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게시판입니다.
Date 15/06/11 15:31:19
Name   Vinnydaddy
Subject   [LOL] 페이커 ESPN 특집 기사 번역입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 원문은 http://espn.go.com/espn/feature/story/_/id/13035450/league-legends-prodigy-faker-carries-country-shoulders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을 올려주신 becker님께 감사.

* 상당부분 의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부정확한 번역도 간혹 있습니다만 내용을 바꾸지는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 한 부분, 페이커와 조은정 아나운서가 인터뷰하는 부분은 당시 경기의 실제 인터뷰를 인용했습니다.

* 여성 리포터라서인지 아니면 제가 패션에 둔감해서인지는 몰라도 번역하기 애매한 패션 관련 단어들이 꽤 등장합니다. 그냥 넘어가는 쪽으로 처리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 이 글은 자유롭게 퍼가실 수 있습니다. 단 댓글에 퍼가시는 곳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불사대마왕(Unkillable Demon King)

만 19세의 페이커는 혜성같이 등장하여 게임 영역에서 최초의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과연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또는 LOL)의 영재 소년은 어깨에 조국을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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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막 LOL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 되려고 할 때쯤, 베를린에서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채팅방에서 ‘고전파’라는 어느 정체모를 한국인이 온라인 랭크 게임을 박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고전파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프로 선수가 여가시간에 장난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전파는 사실 서울 외곽지역에 사는 고등학생이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졌다. 2013년 초입에 그는 한국 서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해 봄, 한국에서 게임단을 후원하는 회사 중 하나인 SK 텔레콤에서 LOL 게임단을 하나 더 창설할 것이며 고전파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름이 이상혁인 그 10대 소년은 게임 아이디를 페이커로 바꾸었다. 2013년 4월 그가 프로 대회에 데뷔했을 때 온라인에서의 소란스러움은 귀가 멀 지경이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LOL 역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SKT의 첫 상대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팀 중 하나였던 CJ Blaze였다. 경기는 e스포츠 전문 방송인 온게임넷을 통해 방송되었다. 경기 초반, 양 팀이 각자의 캐릭터, 즉 ‘챔피언’을 선택할 때, 페이커가 화면에 잡혔다. 삐쩍 마르고, 이목구비가 섬세하며, 단정하게 머리를 깎은 소년은, 표범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는 여성 전사 니달리를 골랐다.

LOL은 5:5 게임이며, <콜 오브 듀티>처럼 1인칭 시점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관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페이커는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접근했다. 상대는 그보다 나이가 많고 유명한 앰비션 선수였다. 앰비션은 자신의 기술 중 하나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타워 근처로 퇴각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챔피언이 잠시 멈추게 된다. 그 순간,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대여섯 번이나 화면을 다시 돌려가며 봤는데, 페이커가 표범으로 변신하여 적 타워로 펄쩍 뛰더니 앰비션을 없애버렸다. 관중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페이커는 다시 뛰어 달아났다.

카메라가 급히 수풀과 나무가 많은 게임의 맵인 <소환사의 협곡> 아래쪽을 잡았다. CJ의 두 선수가 SKT의 두 선수를 상대로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페이커가 시야에 잡혔다. 아직 표범 형태인 그가 전장으로 뛰어들어서는 CJ 선수 한 명을 잡아버렸다. 다른 선수가 달아나려 하자 페이커는 인간 형태로 변신한 후 창을 날려 도망가는 선수마저 잡아버렸다. 4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적 팀의 반 이상을 잡아버린 것이다.

“미치는 줄 알았죠.” 해설자로 활동중인 ‘몬테크리스토’ 크리스토퍼 마이클스의 회상이다. “할 말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관객들은 무슨 범죄현장의 목격자라도 된 듯 멍하니 입을 쩍 벌린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12개월동안 SKT는 유례없는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페이커의 프로 첫 시즌에 SKT는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다음 시즌에는 승승장구하여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LA의 스테이플스 센터를 가득 채운 만원관중 – 그리고 온라인으로 경기를 지켜본 3천2백만명 – 의 앞에서 페이커와 팀원들은 중국팀을 스윕하고 ‘소환사의 컵’과 1백만불의 상금을 차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계속 승리를 거두며 15연승을 기록했다.

10대에게 야구보다 e스포츠가 더 인기있는 서울 이곳에서 페이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SKT의 광고에는 슬로우 모션으로 카메라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그가 등장한다. 인터넷에서는 #thingsfakerdoes 라는 해시태그가 생겼다. LOL 팬들 중 일부는 그에게 ‘불사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신’이라고 부른다. “제 생각에 페이커의 위상은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급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종목과 관련 업계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 선수거든요. 최초의 진정한 세계적인 스타입니다.” 베테랑 캐스터인 전용준 씨의 평가다.

