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7/23 18:24:20수정됨
Name   DrCuddy
Subject   노회찬씨의 죽음에 부쳐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985975

2011년 강호동씨의 탈세혐의가 터졌을 때 전 학부에서 세법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법대 강의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을 때 그에 대한 교수님들의 견해를 바로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지요.
링크된 SBS 기사에도 설명되어 있는데 당시 세법 교수님이 간략하게 설명해주신 강호동 탈세사건의 대략적인 그림은 이렇습니다.
연예인 강호동씨가 속칭 나이트 같은 곳의 '행사'를 뛰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이런 행사를 뛰고 수당을 받게 되는데 이걸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 연예인 신분에서 할 수 있는 [근로소득]으로 신고해야 할까요? 아니면 [기타소득]으로 신고해야 할까요? 기본적인 근로소득보다 더 소득세를 많이 부과하는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는 것보다 근로소득으로 신고하면 소득세를 더 적게 낼 수 있으니, 강호동씨 정도 되는 사업자가 혼자 결정할 리도 없고 세무사나 변호사 조언과 과거 사례를 비춰보고 근로소득으로 신고했고 국세청도 별말 없이 그렇게 받았을 거라는게 교수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이 갑자기 근로소득과 기타소득 신고의 해석을 달리해서 강호동씨에게 기존의 행사수입을 [근로소득]으로 신고한건 잘못이고 [기타소득]으로 신고했어야 했다며 차익만큼을 [탈세]했다고 추징하는 거라는 겁니다.
물론 강호동씨는 억울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싸움에서 인기 연예인이 [탈세]를 했다고 언론에 나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이미지 손상이며 직접적인 손실입니다. 법적인 부분에서 싸우자면 국세청의 과거 처분을 돌아봤을 때 강호동씨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분쟁을 계속 할 수록 대중들은 '저거 탈세했다더니 반성은 안하고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네' 이런 이미지로 비춰질 수 밖에 없지요. 결국 강호동씨는 잠정적 은퇴와 세금을 충실히 내겠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몇년 후 다시 복귀했습니다. 개인적인 이미지로나, 실질적인 방송수입으로나, 법적 쟁점, 잘잘못과 무관하게는 현명한 대처를 한거지요.

노회찬씨는 대중 정치인 중 제가 대중강연을 가장 많이 참석한 정치인입니다.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고 민주노동당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대학교 순회강연에도 쫓아다니며 최소 1년에 한번씩은 강연을 들었고 노회찬씨가 2013년 떡값 검사 폭로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지방강연을 돌때 저도 지방에서 일할때라서 시간되면 가서 듣곤 했습니다.
그런 노회찬씨가 정치자금 수수로 자살을 택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판합니다. 돈 안받으면 되는거 아니냐. 이런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게 옳은 것이냐.
법학에서도 논점을 잡기 어려운 주제일 수록 단순화, 세분화시켜서 분석하지만 그렇게 무 자르듯 돈 안받으면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의원직 상실하고 강연 다니는 시점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 현재 혐의인데 저도 물론 노회찬씨에게 씌워진 혐의나 당시 사정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법 정치자금이다 이렇게 인식할만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흐린날 그림자 경계처럼, 모호하게 접근했을 겁니다. 단순 후원금일 수도 있고, 불법 정치자금일 수도 있지요. 물론 어느 계좌, 누구 명의로 후원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명확하게 위법 여부가 갈릴 수도 있지만  그건 사실 사후에 논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주는 입장에서는 이걸로 상대방을 평생 정치생명에 올가미를 씌울 수 있는 기회니까요. 최대한 안심시키고, 모호하게 접근하는 겁니다. 이걸 모든 돈을 안받으면 된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세상이 그렇게 명확히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선악을 구분할 수 있으며 피아가 확실해서 상대방에게 마음껏 퍼붓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노회찬씨도 예외가 될 수 없지요. 노회찬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을 빌렸다고 했던 말에 대해서 그에게 했던 독설이 그대로 되돌아 왔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칼은 앞서 강호동씨를 탈세혐의로 몰아 넣었던 국세청의 수단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칼이 향하고 노릴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검찰의 칼은 당신이 고양이로 변하면 고양이 목줄이 될 것이고 당신이 신문지가 된다면 그에 맞춰 가위가 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필요한건 언론과 여론의 힘일 뿐이지요. 거기다가 도덕적 결함이 발견되면 더욱 치명적인 진보정치인이니 이보다 더 좋은 목표물은 없습니다.

