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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08 17:14:18
Name   김연아
Subject   [클래식] 내가 즐겨 듣는 피아노 독주곡 10곡
옆 동네 올린 거 재탕 한 번 해봐요 흐흐

바람이 슬슬 선선해지면서 가을 느낌이 납니다. 가을은 어찌 피아노 독주를 듣기 좋은 계절입니다. 피아노 독주는 외로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홀로 헤드폰을 끼고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한없이 센치해지기도 하고, 한없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저는 피아노 패티쉬즘이 있어서 건반 위에 물결치는 고운 손가락을 보노라면 묘한 흥분을 느끼곤 합니다. 절정에 이르러 강렬한 타건으로 달릴 때는 머리가 쭈삣쭈삣 설 때도 있지요. 그러니 코렁탕 잡술 위험이 있는 아청한 것들 보다는 피아노를 듣는 게 좋습니다? 다만, 사실 저는 피아노 독주곡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닙니다. 주로 듣는 클래식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이고, 신나게 달리거나 때려부수는 음악을 더 선호해요. 그래서 숨어있는 강자들이 즐비한 피아노 독주 청음에 대해 이런 글을 쓴다는 게 과히 민망하지만, 월급도둑질이 땡겨서 써봅니다. 으하하하하.

1. 모짜르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흔히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도 알려져 있는 곡으로 한 번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곡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베토벤을 위시한 다른 작곡가와 달리 모짜르트는 신의 사랑이 담긴 재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가 된 건 아닐지.

2.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베토벤의 인기곡들은 대체로 제목이 붙어 있지만, 사실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곡과 제목들이 참 잘 어울린단 말이에요. 제목으로 인한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고별에서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유려하게 흐릅니다. 슬픔으로만 점철되지 않은 서양식 고별이랄까요.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베토벤의 음악적 변화와 발전은 사실 교향곡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1-8 고전주의의 완성이다가 갑자기 9번에서 낭만주의 모습을 조금 보여준달까요. 하지만, 그의 현악사중주나 피아노 소나타는 훨씬 더 강하게 그의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데요, 이 곡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비창, 월광, 열정에 비해서 덜 유명하지만, 저는 훨씬 즐겨듣는 곡이에요.

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이 당시 베토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귀가 안들리다시피 하는 수준의 건강 문제, 문제아 조카의 양육 문제, 기타 등등 돈문제. 그래서 베토벤은 창작에 더 매달렸고, 그것으로 고통을 이기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온 것들은 베토벤의 위대함에 화룡점정이랄 수 있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후기 현악 사중주, 후기 피아노 소나타, 장엄 미사 등 베토벤 음악세계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혁신적이며, 가장 대단하다고 주장해도 딱히 반박하기 힘든 곡들을 썼습니다. 요즘 롸커들이 나이들면서 고리타분 해지고 음악성도 후져지는 것과는 사뭇다르죠. 이래서 음악가들은 배가 고파야...... 쿨럭... 이 곡은 베토벤 특유의 우주적인 느낌이 잘 녹아있는 베토벤 낭만주의의 진정한 진가라고 생각해요.

4. 바흐 평균율


바흐가 건반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하죠.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바흐를 크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교과서적이며, 엄숙하여 어느 전기 작가의 말처럼 신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달까요? 저와는 맞지 않는 음악인 면이 많아요. 그렇지만, 바이올린 연주곡 샤콘느와 평균율은 참 좋아합니다. 평균율은 바흐의 음악적 신성함이 꽤나 빠져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교과서 그 자체라 부를 만한 곡들이지만, 여유있고 아름다워요. 전 편집된 노래를 듣는 것 보다는 하나의 일관된 음반을 걸어놓고 주욱 듣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런 작품집을 좋아하는 편인데, 평균율은 정말 으뜸입니다.