이런 게임 천재가 탄생한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점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10년 이상 e스포츠 세계를 지배해 왔으며, 동양권 국가들이 체육 선수를 생산해 내듯이 게임 천재들을 생산해 왔다. 작년 가을 한국의 LOL 스타 플레이어들이 차례차례 한국을 떠나 고액 연봉에 중국으로 이적한다고 선언했다. ‘코리안 엑소더스’(*) 동안 삼성이 후원하던 최정상급 두 팀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SKT도 세 명의 선발 선수가 팀을 떠났다. 중국 팀에서 페이커에게 대규모의 계약을 제시하였을 때 – 일설에 따르면 백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 한국의 LOL에 대한 지배는 그 끝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엑소더스를 대탈출로 번역할수도 있지만 그 뉘앙스를 담아내기 힘든 것 같아서 그대로 엑소더스라고 두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불사대마왕은 한국에 남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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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밤, SKT는 서울 중심가에 있는 온게임넷 스튜디오에서 삼성 갤럭시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서는 초대형 백화점 안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타고, 초현대적인 미용 용품이나 김치 냉장고 등등의 옆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스튜디오 문 바로 앞에서는 김한솔이라는 젊은 간호사가 10cm는 되는 하이힐과 가죽치마, 그리고 대문짝만하게 FAKER라고 적힌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가장 임팩트있는 선수죠.” 그녀는 두툼한 땋은 머리 가닥 하나를 고양이를 쓰다듬듯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페이커의 CJ 블레이즈 상대의 데뷔전을 생생히 기억한다. “정말 기뻤어요. 사람들 기대치가 정말 높았는데 그걸 전부 충족시켜 줬거든요.”

페이커가 2013년과 14년 연속해서 MVP를 수상한 후 그의 실력은 논쟁의 여지없는 세계 최고였다. 그러나 작년 봄, SKT가 패배하기 시작했고 – 그의 지위에 대한 반발이 생기기 시작했다. e스포츠 웹사이트들의 헤드라인은 일제히 무너진 제국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당시 18세였던 페이커가 정점을 지났는지에 대한 토론이 여러 포럼에서 불붙듯 일어났다. 비록 대부분의 LOL 전문가들이 팀의 기량 하락의 원인을 페이커가 아닌 다른 팀원들에게서 찾고 있지만, 2014년 시즌 막바지에 SKT가 플레이오프에서 패하자 모든 사람이 ‘신이 인간계로 내려왔다’고 동의했다. 10월에는 다른 한국 팀인 삼성 갤럭시 화이트가 챔피언십 컵을 들어올렸다.

온게임넷 스튜디오로 들어서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게임 쇼의 세트와 너무도 흡사했다는 점이다. 양 팀은 관객들 앞에서 유리 부스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며, 한글과 영어로 중계하는 두 팀의 중계진들이 체크무늬 재킷과 타이를 매고 그 사이에 앉아 있고, 그들 뒤에는 게임이 중계되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온게임넷의 대표 프로듀서인 위영광 PD의 말에 따르면 온게임넷은 10대와 20대 남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케이블 채널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의 경기는 50만명이 온라인을 통해 시청하기도 했다.

올해 초반에는 다소 느린 출발을 보인 SKT였으나 연승을 거두며 분위기가 좋은 상태로 이날 경기에 임했다. 만약 몇 주 후에 있을 스프링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팀은 플로리다주 탤러하시에서 개최될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에 진출해 타 지역 우승자들과 대결할 예정이었다(월드 챔피언십은 10월에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한편 코리안 엑소더스에 가장 처참히 당한 삼성은 지난 아홉 경기 중 여덟 경기에서 패전을 기록했다. 게임 시작 한 시간 전, (삼성의) 새 선수들이 키보드를 들고 부스에 들어왔다. 하얀 가죽 재킷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와 한쪽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한 그들은 마치 어느 누구도 (그들을 보고) 겁먹지 않을 폭주족들 같았다.

