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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2/03 18:49:18
Name   구밀복검
Subject   2016년 촛불은 정말 혁명이었을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5157#home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은 어떤가. 미국 캘리포니아 중산층 출신 모범생 벤저민은 이웃의 중년 부인 로빈슨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 일탈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뒤이어 바로 그 로빈슨 부인의 딸 엘레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질투에 눈이 먼 로빈슨 부인은, 자기 딸에게 자신과 벤저민의 불륜을 폭로해버린다. 충격을 받은 엘레인은 벤저민을 떠나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자 결혼식장에 들어간다. 이에 벤저민은 식장에 난입하여 엘레인의 손을 잡고 도망쳐 나와 버스에 오른다. 영화는 끝난다. 그 이후 벤저민과 엘레인은 과연 잘 살았을까. 버스 뒷좌석에서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벤저민과 엘레인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단한 모습이었다.



영화 졸업이라니 역시 영민쌤이야

"개인의 사랑이든 정치적 사랑이든, 낭만적 순간들은 전체의 극히 일부다. 인생과 역사의 대부분은 그렇고 그런 일상이 채운다. 재미없는 비(非)혁명적 시간과 마주해야 한다. 그 일상의 나날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드라마가 없으므로, 그 체험은 멋지게 작품화하기 어렵다. 대만의 전설적인 명감독 에드워드 양의 영화 ‘해탄적일천’은 바로 이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다.

‘해탄적일천’에는 열렬한 연애를 하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탄웨이칭과 가리. 탄웨이칭은 전도 유망한 의대생과 열애에 빠지지만, 그 의대생은 완고한 의사 아버지의 바람대로 탄웨이칭을 버리고 다른 의사 집안의 사위가 된다. 그 의대생의 여동생 가리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집에서 정해주는 배필을 마다하고, 사랑하는 남자 더웨이와 살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가리와 더웨이는 ‘졸업’의 엘레인과 벤저민처럼 현실에 맞서 혁명과도 같은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해탄적일천’의 놀라운 점은 이 선택이 영화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다. ‘해탄적일천’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춘향전’이나 ‘졸업’이나 ‘1987’이 모두 피해갔던 그 이야기. 어쩌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 사랑 이후의 삶에 대하여, 혁명 이후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에 몰입하는 남편이 된 더웨이, 그 같은 남편의 관심을 갈구하는 전업주부가 된 가리. 채워줄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점점 위기로 치닫는다. 그래도 남편을 계속 의지하고 살아 보고자 마음먹은 어느 날, 남편 더웨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이제 가리는 해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과연 남편이 맞는지 확인하러 해변으로 간다. ‘해탄적일천(海灘的一天)’이란 낭만적인 영화 제목은 바로 그 해변에서의 하루라는 뜻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반도주하여 결혼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주체적 개인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완고한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했다고 해서 가리가 꼭 주체적 개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야반도주라는 혁명적 사태를 치러냈지만, 알고 보면 의탁 대상을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사랑이란 말로 치장했을 뿐, 결혼은 결국 또 다른 타자에의 의존이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바로 그 의존성 때문에 결혼 생활도 위기에 처한다. 야반도주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생각하기에, 남편에게 그만큼 큰 보상과 관심을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완고한 군부 독재를 이겨내고 거리에서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체적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혈 사태를 겪었지만, 알고 보면 의탁 대상이 군부 정권에서 민간인 교주로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타자에의 의존에 불과하다. 그 의존성 때문에 정치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가두시위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혁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에, 정부에게 그만큼 큰 보상과 관심을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정치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혁명 이후의 일상을 살아 보면 선과 악은 그다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완고한 도덕주의자인 줄 알았던 아버지는 성추행범으로 판명된다. 아버지 편인 줄 알았던 어머니는 사실 딸의 야반도주를 알고도 묵인한 것이었다. 믿었던 남편은 술집 여자와 놀아나는 중이다. “당신은 팔자 좋은 환경에서 자랐나 보군요, 사랑을 믿다니.” 남편의 애인은 가리를 비웃는다. “사랑이라뇨. 이 세상엔 사랑은 없고 충동만 있어요.” 이 지점에 이르자, 억압에 저항하여 주체적인 참사랑을 성취했다는 가리의 낭만적 서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서사가 무너지자, 해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실제 남편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비로소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가리는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해변을 떠난다. 야반도주할 때도 되지 못했던 주체적 개인이 이제야 되어 떠난다.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고 매사가 복잡하고 흐릿하기만 한 현실을, 완전한 동지도 없고 완전한 적도 없는 뒤죽박죽인 세상을, 이제 주체적 개인이 되어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다. 사랑과 혁명의 의미마저 오롯이 재정의해가면서.

