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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2/24 12:05:50수정됨
Name   호라타래
Subject   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3) - 행위자-연결망 이론, 물질적인 것의 귀환
이번에는 좀 더 읽기 빡셀 거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아직 명확하게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 지점이 많은데, 그래도 질문 주시면 발제 후에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나중에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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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장-연결망 이론을 유물론이라는 틀 아래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앞서 2부에서 다루었던 '추상화의 실천'을 행위자 연결망에서 강조하는 물질적 기호론(material semiotics)에 직접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결고리들이 필요해요. 3부에서 ANT를 위주로 다루지만, 2부에서도 언뜻 보았듯이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설명으로 종종 돌아오기도 할 것입니다.

행위자-연결망 이론 혹은 ANT라는 약칭으로 부르는 이 이론은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존 로(John Law), 미쉘 칼롱(Michel Callon)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어요. ANT에서 강조하는 물질적 기호론은 모든 실천(practice) - 달리 말하자면 효과(effect) - 는 '물질'과 '의미'의 복합체로 이해되고, 분석될 수 있다고 강조해요. 

이 이론은 물질을 [저항하는 것], [위치를 점유하는 것], [차이를 빚어내는 것], [제한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타당성/적설성과 연합하는 것]이자, [선별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해요. 

한 독자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읽고 있다고 상상해봐요. 커피를 담은 용기는 커피의 중력과 우리가 가하는 힘에 저항하여 형태를 유지해요. 또한 이 세계에서 다른 물질과 배타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커피-커피를 담은 용기-우리의 손 사이에는 서로를 구분하는 차이가 빚어지며, 이러한 물질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인 제한성을 지니지요. 하지만 커피 마시기에 대해 '나는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품격있는 닝겐'이라 호명하는 우리의 의미부여는 상황의 적절성이나 행위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인식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면서도 의미는 어느 정도 선택/부여하기 나름이라는 특징을 지니지요.


[커피 한 잔 : 여유로 이어지는 도식은 테이크 아웃 커피가 아니라도 가능할까요?]

저자는 대상화(objectivation)와 주관화(subjectivation)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위에서 설명한 과정들이 동일한 관심사 속에서 일어다는 과정이며, 두 개의 다른 현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해요. 1장에서 강조했던 유물론 그리고 일원론이라는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지요.

역사적 유물론이 겨냥했던 사상가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이었어요. 관념론이든 이원론이든 어느 하나의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학자들이지요? ANT도 마찬가지로 이 사상가들에 대해 반대입장을 취합니다. 그런데 역사적 유물론과 ANT가 깔고 있는 형이상학적 전제는 매우 달라요.

역사적 유물론에서는 언어와 사물을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실체로 분리하는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ANT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분리를 명백하게 문제삼아요. 파르메니데스 -> 스피노자 -> 들뢰즈로 이어지는 일원론적 전통에 기반하여, 사유 양식(mode of thought)과 존재 양식(mode of extension)에는 선험적인 구분이 없다고 봐요(존재라고 번역을 하기는 했는데, extension은 공간의 점유 혹은 연장 등 데카르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나을 거예요). 말하자면, 모든 것들이 동일한 실체(substance) 속에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일원론적 접근법은 이원적인 사고 방식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그 대신에 두 개로 나누어서 접근하는 행위를 정당화 할 부담을 요청한대요. 에를 들어 사회적 구성주의에서 과학자들의 진리 주장(truth claim)이 협상에 따른 담론적 과정이라 주장하고자 한다면, 사회적 구성주의는 다음의 질문들에 책임을 져야 해요. 

- 어떠한 독립체(entities) 혹은 행위자(actor)들이 이러한 협상 과정에 참여하는가? (which entities have been taking part on these processes of negotiation?) - 어떠한 담론적 실천이 질문에 대한 진리 주장을 수행하는가? (Which discursive practices have performed the truth claims in question?) 
- 이러한 진리 주장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What do the truth claims refer to?) 
- 어떻게 특정한 진리 주장이 다른 주장에 비해 더 많은 추종자를 획득하는가? (How does a particular truth claim obtain more followers than the others?) 

