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5/14 13:01:24
Name   녹차김밥
Subject   먼지털기
뭐 구체적으로 알고 있진 않았어요. 시민단체들 말이죠. 회계는 대충 처리하고, 공사의 구분이 흐릿흐릿하고.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는 거. 하지만 어렴풋이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죠. 근본적으로 단체가 사익 추구를 위한 위장이거나, 비윤리성이 도를 지나치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허술한 현실은 대충 그러려니 해 왔던 거죠. 그네들도 먹고 살아야지. 내가 다 할 순 없잖아. 그 사람들 없으면 일은 어떻게 돌아가겠니. 세상 돌아가는 게 그런거지. 거 순진하게 다 완벽히 챙기려고 하면 일 못해. 손도 부족한데. 그리고 좋은 일 하다보면 가끔 콩고물도 좀 떨어지고 할 수도 있지.

해명을 요구하는 쪽이나 '해명'당하는 쪽이나 인생 탈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드물어요. '대충 다들 알만한 수준'으로는 허술하니까. 그런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새삼 서슬퍼렇게 윽박지르며 침소봉대하는 모습에서 정치싸움의 악취가 독하게 느껴지는 거죠. 아, 저 치들 또 그러는구만. 어차피 니들 다 '대충 다들 알만한 수준'들 아니었어?

그러면 굳이 탈탈 털어 가려낸 잘잘못보다, 이게 정치적으로 누구한테 이득이 되는지에 더 시선이 가게 돼요. 아우 콜록콜록. 야, 먼지는 됐고, 저기 저 먼지 털고 있는 냄새나는 놈들이 똥 안 묻은 척 깔끔 떠는 건 도저히 못 봐주겠다. 일이 순서라는 게 있지, 똥부터 치우고 먼지를 털어야 될 거 아냐.

누군가는 이 사태에서 또다시 조국을 징글징글하게도 소환했는데, 그럴 만한 아날로지가 있기는 해요. 큰 그림에서 좀 비슷한 것이 있긴 하잖아요. 그런데 조국 때부터 해서 제 생각과 좀 다르게 흘러왔던 것이 두어 가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어요.

그 첫 번째는 먼지 터는 놈들이 똥냄새를 풍기고 있긴 하지만, 그런 놈들이 작업한다고 해서 그놈들의 똥냄새를 사람들이 못 맡지는 않더라는 거죠. 물론 먼지를 하도 풍겨 대는 통에 주의가 좀 흐트러지긴 했는데, 총선 결과를 보니 천년만년 똥냄새를 맡아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은 거죠. 어? 저놈들 먼지만 털고 확실히 퇴장시킬 수만 있으면 똥묻은 손 좀 빌려 작업하는 게 최악은 아닐수도 있겠네?

두 번째는 우리 사회가 90년대까지뿐 아니라,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서도 아주 빨리 변해왔다는 점이었어요. 학교에서 줄빠따 치고 싸대기 때리던 나라가 순식간에 선생이 학생 손도 못 대는 나라가 됐어요. 큰일 하시는 분들 섭섭치 않게 대접해드리는 '미덕'이 처벌받게 된 것도 한 순간이었죠. '대충 다들 알만한 수준'으로 허용돼 온 줄 알았던 악덕조차, 눈을 감았다 뜨니 그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어요. 야, 요새는 청소한답시고 해놓고 이렇게 먼지가 수북히 남아 있으면 대금결제를 못 받아요. 뭐? 우리가 언제 그런거 '대충 다 알만하게' 묵인했어? 어디 후진국에서나 하는 소리를 하고 앉았어. 여기 대한민국이야.

그래, 그때 내가 좀 과한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국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걱정되기는 해요. 비싼 도자기도 있는 중요한 방들이라서 조심히 잘 청소해야 되거든요. 아니 이 냄새나는 친구들아. 청소하는데 먼지털이랑 쓰레받기는 어디 두고 야구빠따를 들고 오셨어? 어허. 거 뒤에 있는 친구 손에 든 거 뭐야, 사시미? 청룡언월도 들고온 놈은 또 뭐야? 내려놔 내려놔.



13
  • 비유가 좋아요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261 정치이시국에 여당지지자인 이유 121 토비 20/12/22 11309 46
11243 정치폭락중인 스가 내각의 지지율 4 횡빈 20/12/17 5820 9
11227 정치이번 정부의 정책들은, 집값을 어떻게 위로 올렸나? 7 Leeka 20/12/14 5267 15
11208 정치검사 술접대 금액 계산, 봐주기? 덮어씌우기? 13 사악군 20/12/09 6230 16
11178 정치저는 보이는것보다 조국이 더 폄하받고 윤석열이 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69 토끼모자를쓴펭귄 20/11/28 6855 4
11149 정치김현미 국토부 장관 브리핑 전문 6 Leeka 20/11/19 4478 0
11147 정치아브라함 협정에 숨겨진 트럼프의 셈법 2 소원의항구 20/11/19 4848 1
11109 정치2020 미국 대선 불판 170 코리몬테아스 20/11/04 11296 0
11106 정치툰베리가 당신의 변명을 들었습니다. 툰베리:흠, 그래서요? 33 코리몬테아스 20/11/03 6954 17
11098 정치공격적 현실주의자 Stephen M. Walt 교수가 바이든을 공개 지지하다. 6 열린음악회 20/10/29 5195 11
11065 정치임대차 3법 이후, 2개월이 지난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전세 근황 12 Leeka 20/10/18 5525 0
10992 정치북한군이 대한민국 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시체를 불태웠다 9 이그나티우스 20/09/25 6591 15
10976 정치박덕흠 일가가 특허사용료를 받았다는 STS공법은 무엇인가? 6 사악군 20/09/21 8192 0
10956 정치윤미향 의혹 기소/불기소 사항 살펴보기 7 사악군 20/09/14 5940 9
10824 정치미래통합당 의원 부동산 탑5 기사를 보고. + 서울시의원 다주택자 13 사악군 20/07/29 5006 5
10791 정치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요를 줄이면 되는거 아닐까요 18 타키투스 20/07/17 5539 3
10764 정치박원순 서울시장 실종 사건 관련 브리핑 정리 3 Leeka 20/07/09 5656 0
10752 정치양출제입적 사고의 문제와 참담한 결과. 5 존보글 20/07/05 6602 13
10714 댓글잠금 정치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정말 최악이네요 56 Amsden 20/06/26 7399 7
10709 정치어르신들 전 상서 - 인국공 사태에 부쳐 166 BibGourmand 20/06/23 12144 24
10680 정치미국 제2의 독립기념일과 트럼프 - saying the quiet part out loud 6 다시갑시다 20/06/12 6669 15
10667 정치문 대통령이 정의연-윤미향 사태에 대해 첫 입장을 밝혔습니다. 17 토끼모자를쓴펭귄 20/06/08 5633 2
10614 정치국회의원들이 악법을 통과하면 제지할 수 없는게 19 루이보스차넷 20/05/22 5199 1
10605 정치달이 차면 기운다. 12 쿠쿠z 20/05/21 6088 0
10604 정치정치에 대한 딜레마 10 루이보스차넷 20/05/21 540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