세트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미국인 캐스터 “도아” 에릭 론퀴스트가 지나가다가 무대 뒤편에 있는 페이커를 발견했다. “저기 있네요. ‘그 사람’, 신화, 전설. 저 조그만 한국인 꼬마가 말이죠.” 페이커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신과 독대할 수 있는 드문 기회임을 깨닫고 급히 세트 뒤쪽으로 향했다. 스튜디오 안은 더웠지만 페이커는 SKT의 팀 점퍼를 입고 있었다. 173cm에 51kg인 그의 체구는 유니폼 안을 간신히 채울것만 같았다. 광대뼈는 아주 날카로워서 얼굴에 광대뼈 그림자가 졌다. 그는 통역에게 메이크업을 받으러 무대 뒤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온게임넷은 출연자들에게 화장을 아주 진하게 하는데, 그로 인해 화면에 비친 그들은 마치 뱀파이어 영화에 나오는 핏기 하나 없는 엑스트라들 같다. 페이커에게 그 화장하는게 싫냐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피부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게임 전에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는 ‘버프 걸’이 지나가다 페이커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얼굴을 붉혔다. (LOL에서 ‘버프’는 챔피언의 힘을 강하게 해 주는 효과를 말한다.) 페이커에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혹시 지는 것이 무섭지는 않은가? “이제는 긴장하지 않아요.”라고 그가 대답했다. 불현듯 SKT의 팀 매니저 중 한명이 나타났다. 그녀가 통역에게 혹시 오늘 전략 얘기 한 거 아니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페이커는 사라졌다.

삼성의 전력이 약하기 때문에 SKT는 오늘 베스트 라인업을 사용하지 않고, 대체선수로 이지훈을 출전시켰다. 지난 몇 주간 커다란 안경을 쓰고 웬지 우울한 표정을 한 이지훈 선수에 대한 얘기가 온라인을 달구었다. 과연 그가 신과 동급이 되었는가. 나중에 도아에게 묻자 “전체적으로 보면 페이커가 낫죠. 하지만 이지훈이 더 유용한가에 대한 논쟁은 가능할 것 같네요.”라고 답했다. 내 두 줄 뒤에 앉아있던 간호사 김한솔씨가 응원문구를 만들고 있었다. “환상의 이지훈”이라고 씌어 있었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삼성의 실력이 많이 뒤진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LOL에서는 양 팀이 맵의 양쪽 코너에서 시작하며, 주 목적은 상대방의 주기지 ‘넥서스’를 부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챔피언들은 중립 생물들을 잡아서 골드를 얻고 강해지며, 무기를 사서 적들을 처치한다. 최상위 선수들간의 LOL 경기는 심도깊은 전략 게임이지만 초보자들이 즐기기에도 어렵지 않다. 킬은 좋은 것이다. 다중 킬은 더 좋은 것이다. SKT는 손쉽게 두 경기 모두에서 승리를 거뒀다.

경기가 끝나자 수십명의 관객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대부분 뱅헤어와 풍성한 스웨터, 짧은 치마, 힐을 신고 있었다. 한 소녀는 햄스터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SKT 팀원들에게 선물로 줄 초콜렛 크림 쿠키 상자를 집어들기 위해 몸을 숙이자 다리 사이로 복슬복슬한 꼬리가 내려왔다. 팬들이 밤과 인형과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상자를 들고 페이커에게 다가가자 페이커가 공손히 인사를 한다. 그는 받은 선물을 조심스럽게 옆에 내려놓고, 팬들의 전화기를 받아 팬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다. 한 소녀가 사인펜을 내밀어 사인을 요청하자 그는 대문자로 FAKER라고 적는다. 잠시 멈추더니 그 아래에 ‘행복하세요’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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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강남구의 어느 골목에서 02 피씨방으로 갔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자 어둡고 창문 없는 방 안에 컴퓨터가 줄지어 놓인 공간이 나타났다. 나이든 여자 한 분이 문 근처에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에너지 드링크가 진열되어 있었다. 피씨방은 LOL 소리(돈 떨어지는 소리와 기술 쓰는 소리) 이외에는 조용했다. 맞은 편 벽쪽에 세 명의 한국인 남성이 나란히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27세의 김현준씨는 한 주에 한두번 피씨방에 오고 한 번 오면 다섯 시간 정도 있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페이커를 아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무슨 눈이 세 개인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당연하죠.” 나머지 두 친구가 낄낄거리는 동안 그가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페이커는 신이에요.”

한국에는 피씨방이 1만2천개 이상이며 그중 상당수가 24시간동안 열려 있다. 피씨방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를 겪은 정부가 초고속 인터넷에 투자하기 시작한 때부터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온게임넷의 위 피디에 따르면 경제 공황이 한국 e스포츠의 열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할 일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죠. 그 사람들이 게임을 하기 시작한거죠.” 오늘날, 아직 서반구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스마트폰을 어린이들까지 죄다 들고 다니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구식의 인터넷 카페로 모여든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피씨방이 살아남는데는 사회학적인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는 작은 아파트에서 사는 집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실에서 시끄러운 게임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피씨방으로 모여든다.

