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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2/05 04:20:04 |
Name | Moira |
Subject | 일본군이 져서 분하다는 말 |
1. 예전에 리니시아 님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영화를 소개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송신도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요. (https://kongcha.net/pb/pb.php?id=free&no=2001) 전쟁이 끝난 뒤 일본 군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신 뒤 갖은 고생을 하시고 마음을 닫으셨다가, 양심적인 일본인 단체의 지원을 받아 나중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싸움까지 하신 분입니다. 소개글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대화 도중에 할머니가 "신이 있었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졌겠느냐?"라는 말을 하셨다는 부분입니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할머니에게 '혹시 신을 믿을 생각이 없느냐?' 라고 묻는 장면입니다. 할머니는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이 있었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졌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꼭 기억을 해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석을 해보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듯 말 듯 명징한 뭔가가 떠오르지 않더군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것으로 해석하기엔 너무 강한 워딩이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기억의 한켠에 그냥 덮어 두었어요. 2. 그러다 지난 주에 우연히 이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4.html) 한국인 가운데 가장 먼저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밝히셨던 배봉기 할머니(1914-1991)의 자취를 좇아 오키나와의 작은 섬을 방문해 쓴 취재기사입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스물 아홉 살 때 위안부 모집업자의 꾐에 속아 오키나와의 한 섬으로 가게 됩니다. 전쟁 중에는 일본군을, 전쟁이 끝난 뒤에는 오키나와에 진주한 미군을 상대로 똑같은 '위안부'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1975년 활동가 김수섭 씨와 김현옥 씨 부부가 배할머니를 처음 찾아옵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하면 사연이 기구합니다. 1972년에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를 반환받은 뒤 현지에 들어와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특별영주를 허가한다는 발표를 하고, 신고 기간은 3년으로 제한했습니다. 배할머니는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몰랐고, 게다가 한글과 일본 글 둘 다 몰랐습니다. 배할머니는 서류를 내지 못해 강제추방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안면이 있던 식당 주인에게 자신의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털어놓았습니다. 식당 주인이 탄원서를 당국에 제출한 덕택에 강제추방은 면했지만 이 사연이 일본 언론에 알려지고 할머니는 사진(뒷모습)까지 찍혀 신문에 납니다. 그 기사를 보고 김수섭 씨가 찾아온 거죠. 김수섭/김현옥 부부는 조총련 사람입니다. 1972년 총련에서는 조선인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단을 꾸렸고, 그 활동의 일환으로 배할머니를 찾아오게 된 거였습니다. 배할머니는 심신이 피폐한 상태였고 원치 않는 언론의 접근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3년이 지나서야 김씨 부부에게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해요. 그 당시를 증언하는 김씨 부부의 말 중에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배할머니는 "일본군이 져서 분하다"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고 해요. 송신도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과 유사한 워딩이었죠. [당시 배 할머니는 우리말을 이미 잊은 상황이었다. 그런 배 할머니가 일본말로 김씨 부부에게 자주 하던 말은 “유군가 마케타노가 구야시이사”(일본군이 져서 분하다)는 얘기였다. 김현옥씨는 “할머니 입장에선 일본군이 이겨야 (위안부인) 자신도 살 수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일본군이 져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조국 해방’을 뜻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고, 한국전쟁으로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가난했으니까”, “그게 내 팔자다”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배할머니의 사연은 그동안 남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씨 부부는 그 이유를 '할머니가 자기네 총련 계열(북측)과 가까운 탓에 한국에서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냐, 한국 언론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합니다. 이 기사를 쓴 길윤형 기자는 "한국 언론이 보도했다 한들 80년대 군사정권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 요구를 강하게 억눌렀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우리가 '최초'라고 알고 있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나오게 된 것(1991)은 87년 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을 밟아갔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배할머니는 김씨 부부와 교류하고 일종의 의식화 과정을 거쳐 점점 '운동권'이 되어갑니다. 오키나와 총련 지부에서 늘 하던 일이 팀스피릿 훈련 반대운동이었는데 할머니도 따라 집회에 나가시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집회에 서 계신 걸 보고 또 그 사연을 전해듣고 당시 시장이 할머니께 "원래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하는데 생활보호밖에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사죄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1989년 히로히토 천황이 숨졌다는 뉴스가 TV에 나오자 할머니는 "왜 사죄도 안 하고 죽었느냐"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김현옥씨가 "일왕이 뭘 구체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다시 묻자 "사죄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하셨다고요. 김씨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때 하셨던 말인 "아군이 져서 분하다"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팔자로 돌리고 좁디좁은 심리적 공간에 갇혀 생존하고 계시던 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외부활동을 하면서 점점 세계가 넓어졌고, '남의 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셨던 겁니다. 물론 할머니가 그 뒤로도 "아군이 져서 분하다"라는 말씀을 계속 하셨는데 김씨 부부가 일부러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건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어휘와 관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3. 어제 김규항 씨가 쓴 <더러운 여자는 없다>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2012048395&code=990100) 김규항 씨도 최근에 배할머니의 기사를 읽었던 모양입니다. 김규항의 논지는 배할머니가 "우리가 원하는 ‘순결한 조선처녀’라는 위안부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하게 잊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배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는 위안부였음을 털어놓을 때 “유군가 마케타노가 구야시이사”(일본군이 져서 분하다)라고 거듭 말하곤 했다. 