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5/12 06:36:09
Name   아재
Subject   30대 기획자. 직장인. 애 아빠의 현재 상황.
1.
적당히 월급 밀리지는 않고 잘하면 주식 상장을 노릴수 있는 가디/구디 근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운영관련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IT 기획자일을 쫓아 여기까지 흘러왔죠.
사수 없이 고군 분투하다가 사수까지 생기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맑은 물과 같았던 맨탈이 바닥에 가라앉은 부유물들에 의해 혼탁해지기 시작한게 이때 쯤인거 같습니다.

2.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사이 최말단으로서
남은건 맨탈 맷집뿐이다 생각하며 왔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야근이 많아지고 가끔은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집에서 혼자 애를 보는 와이프와 갈등은 점점 커져가고
주말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종일 하고
회사에서는 막내로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제 파트에서 일이 많이 지연이 됐습니다만 이것이 저의 게으름 때문인지 역량부족 때문인지 의지의 부족때문인지는 모르겠더군요.
(니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는게 의지의 부족이라 생각할수 있지만요)
어쨌든 휴일없는 삶에 체력과 맨탈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3.
그리고 와이프의 추천으로 바쁜 와중에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며칠간 시간을 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회사에서 등록비를 제공해줬지만,
혼자 거액의 등록비를 사비로 충당하여 자격증을 취득하고 같이 공부를 들었죠.
그와중에 다른 회사의 디자이너 기획자 개발자들을 만났습니다.
고생고생하며 만든 서비스가 나쁘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트렌드에 쳐지는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렇게 감정 소모를 해야 하는 것인가 많은 의문이 들더군요.
뽑아준 회사에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던 일이란 생각으로..
2년여간 존버한 시간이 이직 후 더 큰 세상으로 가는 데 크게 도움이 안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4.
혹시나 싶은 마음에
가고 싶던 회사.. 더 배우고 싶은 회사들을 찾아 노크를 하였습니다.
모든 구직 시장이 그렿긴 하지만 많은 서류탈락이 있었고
그 와중에 면접이 연결된 몇 회사와 면접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면접 중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일하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지금 일하는 방식이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통하지 않는구나.
당장 가지고 있는 역량이 지금의 회사들에게 핏하지 않구나.
대체 난 뭘했던 거지?

남아있는 마지막 면접을 보고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왔습니다.

5.
하지만 아버지의 삶은 쉽지 않더라구요.
오자마자 애가 열이 나더니 열경기를 일으키고
하루종일 간호하고
저는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체온을 체크하고 열을 식히는 와중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울할 시간마저 없는 삶이 참담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되려 생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아이러니함도 주더라구요.

6.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기획자의 앞길이 어둡다면 이직준비로 속도가 나지 않던 데이터 관련 공부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자일 관련 수업도 들으며 핏을 맞춰나가고,

직종 변환을 위해, 속으로 아쉬움으로 남겨놓았던 이과생으로서의 가능성도 노려보려구요.

가정을 버릴순 없으니
야근이 일상화된 현재의 회사와의 공존 혹은 결별의 방법도 고민해보구요.

그때마다 더 나은 방향이 뭔지 고민하고,
살아지는 삶이 아닌,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야겠어요.

모든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분들 그리고 부모님들 모두 힘내세요.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힘내시길..



35
  • 장하십니다
  • 춫천
  • 남의잉 같지 않아요 ㅠㅠ힘내세요
  • 이 모든 어려움을 즐거운 추억으로 뒤돌아보실 날이 꼭 올겁니다. 커리어 초창기에 겪은 어려움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한 멘탈을 만들어 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지느라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이직은 능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와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만큼 여유를 가지고 맷집으로 버티세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35 일상/생각괌 다녀왔습니다~ 6 elena 17/11/22 5527 8
1885 일상/생각더 힘든 독해 25 moira 15/12/29 5528 10
3626 스포츠덴마크의 작은 거인 5 Raute 16/09/01 5528 4
7762 스포츠간단하게 복기해보는 한국 2:0 독일 23 Raute 18/06/28 5528 18
5772 일상/생각음주운전에 관한 잡생각 47 Zel 17/06/11 5531 2
5899 의료/건강나의 갑상선암 투병기2 - 부제: 끝 없는 기다림, 그리고 포폴짱은 넘모 대단해. 25 고라파덕 17/07/05 5531 13
6225 정치핵무기 재배치의 필연적 귀결에 대한 "무모한" 설명 44 Danial Plainview 17/09/04 5531 17
11814 육아/가정 찢어진 다섯살 유치원생의 편지 유게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40 Peekaboo 21/06/22 5531 40
9184 일상/생각30대 기획자. 직장인. 애 아빠의 현재 상황. 15 아재 19/05/12 5533 35
10218 일상/생각멘탈이 탈탈 털린 개인카페 리모델링 후기 42 swear 20/01/23 5534 24
1726 창작[7주차 조각글] 정신과 의사 준석이 3 nickyo 15/12/07 5535 1
1908 정치위안부 협상- 말 그대로 '협상'을 바라본 평가 12 깊은잠 15/12/31 5535 2
11326 음악[팝송] 제가 생각하는 2020 최고의 앨범 Best 15 11 김치찌개 21/01/09 5535 5
4839 문화/예술제가 좋아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 (약간 19금) 6 ffs 17/02/11 5537 2
8211 기타메르스와 메갈 4 nonviolent11 18/09/12 5539 0
10500 정치이시각 일베둥절 39 공기반술이반 20/04/16 5539 0
7187 게임3.3 혁명 23 알료사 18/03/03 5540 12
2712 기타커피 이야기 - Caffeine (리뉴얼버전) 15 모모스 16/04/29 5540 3
7333 생활체육산 속에서 안 써본 근육을 쓰다가 5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4/04 5540 20
2602 음악독일 언론 긁어오기 - 통영 국제 음악제(스압) 1. 4 표절작곡가 16/04/13 5541 1
1939 영화<셜록: 유령신부>를 보고(노스포) 19 kpark 16/01/04 5542 0
9999 오프모임11/29 공식(?) 술쟁이의 술벙개 +_+ 82 해유 19/11/18 5542 5
10715 문화/예술쿄토 애니메이션의 마스터피스: <타마코 러브 스토리> 7 이그나티우스 20/06/26 5542 7
1887 기타ASMR 8 Lionel Messi 15/12/30 5543 0
9313 역사불운한 재상 자파르 5 치리아 19/06/13 5543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