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3/14 01:10:00
Name   이그나티우스
Subject   미래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 대한 4개의 가설
(주의: 이 글은 가설입니다. 즉,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그냥 재미로만 보시고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설]
1. 86 운동권세력 + 70년대생 + 2-30대 여성의 투표연합이 현 집권세력(민주-진보세력)을 지지하면서 이들의 수적 우위가 당분간 계속된다. (즉, 현 여당의 선거 연승)

2. 반면 현 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뭉친 권위주의적 우파세력은 노년층과 영남세력에 지지기반이 고립되고, 노년층의 퇴장과 영남지역의 인구감소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의 상당부분을 상실한다.

3. 80년대 후반-90년대 생과 그 이후에 태어난 2-30대 남성들은 민주-진보세력을 지지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반공주의 우파세력을 지지하지도 않는 제3의 투표집단이 된다.

4. 앞으로의 정치적 국면에 대한 2단계 가설
1) 1단계 (향후 5-10년)
민주-진보세력을 지지하는 선거연합이 수적 우위를 유지하는 동안 야권은 반공주의 우파와 영남세력과 20대+30대 초반 남성으로 분열되어 지리멸렬하는 구도가 계속된다.
2) 2단계 (10년 후 이상의 미래)
지금의 20대-30대 초반 남성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들 인구집단이 지지하는 제3의 정치세력과 현 민주-진보세력이 대결하는 구도로 갈 것이고, 이에 따라 90년대생을 중심으로 남녀갈등은 지금보다 더 증폭될 것이다.

(바쁘면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됩니다. 아래는 전부 부연설명이라…)

[위 가설에 따른 향후 한국정치의 관건]

1. 중장기적으로는 현재의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들의 일자리 및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앞으로의 정치적 구도를 좌우할 것이다

저출산으로 청년세대의 절대적 숫자가 줄어들면서 장-노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저도 한국정치가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석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젊은 세대가 숫자는 적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령대인 이상,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단순히 1인 1표로 계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방법원의 판사, 재량권을 가진 공무원, 상당한 인력과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인, 많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교수, 10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등은 투표장에서는 모두 1표이지만,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단순히 표 숫자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위의 가설대로라면 앞으로의 정치적인 동향은 민주-진보세력의 투표연합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권력을 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젊은 남성 세대가 얼마나 빼앗아 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단기적으로는 86세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70년대생이 퇴장하면서 비게 된 포지션을 현재의 젊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각각 얼마나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지의 여부가 민주-진보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굳이 더 예측을 한다면 단순 산술적으로는 9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남성 집단이 민주-진보세력의 투표연합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남성 청장년층의 영향력을 단순히 숫자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앞으로는 운동권과 페미니즘 세력에 우호적이지 않은(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법조인, 공무원, 기업인, 언론인, 연구자, 인플루언서들이 일정 숫자가 계속 나온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 남성위주의 사회가 아니다 보니 위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포지션을 모두 남성이 차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남성과 여성이 나누어서 먹게 되는데 그렇다면 남녀간(정확히는 현재 젊은 세대의 ‘주전장’인 페미니즘에 대한 찬성/반대간) 얼마나 유리한 포지션을 더 많이 먹는지 땅따먹기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과 같은 정치적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여성 혹은 친-페미니즘적 성향의 젊은이들을 더 우대할 유인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동기 하에 제도적인 변화가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예: 국회의원 남녀동수 공천제, 국립대 여성교수 50% 임용 강제 등) 하지만 동시에 기성세대가 자신들과 정치적 대의를 같이하는 여성(정확히는 페미니즘 지지세력)을 우대한다고는 해도 젊은 세대 남성들이 위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포지션으로 진출하는 것을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현재 여성들의 능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주장이 맞다고 해도, 위에서 언급한 법조인과 공무원 등 사회적으로 영향이 있는 자리를 모조리 다 여성들이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남성들도 일정 비율 이상을 그러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단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세력(즉, 젊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이 그것도 나름의 재량권을 지닌 포지션에 자리를 잡게 되면, 아무리 소수파라고 해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지금의 20대-30대 초반의 남성들을 하나로 묶을 이데올로기적 베이스가 무엇이 될 것인지의 문제

80년대 중후반생에서 2000년대 초반생을 아우르는 현재의 20대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남성들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기존 세대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정치적 정체성을 가진 코호트로 점차 굳어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 세대는 현 집권세력을 지지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야권(반공우파)세력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아직까지는 탈정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일각에서는 이들을 인셀이나 조커 지지자들로 폄하하면서 정치적인 가능성이 없는 실패한 세대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코호트에는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 즉 정치적 의식화가 가능한 리터러시를 보유한 집단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 코호트를 권력획득의 가능성이 없는 기층민중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들 젊은 남성들의 코호트는 스스로를 규정할 만한 정치적 언어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상태라고 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구심점이 마련된다면 생각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이들 코호트 전체가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금의 젊은 남성 세대에 만연한 정치적 불만은 이것을 가능케 하는 환경입니다.

