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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3/04/24 11:36:42 |
Name | 심해냉장고 |
Subject | 과격한 영리함, 「그랜드 피날레」 - 아베 가즈시게 |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소설을 읽는다. 나는 어제 아베 가즈시게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그랜드 피날레를 읽었는데, 이유는 이렇다 : 작년인가, 독서 취향을 믿을만한 친구에게 소설을 하나 추천받는다. 가와카미 미에코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젖과 알' 이었다. 소설도 끝내주게 굉장했지만, 작가의 미모가 굉장했다. 여성의 미모를 길게 찬사하는 일은 하루키적 언사를 빌리던 고대 그리스적인 언사를 빌리던 굉장히 촌스러운 일이 되기에 치워두기로 하고, 아무튼 굉장했다. 그리고 소설도 굉장했다. 그런데 남편도 작가였고, 가와카미 미에코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제법 미남 소설가였다. 듣자하니 제법 잘 쓴다고도 한다. 더 찾아보니 나름 천재 소리를 듣던 작가였다. 오호라.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루는지라 한국에는 그닥 소개되지 않은 느낌이 있고. 그래, 그러면 공평하게 아쿠타가와 수상작을 먼저 읽자. 그래서 「그랜드 피날레」다. 절판 상태지만, 싼 가격의 중고책들이 많이 있었다. 작품의 서두는 제법 기대 이하였다. 서른 일곱 주인공은 백화점의 아동복 코너에서 고급 아동복을 산다. 불안이 그를 엄습하여, 그는 환각과 환청에 휩싸인다. 여기에 흥미로울 건 아무것도 없다. 곧 불안의 근원이 밝혀진다. 그는 며칠 뒤에 여덟 살을 맞을 딸의 생일 선물을 사는데, 그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았으니까. 이어 그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는 '아내가 친 덫'에 걸려 가정폭력범이 되어 이혼하게 되었다. 그는 결코 아내를 팰 용의도 없었고, 폭력을 휘두를 생각도 없었다. 그저 사소하고 가벼운, 가정폭력이라는 거대한 단어가 될 수도 없는 수준의 작은 사고가 일어난 것 뿐인데, 이는 이혼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아내의 흉계요 덫일 뿐이다. 그러니까, 결혼 생활은 사실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었고, 아내가 본인의 메모리 카드에 함부로 손을 대서 드잡이를 하다가 실수로 아내를 밀쳐 고막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지고 그런 '사소한' 사고였다. 그리고 이어 주인공은 '겨우 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파열되는 사소한 일'로 억울하게 가정폭력범이 되어 이혼소송을 당하고 접근금지명령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이유를 밝힌다. 사실 메모리 카드에는 10기가 정도 되는 딸의 사진과 영상이 찍혀 있다. 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에 소아성애자라는 오해와 혐의를 받느니, 가정폭력범으로 이혼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렇게 그는 이혼당했고, 사랑하는 딸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위자료를 정산하고 남은 천만 원 정도 되는 통장 잔고와, 언젠가 딸에게 선물했지만 딸이 버려버린 자동응답인형 뿐이다. 긴 독백으로 그가 '딸에게 생일 선물도 주지 못하는 불쌍한 아버지'에서 '소아성애자의 혐의를 받느니 아내를 팬 혐의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이혼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끝나고, 그는 친구들을 만난다. 아내와 본인을 둘 다 아는 오랜 친구에게, 이제 와이프의 친정에 살고 있는 딸의 생일 선물 전달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딸에게 보낼 편지의 전달도 부탁한 참이다. 편지를 잘 전달했어? 절대 들키지 않고 몰래 읽으라고 말해줬어? 친구는 이렇게 답한다. '미친소리 하네. 내가 먼저 읽고 찢어버렸다. 그딴 편지를 쓰다니. 딸은 너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사니까 걱정하지 마.' 이내, 주인공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 편지를 부탁한 친구의 입에서 주인공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이 새끼가 어떤 새끼인줄 알아? 미성년자 누드를 찍어서 자기도 즐기고 세상에도 유통시킨 더러운 소아성애자 새끼야. 교육영화 감독이라는 새끼가 일로 만나게 된 초등학생을 꾀어내 그런 짓을 한 거지. 심지어 자기 딸의 벗은 몸도 찍었다니까. 