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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1/01 23:44:43
Name   WatasiwaGrass
Subject   밀 농사하는 사람들 - 3, 후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는 세보지 않아 알지는 못하지만, 반납 일자 문자가 온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섯 주가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가을은 이제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다 끝나갈 참이었다. 사람들을 그에 알맞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가로수들 중 활엽수들의 잎들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성히 붉게 머금던 잎들은 토지의 자양분이 되거나, 어느 수백 개로 이루어진 선들의 기구로부터 어느 통속으로 납치되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적절한 시기에 개강되고, 과제의 급류에 휩쓸리면서 종강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하루 감사하게 보냈다.

그래도 그 노숙자 덕분에 책을 아슬아슬하게 완독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소감은 가히 베스트셀러로 오를 만 했다. 독서하면서 나름대로 유익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때마침 반납 문자가 왔을 때, 반납도 할 겸 그 노숙자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할 작정이었다.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했던지라, 지금은 마음 다 잡기로 했다.

수업을 끝마치고 열차를 타고 귀가하고 있었다. 역시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니, 문득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인류는 산업 혁명을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풍족해진 삶과는 다르게 옛날에는 온갖 병과 재해로 인해 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현재의 인류는 그에 예측하고 대처한다는 내용이었다. 확실히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비교적 신속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며, 뭣하면 자가용을 타고 이용해 더욱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다. 나는 인류 발전의 산물을 타고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인류는 더욱 편한 삶을 살고 있다. 분명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불쾌감이 올랐다.

열차가 하차역에 도착하자, 나는 늘 다름없이 일정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계단을 올라 개찰구를 통과했다.

날씨는 그때와 다르게 쌀쌀했다. 그때는 그나마 시원한 감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춥다는 신호를 오감 모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문화관으로 들어간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온기가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우선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 곳곳을 찾아보았다. 그때 처음 얼굴을 본 소파를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일 층과 이 층,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움직이면 다른 곳도 살펴봤지만 안 보였다. 오늘은 안 온 걸지도 몰랐다.

순간 나는 피로감이 몰렸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허탈감은 조금 있었다. 나는 출입문을 통해 나가고 난 뒤, 이왕 온 거 아래층 매점에 들러 캔커피를 사가기로 했다.

개강이래로 별 특별한 일은 없었다. 똑같이 미래를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다지 편한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에, 내 아는 선배가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때 그 선배는 군대 가기 전 마지막 모임에서 복학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복학해봤자, 그다지 별다른 이익은 없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계속 다닐 바에야, 휴학을 계속 유지하면서, 다른 쪽을 공부할 생각이라 한다. 그 도서관에 하염없이 공부하는 그들처럼 할 요량이었다. 선배는 넌지시 후배들을 위한답시고 이리 말했다. 나중에 졸업을 하게 되면, 어차피 관련 전공 지식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간 소비했던 시간이나 등록금들은 허비나 다름없다. 거기다 여유를 찾기 위해 전공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있지만, 만일 그 일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한다. 차라리 재학 중에, 그들처럼 공부를 하여 하루빨리 여유를 보장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한다.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 켕기는 기분을 맛봤다. 그러나 말로써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나는 연신 쓸데없는 일을 안 하려 한다. 하면 뭐하나, 내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마치 시간 낭비로 생각되어 멀리하는 편이었다. 특히 아예 나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관여를 안 하고 산다. 괜스레 앞장 서 주장하는 일은 내 체질에 안 맞고 딱히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으며 복잡하게 꼬이는 건 질색이다. 그러한 잔잔함에 물을 흐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만일 잔잔하다 못해 탁해진다면 보기가 싫지만, 내 손으로 그 탁해진 물을 대기가 싫다. 탁해진 것은 싫은데, 탁해진 물에 손을 넣는 것도 싫다고 하니, 내 자신이 생각해도 종잡을 수 없는 뒤틀린 욕구다.

피로한 와중에 참 잘도 이러한 잡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단 시답잖은 일은 유보하고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면 과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알바가 있다. 역시 바쁜 일상의 나날이 연속이다. 내게도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 여유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여유가…….

