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6/01 23:46:30
Name   tannenbaum
Subject   누워 침뱉기
두괄식으로 갑니다.

우리 친형은 천하의 개망나니 입니다. 그리고 지금 많이 아픕니다.


부모님의 유전자 몰빵으로 태어나 저와는 전혀 다르게 생겨서 남들이 보면 그 누구도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지요. 저야 뭐 키작고 쭈구리 탱탱이지만...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잘난 부분만 닮아서 더럽게 잘생겼습니다. 생각하니 또 열받네요. 나중에 부모님에게 따져야겠습니다.

뭐 여튼간에 어릴적부터 저와는 참 다르게 자유로운 영혼(이라 쓰고 문제아)이었죠. 학교 입학전부터 저금통 털어서 과자 사먹고 아버지 지갑에 손대다 참 모질게도 맞았었죠. 그래요... 철딱서니 없는 꼬마애가 손버릇 잘 못 들여 실수 할수도 있겠죠. 그정도면 제가 말을 안합니다. 제가 그랬다고 누명 씌우다 들통난것도 부지기수였었죠.

그리고 인간이 어찌나 얍삽한지 말도 못합니다. 시골 살때는 아이들 몰고다니며 비닐하우스 돌던져 다 찢어 놓고 남의 과일밭 서리한다고 작물들 다 망쳐놓고... 고구마 구워먹는다고 남의 집 논에 쌓아논 볏집더미에 불질러 산불로 번지기까지 했죠... 그렇게 밖에서 사고를 치는 날이면 어디에 숨어서 집에 안들어 옵니다. 약간 조현증이 있으셨던 할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가 나시면 당장 눈에 보이는 저를 잡으셨죠. 할아버지는 실컷 저에게 분풀이를 하고나 술에 취해 잠드시면 그제서야 슬적 아랫방에 들어와 잠을 잡니다. 이미 저에게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신 할아버지는 다음날이면 마음이 가라앉곤 하셔서 유야무야 넘어가는 걸 잘 알았거든요.

심심할때면 저는 형의 노릿감이었고 자기 기분 나쁘면 해소용 샌드백이었습니다. 중학생때까지 참 오살라게도 많이 맞았네요. 중학생때부터는 양아치후보생들과 어울려 술, 담배는 기본이요. 쌈질에 기물파손에 애들 삥듣기에 여학생 건드는 건 옵션이요 어린 여자애 임신시키기도 했었죠. 그놈의 장남의 장손이 뭔지 형이 사고칠때마다 아버지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피해자들 상대 부모님 찾아가 손이 발이 되게 빌어 겨우겨우 해결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셨죠.

지지리도 공부 못하던 형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면 똥통대학 농학과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대학생 된 형은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학생운동에 투신을 하더군요. 거기서 나름 인정을 받았는지 탱커가 필요했는지 전대협 지역지부 간부가 되더군요. 참 인재도 없다...... 맑스 원전 읽을 줄도 모르는게 무슨 간부씩이나... 80년대말 90년대 초 시위현장 제일 앞에 서서 투쟁(?)을 하다 국보법 위반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넵. 이른바 사상범으로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다 못해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도 되려나 했더니.... 감옥 다녀와서도 운동권 쭉정이 노릇만 하다 결국 그냥 졸업하더군요.

지 주제에 복이 넘쳤는지 형수님 같은 분을 만나 조카들이 생겨날 무렵부터... 사업한답시고 1년에 집에는 명절날 두어번 들락거리며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비는 커녕 허구헌날 사기로 고소당하고 집에는 오만 금융권에서 강제집행하겠다는 딱지들만 날아왔습니다. 저한테 입힌 경제적 피해는 유도 아니죠. 그런 와중에 여자 꼬시는 능력은 좋은지 룸사롱 여사장, 평범한 직장인 아가씨, 유부녀, 순진한 여대생.... 돌아가면서 동거하다 실증나면 잠수타곤 했습니다. 형이 그렇게 등쳐먹고 사라지면 혼인빙자 간음, 사기로 고소를 당했죠. 그중에 진심으로 형과 결혼하고 싶다고 아버님 댁에 찾아온 그 여대생은 정말...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 지금도 엎드려 대신 빌고 싶네요.

이때쯤 아버지께서는 형을 포기하고 형수에게 대학가 근처에 편의점 하나를 차려주시고 형과 이혼을 권합니다. 우리 아들같은 놈이랑 사느라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손주들이라도 건사하려면 이제라도 이혼하라고 말이죠. 하지만.... 답답하고 또 답답한 형수는 끝내 이혼을 하지 않더군요. 몇해가 더 지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큰조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형수는 형과 이혼을 하더군요. 아직 젊으시니 재혼하라는 제말에 결혼 지겨워서 이제는 홀가분하게 혼자 산다 하시더군요. 이해가 될듯도 안될듯도 했습니다. 사실... 형과 이혼한 후에도 형수가 아버지 제사를 챙기고 계십니다. 당연히 제가 받아와야 하는 것이지만... 아버지 아니었으면 조카들과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아버지께 갚아야 한답니다. 나중에 자기 몸이 힘들어지면 그때 드릴테니 가져가시라고 하드라구요. 바보도 아니고 진짜.... 제가 조카들과 유별나게 친합니다. 그렇게 된데는 90프로는 형수에게 미안한 마음과 조카들이 안쓰러워서입니다.

