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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30 01:25:23
Name   化神
Subject   언젠가 만날 너에게 쓰는 편지
처음 만난 그 날, 너는 "왜 남자는 자기의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었다.

그 자리에서 답을 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왜 그런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 때 했던 말보다 더 정답은 아마도

진심을 말했을 때 상대방이 그 진심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를 답답하게 생각은 해도 버거워 하지는 않을테니.

지금 나는 내 진심을 적는다. 그렇지 않으면 못 견딜것 같아서.

나는 너를 좋아한다.

이 편지가 씁쓸한 결말이 아니라 행복한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마치 첫사랑을 시작한 사춘기 소년처럼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이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허둥지둥대다 겨우 찾은 해답이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는다고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라고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냐라고 물으면 아마도 처음 만난 그 날, 펍에 들어가 서로 나란히 앉아있던 그 때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부터인 것 같다.

그렇지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쉽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믿지 못할 것 같아서 더욱더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다.

가볍게 만나고, 서로 맞지 않으면 헤어지면 되는 그런 만남은 싫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이 너와의 만남을 주저하고 자신없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떻게 내 마음을 잘 전달해야할 지, 마음은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좋아하니까 하고 싶은게 많아졌다. 같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니까 더 좋아졌다.

같이 걷고 싶고 바라보고 싶고 손잡고 싶고 입 맞추고 싶고.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겉으로 티가 나면 되려 부담스러워 할까봐, 숨기고 티내지 않으려고 했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나를 좋아해달라고 하면 되려 도망갈까봐 더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거나 아니면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냉정하지 못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도 그런 말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매일 아침 연락하면서도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너와 이야기하는게 나는 좋은데, 너는 나와 같지 않을까봐.

너의 연락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너에게 전해야 할텐데 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 편지를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받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좋아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

이 편지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To. 언젠가 만날 너에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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