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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28 23:15:26
Name   뤼야
Subject   2015년 퀴어 퍼레이드 후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에 보면 전쟁통에 젊은 남자가 다 멸종되어버린 동부유럽의 한 외딴 마을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린 쌍동이 형제의 눈을 통해 그려집니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 입니다. 예를 들면, 마을을 지키는 중년의 신부는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마을의 고아소녀를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 고아소녀는 가축과 수간을 하기도 합니다. 어린 쌍동이의 천진난만하기만 한 눈에 이러한 비윤리적 사건들은 그저 마을의 일상적인 일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쟁통에 엄마에게 버려져 폭력적인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는 쌍동이 형제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세계 그 자체의 모습'인 것이죠. 소설의 작법을 익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소설의 끝판왕'쯤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 위에 서지 않고, 객관의 본질을 그 자체의 진실로 포착하려는 쌍동이 형제의 시선은 소설의 화자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명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철학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현상학적 진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2015년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기로 하고 애인과 약속을 잡아 시청으로 향하는 동안 애인은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뤼야, 당신은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았나요?" 저는 잠시 대답을 주저했습니다. 제가 한때 동성애를 혐오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년전 제게 운동을 지도해주던 코치는 동성애자였습니다. 다소 중성적인 몸가짐의 그녀를, 저는 그저 그녀의 개성쯤으로 여겼습니다. 같이 운동을 배우던 사람이 여럿이었는데 유독 저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어서 몸치인 저를 배려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몸으로 하는 장난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살짝 불편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수업의 긴장을 더는 방편삼아 하는 행동쯤으로 역시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저를 힘으로 제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그 강도가 이전에 비해 매우 강력했고, 저는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나중에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불쾌감은 더욱 심해졌었죠.

세상에 모든 교인이 항상 선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모든 동성애자가 항상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를 한때 동성애 혐오에 빠지게 만든 여코치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저는 그 상황이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저는 농락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곧바로 레슨을 그만두었고 불쾌한 기분을 지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는 몇년의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이제는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제가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저는 오히려 그때의 제가 매력덩어리였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생각할 여유도 조금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착각일 지언정 말입니다.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제가 한때마나 짊어졌던 편견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기 위해, 과거의 불쾌했던 경험으로 동성애자를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고 있는 제 모습을 직시하고,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서론이 무지하게 길었습니다만 본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애인의 감기기운만 아니라면 더 즐기고 오고 싶었는데, 중간에 발걸음을 돌려야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퍼레이드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식전행사로 각 부스에서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에 참여하고 기념품들도 구입했습니다. 여러가지 것들 중에서 비교적 점잖은(?) 것들만 올려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도 하나 샀는데 이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 바람개비는 기념 현수막에 축하메세지를 적고 얻은 것인데 나중에 제 자전거에 매달 예정입니다. 예쁘죠? 종교단체에서 반대시위와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공연을 하며 맞불작전을 펼쳤는데 애인은 오히려 그분들 공연이 더 볼만하다고 거기가서 구경하자고 그러더라고요. 무지개색 부채는 얼른 가방에 숨기고 깊은 신앙심으로 잠시 무장하고 뜻깊은 공연을 즐겨보자 하더군요. 크크크

가길 잘했습니다. 가야지 하면서도 꺼려지는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추상한 것으로 뭉뚱그려 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주인공인 두 소년은 신부가 불쌍한 고아소녀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쟁통에 신도가 줄어들어 끼니를 굶는 신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줍니다. 휴머니티라는 것은 그런 것이죠. 소설속의 쌍동이 형제가 끈기와 치밀함을 가지고 그린 세상은 부조리가 가득합니다. 소년에게 부도덕한 신부의 모습은 그저 그들에게 닥친 세계라는 만화경 속의 일부임을 알았던 것이죠. 저또한 그러합니다. 저는 그들의 사랑을 모릅니다. 제가 모르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제 애인이 제게 품는 사랑도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저 서로를 위한 연극적 실천(김영민)이고, 그 실천의 밑바닥이 사랑(휴머니티)이며,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들의 세상이 제 연극적 실천을 통해 어쩌면 조금은 더 빛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7-04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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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개비가 참 예쁘네요. 오늘 창가에 비추는 햇빛으로 방바닥에 아주 작은 무지개가 그려지는 걸 봤는데 무지개는 참 아름다워요.
    그쵸? 자전거에 달면 예쁠것 같아서 꼭 가지고 싶었어요. 라이터는 제꺼 아닌데 제가 가져와 버렸네요.
    마르코폴로
    홍대에서 친구 대타로 아르바이트를 두달 정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그 바에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의 대장님이 동성애자였습니다. 일 끝나고 술 한잔씩 하곤 했었는데 술기운에 내가 동성애자 사이에선 먹힐 외모냐고 물어봤다가 측은한 눈빛 세례를 받은 기억이 문득 나네요. 쓰신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제가 겪었어도 불쾌했을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론 묘하게도 부러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각설하고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구하기 힘든 책이죠. 절판된걸로 알고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하다가 너덜너덜해져 있는 그 책을 차마 읽지 못했었죠.
    근래에 세권으로 분책되었던 것이 한권 합본으로 재발배됐습니다. 흔히 밀란 쿤데라에 비견되는 작품이긴한데, 풍자적 요소는 훨씬 덜한 편이에요. 당연한거죠. 어린 소년들이 무슨 풍자를 하겠어요. 제가 보기엔 완전 다른 작품인데 왜 같이 묶이는지 모르겠어요. 시대적배경이니 공간적 배경이 유사해서 그런가 싶어요.

