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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06 12:31:52
Name   마투잘렘
File #1   IMG_1247.JPG (2.27 MB), Download : 79
Subject   아직도 이불킥하는 중2병 썰,


아침에 출근해서 밀린 탐라를 보니까 #중2병라인 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볍게 풀어보는 썰이 조금 많이 길어져서 티타임 게시판에 적어 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장이 들어갔을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당시에 쓰던 시입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내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이 고약한 취미는 학창시절때부터 시작되었고, 한참 술마시고 놀던 대학교때에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취미였다. 글을 쓰면서 참 많이 즐거웠지만 그거 이상으로 참으로 많이 괴로워했었다.

퇴고라는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문장을 다듬고 단어가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일인데, 이게 말로는 정말 간단하고 쉬운 일인데, 실제로 해 보면 정말로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자취방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문장을 다듬고, 문단을 통째로 날려버리기도 하고, 눈물을 머금고 몇 장 분량의 글을 빼기도 하면서 나는 왜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괴로워 했지만, 빨간색 페라리처럼 매끈하게 완성된 글들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일은, 그 당시 내게 최고의 행복감을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정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을 쓸 때, 술을 한 잔 마셔야 좀 더 원활하게 글이 나오고 퇴고할 때 덜 괴로웠기 때문에 그 핑계를 대고 술을 참 많이도 마셨다. 아니, 굳이 그 핑계를 대지 않아도 술약속은 참으로 많았다. 우리들은 그 때 뭐가 그리도 괴로웠는지 일주일에 오 일 이상은 취해 있었다. 등록금 인상, 구 재단과의 투쟁,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성적에 대한 죄책감, 실패한 연애에 대한 괴로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글쓰기에 대한 괴로움. 참 많은것에 괴로워했던 거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그때는 참 진지하고 괴로워했었다.

그런 삶을 살다보니 자연히 영양섭취도 불균형해지고, 몸도 많이 축나는게 당연한건데, 그때는 그걸 모르고 마구 살았었다. 사실 대학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속물같은 동기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에,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전날에도 술을 잔뜩 먹고 느지막하게 부시시하게 일어나서 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을 한 통 들이키고, 어제 쓰다 만 글들을 정리하고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가슴이 뜨끔해지고 기침이 나오기에 슬며시 담배를 집어넣고 다시 자취방으로 들어왔다. 아, 컨디션이 왜 이러지...하면서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몸이 정말 역대급으로 뜨거워지고 기침이 슬슬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진것처럼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핑핑 돌고,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면서 동시에 숨쉬기가 힘들어지는데, 간신히 핸드폰을 들어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단박에 달려온 친구는 헐, 헐, 하더니 이불째로 나를 업고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아니, 사실 기억은 잘 없는데, 그렇다고 하니...

다행히 사는 곳 근처에 꽤 큰 병원이 있던지라, 친구는 큰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때는 살이 한참 빠져서 몸무게 앞자리가 4를 넘보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죄책감은 조금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가 말하길, 내가 쌀 한가마니보다 무거웠으며 시체 치우는 줄 알았다고 정말 식겁했었다고 했었다.

눈을 떠 보니 병실 안이 것 같았다.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열은 조금 가라앉은 듯 했으나 여전히 힘들었다. 나는 기침을 몇 번인가 하고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렇게 죽는거구나.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이게 바로 회광반조인가...병명은 무얼까? 폐렴? 결핵? 담배를 많이 피웠으니 폐암인가...구역질이 난 거 보면 위암 같기도 하고..정말 쓸 글도 많고 읽을 책도 많은데 이렇게 죽는구나... 평소에 건강관리좀 잘 할껄, 엄마 보고싶다...요절하는 건가. 나도. 많은 선배님들처럼...?'

