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8/06 15:06:26
Name   조지아1
Link #1   https://brunch.co.kr/@jisung0804
Subject   (책리뷰)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 오에 겐자부로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먼저 읽게 되었던 작가이다. ‘읽는 인간’ 에세이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작품도 기대감을 가지고 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아쉬웠다. 줄거리 자체는 어렵지 않고 분량도 짧은데 중간 인물들 간의 대화가 중구난방이고 한 단락에서 A와 B가 말하다 갑자기 C와 말한다던지, 한 문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한다던지 등의 이유로 문장 문장에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가가 생애 전체에 걸쳐 영문 시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영문 시와 일본어 간의 번역, 그것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이 집중력을 흩트렸다. 일본 역사 내의 사건, 일본 전통 연극에 대한 서술 등 외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집중력을 약하게 만드는데 더욱 일조했다.

실제 작가 본인을 소설 속 인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인지 읽을수록 알기 어렵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작품을 다시 자기 작품 안에 일본 역사와 함께 녹여내는 방식은 타고난 그의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작품이 겐자부로의 50년 기념작이라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평생을 문학에 바친 사람으로서 새로운 형식으로의 문학에 대한 갈증, 작가로의 재능을 다 소모해버린 것 같은 무력감과 권태로움에서 현재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문학에 대한 헌정작을 쓰기 위해 왜 세 가지 작품을 선택했는지(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과 나보코프의 ‘롤리타’ 그리고 ‘에드거 엘런 포’의 애너벨 리)에 대한 뒷 이야기도 조금 궁금해졌다.

패전 이후 일본 역시 젊은 소녀들이 미군들에게 상처를 입은 역사가 있으면서 스스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물론 겐자부로는 일본 우익과 정반대 의견을 가진 몇 안 되는 일본의 지식인이다.)

노년의 남자에 의해 표현되는 여성의 상처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즉 현대에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페미니즘적 요소가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본래의 의미를 잃은, 한국에서 변질되다 못해 뒤틀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나에게는 역사적 맥락에 비해 그다지 크게 와 닿지 못하는 부분이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겪은 평생의 상처를 문학을 통해 치유하는 것, 그것에 대한 찬가로 작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16 도서/문학(책리뷰)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 오에 겐자부로 2 조지아1 19/08/06 4376 3
    9508 도서/문학고블린 슬레이어와 악령 감상문 3 djqjgfgh 19/08/04 4236 0
    9405 도서/문학카프카 단편집을 읽고 3 djqjgfgh 19/07/07 4492 1
    9275 도서/문학연애의 기억 2 알료사 19/06/04 5018 9
    9180 도서/문학고속도로로서의 템즈강: 18세기 템즈강 상류지역의 운항과 수송에 관한 연구 34 기아트윈스 19/05/11 4980 15
    9148 도서/문학[단편] 갈림길 6 트린 19/05/03 4624 6
    9138 도서/문학[단편] 어느 게임 마니아의 일상생활 16 트린 19/04/29 4498 14
    9121 도서/문학서평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메아리 19/04/25 4537 4
    9101 도서/문학서부 해안 연대기와 표지 낚시 우주견공 19/04/19 3480 0
    9063 도서/문학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간략리뷰입니다. 7 83년생골수NL 19/04/11 5379 0
    9042 도서/문학사마달, 일주향 작가의 천마서생 3 덕후나이트 19/04/05 7030 0
    9034 도서/문학서평 『가나』 – 정용준 2 메아리 19/04/04 5922 3
    9027 도서/문학시험기간에 보면 좋을 아마추어 작가들의 만화 추천 4 BiggestDreamer 19/04/03 7418 6
    9017 도서/문학임준욱 작가의 괴선 5 덕후나이트 19/03/31 5897 0
    8990 도서/문학서평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2 메아리 19/03/22 5092 6
    8945 도서/문학서평 『웃는 늑대』 - 쓰시마 유코 2 메아리 19/03/08 3895 5
    8942 도서/문학[리뷰] 인류의 기원 , 이상희 저 2 소원의항구 19/03/07 4359 5
    8935 도서/문학리뷰 - 고양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5 Darker-circle 19/03/06 3939 3
    8913 도서/문학번역본에는 문체라는 개념을 쓰면 안되는가 13 알료사 19/03/01 5767 6
    8891 도서/문학서평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Darker-circle 19/02/21 3745 6
    8870 도서/문학서평 『새의 선물』 – 은희경 1 메아리 19/02/17 4836 9
    8854 도서/문학서평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1 메아리 19/02/10 4400 9
    8850 도서/문학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알료사 19/02/10 4097 10
    8815 도서/문학[서평]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 최고요, 2017 1 化神 19/01/28 4153 4
    8810 도서/문학서평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 1 메아리 19/01/27 3696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