    음... 덧글을 쓰고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던 소설이야기로 마무리... 역시나 난 문학덕후...
    마르코폴로
    그렇군요. 지금은 등단해서 소설쓰고 있는 친구가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한 책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온 여자랑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두 책은 지겨울 정도로 추천받아서 제목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둘 다 당시에 절판되서 못 읽어봤네요. 생각난 김에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구매해서 봐야겠네요.
    소설가들의 교과서로 꼽히는 책이라 친구분이 칭찬하는게 당연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제가 이제까지 읽었던 수많은 소설들을 다시 줄서기 시켰으니까요. 그전엔 저도 꽤나 허풍이 들어서 관념적인 소설을 탐닉하며 자뻑하기도 했는데, 결국 소설이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곧 화자의 문제라는 것을 깊이 깨우치게 해주었죠. 등단한 친구분 뉘신지 궁금하네요. 괜찮으시면 성함 좀 알려주세요.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벌써 절판되었나요? 재미 하나는 보장합니다.
    선비님 혹시 너무 재밌어서 위험한 책으로 분류하시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크크크크크
    마르코폴로
    전 모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새로 나온 듯 하네요. 이 전에 상,중,하로 나눠져 있던 그 책은 절판된것 같습니다.
    제가 도서관서 훔치려했던 책 중 하나였어요. 다시 출판되어 나온걸 얼마전 홍익문고 갔다 알았어요.
    마르코폴로
    도서관에서 찾아본 이전 판본은 너무 너덜너덜해서 만지면 부스러질것 같더라고요. 책이 해체직전 상태인지라 읽는걸 포기했었죠. 흐흐흐
    좋네요. 특히 마지막 문단요.
    삼공파일
    현상학적 사고로 바라보는 것인 진리가 아니라 세상일 때, 필연적으로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윤리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그 윤리는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실존주의가 출발하는 것이겠죠. 나의 윤리가 나에게 다가오고 다시금 나의 윤리가 세상으로 드러날 때 이는 실천이 되고, 이 실천은 세상과 세상을 바라 보는 나 사이의 유일한 실존적인 연결고리이면서 세상과 독립적인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느슨한 틈들을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메워버리면 초등학생의 방학 숙제처럼 잘 안... 더 보기
    현상학적 사고로 바라보는 것인 진리가 아니라 세상일 때, 필연적으로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윤리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그 윤리는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실존주의가 출발하는 것이겠죠. 나의 윤리가 나에게 다가오고 다시금 나의 윤리가 세상으로 드러날 때 이는 실천이 되고, 이 실천은 세상과 세상을 바라 보는 나 사이의 유일한 실존적인 연결고리이면서 세상과 독립적인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느슨한 틈들을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메워버리면 초등학생의 방학 숙제처럼 잘 안 붙는 부위에 덕지덕지 끈끈한 풀이 묻어 있는 엉성함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위한 변명으로 발전한 핑계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사람 많은데는 가기가 싫었어요. 어떻게 보면, 휴머티니가 개별적 존재에 대해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 하나를 모아서 보편적 맥락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뜻으로 쓰일 때, 그 때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이고 휴머니티가 아니라 디비니티(divinity)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연극적 실천으로 그들의 세상을 빛나게 하다\"니 곱씹어보면 약간 더 그런 맛이 나기도 하네요.

