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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7/10 08:42:00 |
Name | joel |
Subject | 축구) 무엇이 위대한 선수를 위대하게 하나. |
옛날 중국의 명나라, 청나라 시절에는 '팔고문(八股文)' 이라는 문장 형식이 있었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고전을 인용하여 주어진 형식대로 글을 쓰는 것인데, 당시 과거 시험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벼슬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밤낮으로 팔고문의 예제와 고전을 달달 외워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팔고문을 달달 외는 서생들은 물론 바늘 구멍을 통과해 벼슬 자리에 오른 사람들조차도 팔고문을 비판했습니다. 문학적으로도 별 가치가 없고, 실무적으로도 인재 뽑기에 도움이 안 되는 형식이라고 말이죠 명말청초의 학자 고염무는 '팔고문의 폐해가 분서갱유보다 심하다' 라고 일갈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고문이 과거 시험에서 계속 쓰였던 이유 중 하나는, 시험에서 점수를 매기고 줄을 세우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것은 애매하고 주관적이지만 주어진 형식을 지켰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쉬운 일이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부귀영화와 만년서생으로 갈라버리는 과거 시험에서 이것은 엄청난 장점이었습니다. 그게 결함투성이 잣대라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탈락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계속 쓰였던 것이지요. 축구는 선수들의 활약상을 숫자로 환산해 평가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종목입니다. 이에 대해선 제가 예전에 썼던 글(https://kongcha.net/pb/pb.php?id=free&no=11682&page=7)에서 자세히 말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축구는 11명이 넓은 경기장을 실시간으로 뛰는 스포츠이기에 모든 개개인의 플레이는 팀과 전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손의 사용이 금지되어 어쩔 수 없이 낮은 확률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데다 시행횟수마저 적어 운과 실력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쉽지만 축구는 이런 스포츠가 아니다) 때문에 축구에서 선수들 간의 줄세우기는 언제나 주관의 영역에 강하게 영향을 받으며, 뚜렷한 기준조차 없이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이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은 팬과 관계자들에 의한 일종의 다수결인데, 이것이 신뢰도를 가지려면 표결에 참여하는 이들의 표결의 결과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배심원들은 그렇지가 못 하죠. 누군가의 팬이거나 동료, 어느 팀의 팬이거나 관계자 등등으로 갈려져 철저히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을 열거나 침묵합니다. 축구팬 커뮤니티의 개개인들은 제각기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시에 지닌 콘클라베의 추기경들인 셈이죠. 이것은 축구계의 권위자들이 모여 선출한다는 발롱도르 조차도 예외가 아님을 그간의 투표가 여러번 보여줬습니다. (투표권자들이 축구 중독자라고 한들 4대리그 78개팀의 경기를 고르게 눈여겨 볼 수나 있는지도 의문.) 한 예로, 2017년 이후 지금까지 epl에서 최고의 미드필더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케빈 더브라위너 라는 것이 국내 축구팬들의 중론입니다. 이것은 물론 더브라위너가 그만한 실력을 지녔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서 '더브라위너의 고평가로 인해 손해를 입는 팬덤'이 딱히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아자르 같은 선수가 첼시에 남아서 더브라위너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거대 팬덤을 보유해 대립했다면 저런 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과거의 전설들이 이따금 손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입니다. 과거의 전설들을 고평가 한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피해를 볼 일은 없거든요. 경우에 따라선 이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이용해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용도로도 쓸 수 있고요. 단, 이해관계의 중립지대에 있는 만큼 아주 중립적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당신 전임자들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주변에서 모두 찬성했는데 왜 당신에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있나?' '내 전임자들은 주변에 나 같은 사람들을 두고 있었지만 지금 내 주위에는 자네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세.' 이러니 축구팬 커뮤니티에서 누구 vs 누구 라는 글이 올라왔다 하면 평화적으로 결론이 나는 일이 극히 드뭅니다. 세상일로 비유하자면 '새로운 공항을 지으려 하는데 어디다 지으면 좋을지 지역 주민들간의 건전한 토론으로 결정해봅시다' 같은 거죠. 공청회장이 폭력으로 얼룩지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설령 결론이 났다 한들 그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힘싸움과 협잡의 균형 속에서 나온 타협안이겠죠. 뚜렷한 잣대 없이 벌어지는 이 여론전 속에서 상대를 깔아뭉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입니다. '그래서 그 분 xx 해보셨는지?' 같은, 중간 과정과 배경을 모조리 잘라낸 천박한 말들이 남아서 여론을 주도하게 됩니다. 사실은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 기준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 겁니다. 개인의 기량과 퍼포먼스, 팀의 성적은 당연히 괴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기록지만 봐서는 축구를 알 수 없다는 걸 말이죠. 베르마엘렌은 트레블까지 해봤으니 빅이어 못 들어본 콤파니보다 대단한 선수다! 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위에서 이야기 한 팔고문의 폐해 같은 겁니다. 기준의 유효성과 진실성이 아니라 기준에서 탈락한 패자를 찍어누를 수 있는 편의성이 잣대가 되어 모두를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드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그래봐야 결국 결과만이 기억에 남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만, 세상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훗날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경기 기록지만이 아니죠.