5. 슈베르트 즉흥곡 Op. 90


작곡가 중에 별명 때문에 제일 손해본 케이스 두 명이 하이든과 슈베르트라고 생각합니다. 교향곡의 아버지와 가곡의 왕이란 별명 때문에 저것만 잘 하는 느낌이 들고 음악 시간에도 하이든의 교향곡과 슈베르트의 가곡만 가르쳐요. 그렇지만, 둘 모두 다른 부분에서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신 분이죠. 또한 둘 모두 훌륭한 피아노 곡들을 남겼는데, 전 슈베르트의 피아노곡들을 참 좋아합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90은 정말 1번부터 4번까지 천상의 선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만약 모짜르트가 없었다면 그 위치는 슈베르트가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6. 쇼팽 전주곡


앞서 말씀드린 습성 탓에 쇼팽의 연습곡이니 녹턴이니 틀어 놓고 뭐든 하는 짓을 자주 하곤 했지요. 그런 쇼팽 전집류 중 가장 좋아하는게 전주곡입니다. 아마 유명하기론 연습곡이나 녹턴이 더 유명할 거에요. 광고에도 많이 쓰이는 익숙한 선율도 더 많구요. 그래도 짧고 간결한 음악에 절절한 감성을 담은 전주곡이야말로 들을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연주 소개를 하네요. 이 글의 쓰는 작은 목적 중의 하나가 영상의 연주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쇼팽의 전주곡 연주 중에 매니아들 사이에서 최고로 치는 연주 중에 하나인데, 진짜 이 전주곡 13번이 압권이라고 생각해요. 이 연주의 특이할 만한 점은 왼손 연주인데요, 다른 연주에서 화음으로 묻히는 왼손 연주가 너무 뚜렷하게 들리면서 멜로디와 반주가 뒤바뀐 모습을 보여주죠. 한없이 느린 템포로 연주하는 아르페지오(화성 구성음을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한음 한음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를 듣다 보면 단순한 화성이 얼마나 다채롭게 들리는지 정말 경이적인 연주입니다.

7. 쇼팽 폴로네이즈 6번 영웅


폴로네이즈는 폴란드의 궁정 음악을 토대로 발전시킨 음악으로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여타 쇼팽 특유의 감성과는 사뭇 다른 화려함을 가지고 있지요. 그 폴로네이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바로 6번 영웅입니다. 다른 부가 설명없이 너무나 멋진 7분짜리 곡입니다.

8. 브람스 3개의 인터메조 Op. 117


가을 맞이 글인만큼 브람스가 빠질 수 없겠죠? 가을 하면 브람스입니다.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없이 이해가 안 되면 외우세요!?!

위 연주는 앞서 등장했던 소콜로프의 영상입니다. 제가 이 곡을 자주 듣게 된 건 전적으로 소콜로프 탓이기 때문에 또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9.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


저도 근현대음악을 즐겨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단 너무 어려워요-_- 그 중에 비교적 쉽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사람이 있으니 프로코피예프입니다. 그 역시 멜로디나 화성 면에서 친숙함을 주진 않았으나, 화려한 리듬감으로 피아노의 타악기화를 시도하며 비교적 접근성이 높은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 난해한 화성이 어떻게 비교적 친숙하게 귀에 들어오는지 느낌이 옵니다.

그리하여 또 등장하시는 분이 위에서도 소개한 소콜로프입니다. 모든 음을 스타카토로 치는 듯한 그의 특유의 주법은 이 곡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를 듣는 것 같이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해요.


10.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사실 이 글은 갑자기 이 곡을 소개하고 싶어서 쓴 겁니다. 6-7여년 전인가, 이 곡을 들은 이후론 사실 피아노 독주곡으로는 거의 이 곡 밖에 듣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제목은 사실 거짓이며 엉터리입니다. 다들 여기까지 속으시며 읽으신 겁니다?

비루투오소적인 테크닉, 극한으로 가득차 있는 로맨티시즘, 서정과 화려함의 극단적 대비를 통한 극적 전개, 아주 모호한 그러나 들을 수록 뚜렷해지는 완벽한 구조. 그야말로 낭만주의 피아니시즘, 아니 그냥 피아노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동안 피아노 곡을 들었던 것은 이 곡을 듣기 위함이었고, 이 곡을 들은 이후로 다른 피아노 곡들이 필요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혹시 초심자들 계시면 윗 곡이 익숙해지시면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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