    갑작스러운 자기 고백인데, 이런 연대 앞에서 저는 뤼야님처럼 어떤 구체적인 기억이나 계기가 전혀 없는데도 자꾸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휴머니티든 디비니티든 내 안에 그런 것은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게 무서운 것인지, 그런 불완전하고 끈끈한 건 만지고 싶지 않다는 결벽증인지, 그냥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한 지 그렇습니다. 내 안에 이런 모순들은 어떤 면에서는 확인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지 않나 그런 변명도 해봅니다. 그래서 그냥 이 정도 되는 한국 남성으로서 동성애 이슈든 페미니즘 이슈든 이야기하지 않고 피하고 도망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머릿속으로는 몇백번 혁명 사회를 건설하고 만민 평등의 사회를 이뤄도 좌파적 연대에도 눈을 감습니다.

    지금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사는데 의대 동기들이랑 대화를 잘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네요. 요즘 이 부분도 제 윤리 의식에 물음표를 거대하게 찍는데 이 얘기까지 하면 너무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생략합니다.

    제 혼자만의 오버겠지만, 뤼야님이 쓰신 생각의 흐름이 정확히 따라가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마지막에 살짝 비껴서 \"난 이래~\"라고 자기 고백을 해봅니다. 맘대로 하는 것이지만, 공감 가는 글이라서 좋네요.
    삼공파일님은 윤리적 확신이라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병적인 근본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닐런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실존에서 출발한 윤리라는 인생의 표지판에 적당한 거리감을 두어야 함을, 또한 그러한 흔들림과 비틀림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근본과 토대의 특권으로부터 겸허하게 물러서게 하는 것, 그 거리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함께 말씀드려봅니다. 이렇게 보자면, 종교, 사랑, 그리고 강한 형식의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정서들은 죄다 스스로 조심해야하는 문제아들인 셈이죠. 이렇게 말하는 저... 더 보기
    삼공파일님은 윤리적 확신이라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병적인 근본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닐런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실존에서 출발한 윤리라는 인생의 표지판에 적당한 거리감을 두어야 함을, 또한 그러한 흔들림과 비틀림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근본과 토대의 특권으로부터 겸허하게 물러서게 하는 것, 그 거리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함께 말씀드려봅니다. 이렇게 보자면, 종교, 사랑, 그리고 강한 형식의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정서들은 죄다 스스로 조심해야하는 문제아들인 셈이죠.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말만 번드르할 뿐인 것도 함께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만요.

    피지알시절부터 삼공파일님의 글은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삼공파일님의 서툰 자기고백 속에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싶어하는 삼공파일님의 모습이 엿보인다는 말씀도 함께 드려봅니다. 좋은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공파일
    그 표지판에 앞아서 계속 흔들리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멍청할 정도로 집착할 수 있는 이유가 나를 내가 아니게 만들고 모든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정서를 다 환원시키는 과학주의 위에 나를 세워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과학주의, 회의주의, 염세주의, 뭐 여러 이름일 수는 있겠죠. 그냥 그 표지판 앞에서 울렁증만 겨우 견디고 인상 쓰고 서 있으면서 저 표지판에 무언가 진리가 있을거야, 저걸 객관적으로 쳐다보는 게 내 삶의 윤리야, 다른 사람들도 다 저런 표지판 앞에 서 있는 걸,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줄도 모르겠습니다. 발자국을 내딛으면 정말 내 세상이 넓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야, 저 표지판에는 모든 길이 다 있고 저 표지판이 진짜 모든 세상이야, 이렇게 스스로를 속이면서 믿고 사는 것 같네요.
    로티는 공부라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염려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죠. 또한 윤리의 코드는 수직적이지만, 공부의 코드는 수평적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도 납니다. 어쩌면 니체가 동시대인들에게 반복해서 역설한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의 결점을 느끼지 못하듯, 추상의 학문(또는 종교)의 무오류를 깊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것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적 회심이나 회개라는 것들이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듯이, 공부의 코드가 수평적이라는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면 그 공부는 미래를 위한 것이 아... 더 보기
    로티는 공부라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염려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죠. 또한 윤리의 코드는 수직적이지만, 공부의 코드는 수평적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도 납니다. 어쩌면 니체가 동시대인들에게 반복해서 역설한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의 결점을 느끼지 못하듯, 추상의 학문(또는 종교)의 무오류를 깊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것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적 회심이나 회개라는 것들이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듯이, 공부의 코드가 수평적이라는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면 그 공부는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쓰고 나니 너무나 여려운 주문이라 저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잘도 주워 섬긴다는 생각이 들고, 어젯밤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삼공파일님의 덧글 속에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져서 삼공파일님 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실까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고 하고 그렇습니다. 구경꾼 심리죠. 흐흐흐