그리고 나서 딸을 꾀어내 납치하려고 나한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고' 그렇다. 그는 불쌍한 아버지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비열한 소아성애자 새끼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술자리의 다른 친구가 정말로 그랬냐고 따진다. 그는 자포자기한 채로 진실을 말한다. '그래. 그렇게 살았지. 처음은 미에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애였고, 그녀의 엄마와는 몇 번 잤어.' 친구는 묻는다. 꼬마애들이랑도 잤어? '아니. 애들하고는 섹스 안 했어. 키스나 몸을 더듬는 정도는 했지.' 미에라는 여자애하고는? '걔하고는 서너번 잤어.' 아 그래? 내 친구중에도 너같은 남자에게 당한 애가 있었는데, 자살했어. 자포자기해 모든 진실을 털어놓기로 한 그의 자기 변호는 이제 한 페이지는 커녕 한 문단도 지나지 않아 부정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마지막으로 가족이 단란하게 보냈던 크리스마스 날'의 서사는 '산타 옷을 입고 술냄새를 풍기며 선물할 인형을 준비하는 일'에서 '산타옷을 입고 취한 채 딸 위에 올라타 정신나간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찍는 일'로 밝혀지고, 그가 내내 입으로 부정하고 있는 현실-아내는 내 진짜 악행을 모른다-은 '실은 아내는 내가 소아성애자인 것을, 그리고 딸에게 손을 댄 것을 알고 있다'로 제대로 교정된다.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다. 숨을 멈출 수 없는 긴박한 템포로 주인공의 면면이 한겹씩 한겹씩 드러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인간관과 세계관에 대한 다양한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인간은 인간의 단면만 파악하며,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선정성에 격하게 반응하며, 세상은 썩었다. 술자리의 대화에서 스쳐가는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이 뻔한 철학들-이는 결코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을 보조하는 일들이 전개된다. 그렇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세상은 썩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의 주인공은, 비열한 소아성애자다. 세상은 썩었다, 라는 뻔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좌절한 선한 사람이 서 있는 것과 소아성애자가 서 있는 건 제법 다른 미학적 효과를 낸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좋다. 이렇게 1단원이 끝난다. 그리고 2단원에서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딸의 생일 선물 전달을 마지막으로 낙향한 돌아간 그는 폐인처럼 지내며 간간히 어머니의 가업을 돕는데, 하필 가업이라는 게 문방구다. 이제 눈으로도 아이를 쓰다듬지 않기로 맹세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려 하는데, 하필이면 가업이 문방구라 애들을 볼 수 밖에 없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2월, 하필이면, 교사가 된 어린 시절 동네 친구가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내년 1월에 지역 문화제가 있어서 여러가지 일을 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참가해. 그런데 연극을 지도할 사람이 없어. 너 영화 감독이었다고 했지?' 오우, 이런. 그는 '절대로 안 돼' 하고 거부하지만 친구는 끈질기다. 친구의 부탁에 못 이겨 결국 학교까지는 가게 된다. 거기서 당당하게 거부할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는 선언한다. '절대로 안 돼. 나는 연극 같은 걸 몰라. 영화감독이라고.' 그것도 작은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20분짜리 아동 교육 영상이나 만들던 놈이라고. 그리고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비열한 소아성애자 새끼라고. 아동 교육 영상에 등장한 여자애들에게 손을 댄. 물론 그는 거기서도 매력적인 여자아이 둘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날, 여자애 둘이 그의 문방구로 찾아온다. 연극을 가르쳐 달라고. 오우, 새로운 사건의 시작이다. 그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여자애들이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꼬마일 거라 지레짐작하며, 자기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을 거라 말한다. 