이런 생각들을 하니 당연히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차오르던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결국은 드라마에서처럼 주룩주룩 떨어졌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오열했다. 아직은 죽기 싫은데, 써야 할 글이 많은데, 연애도 더 해보고 싶은데, 썸녀한테 고백도 못 했는데, 이렇게 요절하는 문학 지망생이 되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 소리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친구가 나타났다.

"야, 왜 울어?"
"나 이렇게 죽는거야? 아직 죽기 싫은데..."

나는 정말로 감정이 폭발하여 목놓아 펑펑 울었고 친구는 가만히 날 보다가 내쪽으로 와서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걱정마. 소희(가명)한테는 네가 참 많이 좋아했었다고 전해줄께"
"야이...ㄴㅇㅁㄻㄴㅇㄹㄴㅇㅁㄹ"

아프고 우는 와중에도 욕설은 잘 나온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고, 친구는 한층 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 부모님 지금 오고 계셔. 마음의 준비 해야지."

정말이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눈물조차 그쳐 버렸다. 코를 한참이나 훌쩍이다가, 기침을 몇 번 하고, 간신히 눈물을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쓰던 노트는 너 가져. 노트북에 있는 글도 너 가져가고"
"그리고 이번에 시집 내기로 했던것도 내 이름은 빼고 내고."
"나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좋은 글도 쓰고, 좋은 시도 쓰고, 더 많은 책도 보고싶었는데..."
"내 노트북 말고 컴퓨터에 유서 있으니까, 그거 사람들한테 읽어주고. 많이 슬퍼하지 말라...."

이야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고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기만 했었다.

"나 무슨 병이래? 폐렴인가? 가슴이 너무 아픈데? 숨쉬기도 힘들어"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나 진짜 죽는거래?"

친구는 아무말도 없이 내 손을 다만 꼭 잡아주었고 나는 거기서 더 가열차게 슬퍼졌었다. 간신히 다시 입을 열어서 나는 이야기했다.

"소희한테는 아무 이야기도 하자 마. 진짜 참 많이 좋아했는데..."

그 이야기를 차마 못하고 나는 다시 펑펑 울었고, 병실 사람들은 기웃거리면서 우리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나는 울고 있었으니까..

한동안 아무말없이 펑펑 우는 나를 보면서 친구는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동안 고마웠다. 너 알게 되서 참 좋았어. 근데 너 죽을 병 아니래"
"????????????????"
"너 그냥 단순히 가벼운 영양실조에 감기몸살이래. 젊은놈이 영양실조냐고 그러시던데? 링거 다 맞고 나가래. 약 처방 받아왔으니까 가자."
"???????????????????????????"

뒤의 일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때만 생각하면 이불킥을 뻥뻥 차고 있고요, 친구 녀석은 아직도 제 얼굴만 보면 "나 무슨 병이래...?" 이러면서 배꼽을 잡으면서 웃으며 저를 놀립니다. 소희(가명)에게는 결국 마음도 전달하지 못했고, 이 년전에 결혼해서 지금은 애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날 이후로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고요, 술과 담배는 조금 줄이고, 즐거운 것을 많이 보고, 맛난 것을 많이 먹고, 책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십 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이 때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3줄요약
1. 술마시느라 아팠다.
2. 죽는 줄 알고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3. 아직도 이불킥하는 중2병 썰이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2-19 09:32)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6
  • 진짜 친구네요 ㅋㅋㅋㅋ
  • ㅊㅊ
  • 이불킥 흑역사는 추천
  • 추천해서 박제합시다. 호롤롤로
  • 크킄… 추.천.한.다
  • ㅋㅋㅋㅋㅋㅋㅋ혼자보기아깝네욬ㅋㅋ
  • 재미있네요 머 사람살다보면 이런저런일들있으니...
  • 추게에박제꽝ㅋㄱㅋㅋㄱ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꿀잼썰이네요
  • 지..워..죠.... 하지만 박제 뙇
  • 야레야레 ㅋㅋㅋ
  • ㅋㅋㅋ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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