    폐각閉慤 속의 자유로움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는지요. 한때 제가 이런 저런 공부를 주워섬기면서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 열정같은 것을 심리의 중앙에 모셔둔채, 제가 한 졸렬한 공부가 선사한 당위의 달콤함에 빠져서 그것을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꺼풀만 비평의 칼로 벗겨내면, 무방비로 쓰러지고 마는 한없이 나약한 저의 자아가 그 속에 숨어있었던 듯 합니다. 그후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통해 앎과 무지가 우로보스의 뱀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원리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로 대단한 텍스트입니다. 들뢰즈가 22세기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 듯 합니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대한 비평서는 바로 [차이와 반복]의 텍스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공파일님께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권해드립니다.
    삼공파일
    네이버 열린연단 강의에서 들뢰즈 이야기를 조금 듣고 흥미를 느낀 적이 있었어요. 읽을거리가 없었는데 추천 감사합니다!
    기아트윈스
    아 이거 최근에 고민했던 부분인데, 비슷한 이야기를 만나니 반갑네요.

    삼공파일님께서 과학주의, 회의주의, 염세주의 등으로 표현하신 그 부분을 전 지성사를 연구하다 만났답니다. 말하자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우연히 생겼는지, 그리고 사상가들의 사유, 문제의식, 해결, 돌출, 비판, 설득 등이 얼마나 시대에 국한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임의적인지, 그리고 그 모든 임의의 삶 끝에 그 모든 거물들과 속물들이 다 무덤 속에서 백골이 진토되어 넋조차도 없는지 같은 생각이지요.

    그러다보니 그 모든 인간의 산물, 그... 더 보기
    아 이거 최근에 고민했던 부분인데, 비슷한 이야기를 만나니 반갑네요.

    삼공파일님께서 과학주의, 회의주의, 염세주의 등으로 표현하신 그 부분을 전 지성사를 연구하다 만났답니다. 말하자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우연히 생겼는지, 그리고 사상가들의 사유, 문제의식, 해결, 돌출, 비판, 설득 등이 얼마나 시대에 국한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임의적인지, 그리고 그 모든 임의의 삶 끝에 그 모든 거물들과 속물들이 다 무덤 속에서 백골이 진토되어 넋조차도 없는지 같은 생각이지요.

    그러다보니 그 모든 인간의 산물, 그리고 현재 살아있는 저 모든 인간들의 아둥바둥거리는 몸짓들이 다 무상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 의미를 찾고 세우고 얻기 위해 열변을 토하는 이들에 대해 냉소하게 되지요.

    일단 이렇게 되고 나니 장점은 하나요 단점은 좀 크더군요. [키배력]이 상승했다는 것, 그리고 냉소와 회의를 얻었다는 것. (키배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에겐 기울어진 경기장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얼마 전까지 이런 냉소증이 한참 강했었는데, 최근에 좀 반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연찮게도 스포츠 덕분에 사유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어요.

    [기아 야구가 망하나 흥하나 내겐 의미가 없다. 내가 기아팬이 된 것도 그저 우연한 선택일 뿐이다. 그런데 난 왜 그 결과를 계속 확인하고 X욕을 하고 있지?]

    세상의 모든 [의미]들을 회의한 끝에 저는 도저히 회의할 수 없는 어떤 단단한 걸 만난 겁니다. 아무리 염세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나지완의 헛스윙 삼진은 제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줍니다. 아이고 저XX키.....

