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6/05 11:28:36
Name   사악군
Subject   어떤 변호사의 이혼소송에 관한 글을 보고.
http://pgr21.com/pb/pb.php?id=humor&no=306853
->제가 이 글을 접하게 된 옆동네 게시물
http://blog.naver.com/pyjlawyer/221021518231
->원본 블로그

우선 필력이 좋은 분이시네요. 읽으면서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여러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흥미있게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비유도 재미있었습니다.
본인에 대한 홍보, 광고글이니 다소의 과장이나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추는 부분도 이해할 수 있었고,
실제로 유용할 수 있는 정보, 의뢰인이나 이혼을 겪게되는 당사자들의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다만..저는 변호사로서 아무리 본인의 홍보를 위한 글이라 해도 그 글과 정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인 해악에 대해 일말의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군요.

무엇보다, 남편의 교묘한 재산은닉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계시는데 다른 변호사들이
그런 방법을 몰라서 이야기를 안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직업윤리에 대해 인식이 제대로 된 변호사라면
재산이 있는, 재산을 숨길 필요가 있는 의뢰인이라 해도 그런 재산은닉의 방법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해서는 안될 것이며, 알려준다해도 적어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아야 할 것이며,
하물며 그런 정보를 의뢰인도 아닌 공공에 공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고작 자기 블로그 광고글의
현실감과 자기 말의 설득력을 조금 높여보고자 간편한 재산은닉 방법을 공개적으로 떠벌려요?

(미드 굿와이프 보셨나요? 알리샤는 의뢰인에게 '저는 여기에 대해 아무말 할 수 없지만, 저쪽 화장실에 가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배심원들의 논의가 파이프를 통해 들리는 화장실-_-을 의뢰인에게 알려주어 배심원 이야기를 엿듣게 합니다
이런 눈가리고 아웅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것조차도 하지 않는 변호사는 더더욱 문제인거죠)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옳습니다.
소송은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전쟁과 같이 전략적으로 행해야 하는 삼국지의 세계라는
이 분의 견해는 일견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혼소송과 같은 가사소송의 세계는
일반적인 민사소송과는 또다른 세계라는 걸 이 분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자녀가 있는 경우의 이혼소송이 그렇습니다. 가사소송의 세계는 법과 원칙, 이해관계만이
무기인 삼국지의 세계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가사소송의 세계는 삼국지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홍루몽의 세계이기도 하죠.
누가 잘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보다 어떻게 되는 것이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에 가장 좋은지,
두 사람의 새출발을 위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이 올바른지를 법원도 판단에 있어 심각하게 고려하는,
감정과 인정 또한 무기가 되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밝힌 바와 같이 일년에 6건 정도의 이혼소송을 진행하시는 분이시기에
가사소송도 소송인 건 마찬가지라고 인식하시는 것이겠지요. 그게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는 많을 때는 1주일에도 5~6건 이상의 이혼소송을 진행합니다..-_-)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임금소송 직장 계속 다니면서 하시는 분 있어요? 아니죠.. 몇달 월급 못받았어도
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중에는 항의만 하지 소송을 하진 않습니다. 소송제기하고 그 회사
계속 다니기는 어려운거고, 회사 때려치고 나와서 이제 더이상 안볼 사이, 남남이 되어야 소송을 하죠.
거래처에서 대금 못받았다고 물건 계속 공급하면서 소송합니까? 아니죠 돈도 안주는데
이제 거래 때려치고 남남이 되어야 소송합니다. 일부 못받은거보다 거래유지하는게 더 이익이면
울며겨자먹기라도 미수금 남겨둔채로 거래를 하지 거래하면서 소송하지 않아요.

그러나 자녀가 있는 이혼의 경우 이혼 소송이 끝나더라도 두 사람은 바로 남남이 되는게 아닙니다.
각자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관계는 적어도 아이가 성년이 될때까지 남습니다.
어떻게 모든 수법을 동원하여 이혼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상대방이 자녀의 면접교섭을
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정말 상대방이 자녀를 강간했다 큰 상해를 입혔다 등의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혼을 해도 결국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1달에 2번씩 만나게 될 사이입니다. 물론 서로 담쌓고 살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는 이상 아이가 성년이 될때까지 계속해서 가끔씩 만나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재산분할 더 받겠다고, 위자료 얼마 더 받겠다고 상대방을
적으로 설정하고 처절하게 공격해서 이기고 짓밟아요? 그래서 남는게 뭐가 있습니까?

양육비 더 많이 받게 이겼다고 칩시다. 실제로 양육비를 안 주면 어떻게 할건가요?
그래서 양육비 이행명령, 감치명령, 강제집행 등등의 제도가 있지요. 그런데 그래서 그 절차들
언제까지 할거에요? 몇달 주다 안주고, 이행명령 떨어지면 또 얼마주고, 몇달 주다 또 안주고..
감치명령 절차 들어가면 또 얼마 주고.. 그러다 또 안주고.