전국적으로 유행한 최초의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로, 체스처럼 복잡한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스타크래프는 1998년에 출시되었는데, 2000년대 중반에 한국은 감독 단체(한국 e스포츠 연합, KeSPA)와 게임 전문 방송 채널 두 개로 이루어진 활발한 e스포츠 리그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 캘리포니아주 산타 모니카에 위치한 작은 회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출시하기에는 아주 좋은 시기였다. 라이엇은 국가별 접속자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 1천2백만명 이상이 LOL을 플레이한다. 2012년 한국에 프로 팀들이 생기기 시작할 때, 코치들과 스폰서, 합숙소 등의 발전된 인프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페이커는 서울 외곽의, 반쯤 비어있는 사무용 건물들이 많은 곳에서 팀원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합숙하고 있다. 팀원들은 침실을 공유한다. 정오쯤 기상하면 아주머니가 와서 점심을 차려준다. 식사 후, 걸어서 몇 분 거리의 헬스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8시간동안 그들은 다른 팀과 스크림을 하거나, 게임 중계를 보며 잠씬씩 쉰다. 페이커는 이후 개인연습을 적어도 네 시간 이상 한다.

합숙소에 방문했을 때 ‘L.i.E.S.’ 최병훈 감독과 ‘kkOma’ 김정균 코치는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가죽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LOL을 플레이하고 있던 김정균 코치에게 코리안 엑소더스에 관한 생각을 묻자 그는 화면은 눈에 고정시키고 손으로 바쁘게 클릭하며 대답했다. “올해의 롤드컵 결과에 달려있죠. 한국이 우승하면 별 문제 없는거고, 다른 나라가 이기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페이커에 관해 언급하자 김 코치는 눈썹을 찡그렸다. “팀 게임이잖아요. 팀이 잘 못하면 페이커도 잘 못하는 거죠. 지금처럼 잘 하는 건 나머지 팀원들이 잘 받쳐주니까 그런 거죠.”

감독실 바깥으로 나가자 신께서 서계셨다. 그는 2013년 소환사의 컵을 들고 손가락을 하늘로 뻗은 채 웃고 있는 팀원들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페이커에게 한국을 떠난 선수들과 계속 연락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연습하느라 시간이 없어서요.”

페이커는 SKT의 합숙소와 멀지 않은 강서구에서 자랐다. 그와 남동생은 아버지와 조부모 손에 자랐다(페이커는 어머니를 본 지 꽤 오래 됐다고 말했다). 어릴적부터 페이커는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아이였다. 루빅 큐브를 맞추거나,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 책을 읽거나 하는 아이였다고. 목수인 그의 아버지는 조숙한 큰아들 때문에 약간 놀랐다고 한다. 이상혁은 항상 게임을 좋아했다 – 배우고, 연습해서, 결국은 정복해버리고는 했다. 2011년 한국에 LOL이 출시되자 그는 매일 LOL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그의 실력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한국 서버에서는 그와 동급인 플레이어들을 짝지어주는 것을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SKT가 계약을 제의했을 때 그는 갓 고등학생이 된 참이었다. 팀에 들어간 후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페이커는 연습실을 구경시켜준 후, 커다란 옷장과 트로피가 진열된 장식장, 그리고 스폰서 중 한 곳인 뉴밸런스에서 제공한 운동화가 들어있는 신발장이 있는 라운지로 안내했다. 그 옆에는 다른 스폰서인 포카리 스웨트에서 제공한 스포츠음료가 채워진 냉장고가 들어있었다. 소파는 누워도 될 정도로 컸지만, 페이커는 가장자리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앉았다. 합숙소에서의 일과에 대해 묻자 페이커가 그려낸 하루일과는 수도승의 그것과 비슷했다. 게임 말고는 다른 취미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었다. 벽에도 뭐 붙어있는 것이 없었다. (음료수보다는) 물을 좋아했다.

그가 화분에 식물을 키운다는 얘기를 읽었다고 물었다. “나무같은 게 하나 있고, 풀 같은게 하나 있어요.” 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는 자주 관자놀이 주변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는데 마치 틱인 것처럼 자주 그랬다.

처음에 SKT의 코치진들은 페이커가 너무 낯을 가려서 믿을 수가 없었다고. 심지어는 언어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걱정했다고 한다. 심한 날은 하루에 몇 마디 하고 말 정도였다고. “별로 말을 안 하는 애거든요. 그래서 우리 팀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많았죠.” 최감독의 회상이다.