2016년 촛불 시위는 정말 ‘혁명’이었을까. 그것이 정말 혁명이었다면, 촛불혁명이 약속한 세상은 정녕 도래했을까. 혁명은 일어났으나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뿐이라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말한 적이 있다. 이제 3월이 되면, 해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혁명아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주체적 개인이 되어 투표장을 떠나야 한다.



참고로 해탄적일천은 83년작이며 대만의 80년대는 한국의 80년대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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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bogen
아니 40년전 영화 때깔이 뭐이래 좋대요?
올해 찍은거라 해도 믿겠는데요.
구밀복검
재작년에 리마스터링 4K로 하고서 이제 한국 개봉하는 거라 그럴 거여유 ㅎㅎ
Regenbogen
앗힝엨훜
어쩌면 얼탱이 없는 지적일 수 있는데 국내 컨텐츠는 보다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해외 컨텐츠는 좀 저명하고 근작을 써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구상에 설령 딱 맞고 본인이 최근에 본 작품이라도요. '해탄적일천'은 83년 작인데다 08년 PIFF 때 상영되었으며 정식 개봉은 22년 1월입니다. 이게 무슨 영화사적으로 한국에서만 유독 외면 받던 명작 중 하나인 것도 아니구요.
구밀복검
뭐 영화계에서 83년이면 근작이지요
에드워드 양 아조씨는 돌아가셔서 근작을 낼 수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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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국내 개봉작이면 제 기준으론 충분히 근작입니다. 제가 영화에 대해 다른분들보다 더 조예가 있는진 모르겠으나, 에드워드양 작품 중에 저명할 자격이 없다 할 작은 여태 본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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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얼마나 흥행했는가로 말했습니다. 사실상 국민 대부분이 존재 자체를 모르는 작품이 칼럼의 주요 소재로 적합한가 싶었습니다.
애초에 쓰신 '저명하고 근작'의 의미가 '흥행여부'로 이해될수 있을만한지 잘 모르겠네요. 흥행여부라고 이해한다해도 칼럼의 주요 소재란 그 방향성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하네요. 어떤 독자에게는 '졸업'도 '1987'도 얼마든지 마찬가지일 수 있어서.
이걸 다 떠나, 에드워드양 작품은 뭐든간에 감상을 권해봅니다. 재밌어요. 저는 '고령가살인사건'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을 잊지 못하겠더라구요. 일단, 보시면 몰스킨님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바꿔볼만한 작품이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2
'저명하다'는 것은 그저 얼마나 널리 알려졌다는 말로 썼습니다. 단순히 각 영화 별 한국어 2차 컨텐츠 생산량을 (블로그나 신문, 평점 한줄평 등) 대강 봐도 '1987', '졸업'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이 글의 독자가 영화 잡지 구독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고 동시에 김영민을 필진으로 쓴 이유도 쉽고 명쾌하게 글을 잘 쓰는 교수여서이지 영화평론가라서가 아니니까요. 심지어 가장 핵심 소재도 촛불을 들었던 대한민국 군중입니다. 저는 글에서 굳이 저 작품을 택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예를 드신 2차 컨텐츠 생산량을 기준으로 '저명하다'라는 표현을 쓰신거면, 저명/근작이라는 범주설정은 이미 모순이에요. 국내 대중상대로 개봉한게 올해인 영화면 당연히 저 기준에 부합할수가 없지 않을까요?
네 그러니까 저 작품은 제 기준에서 몹시 부적격이라 특히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명하고 근작인게 좋다는 기준이 모순이라는 데에는 언뜻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본 작품, 화제성이 좋은 걸 소재로 쓰는 것이 좋다는거죠. 아니면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 그 대상이 되어도 괜찮긴 하겠구요. 저는 이 작품이 둘다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말씀하시는 기준의 범위가 계속 바뀌는 듯이 보입니다만.
에드워드양의 영화들은 모두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감상하시면 이 위상의 영화를 이렇게 활용하는 것의 적절함에 대한 몰스킨님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실거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요.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바에 덧붙이자면 여러 글이나 강연에서 제가 접한바로 이 저자는 웬만한 영화평론가 이상의 안목을 갖고 있긴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다른 이름으로 낸 영화평론작이 신춘문예 당선된 적도 있는 양반으로 알아서. 그의 칼럼에서는 여기서 말고도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되는데, 편집자도 아마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편집방향을 설정했을거라 봅니다.