ANT는 단순히 특정한 진리 주장과, 그 주장이 가리키는 바를 분리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봐요. 과학자들의 사회에 대한 관찰, '과학하기'에 대한 일부 해석들이 과학을 과학자들 사이의 담론적 과정으로 격하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고양이를 연구할 때 고양이를 보지도, 만지지도 않은 채 과학자들끼리 토론하여 고양이의 성질이 무엇인가를 정할 수 앖다고 생각하면 거칠기는 해도 어떤 느낌인지 와닿으실 거예요.


[슈뢰딩거의 상자 찢었습니다. 질문 받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위에서 언급한 저런 과정이 없이 어떤 독립체를(물질적이든/기호적이든) 호출하는 것은 실제로 어떠한 추상화 과정을 하지 않은 채 추상화 실천을 수반하는 것과 같대요. 제가 번역해서 적으면서도 가슴이 답-답하니, 읽는 분들은 오죽하시겠어요.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를 덧붙이자면 추상화라 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바에서 공통적인 걸 추출해가는 과정이잖아요. 근데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지도(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추상화를 하는 것이 허공답보(虛空踏步)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라 주장하는 것 같아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따라서 우리가 왜 어떤 독립체는 '구성되는 것(constructed)'라고 보고, 다른 독립체는 '구성하는 것(construcring)'이라 바라보는지를 잘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그 정당성이 모호해지는 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에요. 물질적인 것과 기호적인 것 사이에 연관이 없다고 가정해버리면, 모든 진리 주장은 단순한 주장에 불과해져요. 왜냐? 아무런 근거 없이 '구성하는 것'이라고 전제해버린 것들이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렇게나 '구성' 해버릴 수 있으니까요.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은 Social construction of "What"(1999) 라는 책에서 위와 같은 마구잡이 '구성'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가 '무엇'에 관한 탐구를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모든 것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일 뿐이거든요. 이 상황에서 "사회적인 것"은, [인간 정신(cogito)가 어떠한 경험적 근거도 없이 "사회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정당화 하는 데 종사하게 되어요.

토마스 루크먼과 피터 버거가 실재의 사회적 구성(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1966, http://perflensburg.se/Berger%20social-construction-of-reality.pdf) 을 언급했을 때, 이언 해킹의 무엇(What)은 실재(reality)라는 용어로 추상화되었어요. 버거와 루크먼은 자신들이 모든 실재(reality)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어요. 이 사회학자들은 자연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인 주장에 관여하고자 하지 않았고요. 실재의 사회적 구성이라는 주장을 거기까지 끌고 들어가 버리면 유아론(solipsism)이라는 비판에 너무나도 취약해지니까요. 그 대신에 이들은 자신들의 실재를 '사회적 실재'로 제한하고, '사회적 실재'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일하다고 설명했지요.

버거와 루크먼에게 사회적 실재는 경험적인 것이고, 또 그보다 더 나은 것이에요. 사회적 실재는 일상적인 경험들의 추상화(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이거든요. 이러한 추상화 작업은 상호작용(interaction)과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통해 이루어져요. 현대의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은 상호작용보다 의사소통이 보다 정확하고,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요. 의사소통이 사회적인 구성 작업의 기호적인 요인들을 조명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해하거든요. 

하지만 사회학에서 상호작용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추적해나가다 보면, 게오르그 짐멜(1908)이 제시한 Wechselwikungen이라는 용어에 도달하게 되요. Wechsel은 '반복하는'이라는 뜻이고, Wrikung은 '행위/효과'를 모두 지시하는 단어여요. 짐멜이 초기에 사용한 용어는 기호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양 쪽을 모두 강조해요.

버거와 루크만은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무엇'은 경험이라고 헀어요. 이는 '지식'으로 추상화 되고, '사회적 실재'의 일상세계를 구성해요. 추상화의 실천(the practice of abstraction)은 의사소통적이고, 주로 기호적이에요. 물질적인 요소는 번역 과정에서 사라졌지요(lost in translation). 