하지만 LOL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는 확연히 긴장을 풀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챔피언들을 플레이할 수 있는지 묻자 – 대개 대부분의 게이머는 몇 개의 챔피언만 숙달되어 있다. 하지만 페이커는 프로 경기에서 30개 이상의 챔피언을 플레이한 바 있다 –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제 강점은 게임의 흐름을 이해해서, 싸울 때와 안 싸울 때를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챔프를 플레이하든 그 강점은 살아있어요.” 그가 설명했다. 프로 경력을 회상하면서 그는 디테일들을 풀어내었다. 2013년 챔피언십 우승 후 팀원은 단체로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관람했다. 트랜스포머 놀이기구를 탄 이야기를 하며 페이커는 크게 미소지었다. 간혹 그는 개인연습을 방송하면서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는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는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유명세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한국의 포탈 사이트인 네이버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로 싣는다. 최근 레딧에 그가 한국인 아나운서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글이 올라오자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아주 가끔 그가 SKT 합숙소 바깥으로 나가면 10대 팬들이 그를 알아보는 일이 자주 있다고. “대개는 야구모자를 써요.”라고 그가 말했다.

페이커는 중국에서 온 영입제안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아 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그의 입술이 약간 뒤틀렸고 그가 다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얼마간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떠난 선수들 중에 여러명이 어렵다고 얘기했어요. 해외에 가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남아서 챔피언십 우승을 한번 더 차지하고 싶어요.” 그에게 그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아니죠. 이제는 제 수준의 선수가 여러명 있으니까요. 열심히 연습하면 다시 누구나 인정하는 세게 최고가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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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중계진 도아와 몬테크리스토 두사람은 모두, 작은 카페와 수제맥주집이 늘어선 좁은 길거리의 분위기있는 동네인 경리단길 근처에 산다. 우리는 거기에서 전직 캐스터였고 지금은 통역을 담당한 수지 킴과 함께 만나 제육볶음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들에게 왜 페이커가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로 꼽히는가 하고 묻자, 흔히 몬테로 통하는 몬테크리스토가 끼어들었다. “프로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이 뭔가요? 예를 들면, 르브론 제임스가 왜 위대한 선수죠?”

나는 몇 가지 기준을 더듬거리며 꺼냈다. 운동능력, 기술, 판단력.

“똑같아요. 완전히 똑같은 기준이에요.” 라고 수지가 대답했다.

LOL에서 운동능력에 해당하는 부분은 ‘메카닉’이라고 불리는데, 선수가 키보드와 마우스로 움직임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기술을 얼마나 잘 피하는가를 말한다. 몬테는 이 메카닉 면에서 페이커는 비할 데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2013년 SKT와 KT 불릿츠와의 경기에서 나온, LOL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중 하나로 널리 꼽히는 장면이었다. 페이커는 류라는 다른 선수를 상대로, 똑같은 닌자 챔피언 제드를 가지고 대결하고 있었다. 짧은 교전 후 페이커의 제드가 죽기 직전이 되었고 그가 퇴각한다. 류가 내가 페이커를 잡아냈다고 생각하자마자, 페이커가 놀라운 연속 동작을 통해 눈깜짝할 사이에 류를 잡아낸다. 관객들이 미쳐 열광한다. “2초 안에 다른 기술을 무려 여섯 가지를 쓴 거에요.” 몬테의 설명이다.