앞으로 지식인과 정치인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이 정치적 블루오션(?)을 타겟으로 삼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마케팅을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그 시기와 구체적인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젊은 남성 세대를 공략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활발하게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은 정치적 야심가들이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현재는 하태경이나 이준석과 같은 정치인들이 그런 시도를 하고는 있는데 그것으로는 역부족이라 보고, 더 강력한 계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굳이 젊은 남성들의 코호트가 어떤 성향을 가지게 될 지 예측해 본다면, 아마도 반이민(특히 한국에서는 반중국)과 반페미니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우파에 가까운 성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일각의 경계와는 달리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적이고 탈권위주의적 성향으로 보아 파시즘이나 네오나치로 흐를 가능성은 낮다고 보며, 구 반공주의 세력과 결탁할 가능성은 더욱 없다고 봅니다. 지금 야당 계열에서는 젊은 남성들을 반공주의로 세뇌시켜 그쪽으로 견인하려는 시도를 이곳저곳에서 하는데 별로 가망은 없어 보입니다.

만약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생긴다면 그것이 코리안 트럼프나 코리안 두테르테와 같은 정치적 모험주의로 흐르지는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3. 기성 거대정당들의 정치적 운명

현재의 여당에서는 아마도 점차 페미니즘이 지분을 늘려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구학적으로 사실상 현재의 민주-진보 세력은 자신들의 후계자로 페미니스트 및 그 동조집단을 점찍은 상태인 만큼, 이들이 페미니즘 성향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자원을 충원하고 그 반대급부로 지분을 늘려갈 가능성은 농후하다 봅니다.

반대로 현재의 야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2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가설 A] 젊은 남성들의 정치적 코호트가 현재의 보수야당을 숙주로 삼아 정치적 세력화를 시도

정치는 조직과 인력의 싸움인 만큼 90년대생 남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코호트가 단시간에 실체를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직과 인력을 흡수하는 방향이 가장 효율적일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반공우파 성향의 야당이 이들 젊은 남성들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공주의를 제1의 기치로 내세우는 현 야당의 중심세력(정치인 및 그 지지세력)과 반페미니즘을 가장 중시하는 젊은 남성 코호트는 정치적 관심사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서로를 극도로 증오합니다. (“문쩝X 찍은 젊은이들은 천벌을 받거라” vs “응 다음 틀X”) 현재의 야당은 차라리 기독교 여성단체를 통해 여성표를 구걸했으면 했지, 젊은 남성들의 표를 얻고자 스스로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봅니다.

그렇다면 젊은 남성들이 스스로 호랑이 굴을 찾아가는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지금의 젊은 남성들 중에서도 선거에 나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들이 만약 현 야당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야당의 커맨드센터를 감염시켜서 인페스티드 테란을 뽑아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물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홍보용으로 쓰다 버려지기만 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가설 B] 아예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든다

지금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기존 우파정당을 대신하는 제3세력 우파정당이 속속 창당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을 획득하는 케이스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정치적 환경과 우리의 그것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힘들겠습니다만.

이 경우 가장 큰 장점이 반공주의에 집착하는 구세대 ‘애국보수’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젊은 남성 자신들만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 정치는 인력과 조직의 싸움인 만큼, 제3세력인 이들이 얼마나 물량전에서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젊은 남성 코호트를 새로운 정당의 지지로 계속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지금과 같이 유명인을 중심으로 모이는 제3지대 포말정당보다는 훨씬 강력한 생명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결국에는 위에서 말한 젊은 남성 세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관건이 됩니다. (기존 야당을 흡수한다고 해도 사실 같긴 하지만.)


[소결]

혹시 오해가 있을까 하여 덧붙이지만, 특정 정치 세력 혹은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거나 홍보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모든 정치적 입장에 나름대로의 모순과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뒤집어 말하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비판하려는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또한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가설로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의 내용들의 정당성을 저 자신이 강하게 믿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즉, 필자 스스로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독자 입장에서 백퍼센트 신뢰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뜻.) 정치적 주의주장이 오고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나, 피곤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만약 이 글이 그런 피로를 더했다면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3-29 23:0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7
  • 진지하게 생각할만한 글입니다. 추천합니다.
  • 정치글은 삼가하는 편입니다만, 일독할 가치가 있는 통찰을 가진 글이라 생각합니다.
  • 생각하지 못했던 정치 사회 문제를 알려주었습니다.
  • 이런 글은 정치글이라도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기타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43 31
1417 기타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28 31
1416 기타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07 20
1415 기타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37 18
1414 기타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33 36
1413 기타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49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53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5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20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76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13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42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79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597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41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08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87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84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789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62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0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0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78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1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51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