같은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차별의 근거가 없었다기 보단, 차별하면 안되는 근거가 있었던거지요. 반면 동물은 "인류 역사상 어떤 타자에게도 가하지 않았던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을 가하는 근거" 같은 것이 따로 요구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같은 인간이 아니고, 그에 따르는 권리가 없으니까요. 이건 별로 임의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인류가 수천년간 합의하고 있고 법과 문화등으로 꽤 깔끔하게 경계지어져 있는 기준이지요. 굳이 인간을 꼽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생명체는 동종과 이종을 비교적 잘 구분하여 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권이나 생명권 같은 가공의 합의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앞서 제가 언급한 이유로 흑인을 동물원에 가둬두고, 그에 대한 처우가 적당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상하던 백인들이 하는 행동처럼 작동할테고요. 그걸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어려서 들판을 뛰놀며 행복하게 자란 흑인 노예' 같은 상품이 나오겠지요.
동물권은 감정적 위안의 쇼 라는 말은 제가 하는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쇼라는 단어가 거슬리실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윤리구조를 차용해 인외의 대상에게 적용해 가공의 도덕률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목적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적 불편함 때문이죠. 그 감정은 도덕성의 근간이지만, 그 감정이 작동했다고 윤리적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는 게 제가 말하는 요체입니다.
한편 동물권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대개 동물에 대한 압제와 폭력에 대해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정당화하려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눈 앞에서 동물이 도축되는 걸 보여주면 불편을 느끼겠지만 보지 않음으로써 대개 별 생각없이 삽니다. 이건 동물권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타자의 권리에 둔감한 이들이 보이는 패턴입니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권리가 부여되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흑인도 인간이고, 여성도 인간이라서 흑인과 여성을 대상으로 인권이 확장한 것입니다. 즉 같은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차별의 근거가 없었다기 보단, 차별하면 안되는 근거가 있었던거지요. 반면 동물은 "인류 역사상 어떤 타자에게도 가하지 않았던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을 가하는 근거" 같은 것이 따로 요구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같은 인간이 아니고, 그에 따르는 권리가 없으니까요. 이건 별로 임의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인류가 수천년간 합의하고 있고 법과 문화등으로 꽤 깔끔하게 경계지어져 있는 기준이지요. 굳이 인간을 꼽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생명체는 동종과 이종을 비교적 잘 구분하여 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권이나 생명권 같은 가공의 합의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앞서 제가 언급한 이유로 흑인을 동물원에 가둬두고, 그에 대한 처우가 적당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상하던 백인들이 하는 행동처럼 작동할테고요. 그걸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어려서 들판을 뛰놀며 행복하게 자란 흑인 노예' 같은 상품이 나오겠지요.
이 기준점이 피터 싱어와 다른 부분 같아요.
피터 싱어는 '쾌고감수능력을 지닌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최소로하는 공리주의를 기본 전제로 해서 논리를 펼쳤고, 그에 따라 성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논거로 종차별 등의 논리를 세울 수 있었는데요. 저같은 사람에게는 합리적이라 느껴져서 피터 싱어에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종에따라 차별하는게 문제있음? 뭐 어쩌라고? 라는 식으로 피터 싱어의 기본 전제를 무시해버리면 이리님같은 결론도 나올 수 있지요.
피터 싱어는 '쾌고감수능력을 지닌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최소로하는 공리주의를 기본 전제로 해서 논리를 펼쳤고, 그에 따라 성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논거로 종차별 등의 논리를 세울 수 있었는데요. 저같은 사람에게는 합리적이라 느껴져서 피터 싱어에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종에따라 차별하는게 문제있음? 뭐 어쩌라고? 라는 식으로 피터 싱어의 기본 전제를 무시해버리면 이리님같은 결론도 나올 수 있지요.
동물학대적인 공장식 축산의 부당함과 그 불가피성에 대한 논의가 한 축인 가운데 목축과 육식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논의의 한 축으로 섞여 들어가는군요. 사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그 두 축을 굳이 분리하는 것이 의미없거나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관심있던 주제에 대한 좋은 논의를 이어가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어쨌든 관심있던 주제에 대한 좋은 논의를 이어가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사육과 도축이 필요 없는 배양육 시대가 도래해서 실제 길러지는 가축용 종, 품종들이 멸종하게 된다면 참 아이러니 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언젠가 곧 도래하게 될겁니다. 배양육 시대가. 처음에는 부자가 먹고 나중엔 빈자가 먹겠죠.
언젠가 곧 도래하게 될겁니다. 배양육 시대가. 처음에는 부자가 먹고 나중엔 빈자가 먹겠죠.
축산공장들의 은폐로 취재가 어렵다는 말은 사실일 겁니다. 황윤 감독님의 '잡식동물의 딜레마', '사랑할까, 먹을까'에서도 공장식 돼지농장에서 촬영을 모두 거부당했다고 하고요. 농장에 직접 취직해 우리나라 축산업의 실태를 밀착취재해서 르포를 쓴 한승태 작가님의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농장들이 취재에 대한 노이로제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래 3줄에 대해
타당한 말씀입니다. 위의 한승태 작가님도 고기 잘 먹고 살고 계시죠.
저도 끔찍함 그 자체보다는 저런 산업에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보이콧을 하고 있는 거고요... 더 보기
아래 3줄에 대해
타당한 말씀입니다. 위의 한승태 작가님도 고기 잘 먹고 살고 계시죠.
저도 끔찍함 그 자체보다는 저런 산업에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보이콧을 하고 있는 거고요... 더 보기
축산공장들의 은폐로 취재가 어렵다는 말은 사실일 겁니다. 황윤 감독님의 '잡식동물의 딜레마', '사랑할까, 먹을까'에서도 공장식 돼지농장에서 촬영을 모두 거부당했다고 하고요. 농장에 직접 취직해 우리나라 축산업의 실태를 밀착취재해서 르포를 쓴 한승태 작가님의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농장들이 취재에 대한 노이로제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래 3줄에 대해
타당한 말씀입니다. 위의 한승태 작가님도 고기 잘 먹고 살고 계시죠.
저도 끔찍함 그 자체보다는 저런 산업에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보이콧을 하고 있는 거고요.
오히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3줄에 대해
타당한 말씀입니다. 위의 한승태 작가님도 고기 잘 먹고 살고 계시죠.
저도 끔찍함 그 자체보다는 저런 산업에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보이콧을 하고 있는 거고요.
오히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거부당하여 어려웠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두 분 모두 결과적으로 취재에 성공하신 상황이고 삼성이 반도체 사고 막듯 통제하는게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한군데만 취재하더라도 다른곳도 비슷할게 뻔하고...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축산업계가 은폐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냥 몰라서, 알아도 공감하지 못해서 등 외부적 이유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용문의 작가는 마치 축산업계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어서 부당한 이득을 얻고있다는 어조인데 잘못인지 잘한것인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들이 잘 감추어서 고기소비가 여기까지 온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먹는 문제에 있어 자신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려는 잡식인이라면, 동물을 먹기 위해 동물이 치르는 고통을 인식해야 하고, 그 고통을 동물에게 강제할 수 있는 적절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사실 고기는 포기 못해서 달걀만 족굼 비싼걸 먹어용..빨리 인공배양육 상용화되길ㅠ.. 네, 저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옹호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알면서도 그냥 고기 먹는 저같은 인간이 육식의 도덕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윗분들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오히려 채식하시는 분들에게 상처가 되는 건 저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네요. 중간에 도덕적 우위, 시혜적.. 같은 표현도 있던데... 아래글도 그렇고... 글쓴님이 상처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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