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기억, 평가, 여론, 주위를 둘러싼 환경 등등의 정보들이 구전과 기록, 영상매체 등을 통해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어떤 선수가 어느 해에 타격왕에 올랐는지를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야구팬들 중에서도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84년의 타격왕을 두고 벌어졌던 추악한 협잡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습니다. 현대 축구사의 전술 발전을 논할 때 언제나 첫 머리에 오는 것은 54년 월드컵의 우승팀 서독이 아니라 준우승에 그친 매직 마자르 헝가리이고, 지쿠를 두고 월드컵 8강이 한계인 그저 그런 선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축알못이죠. 그 밖에도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축구에서는 무엇이 위대한 이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탐구는 싹 빼버리고, 오로지 위대했던 이들의 공통점만을 추출해서 '이것이 위대함의 기준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에 대해 반박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감히 xx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불경한 자들' 이라는 인장을 찍으려 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위대한 이들이 해냈으니 그 결과물은 위대한 것이고, 그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니 그 인물은 위대하다는 우스운 순환 논리이자 화살이 꽂힌 자리에 가서 과녁을 그려넣는 견강부회일 뿐입니다. '랜디 존슨은 왜 위대한 투수인가요?' '투수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상인 사이영 상을 5번이나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사이영 상은 왜 투수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상인가요?' '랜디 존슨처럼 위대한 투수들만이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 부당하게 평가절하 되거나 반대로 과대평가된 선수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다수결에 의한 평가가 반드시 옳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사실들을 뒤져서 숨겨진 진실을 캐려할 때에 '그래봤자 그거 누가 기억이나 하느냐' 라는 말로 이를 덮으려 하는 건 다수가 우기면 사슴도 말(馬)이 된다는 수준의 잘못된 다수결 적용의 사례이고요. 그렇다면 결국 축구에서 선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저는 일단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제가 축구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단어 중 하나가 '탈압박 능력' 입니다. 이걸 선수의 '능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능력과 환경이 결부되어 나타나는 확률적 퍼포먼스일까요? 만약 전자라면 사비 알론소처럼 우아한 볼터치와 강한 힘으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고 버텨내며 패스를 연결하다가도 이따금 강팀과의 경기에서 지워지던 선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니, 애초에 탈압박이란 뭘까요. 후방에서 센터백의 패스를 받아서 상대의 압박을 피해 안전하게 돌아서는 능력과 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한 상태에서 수비들을 앞에 두고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는 것을 동일하게 탈압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드리블 능력이란 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전성기 호날두는 비상식적인 발목힘으로 남들이 슛을 때릴 수 없는 자세에서도 자유자재로 슛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날두가 공을 잡고 박스 근처에 있으면 수비수는 가까이 달라붙어 견제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수비가 붙으면 제치기 쉽고 떨어지면 슛하기 쉽다는 진리에 따라 드리블도 쉬워지죠. 이것을 드리블 능력이라고 봐야 할까요? 또, 빈 공간을 향해 질주하는 드리블과 수비를 앞에 두고 속이는 드리블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필요한 능력이 다르죠. 때문에 저는 선수를 평가할 때에는 저렇게 애매한 용어 대신 선수 개인이 가진 신체능력(힘, 속도, 민첩성, 순발력, 협응력, 균형감각 등)을 기본에 두고 선수가 이를 축구지능(위치선정 능력, 판단력 등)과 결합시켜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술 속에서 어떤 결과로 연결되는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의 툴과 퍼포먼스를 분리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야구에서 선수를 평가할 때에 이 선수는 힘이 좋다, 컨택이 좋다, 라고 하지 이 선수의 장점은 타율이 높다는 것이다 라고는 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꼭 엄밀한 수치화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경기 중에서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 팀의 환경과 상관없이 본인이 지닌 기량입니다. 이것이 평가의 중심이 되어야죠. 이런 것들을 쌓아올려나가다 보면 축구팬들의 궁금증이 꽤나 많이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줄세우기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고요. 현재까지 축구에서 숫자에 의거해 선수를 종합적으로 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있을 축구 전문가들과 알파고님이 성과를 내어주길 기다릴 수 밖에요. 사실 선수들의 줄 세우기 문제는 그 기준의 다양성 때문에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수치화가 세계에서 제일 잘 되어 있는 야구조차도 예외가 아니죠. 12년 간의 프로 생활 중 6년을 그저 그런 선수로 보내다가 마지막 6년 간 역사에 남을 전설을 쓰고 은퇴한 샌디 코팩스와, 프로 생활 내내 꾸준히 좋은 선수였던 앤디 페티트 중 war이 더 높은 쪽은 페티트지만 누구도 그를 코팩스의 위에 세우지 않습니다. 마이클 조던처럼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1위가 당연할 것 같은 극히 예외적인 존재도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기량과 팀 성적이 늘 나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30대 중반이던 2차 3연패 시절보다는 젊고 날렵하던, 하지만 디트로이트에게 3연벙을 당했던 80년대가 더 뛰어났겠지요. 하물며 축구처럼 소속된 국가와 리그와 팀이 다르고 활약하는 대회가 여러 가지인 종목은 그 기준의 다양성이 훨씬 더할 것이고요. 앞으로 축구에서 그 어떤 기준이 평가의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한들 선수들의 우열을 명확히 가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겠죠. 다만 미래에는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보다도 어떤 선수였는가를 명확히 조명받는 시대가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7-20 10:0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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