도아가 덧붙인 설명은, 더욱 놀라운 것은 페이커의 챔프 폭으로, 그로 인해 게임의 새로운 패치 – e스포츠 언어로 ‘메타’에 적응하기 쉽다는 점이다. 라이엇 게임즈가 몇 주마다 게임을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항상 자신이 선호하는 챔피언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NFL에서 갑자기 내년에는 러쉬 터치다운은 5점만 준다고 한다거나, MLB에서 좌완투수의 스트라이크 존만 늘린다고 생각해보라. 비록 계속 변화되는 메타로 인해 게임이 항상 새로운 것은 사실이나, 프로 선수들에게는 괴로운 일일 수도 있다. 몇몇 선수들은 불리한 패치를 결국 극복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것이 e스포츠 선수들의 평균 커리어가 짧은 이유 중 하나이다. 프로 선수들은 대개 20대 중반 이전에 은퇴한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처럼 전성기는 그 한참 전에 온다. 나이든 게이머들은 느려지는 반사신경과 피로, 그리고 목과 손목 부상과 싸워야 한다. “10대 남자들을 생각해보세요. 앉아서 16시간 게임하는 건 어렵지 않죠.” 몬테의 말이다.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대학을 가지 않기 때문에 은퇴 후의 진로는 제한되어 있다. “프로게이머들 상당수의 집안이 잘 사는 편이 아니에요.” 수지의 말이다. “상당수의 선수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죠.” 그녀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선수들이 그들의 기술로 돈을 벌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고 그래서 한국을 뜨고 있다고 한다. 비록 한국 프로선수들 대부분이 여덟 자리의 연봉을 받고, 일부 엘리트 선수는 1억원 이상을 받지만(몬테는 페이커가 아마 그 두세배는 받을 거라고 추산했다. SKT는 페이커의 연봉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 중국 팀은 막대한 군자금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팀 중 하나인 Invictus Gaming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왕진린의 아들이 구단주이다. 올 겨울 그들은 한국인 선수 네 명과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 선수들이 돈을 버는 또다른 방법은 스트림인데, 그들의 연습을 중계하고 광고를 함께 송출하는 것이다. 중국의 은퇴 선수인 ‘Caomei’ 웨이한동 선수는 스트림으로 1년에 8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팀들도 최근 조금씩 스트림을 시작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팀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은퇴 후 캐스터로 전향한 ‘클라우드템플러’ 이현우 해설자가 말했다. “한국에서는 돈을 벌려면 성과를 내야 하거든요.” 하지만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2월에 어느 트위치 사용자가 페이커의 연습게임을 허가 없이 중계하기 시작한 일은 꽤 논란이 된 바 있다.

라이엇 게임즈 한국지사는 성형수술의 명소인 신사역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넓은 사무실은 실리콘 밸리의 그것과 유사해 보였다 – 아케이드 게임들, 레고 탁자, 드럼 세트까지. LOL을 플레이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지만, 라이엇은 돈을 번다 – SuperData Research에 따르면 작년 한 해 13억불을 벌어들였다 –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값싼 게임 내 요소, 예를 들면 챔피언을 위한 스킨이나 커스텀 킷 등을 파는 방식이다. 이러한 부가요소들 중 다수는 프로 선수들이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인 선수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 라이엇과 한국 리그를 주관하는 KeSPA는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작년 가을 라이엇은 서구 팀들이 너무 많은 외국인 선수를 고용하지 못하게끔 새로운 지역 제한 정책을 도입했다. 라이엇 코리아의 홍보담당인 리차드 권 씨는 MLB 스타인 추신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e스포츠의 성공적인 선수에게도 병역 면제가 허락될 수 있게끔 정부를 설득하고자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코리안 엑소더스가 과장된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한국이 다른 점은 아마추어 폭이 튼튼하다는 거죠. 새로운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다른 라이엇 직원이 옆에서 농담을 던졌다. “페이커 2호기.”

한국의 직장은 단합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고, 단합보다 위대한 가치는 없다. 클템에 따르면 “팀들 생각은 이런 거죠. ‘받는 돈 값을 못하면 그냥 잘라버리면 된다’. 새로 선수 뽑아서 키우면 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이 게임에 재능이 더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더 나은 훈련을 더 뛰어난 코치들에게 받은 거라고. “그게 우리의 가장 큰 힘인거 같아요.”

하지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코치들까지 떠나기 시작하면? “그럼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그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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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의 스프링 시즌 마지막 경기는 시즌 초반에 이미 그들을 꺾은 바 있는 GE 타이거즈와의 경기였다. 양팀 모두 이미 플레이오프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경기는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다. 스튜디오가 열리기 전에 페이커의 아버지인 이경준씨와 고모 두 명과 근처의 커피숍에서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고모 중 한 명이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의 자랑이에요.”

SKT가 처음 아들의 계약을 제의했을 때 그는 아들의 학업을 중단시키는 데 대해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선생 중 한 명이 나중에 검정고시를 통해 쉽게 자격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설득시켰다고. “엄마 없이 나 혼자니까 내가 아들을 먹여살려야죠. 지금 상혁이가 하는 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요.” SKT가 월드 챔피언십을 획득한 뒤 이경준씨는 깜짝 놀랐다고. “그때 야, 진짜로 잘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정말 열심히 연습했으니까요. 자기 전부를 다 쏟아붓고 있으니까요.”

