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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8/26 17:48:57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노란봉투법 (안)간단 정리
예전에 올렸던 통상임금법 관련 해설이 쉽게 쓴다고 쓰는데도 어렵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글을 어렵게 쓰는 건 쉽고, 쉽게 쓰는 건 어렵다고 하는데, 제 능력이 거기까지 겠거니 싶더군요.
이번 내용도 쉽게 풀어쓰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는 건 현실적인 한계라고 생각해 주십쇼.


1. 왜 노랑봉투냐

뭐 유래는 워낙 유명하니 간단히 짚고 넘어가죠.

노회찬 의원 생전에 정의당에서 주도하여 입법 시도가 이루어진 법이고, 쌍용자동차 장기 파업 사태에서 비롯합니다.  파업 사태 이후 주동자들 개인이 회사가 입은 손해액 전액을 노동조합과 연대책임지게 되니,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노란봉투 캠페인이었고, 예전 월급봉투 색과 맞물려 법안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파업을 할 때의 보호범위는 노동조합법이 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노란봉투법이라는 법안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이번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쉽게 부르는 말입니다.  '민식이법'이 도로교통법 개정안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각설하고 기본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노사 양측에는 '근로를 제공할 의무'와 '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당연히 계약을 위반하면 계약 위반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회사는 임금체불이 되므로 노동청 진정, 민사소송을 통해 임금지급을 강요 받거나, 근로기준법 제43조 위반을 이유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근로자는 무단결근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고, 근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임금 지급이 거절됩니다.  흔히 말하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이죠.  상황은 심플하게 정리됩니다.

그런데 한명이 결근하는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해서 회사 업무가 마비되었을 땐 다른 단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집단적인 위력행사로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방해한 게 되거든요.  이때 민사적으로는 회사 업무가 마비되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이 발생하고, 형사 측면에서는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근데 사회법의 시선에서 파업을 비롯한 쟁위행위는 갑을관계에서 무력한 근로자들이 회사에 맞서서 대항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방법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노조법에서는 [정당한 쟁의행위]에 한해서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해주고 있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노동조합에 청구할 수 없고, 업무방해죄로 고소할 수도 없습니다.  뭐 소를 제기하거나 고소장을 접수하는 것 자체야 가능하겠지만, 회사가 원하는 판결문을 받아볼 수는 없을 거란 얘깁니다.


2. 정당한 쟁의행위가 뭐냐

결국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지가 제일 중요해집니다.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모든 책임이 면책되지만, 정당하지 않으면 옴팡 뒤집어 쓰게 되니까요.  무엇을 갖춰야 정당하다고 판단 받을 수 있을까요.

법과 판례에서는 주체/절차/수단이 모두 정당해야 한다고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주체]가 법적 요건을 갖춘 노동조합이어야 하고, [절차]적으로 노동위원회를 통한 조정과정과 노조원 투표가 이뤄져야 하며, [수단] 측면에서는 폭력/파괴행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민사배상과 형사처벌이라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겁니다.

솔직히 실무하는 입장에서 근래의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그렇게 영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파업 현장에서 양쪽이 쇠파이프 들고 다이다이 붙는 경우도 있고, 사업장 때려부수거나, 서로 교섭위원 감금하거나, 회사에서 용역업체 불러다 쓰거나 뭐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현업에서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나서면 젊은 조합원들 다 떨어져 나갑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사측 교섭위원으로 나선 남자 노무사가 엘리베이터 잘못 탔다가 조합원들한테 인디언밥 당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교섭 진행했던 사업장들에서 말로 긁는 이상의 상황은 벌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금속노조와 교섭 진행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선 명확히 그어놓고 책 잡힐 일 안 만들려고 노력하더군요.

조합원 투표와 조정절차 법에서 정해놓은대로 다 제대로 지키고, 파업 때에는 일종의 문화제 형태로 사업장 일부 점거하는 게 최근의 일반적인 파업현장 모습입니다.  파업을 해도 보통 사업장 안에 조합원들 다 모아놓거든요.  세력 과시도 하고, 이탈자도 막는 목적이 있는 걸로 압니다.  다만 일부 규모가 큰 노조에서는 연례적으로 절차든 사유든 무시하고 정치 파업에 돌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치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전면 파업 같은 게 있겠네요.  요런 건들은 회사에서 손배 청구하는 사례가 꽤 발생합니다.


3. 배상책임 제한은 뭔 소리냐

기존 법안과 판례에서는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와, 노동조합 간부 개개인이 각각 전액에 관해서 부담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만약 정당하지 않은 파업 때문에 1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면, 회사는 노동조합에 100억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들 개인에게도 같은 금액을 일단 청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물론 누군가 한명이 피해액 중 1억원을 물어냈다면, 모든 주체의 부담이 99억원으로 함께 줄어듭니다.  포인트는 100억원을 전부 갚기 전까지 간부 개개인의 임금을 압류하는 등의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노조 간부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주요원인이기도 했구요.