큰조카 결혼식 이후로 몇년간 연락 한번 없던 그 개 망나니 형이 형수를 찾아 왔답니다. 많이 아프다구요. 저는 경찰 불러서 쫒아 내라고 했습니다. 형수는 그냥 웃기만 하대요.... 바보 맞다니깐요. 병원에 입원한지는 좀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안 찾아갔죠. 남보다 못한.. 아니 누구보다 증오하고 미워하는 인간을 내가 왜 찾아 갑니까? 그죠? 그러다 얼마전 큰조카가 연락을 했습니다. 형이 저 찾는다고 한번 오시라고요. 많이 망설이다 찾아 갔습니다.

만나면 한 대 갈겨줄려고 했는데 링거 꼽고 뼈밖에 안남은 모습으로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주먹이 안나가더군요. 진짜... 끔찍히 미워하는 상대가 아픈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반칙입니다. 꼴에 지도 할애비라고 조카손녀 보고 웃고 있는 걸 보니 어이가 가출하더군요. 그 인간은 끝까지 사람 속 뒤집는데는 장인레벨입니다. 의사 말로는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복될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료가 이루어질거라 하대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절대 소송이나 클레임 안걸테니 죽여버리라고요. 젊은 의사 친구는 웃기만 하더군요. 진심인데....

좀전에 제가 우리 형수 참 바보 같고 답답하다고 했지요? 그보다 더 답답한 모지리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접니다. 몇달 밀린 병원비 제가 내고 왔어요. 그리고 내일 디질지 모레 디질지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병원비도 제가 낼겁니다. 조카들과 형수 걱정 때문에 대신 냈냐고요? 아니요. 제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네요. 달랑 편의점하면서 아직 학생인 둘째도 대학보내야 되는 형수 걱정 때문도 아니고 이제 결혼해 겨우 자리 잡고 근근히 사는 큰조카 안쓰러워서도 아닙니다. 형수랑 큰조카가 어떻게든 병원비 정도는 감당 될겁니다. 힘들어지더라도요....


그냥... 계속 병원비 내면서 미워할라고요. 그인간 디질때까지.... 너 때문에 내 금쪽같은 돈 나간다고 씹고 뜯으면서 욕할라고요...


이젠 나도 좀 편하게 살자 이 개망나니야. 나도 이제 마흔 넘었다고....


p.s. 저 1도 안 슬픕니다. 어제도 번개해서 데이트도 했고요 간만에 백화점에서 쇼핑도 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편안합니다. 그냥 화가 조금 나는거지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6-12 16:1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4
  • 허허
  • 춫천
  • 하나도 안 슬프면 기쁜거니 추천
  • 가족이라는게 참.. 혈연과 시간이라는 게, 좋은 시간이든 나쁜시간이든 사람을 붙잡지요.
  • 역시 잘생기고 봐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1 정치/사회무지개 깃발. 61 tannenbaum 17/04/28 7141 22
422 과학[사진]광학렌즈의 제조와 비구면렌즈(부제 : 렌즈는 왜 비싼가) 9 사슴도치 17/05/01 8233 8
423 역사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 4 와인하우스 17/05/01 5664 1
424 일상/생각나도 친구들이 있다. 3 tannenbaum 17/05/03 4853 14
425 정치/사회[펌] 대선후보자제 성추행사건에 부쳐 112 기아트윈스 17/05/04 8834 14
426 일상/생각논쟁글은 신중하게 28 기아트윈스 17/05/09 5582 11
427 체육/스포츠스트존 확대는 배드볼 히터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12 애패는 엄마 17/05/12 5856 4
428 일상/생각'편 가르기'와 '편 들기' 17 소라게 17/05/12 6562 25
429 정치/사회웅동학원과 한국의 사학법인 62 moira 17/05/13 7014 17
430 문학[인터뷰 번역] 코맥 매카시의 독기를 품은 소설(1992 뉴욕타임즈) 8 Homo_Skeptic 17/05/13 9064 6
431 일상/생각가끔은 말이죠 1 성의준 17/05/14 4547 9
432 창작5월이면 네가 생각나. 3 틸트 17/05/14 6179 9
433 정치/사회'조중동'이나 '한경오'나 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유 38 Beer Inside 17/05/15 8218 16
434 일상/생각가난한 연애 11 tannenbaum 17/05/15 6687 18
435 일상/생각백일 이야기 7 소라게 17/05/16 5502 21
436 체육/스포츠김성근의 한화를 돌아보다. 31 kpark 17/05/24 6465 6
437 일상/생각[회고록] 그녀의 환한 미소 17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5/24 4924 13
438 음악Be human. 인간이기. 5 틸트 17/05/26 6572 11
440 의료/건강나의 갑상선암 투병기 -부제: 워보이와 나 37 고라파덕 17/06/01 6285 20
441 기타사람은 아픈만큼 성숙해지지 않는다 11 소맥술사 17/06/01 6413 35
442 일상/생각누워 침뱉기 17 tannenbaum 17/06/01 5366 24
443 꿀팁/강좌[사진]을 찍는 자세 20 사슴도치 17/06/02 8599 6
444 게임Elo 승률 초 간단 계산~(실력지수 법) 1 스카이저그 17/06/03 12255 4
445 음악세상은 이런 색을 하고 있었던 걸까 5 틸트 17/06/05 7933 7
446 일상/생각어떤 변호사의 이혼소송에 관한 글을 보고. 11 사악군 17/06/05 8054 26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