그에게 중국에서 온 거대한 계약 제의에 대해 묻자 그는 아들처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제의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걸 거절한 것일까? “SKT에 남고 싶어했어요. 제 생각에는 자기를 키워 준 조직에 충성을 보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 페이커는 부스 안에 앉아 팀원들과 연습하고 있었다. 페이커가 LOL을 할 때는 마우스 위에 올려놓은 손은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그의 인대는 계속해서 경련하듯, 기타의 현마냥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가 발 한 쪽을 떤다. 그가 맵을 주시하는 동안 나는 그를 가까이 관찰한다.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 내 앞에 앉아있는 육체와, 화면 속의 치명적인 살육 기계를 연결시키고자 하면서.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냥 10대 소년 같았다. 비록 친구와 함께하는 게임에 몰입해 있다 해도 말이다. 잠시 후 그는 메이크업을 받으러 자리를 비웠다.

매 경기 시작시에 드래프트라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 동안 양 팀은 세 챔프를 밴하고 다섯 챔프를 고른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고유한 스킬 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드래프트는 게임을 좌우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몬테는 게임 승패의 30퍼센트는 밴픽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페이커는 여러 챔피언에 능하지만, 요녀 암살자 챔프인 르블랑을 잡고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GE가 르블랑을 즉각 밴하는 것은 따라서 놀랄 일이 아니다.

SKT가 1경기를 쉽게 가져가지만 2경기는 조금 더 길게 걸린다. 30분동안 두 팀이 포화를 주고받는다. 어느 시점에 GE 선수 한 명이 숨어있다가 페이커를 향해 덮쳐온다. 갱킹이라고 불리는 행위이다. 페이커가 공격을 피해내자 관객들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결과적으로 다섯 명의 GE 선수들이 SKT 네 명의 선수들을 향해 돌진한다. 인원수가 유리한 것을 보고 싸움을 건 것이다. SKT가 몇 초간 버텨낸 후, 페이커가 갑자기 화면에 나타나 전장에 쐐기를 박는다. SKT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GE의 챔피언들이 다시 살아나기 전에 넥서스를 깨버린다. 게임이 끝났다.

종료 후 아나운서가 옆 의자에 앉은 페이커를 인터뷰한다. 뜨거운 조명에 두터운 메이크업이 녹아내린다. 그녀가 페이커에게 11주년을 맞아 SKT의 간판스타로서 한 마디를 요청한다.

“우승도 많이 하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팬들에게 한 말씀?”
잠시 관객들을 바라본 그가 대답한다. “2경기에 깔끔한 경기력을 못 보여 드려서 팬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한국에는 ‘망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당신의 소속 집단에 불명예를 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캐스터인 ‘초브라’ 윌 조의 말이다. “만약에 미국에서 어떤 팀이 잘 못했다고 해 보죠. 비판이야 하겠지만, 돌아오면 퍼레이드는 열어줄 거에요. 한국에서는 어떠냐면, ‘너 잘 못했어? 아예 올 생각도 하지 마.’ 이런 식이죠.” 그는 2014년 월드컵 대표팀이 패전 후 귀국했을 때 공항에 팬들이 찾아가 엿을 던졌던 것을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엿은 모욕으로 통한다.)

몇몇 선수들은 한국을 떠난 후 심적 부담이 덜해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데프트’ 김혁규 선수는 삼성을 떠나 중국의 에드워드 게이밍에 입단했다. 데프트의 말에 따르면 중국 팬들은 덜 비판적이라고. “한국에서는 팬들이 공격적이에요.”라고 말했다.

2012년 한국의 ‘웅’ 장건웅 선수가 경기 도중 등 뒤의 스크린을 훔쳐본 일이 있었다. 프로에서 이는 금지된 행위이다. 팀은 즉각적인 제재를 받았고, 온라인에서는 비난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1년 후 그는 은퇴하면서 레딧에 그 사건에 대해 글을 남겼다. “사람들은 저를 우리 나라를 배신한 반역자인 것처럼 대했습니다. 그때 저는 22살에 불과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온라인상의 증오는 너무 참기 힘들어서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고 썼다.

장건웅은 현재 한강 바로 남쪽의 목동 지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레몬그라스 차를 마시면서 그는 게임을 그만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팬들은 “아주 공격적”이지만, 또한 그는 그의 기술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변화를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런데 게임은 계속 변하고 있죠.” 그는 은퇴 후 코치직을 맡았으나, 썩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다. 곧 그는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의 미래는 밝지 않아요. 은퇴하고 나서 커리어를 이어가기가 어려워요.”