당연히 '저명'이나 '근작'이란 말 모두 추상적이긴 하지요. 다만 확실한 것은 굳이 사람들이 모르는 작품을 갖고 올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에드워드 양의 작품을 하나 밖에 보지 않았지만 에드워드 양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압니다. 굳이 에드워드 양을 몰라도 80년대 작품이 20년대에 재개봉된 것만 해도 그저 훌륭한 작품일테지요. 단지 저는 대중 칼럼의 소재로서 부적절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김영민은 신춘문예 영화평론에 오른 적도 있지요. 게다가 아직도 영화를 많이 보는지 이 영화도 보고 연말의 '퍼스트 카우' 칼럼 역시 좋게 읽었습니다.
Ye 님// 그 기준의 범위에 대한 지적을 구태여 계속해 드리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정확한 상술없이 계속 같은 얘기만 반복하시네요. 말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굳이 홍차넷에서 이러고 싶진 않아서. 좋은밤 되십시오.
간로 님// "10년 내 500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 같이 수치적 범위를 제시하길 바라는 건가요? '기준의 범위'와 '정확한 상술'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특히 "흥행여부라고 이해한다해도 칼럼의 주요 소재란 그 방향성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하네요."라는 너무 당연한 말 이후 댓글들은 솔직히 에드워드 양과 김영민에 대해 제가 얼마나 아는지를 노골적으로 시험하려 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충분히 점진적으로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제가 구구절절 작품의 개봉 연표를 읊으면서도 굳이 에드워드 양... 더 보기
간로 님// "10년 내 500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 같이 수치적 범위를 제시하길 바라는 건가요? '기준의 범위'와 '정확한 상술'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특히 "흥행여부라고 이해한다해도 칼럼의 주요 소재란 그 방향성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하네요."라는 너무 당연한 말 이후 댓글들은 솔직히 에드워드 양과 김영민에 대해 제가 얼마나 아는지를 노골적으로 시험하려 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충분히 점진적으로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제가 구구절절 작품의 개봉 연표를 읊으면서도 굳이 에드워드 양의 작품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설령 에드워드 양이 누구인지 전에 몰랐다한들 클릭 몇 번에 누군지 다 알게 되는 세상에서 말이죠. 심지어 유튜브로 안 본 영화도 몇 분 만에 다 본 것처럼 만들어 주는 세상인데요. 아무튼, 좋은 밤 되세요.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서…? ㅋㅋㅋ 굳이 저 작품을 택한 이유는 칼럼 안 줄거리 설명에 잘 나와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름발이이리
당연히 봤을 것으로 전제하고 상세를 생략할 때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만, 저 글 정도면 별로 이해에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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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혁명의 완성은 주체적 개인"이란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투표장에서 나의 뜻을 행사하되,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자신만의 촛불 혁명의 의미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아마도 제 이해 부족일지도 모르겠지만 - 저 정도가 이해 못하면 대중도 당연히 이해 못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 저는 '주체적 개인'이 되는 것, 대선 투표장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 그리고 혁명이 끝나는 것이 당최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글에서 '해변'은 우연히 그렇게 정해진 장소로서 등장하는데 투표장 혹은 선거일은 전혀... 더 보기
이 글에서 "혁명의 완성은 주체적 개인"이란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투표장에서 나의 뜻을 행사하되,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자신만의 촛불 혁명의 의미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아마도 제 이해 부족일지도 모르겠지만 - 저 정도가 이해 못하면 대중도 당연히 이해 못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 저는 '주체적 개인'이 되는 것, 대선 투표장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 그리고 혁명이 끝나는 것이 당최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글에서 '해변'은 우연히 그렇게 정해진 장소로서 등장하는데 투표장 혹은 선거일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영화 내에서 굳이 '해변'이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날 것 같습니다만, 그러한 맥락을 빼먹고 무리하게 요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혁명 완수가 '주체적 개인'의 과정이라면 그걸 왜 굳이 대통령 선거일과 연결지어 쓴 건지 설명하지 못하는 글이 되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절름발이이리
