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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11/09 11:26:50수정됨 |
Name | Keepmining |
Subject | 대학원생 고민글을 올린 후 2년 |
2년여 전 대학원생 생활 고민글을 올렸었던 학생입니다. https://kongcha.net/pb/pb.php?id=qna&no=1396 제 스스로도 스스로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점검하는 차원에서 질문글을 쓴 적이 있었고 정식으로 감사인사는 드리지 못했지만 답변 주신 분들의 세세한 코멘트에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는데, 지나간 2년 동안도 가끔 그 글을 썼던 순간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두루뭉실하게 잘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확신이 있고 심지가 있고 활기도 행복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답변주신 분들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되었어야 하는게 맞지만... 그 뒤로 여러 가지 그럭저럭 괜찮은 일도 나쁜 일들도 골고루 있었으며 결과론적으로 현재는 간단하게라도 교내 상담센터에서 우울증관련 상담을 예약해 놓은 상태입니다. 많은 것이 함축된 결과겠습니다만.. 연구적인 측면에서는 공저자 포함 논문 2편을 게재하고, 추가로 2편을 준비하였으나 1편은 사실상 준 폐기상태, 1편은 불투명상태,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연구는 시간 및 분야 경쟁상황상 지금쯤 거의 당장 퍼블리시를 해야 마땅한 형편이나 글을 쓰고 결과를 정리하는 도중 치명적인 암초를 만난 상태.. 정도에 있습니다. 홍차넷 분들도 뭔가 사람이 잘 되고 행복하고 밝은 스토리를 원하시고 계실거고 비슷한 처지에서 그런 사람을 보며 힘을 받으실 것이겠지만, 저는 갈수록 억제기가 하나둘씩 밀려가는 롤 패전처럼 인생이 기울어만 가네요. 제가 지도교수였으면 진작부터 저같은 학생은 싹수를 보고 늦어도 2년차 말쯤에 쳐냈어야 할텐데.. 교수님 스타일이 그러지 못하고 방임형에 연구실 인력도 부족하다보니 누구라도 붙잡을 사람은 필요해서 짤리지는 않은 것 같네요. 내년 여름중에 졸업을 하기로 계획했었고, 포닥을 하면서 학계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식으로 여태까지 계획을 천명해 왔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제대로된 박사논문이나 완성할 수 있을지, 어디가서 인터뷰나 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습니다. 한 3~4개월 전부터도 계속 홍차넷에 근황글을 쓰는 비관적인 상상을 하다가 참고 참았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지난 4년동안 대학원 박사과정을 하면서 단 하루도, 단 한시간도 제가 우수하고 떳떳하고 잘한다는 생각을 못 가져봤고, 한순간도 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고, 교수님의 얼굴을 볼때 긴장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역대 그룹미팅중에서 되게 좋은 전망을 줘봤던 약 3~4일정도? 밖에 없습니다. 1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사기꾼 신드롬과 죄책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난 왜 자꾸 늦게 일어날까, 난 왜 자꾸 딴짓을 했을까, 난 왜 저 발표자가 했던 저 생각을 못해봤을까, 난 왜 이렇게 코딩을 못할까, 난 왜 내가 프로젝트로 지정된 프로젝트 말고 스스로 다른 걸 할 여유를 못 만들까, 난 왜 일이 하기 싫을까. '학문연구는 하면 할수록 더 문제를 찾는 데에 능숙해지고 더 많은 동기가 생기고 기술적인 불편함을 적은 에너지로 빨리 뛰어넘게되어 더 효율이 좋아진다.'는 교수님이나 선배들의 말씀, 대학원 관련 블로그 찌라시글들을 읽으며 제 자신에 대한 의심을 애써 억누르고 참고 참고 시간이 흐르면 내 단점이 저절로 고쳐질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어느덧 5년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능력치는 상승하고 약간의 초라한 논문실적이나마 운좋게 나왔을지는 몰라도 본질적인 클래스의 문제는 그렇게 잘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미나를 들어도 질문하기가 어렵고 저널을 몰아서 읽다 보면 졸리고, 논문 글을 쓸 데도 밤에 잠을 7시간 이상 자고 나왔는데도 전혀 졸리면 안되는 시간에 기면증 환자처럼 키보드앞에 엎드립니다. 예전에는 학부때보다 더 본격적으로 학업에 정진하는 태도라도 갖고 있었다는 마지막 희망이 있었는데 나중에 가면서부터는 오히려 한 학기에 전공 6과목 듣고 정해진 숙제하고 시험보는 학부생보다도 대학원생이라는 놈이 더 학업열중도는 떨어집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은 소용돌이처럼 서로 바꿔치기합니다. 처음에는 제 스스로 인간쓰레기라고 비하하다가, 그게 한 100여일 이상 지속되고 나면 내가 왜 인간쓰레기가 되었는지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이 꼭 인생에서 열심히 살아야만 하나? 미국 토크쇼에 나온 누구의 말처럼 인류 중에 전문 커리어라는걸 가지는 사람이 2%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내가 98%에 들어간다고 해서 죄 짓는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에도 잠겨 봅니다. 아카데믹 잡 잡으려면 주60~70시간은 기본으로 집중해서 일해야 한다고 하는데 일주일 중 프로덕티브한 시간은 50, 40, 30,..이렇게 위험수준까지 줄어만 가고, 그 와중에 홍차넷, 옆동네, 유튜브, 트위치 보면서 시간을 때울때도 컴팩트하게 스트레스 해소하고 다시 업무로 복귀해서 상쾌하게 일을 하는게 아니라 아무 의미없이 즐거움도 없이 그렇다고 교훈도 없이 멍하게 시간만 흘러갑니다. 