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5/12/18 21:19:48 |
Name | ohmylove |
Subject | 앤디 워홀과 팝아트에 대해서 |
제가 이번에 수업들은 미술사 강의에서 교수님이 "앤디 워홀은 철학적 깊이가 떨어지고 단순히 순간적인 재치가 있었을 뿐" "팝아트는 단지 자본주의적으로 많이 또 빨리 찍어내기 쉽기 때문에, 또 감각적이고 화려하기 때문에 히트친 것" "후대에 가면 팝아트가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미술에 대해서 조예가 깊으신 다른 분들이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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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edtea.kr/?b=3&n=1712&c=24557
눈부심님이 올리셨던 게시글에 제가 썼던 댓글이에요.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니 이 댓글의 맥락대로 \'해석의 칼날\'위에 서있지요. 이러한 적극적인 해명과 해석의 칼날이 작용할 때만 유효한 포스트모던예술의 특징은 [1회성]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셔서 오해의 여지가 큰데, 철학적... 더 보기
눈부심님이 올리셨던 게시글에 제가 썼던 댓글이에요.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니 이 댓글의 맥락대로 \'해석의 칼날\'위에 서있지요. 이러한 적극적인 해명과 해석의 칼날이 작용할 때만 유효한 포스트모던예술의 특징은 [1회성]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셔서 오해의 여지가 큰데, 철학적... 더 보기
http://redtea.kr/?b=3&n=1712&c=24557
눈부심님이 올리셨던 게시글에 제가 썼던 댓글이에요.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니 이 댓글의 맥락대로 \'해석의 칼날\'위에 서있지요. 이러한 적극적인 해명과 해석의 칼날이 작용할 때만 유효한 포스트모던예술의 특징은 [1회성]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셔서 오해의 여지가 큰데, 철학적으로 깊이가 떨어진다고하는 말씀의 의미는 아마도 앤디 워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앞선 작가에게 이미 유효했다]는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앤디 워홀등의 예술가로 대표되고,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는 예술은 [1회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한 퍼포먼스를 예를 들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지 싶습니다. 뒤샹이 이러한 행위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메세지는 예술에 대한 지적이고 진지한 탐구를 향한 야유인데, 누군가 그것을 또 하고 또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웃기는 짓이죠.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예술은 [서사와 주제라는 내포된 일화가 사라짐, 독창적인 서사나 주제를 동반할 이유가 없음, 세계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히 심미적 실재의 세계로 후퇴했음] 등을 시사하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상투적인 주제나 서사를 끌어다 쓰는 패러디가 만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패러디라는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인상주의와 유미주의는 이미 예술에 있어서의 의미의 무용성을 깨닫고 있었어요. 따라서 포스트모던예술이 의미를 채용하는데 있어 더욱 적극성을 띠어야만 포스트모더니즘만의 고유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앤디 워홀의 표절적 재현은 [재현이라는 것의 무의미한 상투성]을 폭로하는 작업일텐데, 이러한 의미를 빌어다쓴 예술가는 한 둘이 아니지요.