(이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용어는 짐멜의 Wechselwikungen가 communication 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물질적 의미가 유실된 걸 지칭하기도 하고, 번역(translation)이라는 자체가 ANT의 핵심 관점 중 하나라서 양 쪽 모두를 지칭하려는 저자의 야심찬 표현이라 생각하는데요. 함의를 살리기가 어려워서 요런 설명으로만 달아둡니다)


[모든 번역은 언제나 변형을 수반한다] 

앞서 다루었던 관점과 별개로, 누군가는 물질이 기호에 우선한다는 반대의 주장을 펼칠 수도 있어요. 로버트 슈미츠(2019)는 물질 우선의 관점이 "존재론적 전회"를 가리킨다고 보고, 이를 카렌 바라드(2012)의 주장으로 돌리는데... 이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에요(카렌 바라드는 시간을 내어 다루어야 할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인데 일단 여기서는 간단하게 넘길 수밖에 없네요ㅠㅠㅠ).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은 때때로 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과 섞여서 이해하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은 과학을 바라볼 때, 훈련된 과학자들이 충분히 신중하게 관찰한다면 실재가 자신의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관점은 순진한 경험주의(naive empricism)이라 광범위하게 비판받았지요. 

바라드는 이와 달리 행위적 실재론(agential realism)을 주장해요. 이 관점은 기계나 기구가 "단순히 관찰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타당성(relevance)를 획득하고 구현하기 위해서 세계를 특정한/물질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제약"한다고 봐요. 사실 이런 관점은 ANT가 주장하는 일원론적인 기조와 완벽하게 양립 가능해요. 행위자 실재론의 주장 또한 물질의 작동(the matter of working)과 그 설명(articulation or "semiotics")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나타난다는 관점과 연결되거든요. 

잠깐 정리하자면 ANT는 사회적 구성주의로의 번역 과정에서 물질이 사라진 결과가 무엇인가?(What happens when "matter" gets lost in translation)를 추적하고자 해요.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ANT나 바라드의 주장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과학기술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자연과학은 그 특성상 '무엇' 그리고 이 '무엇'이라는 것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계속해서 부딪칠 수밖에 없거든요. 


[양자역학에서의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미 기존의 존재론은 그 지위를 도전받고 있는 형국이었지요]

그래서 ANT는 과학사회학이 세 가지 전제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요. 1) 그 어떠한 본질적인 '사회적인 것'의 개념도 포기한다. 2) 물질적인 것과 기호적인 것 사이의 불필요한 대비를 포기한다. 3) 구성 작업이 추상화의 실천(practice of abstraction)과 번역의 실천(practice of translation)를 통해 추적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핸드폰 집어던지지 않으신 분들에게 박수 짝짝짝 드리고

ANT에서 담론(discourse)은 (사회적) 실재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비록 ANT가 집합적 사회성(Assemble sociality)라는 뜻에서 사회적 실재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앞서 강조했듯이 사회적 실재가 독립된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아요. 사회적 실재라 불리는 것들은 비사회적인 실재들에 기대어야만 지속가능성(sustainablity)을 획득할 수 있어요.

글에서는 기후변화 부정론을 사례로 들어요. 기후 변화 부정론은 과학적 발견, 종교적 도그마, 구체적 경험에 근거를 둬요. 이 세 가지는 모두 인간 외의 "무언가"를 가리키지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쪽이나 기후변화를 긍정하는 쪽이나 비사회적 실재에 의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둘이 비사회적 실재에 의지하는 방식은 달라요. 이 의지하는 방식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칭합니다.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쪽은 과학자 사회의 주장에 근거를 두는 반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쪽에서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음모론 같은 정치적 영역에 근거를 두지요. ANT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번역의 방식(different mode of translation)을 동원(mobilize)한다고 합니다. 번역이라는 관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좀 더 뒤에서 다룰게요.


[지구온난화는 대표적인 추상화의 실천이지요.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경험'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경험할까요?]

경험은 언제나 물질(matter)과 조우하고, 물질을 포착합니다. 사회과학에서 사람들은 최소 1명 이상의 사람들이 관여하는 경험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인간 존재 또한 물질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 존재는 중요하지 않아요(human being is alos matter, otherwise it would not matter). 우리는 물질이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포착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요. 이를 감각하기(sensing)이라고 부르지요. 현상학자들은 지각(perception)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시스템 이론가들은 관찰(observation)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고, 해석학자들은 해석(interpretation)에 초점을 맞춰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들은 물질-기호적(material-semiotics)이에요. 언급한 철학적 입장들은 감각하기(sensing)과 의미 부여/교환하기(sense-making) 모두와 관련있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자 합니다. ANT는 여기에 감각하기와 의미 부여/교환하기가 분리된 활동이 아니며, 반복(iterant)되는 활동이라는 주장을 더하지요.