위와 같은 방식을 부진정연대책임이라고 하고, 일반적인 불법행위 손해배상에서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다만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는 개입하는 인원도 많고, 오가는 손해액수도 너무 크다 보니 해당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엄격하게 따진다면 파업에 참여한 개별 조합원들도 모두 불법행위에 동참한 건데, 판례는 이미 의사결정에 관여한 간부급 조합원들로 부진정연대책임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었던 거니까요.  여기에 더해 최근 대법원은 이 법의 취지와 동일하게 개별 간부급 조합원들에게도 불법행위 가담 정도에 따라 배상범위를 한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이때가 윤석열 계엄령 선포 이전이었던지라, 행정부에서는 '대법원 이번 판결을 노란봉투법 취지와 동일하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보도자료 내놓고, 대법원이 이를 반박하면서 '같은 소리 맞다'는 반박을 내기도 했었지요.

노란봉투법에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 법원이 개별 근로자가 노동조합에서 맡고 있는 지위/역할을 따져 책임을 비율을 정해야 하고, ▲ 노동조합과 근로자는 경제상태, 부양의무 있는 가족관계, 최저생계비 등을 근거로 법원에 감면을 신청할 수 있고, ▲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들어서 회사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결과적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사견으로는 그 기준이라면 회생 제도도 마찬가지로 채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4. 그 내용만 들어있냐

노란봉투법의 이름은 앞서 설명드린 조항에서 유래했습니다만, 개정안 내용은 좀 더 다양합니다.  보통은 ▲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 확대, ▲ 노동조합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는 일부 조건의 삭제, ▲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의 완화 등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중 언론에서 가장 열심히 다루고 있는 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 확대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현대자동차가 1,2,3차 벤더에 설치된 노동조합들과 직접 전부 다 일일히 교섭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러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 노무팀은 1년 내내 수십건의 교섭만 하다가 판날 거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들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법률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습니다.

근데 이건 사실 한국 노동환경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들이 있기 때문에 제정된 법규정이기도 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IMF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은 점점 벌어지고 있고, 같은 업무를 최대한 하청업체에 쪼개서 뿌리는 것이 '인건비 절약'이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파견과 도급의 구분 같은 복잡한 문제들도 얹어지는데, 이건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지네요.  결론적으로는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 만들어서 임금 인상 같은 거 요구해봐야, 하청에서는 '원청에서 계약금액 못 올려준다고 하고, 우리는 다른 데서 돈 나올 곳 없음 ㅅㄱ' 하고, 원청에서는 '님들 우리 직원 아니니까 우리한테 요구할 권리가 없음 ㅅㄱ'하는 거 막겠다는 취지의 법조항입니다.  

모든 항목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원청 기업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부분에 한정해서 교섭 요구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대 원청이 일괄적으로 계약금액을 결정하여 사실상 하청의 인건비가 확정되는 구조라면 임금부분에 관해서,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 사업장 안에서 일하고 있다면 해당 근로환경에 관해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형태가 되겠죠.  아마 초창기에는 어디까지 요구 받아들일 것이냐 가지고 다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내용들이 왜 한국에서 특이하게 법제화까지 이어졌는가 하면, 유럽은 애초에 업종별로 집단교섭을 하는 형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 원청이든 하청업체든 간에 직원들이 같은 노조에 가입되어 있고, 원/하청 기업들이 함께 교섭에 참여해서 일괄적으로 단체협약을 만들어 적용하거나, 원청 기업이 원/하청 직원이 소속된 노조와 한방에 교섭하는 식이죠.  물론 개별 사업장별로 특별한 이슈들이 있으면 보충협약을 개별 체결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지난 2015년 전국노동관계위원회에서 원청도 공동사업주로서 하청업체 내에 설립된 노동조합과 교섭하고 협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정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규정 변화로 인해서 노사업무에 변화가 생기는 기업들은 대부분 규모가 상당히 큰 제조업 계통 대기업들이고, 어찌보면 보도 과정에서 과대대표되는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정도 오가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13% 정도로 뛰었는데, 노동조합 가입률은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공공조직일수록, 원청에 가까울수록 높습니다.  비정규직 조직율은 3% 미만이구요.  이번 개정을 통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 하청 근로자들은 90% 이상이 노동조합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인원입니다.  쪼개놓으면 조직화도 어려운 법이거든요.


5. 기타 등등

나머지 사안들도 굵직굵직한 논제들이긴 한데, 이 두 가지가 현재 언론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기도 하고, 나머지 내용들은 학술적인 이야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서 일단 요기까지 씁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이슈가 되면 해설을 써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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