거기다 고전적인 예술이 지니는 엄격함과 서술적 요소를 탈출하려는 통속화의 시도는 포스트모던 예술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계속이어져온 경향이지요. 예를 들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같은 작품이 그 이전의 회화와는 달리 공간적 깊이를 결여하고 인물들을 비개성적으로 처리한 것, 인상주의 화가들이 회화의 심층성을 거부하고 대상의 표면에 쏟아지는 빛의 효과에 주목한 것 등은 고급예술이 지닌 엄정함을 거부하는 경향성을 보여주는 양식적 특징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2차원적 구성, 색채의 유치함, 인물들의 표정의 공허함 등의 경향성은 다루는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 고급예술이 계속해서 통속화의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있는 증거죠. 아마도 이러한 측면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부심님이 올리셨던 게시글에 제가 썼던 댓글이에요.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니 이 댓글의 맥락대로 \'해석의 칼날\'위에 서있지요. 이러한 적극적인 해명과 해석의 칼날이 작용할 때만 유효한 포스트모던예술의 특징은 [1회성]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셔서 오해의 여지가 큰데, 철학적으로 깊이가 떨어진다고하는 말씀의 의미는 아마도 앤디 워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앞선 작가에게 이미 유효했다]는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앤디 워홀등의 예술가로 대표되고,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는 예술은 [1회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한 퍼포먼스를 예를 들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지 싶습니다. 뒤샹이 이러한 행위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메세지는 예술에 대한 지적이고 진지한 탐구를 향한 야유인데, 누군가 그것을 또 하고 또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웃기는 짓이죠.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예술은 [서사와 주제라는 내포된 일화가 사라짐, 독창적인 서사나 주제를 동반할 이유가 없음, 세계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히 심미적 실재의 세계로 후퇴했음] 등을 시사하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상투적인 주제나 서사를 끌어다 쓰는 패러디가 만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패러디라는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인상주의와 유미주의는 이미 예술에 있어서의 의미의 무용성을 깨닫고 있었어요. 따라서 포스트모던예술이 의미를 채용하는데 있어 더욱 적극성을 띠어야만 포스트모더니즘만의 고유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앤디 워홀의 표절적 재현은 [재현이라는 것의 무의미한 상투성]을 폭로하는 작업일텐데, 이러한 의미를 빌어다쓴 예술가는 한 둘이 아니지요.
거기다 고전적인 예술이 지니는 엄격함과 서술적 요소를 탈출하려는 통속화의 시도는 포스트모던 예술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계속이어져온 경향이지요. 예를 들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같은 작품이 그 이전의 회화와는 달리 공간적 깊이를 결여하고 인물들을 비개성적으로 처리한 것, 인상주의 화가들이 회화의 심층성을 거부하고 대상의 표면에 쏟아지는 빛의 효과에 주목한 것 등은 고급예술이 지닌 엄정함을 거부하는 경향성을 보여주는 양식적 특징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2차원적 구성, 색채의 유치함, 인물들의 표정의 공허함 등의 경향성은 다루는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 고급예술이 계속해서 통속화의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있는 증거죠. 아마도 이러한 측면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답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뒤샹이 그냥 아무데서나 변기를 구입해서 미술관에 보냈다는 그 사람인가요?
교수님도 뒤샹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시더군요.
음.. 저는 처음에 \'아무리 미술가가 훌륭한 생각을 가졌다 해도 좀 자기 스스로 미술품을 만드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뭐 지금 와서 \'자기 생각을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만 하면 그게 미술이지\' 이 정도로 생각을 굳혔습니다.
3. 또 교수님께서 철학을 배우려면 반드시 미술도 섭렵해야 한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뤼야님께서도 미술을 공부하신 것인지..?
2. 뒤샹이 그냥 아무데서나 변기를 구입해서 미술관에 보냈다는 그 사람인가요?
교수님도 뒤샹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시더군요.
음.. 저는 처음에 \'아무리 미술가가 훌륭한 생각을 가졌다 해도 좀 자기 스스로 미술품을 만드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뭐 지금 와서 \'자기 생각을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만 하면 그게 미술이지\' 이 정도로 생각을 굳혔습니다.
3. 또 교수님께서 철학을 배우려면 반드시 미술도 섭렵해야 한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뤼야님께서도 미술을 공부하신 것인지..?
전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른 무엇을 배우거나 읽은 게 아닙니다. 차라리 반대에 가깝죠. 미술을 좋아해서 학부 시절 교양으로 미술사와 미학은 공부했습니다. 과학은 제 전공이었고, 문학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 취미이자 벗이었지요. 제 관심사 중 철학이 특정된 건 비교적 근래지요. 철학자 김영민을 좋아하고 그의 저서를 탐독하기 시작한 것도 학부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만 그 시절 전 이를 철학적 관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배우고 읽다보니 그 모든 게 철학으로 올라가더란 말처럼 들릴지 몰라 덧붙이자면, 제 관심이 철학으로 나아간 지금에도 미술과 문학, 과학은 모두 상이한 고유성을 빛내며 제 안에 자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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