여자애들은 '우리는 내년에 졸업과 함께 헤어지게 된다. 이 친구가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연극에 진지하지 않다. 우리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라는 소리를 한다. 둘은 공연하고 싶은 연극도 있는 참이다. 비극적으로 헤어지지만 영원히 서로를 잊지 못하는 연인들을 다룬, 물망초 이야기. 그리고 뒤의 어두운 이야기가 밝혀진다. 한 여자아이의 오빠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그렇게 그 가족은 동네에서 이지메를 당하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연극은 그들의 관계의 대단원의 막이다. 여러 가지를 고민한 그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여자애들을 돕기로 한다. 마지막 남은 재산인, 통장잔고 팔백만원을 탈탈 털어 연극에 필요한 소도구와 의상과 스탭들을 최고급으로 준비하고, 밤새 각본을 쓴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 작품은 그녀들의 마지막 대단원, 그랜드 피날레가 될 것이며, 그의 마지막 대단원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연극 준비는 줄곧 차분하게 진행되는 세계의 우울과 부조리와 상관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진행된다. 그러던 중 그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두 여자애가 '자살'을 검색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불안에 빠진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함께 연극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간 그는 그녀들을 볼 수 없다. 그는 두 여자애들을 위한 선물을 사고, 불안 속에서 그녀들을 기다린다. 딸의 일곱 번째 생일선물로 사준 것과 같은, 앵무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오고, 그는 시민 극장의 사무실에서 불안들 속에 앉은 채 그녀들를 기다린다. 마침내 여배우들이 극장으로 활기차게 입장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 잤니?" 그의 오랜 친구, 자동응답인형이 상영의 시작을, 연극 연습의 시작을 알린다. 소설은 여기서 이렇게 끝난다. 이듬해 1월, 그녀들의 그리고 그의 마지막 연극이 발표되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날의 공개 연습으로, 그 연습이 시작되기도 전에, 바로 거기서, 소설은 거기서 그렇게 끝난다. 과격하고 또 영리하게. 와, 이런 미친. 그가 그리는 세계는 결론이 없는, 결론이 있을 수 없는, 모두가 헤매는 세계다. 그리고 세계의 성욕은 '완성된 어른'이 아닌 '아이'로 향한다. 그렇게 그 세계는 대단원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이야기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에 이렇게 끝나버린다. 소설은 21세기 초, 정확히는 2002년을 배경으로 한다. 딸의 생일은 10월, 그가 고향에 내려간 것은 11월, 연극을 시작한 것은 12월이고, 그해의 크리스마스에 소설은 끝이 난다. 폭력의 시대다. 배경으로 911(작년의 추억으로)이, 체첸의 테러리스트들이, 아프리카의 내전이 스쳐간다. 폭력의 세계고, 선정적인 사건들이 살아남는다. 그는 바에서 잘 모르는 술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그 편이 오래, 서로 엮인 친구들보다 덜 껄끄럽다. 익명의 세계니까.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일면만을 보여준다. 세상은 썩어가고 있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뻔하다. 하지만 역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런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좌절한 도덕주의자가 서 있는 것과, 이를 배경으로 관망적 실존주의자가 서 있는 것과, 이를 배경으로 비열한 소아성애자가 서 있는 것은 꽤 흥미로운 윤리 게임이 된다. 자,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다시 한번 손쉽고 쿨하게 말해볼 수 있겠어? 세계는 썩었고, 사람들은 일면만을 이해한다고? 사람을 자살시킨 소아성애자가를 앞에 두고? 영화에 가까운 거친 교차편집과 템포로(실제로 작가는 영화학교 출신이다) 1부를 진행시킨 그는 마찬가지의 속도로 급선회를 시작한다. 속죄한 소아성애자. 아이들의 순수함에 넋이 나가 반해버리는. 하지만 소아성애자는 원래 아이들의 순수함에 반해 있는데? 그는 금욕을 철저히 수행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이 그의 금욕을 방해한다. 