할머니는 일본군이 져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조국 해방’을 뜻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고, 민족의식이 없었으며, 자신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소위 양공주)의 연대 요청을 거부한 일을 언급하고, 소녀상의 민족주의와 전근대성을 비판한 후, 박유하 교수를 옹호하며 칼럼을 끝냅니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들’이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는 박유하의 말이다. 과연 위안부 할머니들을 더러운 여자들로 모욕하는 건 누구인가. 더러운 여자는 없다. 더러운 게 있다면 여성을 깨끗한 여자와 더러운 여자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폭력, 그에 기반을 둔 우리의 싸구려 정의일 것이다.] 저는 이 칼럼을 읽고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할머니들을 지칭하면서 굳이 '더러운 여자'라는 표현을 (물론 부정의 뜻으로 쓴 것이지만) 사용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요사이 한국 사람들 중에서 누가 할머니들을 더러운 여자들이라고 불렀던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배할머니의 말씀(일본군이 져서 분하다)을 가지고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사용한 뒤로 이 동지적 관계란 말은 아주 선명한 정치색을 띠는 말이 되었습니다. 사실 박교수가 자기 책에서 배봉기 할머니나 송신도 할머니가 하신 말씀들을 인용하며 '동지적 관계'의 뜻을 설명했다면 저는 어느 정도 납득했을지도 모릅니다. 박교수는 그렇게 하는 대신 (아마 책을 쓸 때는 이런 일화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겠죠)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의 유사 연애를 추적하는 데 페이지를 할애하고 그것을 '동지적 관계'로 해석했습니다. 김규항 씨가 칼럼에서 배봉기 할머니의 그 워딩을 인용한 것은 명백히 박교수의 논리를 긍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석해도 좋을까? 조선인 '위안부'들이 '아군이 져서 분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면, 그것은 아마 일본 군인들이나 주위 일본인들의 잦은 워딩을 따라했을 확률이 높겠죠. 말은 자생력이 있습니다. 말하는 화자의 내면과 무관하게 작동되는 언어의 층위가 있어서, 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베나 디씨, 메갈리아 등에서 퍼져나간 혐오의 말들을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선량한 사람이 무심코 그런 말을 내뱉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XX충'이란 딱지를 붙일 수 있으려면 상당히 신중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이 무의식의 층위에서 나온 말이고, 어떤 것이 의식적인 발화인지 구분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아군이 져서 분하다'를 할머니들의 의식적인 생각이라고, 또는 숨겨진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단언한다면 둘 다 근거 없는 짓일 겁니다. 김규항 씨는 페이스북에서, 김구가 감옥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화를 인용하며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난다.”(백범일지)고 한 김구의 "미친 소리"는 미친 소리가 분명하지만 개인의 의식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군이 져서 분하다"라는 미친 소리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단서일까? 그런 말을 남긴 두 할머니가 모두 일본에 거주하시며 일본어를 사용하셨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일본인들의 의식을 거칠게 보여준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후 한국 땅에서 그런 말을 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했겠죠. 말은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현대 연구자들은 서발턴(subaltern)이란 단어를 종종 사용합니다.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그래서 역사에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못한 민초의 언어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역사가들이 그들을 가리키기 위해 가져온 단어입니다. 인도인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자기 이모할머니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젊은 시절 이모할머니는 인도의 독립운동단체 조직원이었다가 불륜으로 의심받고 자살했는데, 자신의 자살이 임신 때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위해 생리 날짜를 골라 자살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말로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기 몸을 증언 삼아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박유하 교수도 서발턴이란 말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정대협 관계자인 윤정옥 교수가 일본에서 제시한 여성기금을 받은 일부 할머니들을 두고 "죄를 인정하는 동정금을 받으면 피해자는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된다"(1997. 2. 시민연대 주체 국제 세미나)라고 말한 사실을 인용하면서 정대협이 위안부들을 두 번 울렸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정대협의 단정은, 억압받는 하위 계층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늘 상위 계층이라며 “서벌턴(subaltern)은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스피박(G. Spivak)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화해를 위하여, 83쪽, parkyuha.org) 일리는 있습니다. 윤정옥 교수가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면 대단히 문제되는 발언입니다. (정대협이 여성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을 창녀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마 이 기록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창녀라고 부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박교수처럼 '위안부'들의 언어를 연애관계로 해석한다거나 동지적 관계로 해석하는 것 역시 자신이 비판하는 정대협과 똑같이 '상위 계층'의 대변이며 환원, 왜곡입니다. 윤정옥 교수와 정대협이 할머니들을 과거 과잉 정치화시킨 측면이 있다면 박교수는 할머니들에게서 일말의 정치성마저 소거하려고 합니다. 서발턴의 언어는 난해한 언어입니다. 교육받지 못한 조부모님들과 함께 살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옛날 어른들은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많이 서투르기 때문에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금방 알아채기 힘듭니다. 아마도 그런 상태였을 배봉기 할머니가 예전과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총련 출신의 김씨 부부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배할머니는 김씨 부부(상위주체, 지식인)에 의해 진짜 자기 언어, 자기 생각을 왜곡당한 것일까요? 배할머니가 "일왕이 사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은 진짜 자기 언어가 아니고, '아군이 져서 분하다'는 진짜 자기 언어인 걸까요? 나눔의 집에 계신 할머니들이 박유하 교수를 비난하는 것은 정대협에게 세뇌당한 때문일까요? 90 넘은 할머니들이 어떻게 박교수의 책을 읽었겠느냐, 정대협 사람들이 들쑤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구자는 서발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토씨와 어조까지, 섣부른 해석이나 자의적 합리화 없이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죠. '아군이 져서 분하다'와 '일왕이 사죄했으면 좋겠다'를 한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나올 수 없는 발언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겁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 입밖으로 뱉는 무수한 모순된 말들을 생각해 본다면, '헤어져'와 '사랑해'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반복하는 우리를 생각해 본다면 말입니다. '아군이 져서 분하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가 일본군과 동지도 아니고, '일왕이 사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민족주의 투사인 것도 아닙니다. 