나는 계단에서 멈춰 섰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내리 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발걸음 떼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계단은 다 내려가 있었고 매점 앞까지 어느새 도착하게 됐다. 나는 매점에 들어가, 입구 좌측 카운터 옆에 있는 온장고를 향했다. 이 매점에는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의자가 두 개씩 마주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는 어느 노숙자 행색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노숙자였다.

나는 온장고에서 커피캔 두 개를 꺼내고 계산했다. 계산하는 도중 잠시 힐끔 보니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한 입 베어 물고는 그 옆 창문을 통해 바깥 지하의 전경을 보고 있었다.

계산을 마친 뒤, 나는 그 노숙자 맞은편에 앉아 그 캔커피를 건넸다. 그 노숙자는 내 얼굴을 잠깐 보다가 이내 얼굴을 내 쪽으로 완전히 돌렸다. 그 노숙자는 그제야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난 모양이다.

“그때 그 학생이구만.”

반갑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역시 그에 응수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때 도움을 주어 감사했습니다.”

나는 덕분에 완독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노숙자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코웃음을 내었다. 노숙자는 이미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내가 사준 캔커피를 땄다. 그러면서 내게 질문을 했다.

“책은 어땠나? 괜찮았겠지. 책을 대출할 수 있을 때까지 그만큼 기다렸으니까.”

“네, 맞아요. 정말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 책에 대한 소감과 호평을 전했다. 노숙자는 말했다.

“상당히 좋았나 보네. 집에 그 책이 있는데도 도서관에 와서 구태여 다른 책을 읽을까 하다가, 갑자기 내 손에 들려 있더라고”

노숙자는 웃는 표정으로 책에 대한 호평을 말했다. 나는 노숙자의 호평을 들으면서, 그 정체를 추측해 봤다. 말재간이 비렁뱅이 수준이 아니었다. 본인이 예전의 공부했던 개념들과 지식들을 연관지어, 그 이유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예전에 공부를 해 본 경험이 있지는 아니고서야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 그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런 노숙자를 보니, 조금 부럽게 느꼈다.

상념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숙자는 말을 끝냈다.

“그래서 나는 그 인류 통합의 삼요소가 제일 인상이 깊던데, 학생은 그 책에 인상에 남는 대목이 있나?”

나는 그런 질문을 받자 입을 다물었다.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책과 관련이 없는 사유였기에 말해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섰다. 인류니 뭐니 발전이 인상적이었다는 말로 얼버무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대목을 읽고 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주제들도 흥미롭고 좋았지만, 차마 그 대목까지 미치지 못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기도 했다.

“있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는 다른 이유에서 인상이 깊었죠.”

궁금하다는 표정을 내보이며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그 농업 혁명 부분에서 이런 대목이 있었잖습니까. 농민들은 밀을 키워 재배를 하였지만, 사실은 밀이 사람을 재배하고 있었다는 말말입니다.”

노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히 그런 구절이 있었다고 재확인했다.

“그 농민들은 밀을 재배하며 먹고 살았죠. 오직 밀 재배만이 생활양식이자 식량 생산이니까   요. 그 덕분에 한 층 진보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여기서부터 말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숨 돌리기를 가장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렵 채집 시대보다 못한 여유를 가지게 됐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지, 농민들은 밀을 재배하게 되면서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그 미래를 위해 더욱 일을   열심히 하게 됐지.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어. 나중에는 자식을 낳게 되고, 그에 입이 늘게되면서 수확량을 더 늘게 되고 일을 더욱 많아 졌지.”

나는 긍정의 태도를 내보였다. 그 노숙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수렵 채집 시대 때는 그저 매일 사냥을 나가고 또 채집하는 활동에 머물렀지. 그리고 여유   도 있었고 말이야. 그들은 미래를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그저 오늘은 사냥이 성공했   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한 여부만 따지면 됐지. 사냥을 성공하게 되면, 남은 시간은 여유가 생   기니 농민들보다는 여유가 있지.”