번역이라는 개념은 감각하기와 의미 부여/교환하기를 하나로 통합해요. 의미 부여/교환하기(Sense-making)는 make sense(말이 되네)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요. 하지만 관련되어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설명될 때여야만 이러한 의미 부여/교환하기가 말이 되요. 감각은 언제나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향해요(refer to). 감각하기는 포착의 실천이에요(practice of prehending). 포착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번역이고, 한 독립체가 다른 독립체에 영향을 미칠 때에 일어나요. 현상학에서 범한 가장 큰 실수는 한 독립체가 다른 독립체를 지각할 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것은 이중 효과를 발생시켜요. 주체(subject)와 대상(object)를 동시에 만들어 내지요. 앞서 저자는 이 과정을 대상화 / 주관화라는 개념으로 잡아냈었어요.

포착은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요(prehension does not involve equality). 독립체가 서로를 포착하는 방식은 동일하지 않지요. 예를 들어, 서류에 서명하고 있는 사람이 펜을 포착할때, 펜 또한 사람의 손을 포착해요. 펜의 입장에서 '포착'은 사람의 손에서 부셔지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저항의 형태로 이루어지지요. 이러한 저항은 우리가 손으로 펜을 잡고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요. 서류 종이는 펜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펜이 종이를 포착하는 방식과는 다르지요. 종이에 의해 펜이 포착되는 방식은 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요. 종이의 섬유조직들에 잉크가 스며들어가고, 점과 선을 만들어요. [누군가 사람의 손에서 분석을 멈추고, 서명이 끝난 종이로 바로 넘어간다면 이러한 수준의 분석만 실시한 후 종이, 펜, 잉크와 같은 물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서명이라는 행위를 옆에서 지켜보는 공증인의 역할을 생각해봐요. 공증인이 지켜보는 바로 그 손, 바로 그 종이, 바로 그 펜, 바로 그 잉크가 기입이라는 실천(practice of inscription)을 '서명'으로 만들어요. 


[우리는 왜 서명을 할까요? 왜 종이에 서명을 할까요? 심지어 국가에 따라 서명에 '적절한' 잉크의 색 조차도 합의가 되어있는 곳도 있지요] 

위에서 설명한 예가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만큼, 하나의 동의(an agreement)라는 사회적 실재가 종이에 담기는(being invoked by committing it to paper) 것은 매우 기초적이여요. ANT는 무언가가 그 자신을 종이에 담는 과정을 번역으로 이해해요. 미디어 이론가들은 발화된 단어(spoken word)를 적힌 단어(written word)로 번역하는 행위로 이해하지요. 적힌 단어는 펜(기입하는 도구), 잉크(기입의 매개), 종이(저장 매체)로 구성되요. 

ANT에서 번역은 어떻게 행위자가 특정한 집합이나 연결망을 구성하도록 스스로를 투입(commit)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핵심적인 개념이에요. 앞서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이 이해관계라는 걸 짚었었지요. 번역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을 공유된 원인(shared cause)으로 묶는데 관여해요. 이러한 결속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사건'도 조립되지(assembled) 않아요.

그렇기에 번역은 추상화 실천의 구체적인 조작이에요(the concrete operationalization of practices of abstraction). 재산권의 이전이라는 추상(abstraction)을 서명 동의를 통해 '작동(at work)'하게 만드는 그 순간에 번역을 엿볼 수 있어요. ANT는 번역을 1) 문제제기(problematization) 2) 관심끌기(Intersession) 3) 등록하기(enrolment) 4) 동원하기(mobilization) 5) 해체하기(disassembling) 라는 다섯 가지 과정으로 구분해요. 

문제제기는 어딘가를 향해서 정향된다(being oriented toward)는 점에서 현상학자들이 '지각(consciousness)' (아마도 더 낫게는 인지 awareness)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비슷한 단계예요. 하지만 지각을 지닌다(being conscious of)라는 것을 정신적인 상태로 이해하면 안 되요. 이는 관심이 동하다(being concerned), 마음이 움직이다(being moved by)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되어야 해요. 문제제기는 주체성을 지니든 지니지 않든 가능하지요.