말씀하신 부분은 영화를 보셨어도 별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안 본 영화를 인용해 쓴 글이어서 이해가 안 가신게 아니라, 그저 글쓴이가 후반부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인 것 뿐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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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님의 설명으로 글이 조금 더 받아들여졌습니다. 후반부에 좀 더 무언가가 있긴하군요?
혁명의 의미를 이행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시기는 이미 만기가 지났고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고 종지부 찍는 최종단계만 남았다는 뜻이지요. 혁명의 의미를 이행해서 완성하는 게 아니라 혁명이 - 애당초 맞기는 했던 건지 남편의 청춘 시절 사랑마냥 의문스러운 - 애저녁에 끝났다고 스스로 인정하고서 미련없이 탈덕하여 일상으로 돌아가 릅신식 리얼월드의 삶을 사는 게 완성인 겁니다. completion이 아니라 ending인 거죠.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가 아니라 '난 끝장났어 I am finished'인 겁니다. '혁명이 아... 더 보기
혁명의 의미를 이행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시기는 이미 만기가 지났고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고 종지부 찍는 최종단계만 남았다는 뜻이지요. 혁명의 의미를 이행해서 완성하는 게 아니라 혁명이 - 애당초 맞기는 했던 건지 남편의 청춘 시절 사랑마냥 의문스러운 - 애저녁에 끝났다고 스스로 인정하고서 미련없이 탈덕하여 일상으로 돌아가 릅신식 리얼월드의 삶을 사는 게 완성인 겁니다. completion이 아니라 ending인 거죠.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가 아니라 '난 끝장났어 I am finished'인 겁니다.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뿐'이라는 인용부터가 인용의 형식만 취했을 뿐 본인의 핵심 논지입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그만할 때가 되었고 그러기에 좋은 시점이 때마침 닥쳐오는 대선이라는 거죠. 마치 영화의 주인공에게도 '때마침' 사랑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으려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해변가의 시체 확인이라는 사건이 닥쳐왔듯. '해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혁명아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는 표를 행사해서 민의를 표현하라는 식으로 특정한 결단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2016년은 완전히 지나간 시기임을 인정하게끔 프레셔를 주는 사건을 앞두고 있다는 정도의 건조한 진술이죠. 영어로 치면 be supposed to인 거예요. 뭘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봐야 "인생과 역사의 대부분은 그렇고 그런 일상이 채운다. 재미없는 비(非)혁명적 시간과 마주해야 한다."라는 주제의식하에 수미일관하게 해석되죠.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결혼생활 전반을 반추하면서 사랑의 사멸을 대면하게 되듯 선거를 계기로 정권 출범 시점을 반추하면서 촛불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었다는 걸 대면하게 된다는 거고요. 초장부터 드는 비유 보셔요. [“다시 두 분만 사니까, 좋지 않으세요? 맨주먹으로 신혼 생활하던 옛 시절을 함께 다정하게 회고하고 그러세요?” 선배는 허탈한 웃음을 흩뿌리며 대답한다. “그런 옛날이야기 꺼내면, 나 집에서 쫓겨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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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 글을 읽고 기어츠 인용을 두고 당최 왜 넣었을까, '혁명아'라는 합성어를 결론에 뜬금없이 왜 등장시켰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리 상세하게 해석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군요. 문득 아무리 칼럼의 목적이 어느 정도의 계몽이 있다지만 그간 쓰던 글들에서 벗어나 왜 이리 돌려 말했을까 싶었는데, 제목이 엄청 명확하네요.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것이요.
호의를 담아 몇마디만 남깁니다. 그 이해 정도에서 읽으시는거면 본 텍스트에 대한 스스로의 제대로 된 평가를 당장은 보류하는게 온당하네요.
그러니 본문에서 줄줄이 줄거리를 읊었지요.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저명하지 않다고 느끼니까 1987이나 졸업과 달리 세세히 설을 덧붙였겠죠. 이게 영화라서 그렇지, 해외 작가의 저술이었다고 상정하고 읽어보면 부적절하다고 할만큼 이례적인 글쓰기는 아닙니다.
저는 그래서 굳이 한국 작품 / 해외 작품 구분을 둔겁니다. 김영민이 쓴 이 한국어 글의 주 독자층은 한국인이니까요.
본문에서 열심히 줄거리를 요약했음에도 왜 그것이 부족한가는 위의 댓글로 갈음하겠습니다.
자공진
혁명 아니라고 좌파들은 진작부터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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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ㅋㅋ 그냥 복고적인 행동이죠
제루샤
본문과 다른 이야기지만 본문과 같은 태도를 가자는 것과 별개로 소시민1로써는 2016년은 소시민적 낭만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 정도 낭만은 가지고 살아도 되잖아욥..2002년처럼 근데 이제 약간 멋있음을 곁들인ㅋㅋㅋ