스피박의 이모할머니가 죽음으로 보여주었듯이, 서발턴은 말 자체를 할 수 없도록(그의 말을 우리가 들을 수 없도록) 구조적, 정치적 강제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서발턴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은 어찌됐건 그 구조를 깨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중 어떤 분들은 그렇게 증언과 활동을 통해 그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국제적인 인권활동가가 되셨고, 그것은 경탄하고 존경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들에게서 정치성을 지워 말 없는 서발턴으로 돌려보내려는 박교수의 시도에 소위 '좌파 지식인' 김규항 씨가 동조하거나 지원을 보내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서발턴을 온전한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것을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좌파의 중요한 과제인데 말입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2-15 08:2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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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예의 그 칼럼에 대한 반론 또한 실렸네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0315331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031533121
아, 이 링크를 포함시킬까 말까 하다가 너무 길어져서 뺐는데,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서 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중진 전문가로 알고 있는데, 이번 반론을 보니 좀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쓰신 것 같아요. 마지막 문단은 뺐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관계에 대한 반론으로는 현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기지촌 할머니들이 서로 갈등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고 연대하는 관계라는 점을 지적했고, 정대협과 위안부 운동의 역사성을 단순한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김규항 씨가 재반론은 하지 않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네요.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서 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중진 전문가로 알고 있는데, 이번 반론을 보니 좀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쓰신 것 같아요. 마지막 문단은 뺐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관계에 대한 반론으로는 현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기지촌 할머니들이 서로 갈등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고 연대하는 관계라는 점을 지적했고, 정대협과 위안부 운동의 역사성을 단순한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김규항 씨가 재반론은 하지 않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네요.
김규향씨의 숨어있는 의도가 어떠했든, \'더러운 여자는 없다.\'가 하고 싶은 말에는 동의합니다.
몸을 팔았든, 간강을 당했든 더럽다고 이야기하고 숨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겠지요.
박유하씨나 김규향씨나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서 더 나가는 순간부터 망쳐 버리는 것이겠지요.
일제시대의 조선의 하층민의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위안부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삶이였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박유하씨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조선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사용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더 보기
몸을 팔았든, 간강을 당했든 더럽다고 이야기하고 숨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겠지요.
박유하씨나 김규향씨나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서 더 나가는 순간부터 망쳐 버리는 것이겠지요.
일제시대의 조선의 하층민의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위안부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삶이였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박유하씨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조선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사용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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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향씨의 숨어있는 의도가 어떠했든, \'더러운 여자는 없다.\'가 하고 싶은 말에는 동의합니다.
몸을 팔았든, 간강을 당했든 더럽다고 이야기하고 숨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겠지요.
박유하씨나 김규향씨나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서 더 나가는 순간부터 망쳐 버리는 것이겠지요.
일제시대의 조선의 하층민의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위안부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삶이였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박유하씨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조선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사용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이나 일반 대중에게 \'정조라는 관념때문에 비난받을 사람은 없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김규항씨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박유하씨나 김규항씨나 자신의 글과 책을 더 잘팔리게 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단어와 주장을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는 합니다.
몸을 팔았든, 간강을 당했든 더럽다고 이야기하고 숨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겠지요.
박유하씨나 김규향씨나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서 더 나가는 순간부터 망쳐 버리는 것이겠지요.
일제시대의 조선의 하층민의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위안부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삶이였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박유하씨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조선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사용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이나 일반 대중에게 \'정조라는 관념때문에 비난받을 사람은 없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김규항씨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박유하씨나 김규항씨나 자신의 글과 책을 더 잘팔리게 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단어와 주장을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김규항이나 박교수 둘 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대전제를 내세워요. 자발적으로 갔든지 강제로 끌려갔든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지금 굳이 칼럼으로 쓸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박교수가 \"그런데 당신들 사실 끌려간 건 아니잖아?\"를 길게 덧붙인다는 거죠. 대전제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그 전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면, 대전제를 아예 못 알아먹는 사람 취급을 하고.
김규항 씨는 예전 아웃사이더 시절에 좋아하던 칼럼니스트였는데, 요새 경향에서 오랫동안 고정지면을 갖고 있더니 글이 많이 재미없어졌어요. 경향은 필자 좀 갈았으면...
김규항 씨는 예전 아웃사이더 시절에 좋아하던 칼럼니스트였는데, 요새 경향에서 오랫동안 고정지면을 갖고 있더니 글이 많이 재미없어졌어요. 경향은 필자 좀 갈았으면...