관심끌기는 관심사를 특정한 이해관계로 묶어내는 단계입니다. 이해관계를 지닌다는 것은, 그 사람들 사이의 무관심이 감소한다는 것이지요. 관심의 문제에서 구체적인 참여를 요청하는 문제로 바뀝니다. 이 단계에서 정치(politics)가 가시화됩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하나로 만들고, 집합적인 행동을 조직하는 것까지요. 

등록하기는 조직사회학과 공공행정을 연구하는 쪽에서 관심을 가지는 단계예요. 공동의 이익과, 수행되어야 하는 특정 역할/기능 사이의 관계이지요. 사회적 구성주의에서는 이를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이라고 명칭해요. 특정한 실천이 정립되고 변형되어 역할이 되지요. 이 때 역할은 프로토콜, 서면화 된 규칙, 법, 계약 등의 영향을 받아요. 정당화(legitimization)이라는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단계지요.

동원하기는 등록을 통해 만들어진 역할이 실제 환경에서 작동하는 단계입니다. 실천 이론(practice theory)와 민속방법론(ethnomethodology)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요. 사건이나 프로젝트를 '행하는' 일상의 실천들이 주요 관심사입니다. 대개 사회학자들이 자신을 내던지고, 에스노그라픽한 연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해요. 앞선 세 번역 과정이 잘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전문가나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재구성해낼 수 있는 반면, 이 단계는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어서, 밝혀내기 힘들지요.

해체하기는 관심, 이해관계, 역할 사이의 구성관계(articulation)가 더 이상 실현가능하지 않을 때를 가리키는 단계에요. 예를 들자면 기존에 참여하던 집단이 더 이상 이 사건이나 프로젝트에 이해관계를 지니지 않을 때 발생하지요. 조립되어있던 네트워크(assembled network)는 재구성 되거나, 무너져서 해체되지요. 민속방법론자들은 가핑글의 제안을 따라 위반행위(beaching experiment)를 통해 동원화의 강도를 테스트해 보고는 해요. 일상의 상황을 해체하는 행위를 일부러 해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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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의역을 섞고 설명을 붙일까, 원문을 최대한 번역해서 혼란스럽더라도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어요. 

번역은 기존 문헌들을 어느 정도 따랐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원문을 많이 병기했습니다.

ANT는 과학에 대한 사회환원적, 담론환원적 시각을 벗어나면서, 동시에 우리가 '중립적인' 관찰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환상도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알고 있어요. 왜 구성요소가 아니라 구성원성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오는지는, 주체와 객체가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도 물질이라는 철학적인 기반을 강조하기 위한 접근 방식이라 생각해요. 이를 flat ontology라고 부릅니다.

층화된 존재론(stratified ontology)는 기독교적 존재론에서 발원했다고 하는데 인간과 그 외 다른 사물, 동물을 구분하고 그 근거로서 인간의 이성/지각 등을 강조해요. 인간을 구성원, 비인간(사물/동물) 등을 구성요소로 구분하여 바라보는 관점이지요. 현대 사회의 법, 경제,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층화된 존재론에 기반하여 이루어져 있어요.

반대로 ANT와 같은 접근은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를 주장해요.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인간, 동물, 식물, 사물이 이 세계의 실천 속에서 서로 동등하다고 바라보는 관점이거든요. 이건 현존하는 권력의 불균등을 부정하지 않아요. 여전히 우리 인간은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지요. 존재론적인 입장을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들이 생각을 바꾸어서 세계가 달라지는 시혜적인 관점'이라는 비판도 할 수 있겠어요. 실천적 관점에서 어떠한 함의가 더 나올 수 있을지는 4, 5부로 넘어가더라도 이 글의 핵심 주제는 아닌 듯해요. 물론 ANT는 응답해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유물론의 비판처럼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셈이 될테니까요.

저는 ANT의 강력한 지지자는 아니고, ANT 번역의 5단계로 설명했던 내용은 갑자기 너무 큰 얘기로 점프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다만 제 입장에서 ANT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제가 살면서 '일을 잘 하기' 위해 고민했던 과정들과 ANT에서 세세하게 설명하는 과정들이 맞아 떨어진다고 느꼈거든요. 

4부에서는 철학적 관점들을 좀 더 설명할 거고, 5부에서는 언뜻 언급했던 '서명'을 좀 더 분석할 듯하네요. 4/5부는 업로드까지 시차가 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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