억지로 데드라인이 필요한 일이나 장치를 잡아서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고 채찍질해서 연구를 하고 자료를 만들어도 웬만한 학부생 인턴도 내놓을 수 있을만한 1차원적인 해석까지만 생각이 미칩니다. 한동안 우물 안에 갇혀 있다가, 나중에 교수 지원자나 포닥 지원자가 학과에 와서 세미나에서 하는 얘기들의 깊이를 체험하고 깨닫습니다. 1년차에는 내용을 이해못할 때도 종종 있었고, 2~3년차에는 그 간격이 느껴졌을 때 '와 저렇게 생각을 확장했구나' 하고 생각했고, 4년차에는 슬슬 '나도 이제 저정도 할 줄 알아야되는거 아닐까? 지금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불안하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저 수준까지 올라가야지'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제 5년차가 된 지금은 드디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칩니다. "대단하다. 그리고 난 저걸 못 하겠다. 나같은 인간은 단순히 출발선이 늦었거나 남들보다 좀 돌아갔던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애초에 저런 걸 못 만드는 성격의 인간이다. 내가 내 신분을 억지로 정체시키고 대학원생의 온실 속에서 연차초과 치트키를 써서 시간을 벌어서 실적을 메꾼들 난 정성적으로 저걸 못한다. 나같으면 저걸 시도하고 성공하기 전에 주제를 싫증내고 포기하거나 아랫수준에서 쓸데없는 고민이나 하면서 교수님한테 둘러대고 일하는 척 하면서 맴돌았을 것 같다." 그런 직감이 오곤 합니다. 확률론적인 면에서 대학원을 안 가는게 맞았다.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게 두세달 전입니다. 이제는 이미 많은 시간을 박아버렸고 빠꾸는 못합니다. 졸업논문도 써야하고 하던 주제에서 논문도 나와야 하고 저한테 지급된 연구비값도 해야합니다. 이해관계자들이 걸려 있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와중에도 야속하게 그런 생각은 듭니다. 내가 현실이든 넷상에서든 그런 푸념을 하면 보는 사람들은 아마 속으로 바보같은 놈..난 저렇게 안돼야겠다. 저 사람은 반면교사다 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오기가 생기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오기가 되어서 다시 힘을 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은 그냥 혼란스럽습니다. 그래 난 쓰레기가 맞아. 근데 날 쓰레기라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어, 뭐 이런 거.. 순간순간 소름끼치는건 내 인생이 뭐 어떻게 되든 난 모르겠고 최소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죄책감만이라도 없애고 싶다, 이 고통스러운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자기계발의 의무와 열정유지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혹시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는 것입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주저앉기만 하면 누가 좋아해주고 누가 일자리를 주지? 학계도 못가고 궁여지책으로 회사도 못가면 어떻게 해야하지? 분명히 학계에 가려다가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기업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구직 과정에서는 기업을 가장 가고 싶었고 거기서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비전을 이러이러하게 추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해야하고 그 기업이 최우선 목표였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이기지? 가짜로 포장해봤자 무조건 티가 나고 인사팀 사람들은 귀신같던데. 실제로 조금이라도 기업사정 잘 모르고 학생냄새만 풍기면 가차없이 떨구던데. 사실은 세상은 나름 자기충족적으로 흘러가는 면이 있는데, 그렇게 꿈이 소멸되고 원하는 게 없어지면 자기충족적인 논리로 그대로 굶어 죽어도 사실은 별로 안 아쉽기 때문인게 아닐까? 그냥 내가 억지로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고 자연상태에서 힘낼 수 있을 만큼만 버티다가, 내가 정말로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행동만 방종하고 안되면 죽을까? 잠깐, 내가 연구가 하고 싶지 않았다고? 언제부터? 난 연구할 마음으로 왔는데? 그리고 연구가 하고 싶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다른 데에 소질은 더 없는데? 회사로 튕겨나가는 순간 바로 정치질 당하고 잡아먹히고 인생 아웃 당하는데? 분야도 안 맞고 학력도 부정당하고 다 끝인데? 근데 그게 아깝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겠지? 난 결과적으로 쓰레기가 됐으니까.. 사회가 벌주는대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나에게 더 이상 순수한 결정권 따위는 없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최근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독립적인 자신으로서는 완전히 컨텐츠가 종결되었고, 스스로는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외부에서 집도하지 않으면 인생을 바꿀 수도, 단점을 극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주 강하게 확신합니다. 그래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예약이 꽉 차고 인력도 부족해서 자주는 받을 수 없네요. 