한겨레 기사가 아주 좋네요. 저는 [일본이 져서 분하다]라는 표현이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어요.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이 할머니에게서 쏟아져 나왔대도 한겨레기사에서 짧게 들려준 할머니의 일생이 모든 걸 압도해 버리고 마니까요. 할머니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씀일 거예요. 마치 시골초등학생이 글짓기에서 집에서 키우던 염소를 도살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서 결말에 염소고깃국을 맛있게 먹었다고 끝맺는 것과 같은 천진함이겠죠.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의중으로 그런 말... 더 보기
한겨레 기사가 아주 좋네요. 저는 [일본이 져서 분하다]라는 표현이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어요.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이 할머니에게서 쏟아져 나왔대도 한겨레기사에서 짧게 들려준 할머니의 일생이 모든 걸 압도해 버리고 마니까요. 할머니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씀일 거예요. 마치 시골초등학생이 글짓기에서 집에서 키우던 염소를 도살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서 결말에 염소고깃국을 맛있게 먹었다고 끝맺는 것과 같은 천진함이겠죠.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의중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는 할머니가 일생을 사시면서 겪은 고초와 할머니만의 의식에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는 심연의 사연이지 우리가 감히 일본과 동지관계입네 어쩌네 할 수 없는 걸 거예요.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 할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 못하고 평생을 은둔자로 살고자 하신 거예요. 그 누구에게서도 더럽다는 말을 가상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은 맘이셨을 거예요. 그래서 누구도 꺼내선 안 될 말이기도 할거예요. 김규항이라는 사람의, 굳이 말초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사람들의 의식을 깨치려는 시도조차도 싫으셨을 거예요.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리구.. Moira님 글 넘 잘 쓰신당~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 할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 못하고 평생을 은둔자로 살고자 하신 거예요. 그 누구에게서도 더럽다는 말을 가상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은 맘이셨을 거예요. 그래서 누구도 꺼내선 안 될 말이기도 할거예요. 김규항이라는 사람의, 굳이 말초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사람들의 의식을 깨치려는 시도조차도 싫으셨을 거예요.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리구.. Moira님 글 넘 잘 쓰신당~
글쵸 기사가 너무 좋더라구요! ㅜㅜ 음 전형적인 한겨레 풍의 기사이긴 한데 그래도 한겨레가 저력이 있달까...
타인의, 그것도 이런 분의 생애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코끼리 발톱 만지고 코끼린가 추측하는 거겠죠. 그래도 할머니 곁에서 같이한 분들이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에요. 이런 분들의 삶의 토막토막이라도 모아둘 수 있으니까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노인들하고 잘 못 사귀는데, 특별히 사람과 잘 융화되고 정이 막 오가고 상대에게서 말도 잘 끄집어내고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할머니 만나서 인터뷰하라 그러면 죽... 더 보기
타인의, 그것도 이런 분의 생애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코끼리 발톱 만지고 코끼린가 추측하는 거겠죠. 그래도 할머니 곁에서 같이한 분들이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에요. 이런 분들의 삶의 토막토막이라도 모아둘 수 있으니까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노인들하고 잘 못 사귀는데, 특별히 사람과 잘 융화되고 정이 막 오가고 상대에게서 말도 잘 끄집어내고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할머니 만나서 인터뷰하라 그러면 죽... 더 보기
글쵸 기사가 너무 좋더라구요! ㅜㅜ 음 전형적인 한겨레 풍의 기사이긴 한데 그래도 한겨레가 저력이 있달까...
타인의, 그것도 이런 분의 생애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코끼리 발톱 만지고 코끼린가 추측하는 거겠죠. 그래도 할머니 곁에서 같이한 분들이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에요. 이런 분들의 삶의 토막토막이라도 모아둘 수 있으니까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노인들하고 잘 못 사귀는데, 특별히 사람과 잘 융화되고 정이 막 오가고 상대에게서 말도 잘 끄집어내고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할머니 만나서 인터뷰하라 그러면 죽어도 못할 거 같아요.
김규항 씨 같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에 대해 갖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신영복 선생이 작고하셨을 때 고종석 씨가 트위터에다 썼거든요. \'선생을 존경하지만 그분의 책에서 배운 바는 전혀 없다\' 뭐 이런.. 이 비슷한 태도인 것 같아요.
타인의, 그것도 이런 분의 생애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코끼리 발톱 만지고 코끼린가 추측하는 거겠죠. 그래도 할머니 곁에서 같이한 분들이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에요. 이런 분들의 삶의 토막토막이라도 모아둘 수 있으니까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노인들하고 잘 못 사귀는데, 특별히 사람과 잘 융화되고 정이 막 오가고 상대에게서 말도 잘 끄집어내고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할머니 만나서 인터뷰하라 그러면 죽어도 못할 거 같아요.
김규항 씨 같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에 대해 갖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신영복 선생이 작고하셨을 때 고종석 씨가 트위터에다 썼거든요. \'선생을 존경하지만 그분의 책에서 배운 바는 전혀 없다\' 뭐 이런.. 이 비슷한 태도인 것 같아요.
[아군이 져서 분하다] 라는 말은 애초에 일본군이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미군에게 같은 일을 강요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충분합니다. 아군, 그러니까 일본군이 승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였을까요? 동지적 관계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이 동지의식을 느껴셔였을까요, 아니면 노에가 흔히 느끼는 의식이였을까요.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게 되고, 미군 수용소에서 강요당하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아군이 져서 분해지게 된 것은 다른 해석을 동원할 필요도 없는 말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참 뒤에서야 천황이 신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고, 인간이 된 덴노의 잘못을 알게 된거죠. 이런 글은 볼수록 마음이 찟어지는것 같네요.