요즘도 LOL을 재미삼아 하는지 물어보았다. “자주는 아니고,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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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고 MSI가 열릴 때쯤 되자 SKT가 페이커와 이지훈 중 누구를 선발로 내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GE를 결승전에서 박살낸 후 SKT는 두 선수 모두를 MSI 참가를 위해 탈라하시로 데려갔다. 중국 리그에서 손쉽게 우승을 거둔 데프트는 라이엇과의 인터뷰에서 이지훈이 더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페이커는 게임 판도를 뒤엎는 능력이 있죠. 하지만 요즘 메타에서는 그런 일이 잘 안 일어나니까요.”

대회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농구장에서 열렸고 4천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스탠드는 젊은이들, 10대 소년과 소녀들 – 여자 비율이 그렇게 높을 줄이야! - 그리고 정교한 의상과 PVC와 천으로 캐릭터를 흉내낸 코스플레이어들로 가득했다. 근육질의 나시 티를 입고 플로리다 주립대 모자를 거꾸로 쓴 한 무리의 근육질 형씨들을 보고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한 순간, 그들 중 한 명이 ‘이렐 너프 좀’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LOL 챔피언에 대한 아주 계층화된 농담이다. 그 형씨들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e스포츠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게임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지만 대회는 물리적인 조건에 여전히 제약을 받는 다는 점이다. 만약 미국인 게이머가 한국 서버에 접속하려고 하면 미세한 딜레이를 겪기 마련이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각국의 라이벌들은 국제 토너먼트가 열릴 때만 만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팀들은 일반적으로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탈라하시의 대부분의 팬들은 미국 대표인 TSM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처참히 박살났다. SKT는 준결승전까지 무난히 진출해 유럽 대표인 프나틱과 대결했다. 모두가 한국 팀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준결승전은 놀랍게도 매우 대등한 매치였다. 어느 시점에서 페이커는 여러 번 죽기도 했다. 어느 아나운서가 SKT가 이지훈으로의 교체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하자 관객 중 일부는 큰 소리로 찬성을 표하기도 했다. 다음날 밤, 두 팀이 결승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용이 새겨진 검은 새틴 자켓의 EDG와, 남색과 흰색의 SKT였다. 페이커의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SKT는 이지훈을 선발로 내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 팀이 첫 승을 거두지만, 2경기는 쉽지 않았다. 용병 데프트가 다중 킬을 거두고, SKT는 2경기와 3경기를 패한다. 한 경기만 더 지면 탈락하는 시점에서 팀은 무대 뒤쪽으로 모이고, 카메라가 그들을 따라간다. 꼬마 주위에 모인 팀원들 모습을 보고 관객들 가운데 깨달음의 웅성거림이 퍼져나간다 – 이지훈이 없다. 교체된 것이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페이커의 이름을 합창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가 무대 위에 오르자 체육관은 떠나갈 것만 같다.

게임이 시작되자 SKT는 목적 의식을 새로이 하고 경기에 임한다. 페이커가 맵의 중심을 오가면서 팀이 전투를 이기기 시작하고 점수를 얻기 시작하고 힘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SKT의 오라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아나운서가 말한다. 팀은 손쉽게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5경기에 임한다. 이번 드래프트 단계에서 EDG는 바보같은 실수를 범한다 – 르블랑이 밴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곧,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함정이었음이 명백해진다. EDG는 르블랑을 저격하는 챔피언들로 로스터를 꾸렸고, 페이커가 크게 무력화되자 EDG 선수들은 맵을 휘저으며 학살하기 시작한다. 킬이 누적되자 경기는 점점 그들 쪽으로 기운다. 결국 37분만에 중국 팀이 SKT의 넥서스를 부수고, 근처의 스피커에서 큰 목소리가 나온다. “제 기억으로는 사상 최초로... 한국 팀이 패배했습니다.” 꽃가루가 무대 위로 터지고 SKT 선수들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후 무대 뒤로 페이커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한국에서 그에게 물었던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게임을 그만두면 뭘 할 건가요? 지난 몇 주간, 여남은 명의 게이머에게 이 질문을 물었고, 대부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몇 명은 프로 이후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고, 다른 몇몇은 일단 군대를 다녀온 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바로 대답한 것은 페이커가 유일했다. 그가 대개 말이 많지 않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요.” 무엇을 공부할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과학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화 ‘인터스텔라’도 재미있게 봤다고.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그의 대답이 기억났고, 그도 그 문답을 기억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나중에 그를 경기장 밖에서 발견했다. 팀원들과 함께 레드 카펫 위에 서 있었다. 따뜻한 플로리다의 봄밤에 수백명의 팬들이 모여서 SKT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씩 차례대로 나아와, 신 앞에 경의를 표했다. 매번 페이커는 고개숙여 인사하고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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