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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23 16:33:59 |
Name | SCV |
Subject | 하루 왕복 110km 통근했던 이야기 |
본 글은 유머게시판의 https://kongcha.net/?b=13&n=44587 이 글을 보고 쓴 글입니다. 원래 처음 발령 받았던 부서는 나름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본사에서도 꽤 높은 층수의 부서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구조조정의 때가 왔고, 팀장님은 그나마 연차 낮은 니가 데려가준다는 부서가 있을 때 가줘야지 안그러면 니 위에 누구랑 누구랑은 이제 데려간다는 부서도 없어서 걔네들은 집에 가야된다 라고 서글프게 이야기 하는 바람에 그래, 일이 좀 많이 달라져도 내가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하면서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상황이 나아지면 데려오겠다는 팀장의 말을 호구같이 믿을 정도로 열정 넘치고 애사심 넘쳤으니까요. 옮겨간 부서는 서울의 한참 서쪽에 있었습니다. 자차로 운전하면 40분 거리인데 지하철을 타면 한시간 반이 걸리고 중간에 9호선도 타야하는 지옥의 출근길이었지만, 그리고 일도 꽤나 힘들었지만 버틸만은 했어요. 지각할거 같을 땐 택시라도 타면 괜찮았죠. 그러다 있던 부서가 또 이사를 갔어요. 경기도 남부 지방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긴 한데, 사실 저는 그 전에 원래 부서에서 불러줄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를 그렇게 떠나보내면서 승진에 필요한 고과도 제대로 안 챙겨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사를 갈까도 생각했는데 외벌이 형편에 그 근처로 이사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통근이 용이할정도로 가까이 이사하자니 너무 비싸고, 돈에 맞춰 가자니 어차피 통근시간이 한시간 가까이 되는데다가 주변 환경도 별로 좋지 않아서 그냥 살던 집에서 통근을 하기로 했어요. 네. 그때부터 왕복 110km 통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회사 통근버스가 있었어요. 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다섯시 반 까지는 집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집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서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정류장에 갈 수 있었거든요. 여섯시 쯤 출발하는 그 버스를 타면 회사에 여덟시 쯤 도책했습니다. 잠을 푹 잘수는 있었지만... 통근버스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그다음에는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여 떨어진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광역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까지 가서 광역버스를 타고, 내리고, 거기서 또 마을버스를 타고 출근했어요. 꽤 여러번 갈아타야하긴 했지만 통근버스를 탈 때보다는 30분 정도 더 잘 수 있었어요. 그렇게 출근은 통근버스와 대중교통을 번갈아가며 해결했는데 돌아올때가 정말 문제였어요. 왜냐면 회사의 공식 퇴근 시간은 오후 5:30 이었는데 퇴근 버스는 오후 8시에 출발했거든요. 한마디로 일찍 가려면 니돈내고 가라.. 였죠. 그나마도 강남까지만 데려다 줘서 거기서 또 한 시간을 지하철을 타야 되긴 했지만요. 그런데 일이 많다 보니 퇴근 버스를 타는건 한달에 한 두번이 고작이었어요. 네. 보통 열시 넘어 퇴근을 했어요. 열시쯤 회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광역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 빨라야 열두시가 되었어요. 그때 한참 둘째를 임신중이던 와이프는 내내 우울해 했어요. 첫째를 집에서 돌보며 무거운 몸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남편은 다섯시 반쯤 나가서 밤 열두시에 돌아오니 얼굴을 제대로 보는건 일주일에 주말 뿐이었으니까요. 둘째를 낳고서는 더 힘들었죠. 양가 어른이 육아를 도와주실 수 없는 상황에서, 첫째를 키우며 젖먹이인 둘째도 키워야 했는데.. 저는 주말이 아니면 집에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일이 바쁠때는 오후 열시에만 퇴근해도 좋겠다 라고 말하곤 했어요. 한번은 TF 팀에 들어갔는데 그 팀 헤드인 임원은 꼭 회의를 밤 열시 즈음에 열었어요. 그리고 밤 열한시는 제가 집에 갈 수 있는 마지막 대중교통 수단이 출발하는 시간이었죠. 한시간만에 회의가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못한때가 더 많았고 저는 언제나 회의 중간에 나와야 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 둘을 혼자 돌보는 와이프를 생각해서라도 혹시나 새벽에 아이들이 아프면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제가 몸이 서울 어딘가에는 있었어야 했으니까요. 결국 그 임원하고는 꽤 다투었고.. 제 직속 상사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그 일로 평판이 좋아지진 않았겠죠. 다들 일이 몰리는 시즌이 있는데.. 그럴땐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새벽까지 일은 해야 하는데 몸은 어떻게든 서울에 있어야 했고.. 그래서 열시쯤 일을 접고 서울에 있는 본사에 아무 회의실이나 들어가서 일을 마무리 하고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갔어요. 제일 심할때는 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네 시 였던 적도 있었네요. 한 일주일간 그랬던거 같은데... 세 시쯤 택시나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네 시쯤 도착해서.. 씻고 옷 갈아입고 잠깐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알람소리에 식겁하고 깨서 다시 출근하고.. 했던 기억이 문득 나네요. 그러다보니 둘째와는 충분히 친해질 시간도 없어서 한 두 살 때까지는 낯가림도 당하고 서운한 일이 많았죠 허허. 지금은.. 다행히 집에서 한시간 이내로 도어 투 도어가 가능하고, 칼퇴가 가능한 곳으로 옮기게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유머게시판 그 글에서 뵌 분들은... 저보다도 오랜 기간동안 더 멀리, 더 오랜시간 통근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고생들도 많으실텐데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에서 그런 삶을 살고 계시는거겠죠. 가족들과 따로 떨어져 살기보다.. 내 한 몸 고생스러워도 어떻게든 집에 돌아와 가족들 곁에 머물겠다는 그런 선택이 남 일 같지 않아서 오래간만에 길게 써봤습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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