한참 뒤에서야 천황이 신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고, 인간이 된 덴노의 잘못을 알게 된거죠. 이런 글은 볼수록 마음이 찟어지는것 같네요.
그렇네요. 일본이 이겼으면 군대가 돌아가고 위안부 생활도 끝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군요. 미군과 관련시켜서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이 말이 듣는 사람에겐 참 많은 울림을 주는데, 정작 할머니한테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느냐고 물어봤다면 할머니도 대답을 잘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배할머니가 천황의 잘못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 그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이 \'일본 천황이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된다\"라고 하실 때 어떤 사람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고(한일전에서 이기는 것처럼) 또 어떤 사람들은 불쾌해 하는 것 같고(국제관계에 대해 상식이 없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생각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일본에 계신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또 다른 울림이 있네요.
배할머니가 천황의 잘못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 그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이 \'일본 천황이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된다\"라고 하실 때 어떤 사람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고(한일전에서 이기는 것처럼) 또 어떤 사람들은 불쾌해 하는 것 같고(국제관계에 대해 상식이 없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생각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일본에 계신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또 다른 울림이 있네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들에게서 정치성을 지워 말 없는 서발턴으로 돌려보내려는 박교수의 시도에 소위 \'좌파 지식인\' 김규항 씨가 동조하거나 지원을 보내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서발턴을 온전한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것을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좌파의 중요한 과제인데 말입니다.]
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박유하 교수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하나 같이 \"소위 좌파 지식인\"라는 지칭이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소수 의견에 대한 대중의 탄압이라는... 더 보기
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박유하 교수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하나 같이 \"소위 좌파 지식인\"라는 지칭이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소수 의견에 대한 대중의 탄압이라는... 더 보기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들에게서 정치성을 지워 말 없는 서발턴으로 돌려보내려는 박교수의 시도에 소위 \'좌파 지식인\' 김규항 씨가 동조하거나 지원을 보내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서발턴을 온전한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것을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좌파의 중요한 과제인데 말입니다.]
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박유하 교수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하나 같이 \"소위 좌파 지식인\"라는 지칭이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소수 의견에 대한 대중의 탄압이라는 시나리오에 버튼이 눌려서 원래 그들이 만물을 보는 관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죠. 사용하는 워딩도 전근대성이니 민족주의니, 연대 의식이니 문제 의식과 해법도 똑같죠. 위안부 문제 같은 특수한 사항에 우익과 좌익 사이의 싸움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멍청해서 우익의 관점을 사용하고 있으니 좌파인 우리가 그 헛점을 지적하겠다는 만병통치약이 먹힐리가 없어도 그냥 그대로 우기는 거죠. 아마 김규항이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의 어떤 문제들에는 참신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관점을 여기저기 쓰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위안부 문제는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해를 벗어난 자료를 접하기도 어렵기에 일부러 피하고 싶어요. 세월호 사건은 동시대인으로서 어떤 책임감이나 죄책감이 무겁게 내려오기에 그런 걸 돌파하고 이해해보려고 하는데(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그럴 용기가 안 나네요.
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박유하 교수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하나 같이 \"소위 좌파 지식인\"라는 지칭이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소수 의견에 대한 대중의 탄압이라는 시나리오에 버튼이 눌려서 원래 그들이 만물을 보는 관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죠. 사용하는 워딩도 전근대성이니 민족주의니, 연대 의식이니 문제 의식과 해법도 똑같죠. 위안부 문제 같은 특수한 사항에 우익과 좌익 사이의 싸움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멍청해서 우익의 관점을 사용하고 있으니 좌파인 우리가 그 헛점을 지적하겠다는 만병통치약이 먹힐리가 없어도 그냥 그대로 우기는 거죠. 아마 김규항이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의 어떤 문제들에는 참신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관점을 여기저기 쓰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위안부 문제는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해를 벗어난 자료를 접하기도 어렵기에 일부러 피하고 싶어요. 세월호 사건은 동시대인으로서 어떤 책임감이나 죄책감이 무겁게 내려오기에 그런 걸 돌파하고 이해해보려고 하는데(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그럴 용기가 안 나네요.
음 박교수 지지명단에 전통적인 의미에서 좌파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시민 고종석 장정일 홍세화 문부식이 그나마 알려진 인물인데 다 리버럴입니다. 김규항씨가 그렇게 싫어하는 리버럴들...ㅎㅎ 이들을 넓은 의미의 좌파 지식인으로 묶을 수는 있지만 김규항 씨와는 정치적 노선이 달라요. 김규항 씨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두고 개량주의 정당이라고 비판하며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지요.
김규항의 전략은 리버럴들이 좋아하는 \'성찰적인\' 화두를 던지고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인간인가?\'를 그들로 하여금 자... 더 보기
김규항의 전략은 리버럴들이 좋아하는 \'성찰적인\' 화두를 던지고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인간인가?\'를 그들로 하여금 자... 더 보기
음 박교수 지지명단에 전통적인 의미에서 좌파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시민 고종석 장정일 홍세화 문부식이 그나마 알려진 인물인데 다 리버럴입니다. 김규항씨가 그렇게 싫어하는 리버럴들...ㅎㅎ 이들을 넓은 의미의 좌파 지식인으로 묶을 수는 있지만 김규항 씨와는 정치적 노선이 달라요. 김규항 씨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두고 개량주의 정당이라고 비판하며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지요.