뭘 강제로 받는다는 건 굉장히 어렵고 지리한 과정입니다. 양육비는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긴 있습니다만
그런 절차반복을 계속해서 양육비 몇푼 더 받아내는 게 삶에 진정 도움이 됩니까? 시간과 감정소모는요?
그 과정에서 아이가 입는 상처는요?

그렇기 때문에 가사소송은 법원도 어떻게든 판결보다 조정으로 양당사자의 협의가 이루어지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입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당사자에게 양육비는 상대방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라는 점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설명하고, 이혼을 해서 더이상 서로가
배우자라는 관계에서는 벗어나지만 아이의 부모라는 관계는 앞으로도 유지된다라는 점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교육합니다. 이건 아주 올바르고 좋은 방향이고요.

해외영화에서 보듯 이혼하고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서로 아이를 맡기며 전배우자들에게
현재 애인을 소개시키며 인사 나눌 수 있는 그런 이혼문화가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관계가 저런 상대를 적으로 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자존감과 직장을
공격해서 굴복시킨 이혼판결에서 얻어질 수 있겠습니까?

의료에 있어 QOL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환자의 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라는 것이지요. 의료만화 같은데 가끔 볼 수 있습니다-_-만 예컨대
수술시 가능한한 흉터가 적게 남는 봉합법을 사용한다거나,
큰 어려움이 따른다면 당연히 안되겠지만 약간의 어려움 정도라면 무작정 병변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외부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쪽을 절개하여 병변을 치료하는 수술법을 택한다던지,
시술후에도 사후관리가 가능한한 편리한 치료법을 택한다던지 하는 개념입니다.

변호사의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송에서 최대한 이기는 것'만이 의뢰인에게 충실한 것이 아니죠.

이 소송에서 최대한 많은 금액으로 승소하고 약정한 승리수당 받고, 의뢰인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고
나는 의뢰인에게 충실한 변호사다.

일반적인 민사소송이라면, 맞습니다. 하지만 특수한 관계들이 있죠. 이혼소송이 대표적이고요.
조금 양보하더라도 상대방의 반감을 사지 않고 앞으로도 자녀양육에 있어 동반자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승리'가 아닌 '아름다운 이별'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게 올바른 변호사, 의뢰인에게 충실한 변호사의 태도입니다.

저 변호사분이 '의뢰인의 삶의 질', '사건본인의 삶의 질'에 대해 한순간이라도 고려해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6-19 09:06)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1 정치/사회무지개 깃발. 61 tannenbaum 17/04/28 7141 22
    422 과학[사진]광학렌즈의 제조와 비구면렌즈(부제 : 렌즈는 왜 비싼가) 9 사슴도치 17/05/01 8233 8
    423 역사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 4 와인하우스 17/05/01 5665 1
    424 일상/생각나도 친구들이 있다. 3 tannenbaum 17/05/03 4854 14
    425 정치/사회[펌] 대선후보자제 성추행사건에 부쳐 112 기아트윈스 17/05/04 8835 14
    426 일상/생각논쟁글은 신중하게 28 기아트윈스 17/05/09 5583 11
    427 체육/스포츠스트존 확대는 배드볼 히터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12 애패는 엄마 17/05/12 5857 4
    428 일상/생각'편 가르기'와 '편 들기' 17 소라게 17/05/12 6562 25
    429 정치/사회웅동학원과 한국의 사학법인 62 moira 17/05/13 7014 17
    430 문학[인터뷰 번역] 코맥 매카시의 독기를 품은 소설(1992 뉴욕타임즈) 8 Homo_Skeptic 17/05/13 9065 6
    431 일상/생각가끔은 말이죠 1 성의준 17/05/14 4547 9
    432 창작5월이면 네가 생각나. 3 틸트 17/05/14 6179 9
    433 정치/사회'조중동'이나 '한경오'나 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유 38 Beer Inside 17/05/15 8218 16
    434 일상/생각가난한 연애 11 tannenbaum 17/05/15 6687 18
    435 일상/생각백일 이야기 7 소라게 17/05/16 5503 21
    436 체육/스포츠김성근의 한화를 돌아보다. 31 kpark 17/05/24 6465 6
    437 일상/생각[회고록] 그녀의 환한 미소 17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5/24 4925 13
    438 음악Be human. 인간이기. 5 틸트 17/05/26 6572 11
    440 의료/건강나의 갑상선암 투병기 -부제: 워보이와 나 37 고라파덕 17/06/01 6286 20
    441 기타사람은 아픈만큼 성숙해지지 않는다 11 소맥술사 17/06/01 6413 35
    442 일상/생각누워 침뱉기 17 tannenbaum 17/06/01 5367 24
    443 꿀팁/강좌[사진]을 찍는 자세 20 사슴도치 17/06/02 8599 6
    444 게임Elo 승률 초 간단 계산~(실력지수 법) 1 스카이저그 17/06/03 12255 4
    445 음악세상은 이런 색을 하고 있었던 걸까 5 틸트 17/06/05 7933 7
    446 일상/생각어떤 변호사의 이혼소송에 관한 글을 보고. 11 사악군 17/06/05 8054 26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