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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3/16 00:06:41 |
Name | 새벽3시 |
Subject | 홍차의 연인 (5) - 완결 |
우리는 공교롭게도 마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치 오늘 여기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굴었다.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하고, 당신을 늘 그렇듯 사람 좋은 얼굴로 모두를 건너보았고 그 눈길의 끝에 내가 닿자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 피하는 눈길에라도 걸리라고 보란 듯이 웃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나를 보라고, 그렇게 활짝 웃었다. 왜 하필 맞은편에 앉은 걸까. 그간의 허기라도 채우듯 당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쉴 새 없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고, 그러고 있는 당신을 나의 눈동자가 계속 따라다닌다. 너무 사랑했던 당신의 모든 것들 … 안경 너머의 다정한 눈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것처럼 휘어지고 그렇게 자꾸만 웃음이 터진다. 사람들이 웃을 때마다 한 박자 늦게 따라 웃어야 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멍청이처럼 그렇게 웃었다. 누군가 나를 조금만 주의 깊게 봤다면 쟤는 오늘 왜 나와서 저러고 있나 싶었을 거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탓에 모두와 겉도는 나를 아주 쉽게 감출 수 있었다. 살짝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당신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손을 잡고 걸었던 길이 얼마나 많았나. 그저 그렇게 멀거니 바라보는데 추운 날씨 탓일까 조금 거칠어보였다. 습관처럼 핸드크림을 꺼내 건네주려 했다. 그리고 이내 그 습관에 놀라 테이블 아래로 로션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소한 소란이었지만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당신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떨어진 것을 슬쩍 주워 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 스친 손과 눈빛. 언젠가는 즐거웠던 사소한 비밀. 이제는 너무 아픈 비밀. 나는 오늘 왜 여기 나왔을까, 뭘 어쩌고 싶어서 그랬을까.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쯤 되니 질척인 것이 당신인지 아니면 나인지. 어젯밤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내일 좀 나오면 안 되냐고, 그렇게라도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말에 왜 흔들렸을까. 이렇게 모르는 척 할 거면 왜 … 왜 … 왜 … 그래, 아마 모두가 떠나고 안녕하고 헤어진 후에 전화가 오겠지. 나는 또 못 이기는 척 그 전화를 받겠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가서 당신의 손을 잡고 품에 안겨 웃겠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거리를 걷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우리를 연인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겠지, 그렇겠지. 우린 헤어졌는데. 아무 사이도 아닌데. 당신은 쓸데없이 다정하고, 나는 지나치게 약해빠졌으니까. ... 간지럽고 달콤했던 시작과 달리 끝은 너무나도 싱거웠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간극을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었고 매일 그저 헤어지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 나갔다. 끝이 어디로 이어져있는지 알면서도 묵묵히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서른 해가 넘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이 하나의 관계가 된다는 것은 실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기적과는 거리가 멀었나 보다. 헤어지기에는 너무 깊이 사랑했지만 함께하기에는 너무 달랐다. 차라리 조금 더 어렸다면 몰랐다면 그랬다면 우리 좀 더 만날 수 있었을지도… 우리는 당신과 나로 돌아갔다. 아무도 모르게.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 화이트데이 기념 선물로 이별하는 홍차의 연인을 올리려했으나 실패했네요. * 제일 처음에 썼던 글이 이 마지막 편이었어요. 물론 중간 수정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그들은 헤어질 운명이었습니다. * 이 남자는 어제 타임라인에 올렸던 그 남자와 관계(?)가 있습니다. https://kongcha.net/pb/view.php?id=timeline&no=28030 * 그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3-27 08:00)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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