김규항의 전략은 리버럴들이 좋아하는 \'성찰적인\' 화두를 던지고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인간인가?\'를 그들로 하여금 자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촛불집회에 나간 시민들에게 \'너는 집회에 나와서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뿌듯해하지만 집에 있는 애한테 전화걸어서 학원 갔냐고 묻는 이중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꾸짖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터지면 \'너희는 원래 마음속으로 더러운 여자와 깨끗한 여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사회과학적 베이스와 관점이 없는 게으른 좌파에게서 기독교적 영성주의/교조주의가 구현되는 모습입니다. 아마 김규항에게서 기독교를 제외하면 제가 쓰는 글의 성격과도 비슷한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공부가 부족하면 자기 마음을 재료로 글을 쓰는 법이니까...
저는 <제국의 위안부> 문제를 좌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독해력이 부족한 리버럴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진짜\' 좌파보다 \'진짜\' 리버럴이 더 희귀한 사회라고 생각해서요.
김규항의 전략은 리버럴들이 좋아하는 \'성찰적인\' 화두를 던지고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인간인가?\'를 그들로 하여금 자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촛불집회에 나간 시민들에게 \'너는 집회에 나와서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뿌듯해하지만 집에 있는 애한테 전화걸어서 학원 갔냐고 묻는 이중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꾸짖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터지면 \'너희는 원래 마음속으로 더러운 여자와 깨끗한 여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사회과학적 베이스와 관점이 없는 게으른 좌파에게서 기독교적 영성주의/교조주의가 구현되는 모습입니다. 아마 김규항에게서 기독교를 제외하면 제가 쓰는 글의 성격과도 비슷한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공부가 부족하면 자기 마음을 재료로 글을 쓰는 법이니까...
저는 <제국의 위안부> 문제를 좌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독해력이 부족한 리버럴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진짜\' 좌파보다 \'진짜\' 리버럴이 더 희귀한 사회라고 생각해서요.
서발턴(subaltern)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알쏭달쏭하여 나름 공부를 해봤어요 (고작 위키 일독 정도....\'ㅅ\';;). 대충 어떤 용어인지 감을 잡고나서 다시 본문을 읽어보고 김규항씨 글도 찾아보고 하면서 받은 인상은 뭔가 다들 서발턴이란 말을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쓰는게 아닌가 하는 거에요.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그리스어로는 모르겠고) 라틴어로는 subalternus가 어원입니다. 어려운 말인줄 알았는데 그냥 영어의 subordinate과 의미가 같아요. 종속된 것. 현대에 ... 더 보기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그리스어로는 모르겠고) 라틴어로는 subalternus가 어원입니다. 어려운 말인줄 알았는데 그냥 영어의 subordinate과 의미가 같아요. 종속된 것. 현대에 ... 더 보기
서발턴(subaltern)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알쏭달쏭하여 나름 공부를 해봤어요 (고작 위키 일독 정도....\'ㅅ\';;). 대충 어떤 용어인지 감을 잡고나서 다시 본문을 읽어보고 김규항씨 글도 찾아보고 하면서 받은 인상은 뭔가 다들 서발턴이란 말을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쓰는게 아닌가 하는 거에요.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그리스어로는 모르겠고) 라틴어로는 subalternus가 어원입니다. 어려운 말인줄 알았는데 그냥 영어의 subordinate과 의미가 같아요. 종속된 것. 현대에 들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용례 비슷한 방향으로 처음 이 말을 쓴 사람은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입니다. 그런데 그람시가 이 말을 쓴 부분을 보면 내포야 다르겠지만 그 외연은 [프롤레타리아]와 다르지 않아요. 헤게모니에 종속된 사람들인 거지요.
가야트리 스피박을 비롯한 인도 계통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연구자들은 이 용어를 조금 더 자신들의 연구에 쓸만한 방향으로 조탁했는데, 여기서 목소리(voice)가 키워드로 등장해요. 식민지배층은 피식민지 사람들의 [지식] 혹은 [앎의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공유해요. 피식민된 사람들도 다들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름 확립한 앎의 체계와 그 앎에 접근하는 배움의 체계 등등등을 다 가지고 있어요. 말하자면 식민지배자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론(epistemology)]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일단 열강이 힘으로 이들을 제압한 뒤에는 문화적 제압이 뒤따르고, 이 문화적 제압, 다른 말로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가 확립됨과 동시에 이 기존의 지식론은 지식-->미신으로 강등되고 말아요.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위쪽까지 어떻게든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배층의 언어를 (한국어/일본어 같은 언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 말하는 내용/ 레토릭/ 포맷 등등) 채용해서 말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새로 배운 언어가 기존에 배운 언어 위에 한 겹 덮이면서 왜곡이 발생해요.