연구결과가 안좋아서 내일 응급 보충발표를 해야하고 그 자료도 지금 정리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왔는데 이제는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눈물이 나옵니다. 슬프다기보다는 제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나고 원망스럽네요. 제가 하고 있는 생각들의 특성이나 몇가지 키워드 (벌 받고 있는 느낌)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테스트를 해보니 우울증 증상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희망으로 모든 게 생리적인 환각이었고 마음의 병에 의한 것이어서 그걸 치료하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것마저 안 통하면 그냥 굶어 죽는 게 답입니다. 더 여러 가지 직장을 잡든 누구와 관계를 맺든 뭘 하든 세상에 거쳐가는 곳마다 저는 손해만 발생시킬 것입니다. 그냥 11월달 들어서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분석하고, 이런 두뇌력을 계속 사용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머리는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고, 대학원에 오는 게 좋은 결정인지 나쁜 결정인지를 떠나서 올 수 있었고 지금까지 있다는 거 자체는 어쨌든 최소요건을 갖췄었기 때문인데... 내가 인간적으로 아주 인생에서 트롤을 했거나 패륜을 했거나 반사회적인 파행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좀더 순수학문 분야라는 거에 욕심을 부렸을 뿐이고 호기심이 약간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것 뿐인데.. 왜 이렇게 굴욕적인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왜 성실했던 학생은 대학원이라는 다음 단계 다음 집단에 와서, 그때부터 제 모습을 처음 봤던 교수님으로부터.. 의지 없고 창의성 없고 불성실한 학생인 것처럼 아마도 생각하겠죠? 몇달 전에 학회에서 제 흉을 봤다는 소문을 건너건너 듣게 됐는데.. 과거에 장점이었던 부분에서마저 오히려 부족한 인간으로 이미지메이킹 되어야 하는가.. 그걸 빼면 나한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데.. 그냥 그런 모든 것들이 싫고 짜증나고 괴롭고 화가 나고 그냥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국내 대기업에 가면 이렇게 흘러흘러 튕겨나온 박사들이 최고의 호구 먹잇감이라고 합니다. 학력도 타이틀도 박사연구도 앞으로는 소용없고 어차피 분야 적합성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1차적으로 세웠던 꿈이 막히고 궁여지책으로 들어가는 직장에서는 잘 나갈래야 잘 나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힘 삼아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정도가 아니라 그럴 힘을 낼 건덕지는 소멸되었습니다. 먼저 졸업해서 포닥을 하고 계속 학계에 도전하는 선배는 저한테 말합니다. 우리가 학회장에서 보고 저널에서 보는 빛나는 대가들과 우리들이 본질적으로 극복할 수 없게 종류가 다른 인간인 건 아니라고, 단지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누적된 노력량이 많고 경험도 많고 운도 아마 좋았을 것이라고.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아마 과거에 실적이 모자랐던 건 해프닝이 될거고 나중에라도 기회를 더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냥 자괴감과 의심이 모든 에너지를 집어삼킵니다. 혹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될 사람이 있고 내가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내가 열정을 잃어가는 건 나중에 가면 회복되는 자연스러운 중간 과정인게 아니라 내 본질적 성격인 건 아닐까. 이게 낭인의 길은 아닐까'... 지나간 세월 중 몇번은 교수님이 소리치며 그만두라고 하는 악몽도 몇 번 꾸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일종의 두려움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대학원을 퇴학당하면 뭔가 속이 후련할 것 같다는 느낌이 심장에서 느껴지고 그런 제 자신이 소름끼칩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마지막 한조각 생각이 저를 포기못하게 겨우 붙잡고만 있습니다. 인생의 비가역적인 선택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닐거라는 생각, 아무리 학문에 모든 생활을 갖다바치는 것도 잘 못했고 제 스스로도 에너지가 부족한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극복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대로 내가 학계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이라는 식으로 못박고 결론내리고 서렌치면 나한테 남는 정체성은 없어지는데.. 꿈도 희망도.. 비전도 아무것도 다른 건 없는데.. 그걸 인정하면 너무나 굴욕적이고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봤고 사실 누구도 함부로 결론내릴 수는 없는 것 같더군요. 아마 익명을 빌어서 질문한다면 솔직하게 그만두라는 대답이 돌아오겠죠? 이미 늦었다고.. 인정하기 싫다는 그 마음도 몇달 더 포닥 지원해보고 부딪혀보고 좌절해보면 알아서 타협하게 될 거라고.. 그런 얘기가 아마 나오겠죠? 홍차넷에는 학위과정을 했거나 봐왔던 분들도 종종 계신 것 같고.. 그냥 어차피 기분 나쁘고 읽기 싫은 글일 테니 굳이 몰입하지 마세요. 그게 더 낫습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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