돌이켜봤을 때 그 낭만의 소재가 전쟁이라거나 그렇다면 회고해야하지만 2016년 정도는 소시민에게 낭만으로썬 충분히 훌늉하지 않나욥..(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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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루샤
그 이후가 어땠냐와는 별개로 말이죠.ㅋㅋ
아부지 어머니가 젊은 시절 연애 시절 추억하는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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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ㅋㅋ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한마음으로 하야를 외치던 시절... 개인적으로는 박근혜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거대 서사를 만들어주고 대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해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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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루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박근혜의 마지막 선물 맞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zygii
그 선물의 결과가 문재인이라 저한텐 흑역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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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이불
저두 문재인 너무 싫…집값이 너무 뛰어서용 ㅠㅠ
그래서 그 이후와 별개로라고 썼습니다.

밑 댓글처럼 결혼 1년만에 헤어졌고 사실 그 시키가 바람둥이 개ㅅㅋ였다고 해도, 내가 선택해서 사랑했고 사랑해서 행복했다면 누군가에게 그건 낭만이고 누군가에겐 그것조차 기억하기 싫겠죠. 저는 낭만 쪽을 선택했습니다.ㅎㅎ

어쨌든 국민이 평화적 시위로 무려 탄핵을 하고 무려 그 와중이 혼란 없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잖아요.이것조차 성공한 국가가 얼마 없지 않습니까.

소시민은 이런 뽕이라도 있어야 또 정의로운 사회를 꿈이라도 꿔보고 시위에 응원이라도 또 보내고 하게 될테니...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2002년같은 거라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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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트윈스
결혼 후에도 연애시절의 기억은 낭만으로 남는 거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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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결혼 일 년 만에 성격 차이로 헤어져
평생 혼자 살았다 할지라도
그건 알고 싶지 않은 마음 아픔이 뭔지 아니까
그저 해피엔딩까지가 좋겠어