예컨대 이런 사례를 들 수 있어요. 누군가가 미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다 적발되어 추방될 위기를 맞았는데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려고 한다고 해봐요. 당연히 지배층(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언어를 채택해야겠지요. 안성기였나가 출연했던 어떤 옛날 영화중에 그가 미국에서 불법체류를하다 걸려서 조사를 받는 장면이 있어요. 그 때 조사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진심으로(!?) 장엄하게 미국 국가를 부르지요. 이에 감격한 조사관이 안성기에게 유리하게 편의를 봐주고 뭐 그런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배봉기 할머니의 \"아군...\" 발언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역사를 겪으며 일본에서 살면서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조탁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현지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주류 네러티브를 자신의 네러티브로 채택하는 거지요. 마치 안성기가 미국 국가를 부른 것처럼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고나면 본문에서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조부모님...] 사례는 용어를 약간 불분명하게 사용하고 적용했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있어요. 기실 조부모님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거나 이해하기 힘든 건 그분들의 교육수준 낮아서도 아니요 그분들의 헤게모니에 대한 종속성이 우리보다 강해서도 아니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그분들을 지배하고 있는 헤게모니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헤게모니와 [달라서]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요. 마치 전쟁세대와 전후세대가 전혀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듯이, 애국자가 되는 것이 가장 섹시했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과 저항투사로 사는 것이 뉴 섹시였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과 쿨한 리버럴 비평가가 되는 게 슈퍼 섹시 가이가 되는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각자를 지배하는 헤게모니가 다른 것일 뿐 그 종속성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조부모님들을 서발턴이라고 부를 때 조부모님들이 우리를 서발턴이라고 부른대도 실은 질적으로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어요. 배봉기 할머니의 경우 [아군이 져서 분하다]와 [일왕의 사죄]가 둘 다 본마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모두 당대의 헤게모니에게 적합한 목소리를 골라서 채택하기 위한 서발턴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한다면, 지금 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내 최강의 헤게모니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민족주의 담론에 종속되어있는 건 아닐까요? 더 나아가 조금 더 회의주의자 흉내를 내자면, 과연 본연의 목소리를 찾아서 드러내야한다는 과업 자체가 달성 가능한 것인지, 대체 고도로 조직된 문화 속에서 그 필터를 통과하지 않은 본심이란 게 있기는 한건지도 따져봐야겠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이만 줄입니다;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그리스어로는 모르겠고) 라틴어로는 subalternus가 어원입니다. 어려운 말인줄 알았는데 그냥 영어의 subordinate과 의미가 같아요. 종속된 것. 현대에 들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용례 비슷한 방향으로 처음 이 말을 쓴 사람은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입니다. 그런데 그람시가 이 말을 쓴 부분을 보면 내포야 다르겠지만 그 외연은 [프롤레타리아]와 다르지 않아요. 헤게모니에 종속된 사람들인 거지요.
가야트리 스피박을 비롯한 인도 계통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연구자들은 이 용어를 조금 더 자신들의 연구에 쓸만한 방향으로 조탁했는데, 여기서 목소리(voice)가 키워드로 등장해요. 식민지배층은 피식민지 사람들의 [지식] 혹은 [앎의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공유해요. 피식민된 사람들도 다들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름 확립한 앎의 체계와 그 앎에 접근하는 배움의 체계 등등등을 다 가지고 있어요. 말하자면 식민지배자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론(epistemology)]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일단 열강이 힘으로 이들을 제압한 뒤에는 문화적 제압이 뒤따르고, 이 문화적 제압, 다른 말로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가 확립됨과 동시에 이 기존의 지식론은 지식-->미신으로 강등되고 말아요.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위쪽까지 어떻게든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배층의 언어를 (한국어/일본어 같은 언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 말하는 내용/ 레토릭/ 포맷 등등) 채용해서 말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새로 배운 언어가 기존에 배운 언어 위에 한 겹 덮이면서 왜곡이 발생해요.
예컨대 이런 사례를 들 수 있어요. 누군가가 미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다 적발되어 추방될 위기를 맞았는데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려고 한다고 해봐요. 당연히 지배층(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언어를 채택해야겠지요. 안성기였나가 출연했던 어떤 옛날 영화중에 그가 미국에서 불법체류를하다 걸려서 조사를 받는 장면이 있어요. 그 때 조사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진심으로(!?) 장엄하게 미국 국가를 부르지요. 이에 감격한 조사관이 안성기에게 유리하게 편의를 봐주고 뭐 그런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배봉기 할머니의 \"아군...\" 발언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역사를 겪으며 일본에서 살면서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조탁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현지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주류 네러티브를 자신의 네러티브로 채택하는 거지요. 마치 안성기가 미국 국가를 부른 것처럼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고나면 본문에서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조부모님...] 사례는 용어를 약간 불분명하게 사용하고 적용했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있어요. 기실 조부모님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거나 이해하기 힘든 건 그분들의 교육수준 낮아서도 아니요 그분들의 헤게모니에 대한 종속성이 우리보다 강해서도 아니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그분들을 지배하고 있는 헤게모니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헤게모니와 [달라서]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요. 마치 전쟁세대와 전후세대가 전혀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듯이, 애국자가 되는 것이 가장 섹시했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과 저항투사로 사는 것이 뉴 섹시였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과 쿨한 리버럴 비평가가 되는 게 슈퍼 섹시 가이가 되는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각자를 지배하는 헤게모니가 다른 것일 뿐 그 종속성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조부모님들을 서발턴이라고 부를 때 조부모님들이 우리를 서발턴이라고 부른대도 실은 질적으로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어요. 배봉기 할머니의 경우 [아군이 져서 분하다]와 [일왕의 사죄]가 둘 다 본마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모두 당대의 헤게모니에게 적합한 목소리를 골라서 채택하기 위한 서발턴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한다면, 지금 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내 최강의 헤게모니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민족주의 담론에 종속되어있는 건 아닐까요? 더 나아가 조금 더 회의주의자 흉내를 내자면, 과연 본연의 목소리를 찾아서 드러내야한다는 과업 자체가 달성 가능한 것인지, 대체 고도로 조직된 문화 속에서 그 필터를 통과하지 않은 본심이란 게 있기는 한건지도 따져봐야겠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이만 줄입니다;