결국 자살로 책임을 회피했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너무 가혹한거 같아요. 결국 노회찬씨가 이번 혐의로 받을 것은 정계은퇴, 진보도 다 썩었다는 조리돌림, 법적으로 본다면 가장 잘못되어도 징역 X년일 텐데 이 모든 것을 다 합친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는것에 비해 무겁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금품 수수사실은 인정하고 결국 자살을 통한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놀림감이 되고 까이는 명예형이 생명박탈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일까요? 그렇다면 전 대통령께서는 그 어떤 처벌보다 강력한 처벌을 받고 계시는 것이군요. 앞으로 정치인들의 부패방지를 위해 정치인들은 생명박탈형보다 더한 평생 조리돌림형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노회찬씨의 자살을 전해들었을 때 슬픔, 충격보다 씁쓸함이 더 컸던건 저도 이제 정치혐오, 모두까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60대 이상은 어서 빨리 은퇴하고 다음 세대에게 길 열어줘야 한다는 내면의 세대혐오가 더욱 짙어졌기 때문일까요.
다만, 언제나 스스로 목숨 끊는 자에게 생각하는 떠나는자의 마지막,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될거라는 두려움, 그 마지막 길마저 혼자 가시게 된 안타까움을 추모하고 애도할 뿐입니다.



32
  • 그냥 그래요. 그런 거 같아요.
  • 맘이 아파요. 그냥 지켜주지 못해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284 요리/음식(내맘대로 뽑은) 2020년 네캔만원 맥주 결산 Awards 36 캡틴아메리카 20/12/27 5975 32
11276 일상/생각어느 택배 노동자의 한탄 11 토비 20/12/26 4132 32
11828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5 순수한글닉 21/06/29 4401 32
10815 의료/건강벤쿠버 - 정신건강서비스 4 풀잎 20/07/25 5396 32
9874 일상/생각착한 여사친 이야기 9 Jace.WoM 19/10/23 5587 32
9788 기타참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29 김독자 19/10/07 5305 32
9419 사회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적정비용을 찾아서 35 Fate 19/07/10 6768 32
8008 일상/생각알기만 하던 지식, 실천해보기 9 보리건빵 18/08/06 4414 32
7922 정치노회찬씨의 죽음에 부쳐 9 DrCuddy 18/07/23 4891 32
6590 일상/생각무죄 판결 20 烏鳳 17/11/14 5547 32
5730 기타사람은 아픈만큼 성숙해지지 않는다 11 소맥술사 17/06/01 5873 32
5342 기타부쉬 드 노엘 13 소라게 17/03/28 4805 32
4783 일상/생각고3 때 12 알료사 17/02/06 4141 32
15028 도서/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92 31
15025 생활체육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65 31
15022 기타[긴급이벤트] 티타임 따봉 대작전 (종료) 19 dolmusa 24/11/05 1140 31
14006 과학/기술유고시 대처능력은 어떻게 평가가 될까? - 위험 대응성 지표들 18 서포트벡터 23/06/26 2856 31
13257 댓글잠금 일상/생각성 상품화에 관한 뻘글_ 나는 왜 성 상품화를 싫어할까? 192 Iowa 22/10/21 10096 31
12859 일상/생각형의 전화를 끊고서, 진토닉 한 잔을 말았다. 4 양양꼬치 22/05/26 3453 31
12556 기타[홍터뷰] 기아트윈스 ep.1 - 닥터 기아트윈스 28 토비 22/02/28 4060 31
11775 역사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70살에 재상이 된 남자. 백리해. 17 마카오톡 21/06/10 5134 31
11264 정치편향이 곧 정치 19 거소 20/12/23 5117 31
10655 일상/생각공부하다 심심해 쓰는 은행원의 넋두리 썰. 10 710. 20/06/06 5873 31
10556 일상/생각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9 켈로그김 20/05/06 4206 31
10253 의료/건강입국거부에 대한 움직임 변화 49 Zel 20/02/02 7253 3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