혁명의 끝이 지금이라 해도 저 땐 즐거웠어요.
1
자공진
https://youtu.be/9CB4Uygx8_A
해피엔딩

덕분에 엄청 오랜만에 듣네요 감사합니다ㅋㅋㅋ
1
구밀복검
happily ever after..
메리메리
세상 시궁창인게 뻔할 뻔자인데 꿈 한번 꾸는게 무슨 대수랍니까?
아직도 50년 이상 더 사실 분들이 인생을 너무 허하게 보시는게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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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물있뉴
촛불혁명이 뭘 약속했는지.....가 문제인것 같은데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세상을 약속한것 아닌가?? 하는게 제 솔직한 생각이고
실제로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국민 눈치를 보는 경우가 확연하게 늘었고
국민들도 '니들이 내 눈치를 안봐??'하는 식으로 정치인을 대하는 경우가 확연히 늘었지 않나 합니다.
(물론 '저 정도를 혁명이라고 하기엔 좀 모양 빠지지 않냐'는 얘기는 나오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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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혁명은 포멧에 가깝지 윈도우 업데이트 같은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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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레볼루숑!!!!
人在江湖
좋은 펌 감사합니다 (__)
남미 생각나네요.
우울과 몽상. 아니, 몽상과 우울.
닭장군
혁명 전사가 되시오. 자랑스런, 혁명 전사 말이오.
프랑스 혁명도 한번에 성공한 게 아니라 여러 번 왕정/독재정을 연거푸 겪지 않았나요.
한 번의 시위에 완벽한 정부를 얻는 것보다는 국민들이 윗대가리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촛불시위를 소위 '촛불혁명'으로 드라마틱하게 명명하던 자들은 민주당 세력이었던..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선과 악이 명확하고...승리한 쪽이 권선징악적 결말이라 믿거나 혹은 자기쪽이 선이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현실은 승리는 그저 힘센쪽이 이긴 것일 뿐이지요... 물론, 역사는 구부러진 길을 가더라도 결국 전진하는 방향으로 가는 편이긴 하지만... 그게 sub-optimal 에 해당하는 웅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 투표라는건 코끼리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보질 못하는 개미군단이 모여서 batch-learning 을 통해 코끼리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 더 보기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선과 악이 명확하고...승리한 쪽이 권선징악적 결말이라 믿거나 혹은 자기쪽이 선이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현실은 승리는 그저 힘센쪽이 이긴 것일 뿐이지요... 물론, 역사는 구부러진 길을 가더라도 결국 전진하는 방향으로 가는 편이긴 하지만... 그게 sub-optimal 에 해당하는 웅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 투표라는건 코끼리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보질 못하는 개미군단이 모여서 batch-learning 을 통해 코끼리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터넷의 발달로 코끼리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아주 조금은 더 늘어났습니다만, 여전히 일부분일 뿐이지요.. batch-learning 이란것이 어렵지 않은 문제는 쉽게 해결이 가능하지만... 어느정도 문제의 복잡도가 고도화되기 시작하면.. 모델을 정교화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풀이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라는 모델의 위기도 바로 이 고도화된 사회 시스템에 도달하니 한계에 닿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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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실버
탄핵을 혁명이라고 볼 순 없다고 봅니다. 사실 이건 탄핵 이후의 결과로 평가하기 이전에 탄핵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고, 419나 516, 518처럼 한국 현대사를 관통할만한 급의 사건이 아니라는 거죠. 흔히 박근혜 탄핵을 독재 권력에 저항한 시민의 승리로 인식하는데 박근혜가 탄핵된 결정적인 이유는 태블릿 때문도 아니고 최유라도 때문도 아닌 '조선일보와 싸워서'죠. 어떻게 보면 내부 분열로 인한 정권교체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결사옹위했으면 국회 탄핵... 더 보기
탄핵을 혁명이라고 볼 순 없다고 봅니다. 사실 이건 탄핵 이후의 결과로 평가하기 이전에 탄핵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고, 419나 516, 518처럼 한국 현대사를 관통할만한 급의 사건이 아니라는 거죠. 흔히 박근혜 탄핵을 독재 권력에 저항한 시민의 승리로 인식하는데 박근혜가 탄핵된 결정적인 이유는 태블릿 때문도 아니고 최유라도 때문도 아닌 '조선일보와 싸워서'죠. 어떻게 보면 내부 분열로 인한 정권교체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결사옹위했으면 국회 탄핵 의결에서 새누리당 찬성표가 그렇게 나올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봉기로 한국 정치가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움직이었다고 봅니다. 새로운 망령이 등장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주식하는 제로스
조선일보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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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마치
이렇게 오늘 하루도 쓴 이와 퍼준 이 덕분에 재미있는 점하나 찍혔습니다.
2
병아리달
해탄적일천 미루고 있었는데 봐야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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