아 역시 외국어를 쓰면 장문의 댓글이 따라오게 되어 있어...ㅎㅎ (농담이구요). \'아군\'과 \'일왕사죄\'라는 워딩이 서발턴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에 일단 크게 동의하고, 좋은 예를 들어 명료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발턴은 실제로 모호한 개념입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이 기존의 좌파적 개념들과 달리 이론적 엄밀함이 없는 단어라서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민중\'이란 단어와 겹칩니다. 서발턴이나 민중이나 크게는 식민지 하위주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민중이란 단어에 결핍된 \'여성 하위주체\'의... 더 보기
서발턴은 실제로 모호한 개념입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이 기존의 좌파적 개념들과 달리 이론적 엄밀함이 없는 단어라서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민중\'이란 단어와 겹칩니다. 서발턴이나 민중이나 크게는 식민지 하위주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민중이란 단어에 결핍된 \'여성 하위주체\'의... 더 보기
아 역시 외국어를 쓰면 장문의 댓글이 따라오게 되어 있어...ㅎㅎ (농담이구요). \'아군\'과 \'일왕사죄\'라는 워딩이 서발턴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에 일단 크게 동의하고, 좋은 예를 들어 명료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발턴은 실제로 모호한 개념입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이 기존의 좌파적 개념들과 달리 이론적 엄밀함이 없는 단어라서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민중\'이란 단어와 겹칩니다. 서발턴이나 민중이나 크게는 식민지 하위주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민중이란 단어에 결핍된 \'여성 하위주체\'의 다양한 맥락들이 서발턴이란 단어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안부\'와 서발턴을 연결시킬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민중으로서의 위안부...좀 이상하죠)
조부모님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그분들이 종속된 헤게모니와 우리의 헤게모니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만, 보통 서발턴을 이야기할 때 특정 헤게모니와 연결시켜서 A헤게모니-A서발턴, B헤게모니-B서발턴 같은 식으로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지식인 집단도 서구식/일본식 헤게모니에 종속돼 있으니 서발턴이라고 불러야 하고 박유하 교수도 서발턴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건 좀 아니죠.
서발턴의 말을 복원하는 일이 1세대 서발턴 연구자들의 과업이었다면, 스피박 같은 2세대들은 서발턴의 말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모할머니의 예를 들었던 것처럼요. 할머니들이 \'일왕은 사죄하라\'라고 한다고 그들이 민족주의에 포섭되어 있다고 하는 건 대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 같구요, 오히려 그분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행동\'이 가리키는 방향성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행동이란 \'수행적 발화\'를 포함한, 수요집회, 시위, 베트남 방문, 연대 행사 등의 정치적 행동들입니다. \'일왕은 사죄하라\'라는 발화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말했던 것처럼 \'여기 (이렇게 말하는) 내가 살아 있다\'라는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수행적 발화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유하 교수는 소위 서브-서발턴(정대협과 관련된 할머니들 이외의 할머니들)의 눌린 목소리를 복원하겠다고 나섰지만, 복원하지 못했죠. 그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민족주의적인\'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만드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 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서브-서발턴의 목소리는 서발턴을 제거한다고 나오는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민주노총을 없앤다고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듯이.
서발턴은 실제로 모호한 개념입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이 기존의 좌파적 개념들과 달리 이론적 엄밀함이 없는 단어라서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민중\'이란 단어와 겹칩니다. 서발턴이나 민중이나 크게는 식민지 하위주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민중이란 단어에 결핍된 \'여성 하위주체\'의 다양한 맥락들이 서발턴이란 단어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안부\'와 서발턴을 연결시킬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민중으로서의 위안부...좀 이상하죠)
조부모님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그분들이 종속된 헤게모니와 우리의 헤게모니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만, 보통 서발턴을 이야기할 때 특정 헤게모니와 연결시켜서 A헤게모니-A서발턴, B헤게모니-B서발턴 같은 식으로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지식인 집단도 서구식/일본식 헤게모니에 종속돼 있으니 서발턴이라고 불러야 하고 박유하 교수도 서발턴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건 좀 아니죠.
서발턴의 말을 복원하는 일이 1세대 서발턴 연구자들의 과업이었다면, 스피박 같은 2세대들은 서발턴의 말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모할머니의 예를 들었던 것처럼요. 할머니들이 \'일왕은 사죄하라\'라고 한다고 그들이 민족주의에 포섭되어 있다고 하는 건 대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 같구요, 오히려 그분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행동\'이 가리키는 방향성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행동이란 \'수행적 발화\'를 포함한, 수요집회, 시위, 베트남 방문, 연대 행사 등의 정치적 행동들입니다. \'일왕은 사죄하라\'라는 발화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말했던 것처럼 \'여기 (이렇게 말하는) 내가 살아 있다\'라는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수행적 발화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유하 교수는 소위 서브-서발턴(정대협과 관련된 할머니들 이외의 할머니들)의 눌린 목소리를 복원하겠다고 나섰지만, 복원하지 못했죠. 그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민족주의적인\'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만드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 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서브-서발턴의 목소리는 서발턴을 제거한다고 나오는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민주노총을 없앤다고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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