그는 '대단원'으로 달려간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이 연극은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죽을 생각인지, 어딘가로 다시 도망칠 생각인지, 사회로 복귀할 생각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남은 전재산과 모든 열의를 오지 않은 내년의 연극을 위해, 소녀들을 대단원을 위해 바친다. 그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건 여기서 꺼내기는 좀 구린 그런 윤리적 질문이다. 윤리 게임은 치워두고, 이제 소설을 즐기면 된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연극이라는, 지극히 순수한 어떤 대단원의 막을 향해 추동되는, 자살, 죽음, 앵무새, 자동응답인형, 금욕, 아름다운 소녀들, 여배우, 무대, 이 모든 것들이 자아내는 불안하고 불길한 파멸의 정서를. 그리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채 끝난다. 내년은 없다. 연극도 없다. 청량하게, 연극 연습이 시작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이 엔딩은 너무나 너무하다. 서사가 아닌 서사 구조 자체를 알레고리의 기둥으로 삼아버리다니. 끝이 없을 이야기를 끝맺지 않은 채로 끝내버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과격한 일이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영리한 일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인 그의 부인(이자 미녀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아쿠타가와 수상작, '젖과 알'과 닮아 있다. 젖과 알은 「삶이 이어짐」의 중언부언한 중첩을 다루는 소설인데, 그래서 중언부언의 역접으로 연결되는, 뒤의 서사가 앞의 문장을 밀어내는 특유의 오사카 사투리로 소설이 전개된다(고 한다. 국내 번역판은 깔끔한 표준어 단문으로 번역되었고, 이에 대해 분노한 사람이 긴 글을 남긴 리뷰를 찾아볼 수 있다). 엄마에서 딸로 중언부언 너절하게 이어지고 계승되는 '가슴과 난자'의 이야기를 특유의 중언부언형 사투리의 대위법으로 처리하는 가와카미 미에코, 끝낼 수 없는 소아성애자의 이야기를 끝맺지 않은 채로, 소설이 어른으로 무르익기 전에 중간에 끝내버리는 아베 가즈시게. 굉장한 커플이다. 이건 뭐 현대문학의 시드와 낸시,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다. - 일본 현대 소설들을 읽고 있자면 그들의 '반문학적 전통'이 그 무엇보다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1970년, 도쿄 구치소에서 유행한 것은 수음이었다. 유행했다, 유행했다, 나도 했다'로 시작하는 소설이라거나(타카하시 겐이치로 : 존 레논 대 화성인), 이런 소설들. 무례한 무뢰배들의 소설. 어느 순간 한국에서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그런. 아베 가즈시게는 소재에 있어 제법 반문학적 전통 위에 서있는 느낌이다(찾아보니 이 사람은 처음 주목받은 작품도 소아성애자가 등장하고, 정의로운 소아성애자 경찰관이 등장하는 소설로 2004년 이토세이 문학상을 타고, 딸의 누드를 찍는 소아성애자가 주인공인 이 소설로 2005년 아쿠타가와를 수상한다). 전개는 비문학적이다. 문학에서 보기 힘든 과감한 생략과 교차편집이 영상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어떤 종류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부러운 작가고, 그러한 작가를 키워낸 토양이다. - 여담이지만 중간에 피쳐폰의 적외선 통신으로 사진을 주고 받는 내용이 나온다. 아프리카는 내전중이고, 푸틴은 철권을 휘두르고 있고,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좀 더 반응하고 어떤 사건에 좀 더 냉소적이며, 테러가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힙스터들은 다이칸야마의 라운지 클럽에서 진토닉을 마시며 마약파티를 벌인다.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피쳐폰의 적외선 통신으로 사진을 주고 받는다. 21세기 초반의 소설이나 만화를 읽다 보면 이런 부분들이 묘하게 재밌는 느낌이다. - 라쇼몽과 롤리타를 섞은 듯한 느낌이 강한데, 둘 다 좋아하는 소설인지라 싶기도 하고. - 스토리를 낱낱히 썼지만, 이 작가의 대단함은 그저 스토리에만 있지 않다. 번역이 살짝 덜그덕거리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작가 특유의 '전개의 템포'와 '조밀한 알레고리'를 느낄 수 있다. 24시간 동안 세 번 읽었는데, 세 번째 읽을 때도 충분히 긴장감 있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5-08 09: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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