    전 처음 기아팬이, 아니지, 해태팬이 되었던 때를 떠올려 보려했으나 워낙 옛날이라 잘 기억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또 다른 의심할 수 없는 단단한 근원인 FC 바르셀로나의 팬이 되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았습니다. 아,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그냥 전 응원할 축구팀을 하나 찾고 있었고, 그건 단순히 재밌는 화제 거리 하나를 얻기 위해, FM을 더 재밌게 플레이하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바르셀로나는 저와 아무 연고가 없으며, 또 바르셀로나가 수집하는 트로피들 역시 그저 쇳덩이일 뿐, 거기 부여된 모든 의미는 다 작위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순간 그저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기로, 바르셀로나의 성패에 제 마음을 붙이기로 어떤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비가역적이었습니다. 저는 그토록 우연한 결단 끝에 이 세상으로부터 [의미] 하나를 발견한 거지요. 아니, [부여]했다고 해야겠군요. 어찌보면 황당하고도 단순한 건데, 저로서는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허망하고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미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또 바르셀로나와 기아 타이거즈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즉자적인 내가 있고 나를 이런 나로 만들도록 결단을 내린 [결정하는 나]라는 놈이 또 따로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기반을 하나 만나고 나니 삶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회의주의와 환원주의로 깔끔하게 박살낸 폐허 위에도 의미를 만들 수 있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로 결정해서] 만든 의미는...음... 좀 다릅니다. 이전에 순진하게 생각했던 의미로운 세계가 무반성의 세계였다면, 이제는 한편으론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세상을 즐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실은 스포츠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알고도 속아준달까요. 아니면 연기에 몰입하다보니 그 연출된 상황을 진심으로 열연하면서도 한 편으론 연기에서 깨어날 열쇠를 한 손에 쥐고 있달까요. 아니면, 더 고전적인 비유를 들어보자면, 엄마가 이제 저녁먹자고 부르면 뒤도 안돌아보고 버리고 떠날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더 [크고 아름다운] 모래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얼라들 같달까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붙였다 (attach) 떨어지는 (detach) 과정을 조금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선무당인지라 여기서 뭘 더 말하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턴어라운드를 하고 나면 확실히 사는 맛이 더 좋아진다는 겁니다. 회의주의자일 때 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지고 긴장이 풀리고 어쩐지 더 기운이 나지요.

    ...

    근데 이 댓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요...;

    이 횡설수설이 삼공파일의 사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의함으로 오래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마지막 대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제 주위에 인문학을 하다가 절망한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건방진 인사입니다. 언어성으로 인간성을 추적하려는 방식은 안이하고 극히 안전한 방법이라는 회의가 그들을 덮칠 때,저는 잔인하게도 저 말을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제 마지막 선택은 문학이었어요. 그 안에서 저는 한없이 자유로와졌습니다. 저는 어차피 간서치에 불과한 인간이고 의자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요. 기아트윈스님의 왜 기아트윈스님이 되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새 덧글이 달렸길래 보러왔더니 이런 자기고백글이라니... 못볼뻔 했잖아요.
    제가 회사를 퇴사하고나서, 다른 직원분(남자)께 들은 이야기인데
    새로들어오신 분이 동성애자라고 하더라구요..
    직원분이 무슨 일을 알려주려고 하면 옆에와서 잘 듣고 웃음(?)을 짓길래
    \'참으로 사람이 좋고,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네\'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친해지면 질수록 옆에와서 팔장을 낀다던지...
    연인에게 하는 것 처럼 행동을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술한잔 먹으면서 \'나는 이성애자이니 연인에게 하는 행동처럼...하는것을 자제해달라\'라고 말한뒤로
    말도없이 회사를 안나왔다고 하더라구요 ... 더 보기
    제가 회사를 퇴사하고나서, 다른 직원분(남자)께 들은 이야기인데
    새로들어오신 분이 동성애자라고 하더라구요..
    직원분이 무슨 일을 알려주려고 하면 옆에와서 잘 듣고 웃음(?)을 짓길래
    \'참으로 사람이 좋고,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네\'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친해지면 질수록 옆에와서 팔장을 낀다던지...
    연인에게 하는 것 처럼 행동을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술한잔 먹으면서 \'나는 이성애자이니 연인에게 하는 행동처럼...하는것을 자제해달라\'라고 말한뒤로
    말도없이 회사를 안나왔다고 하더라구요
    그 직원분이 은근히 떠볼려고 이야기한다는게 직설적으로 말해버리는 바람에 엄청 미안했다고 하더라구요
    마르코폴로
    성별을 떠나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상대를 거절하는게 쉬운일은 아닌것 같아요.
    그러게요.....
    직원분도 직원분이지만 그 상대방이 좀 안쓰럽기도해요
    안타깝네요. 이런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쉬이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도 한몫했다는 생각입니다.
    맞아요, 우리사회에서는 동성이라고 하면..
    바로 매장당하는 분위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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