“맞아요. 하지만 그러다 밀 재배를 하게 되면서 그 쪽으로 점차적으로 나아가게 됐지요. 그러면서 완전히 밀 재배로 전향하게 되고, 책에 나온 말처럼 호모 사피엔스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지요. 밀농사가 완전히 정착을 하게 된 시점에서, 만일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   연 재해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들로서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사냥 기술은 전승 받지 못했으니까요. 결국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거에요.”

“맞아, 그런 내용이었지, 근데 왜 그게 기억에 남지?”

약간의 고른 숨을 내쉬었다. 쓴맛을 맛보았지만, 구태여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저는 왠지 수렵 채집 시대의 사람들이 부럽더군요.”

노숙자는 목청소리로 짧게 감탄을 냈다. 그러면서 물어왔다.

“거기에 기시감이라도 느꼈나 보지? 그 농경 시대의 사람들로부터.”

나는 단순명료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편안하고 편리하게 돌아간다. 내가 굳이 걸어서 갈 필요가 없다. 근처에 탈 것이 있으니까. 내가 배고플 일도 별로 없다. 지금 여기에서 음식을 사면 될 일이니까. 과거와는 많이 다른 현재다. 나는 그 현재의 축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잘 오지 않는다. 나는 농경 시대와 다름없이 밀농사를 하고 있었다. 다만 과거와 조금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밀농사를 하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밀농사를 하면 미래를 보장되기에, 밀농사하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미래의 여유를 가지기 위하여 애쓴다. 그러기 위해, 나는 희생해야 할 것이 있었다. 시간이나 내 특기나 적성은 내버려 두고 오직 쉽게 여유를 쟁취할 수 있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래서 찾은 게 밀농사다.

산업은 나중에도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욱 편리한 시대는 분명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보다 나은 여유를 가지게 될지는 의문이다. 지금 내가 가지는 여유가 기원전의 사람들보다 못하는데, 어찌 그 미래까지 여유를 보장할 수 있다 하겠나. 거기다 더욱 신경 쓰이는 문제는, 내가 여유를 쟁취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 여유를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된다.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다. 실패는 곧 자연재해다.

나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노숙자에게 전했다. 노숙자는 말했다.

“그런데 꼭 밀농사여야 하나?”

나는 잠시 침울하여 고개를 숙이다, 그 말을 듣자 들어 올렸다.

“과거이면 몰라도 지금은 밀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 힘든 밀농사 말고 내 자신의   맞는 일을 찾으면 되잖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현대 아닌가? 여유를 확보하기는 힘들어도, 즐거울 수는 있잖나.”

그 말이 귓가에 울리자 나는 울컥했다.

누가 저런 입 발린 소리를 못할까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아는가? 누구는 여유를 향한 욕망 때문에 이러는 줄 아나?

결국 나는 억양이 조금 세게 말을 했다.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누구는 여유를 너무나 갖고 싶어 계란에 바위 치기하시   는 줄 아십니까? 밀농사 말고도 다른 길이 많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요즘 사람들이 밀농   사에 열중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말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차라리 그   걸 선택할 바에는 바위에 계란을 두세 개 더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더 효율적이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유가 없는데, 그 미래에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라는 겁니까? 차라리 여   유를 갖는 꿈이라도 꾸면서 끝내는 게 더 낫습니다. 지금도 힘든데, 나중에도 힘들면 더 이상은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사람들은 밀농사가 좋아서 한 것일까요? 아니요! 미래   를 위해서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기에 그 일을 하였지요. 밀농사에 적합하지 않은데도 그들    은 구태여 일을 하여 미래를 꿈꾸었고 그것이 일의 동력이 됐지요. 그 일이 아니고 다른 일하게 된다면 힘들어지니 그들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그런데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요? 자기   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를 얻는 일은 꿈같은 소리입니다! 그런 게 있으면 누가 구태여 밀농사를 하여 고군분투합니까. 결국에는 여유를 꿈꾸기에 이 일을 하려 하는 겁니다. 그저 밀농사밖에 못하는 판에 무슨……”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했다. 내 입으로 말하니 어느 정도 후련했으나, 크나큰 막막함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과제를 하고 좋은 성적을 얻어 내려 할 것이다. 여유를 위해서 말이다. 그 정도에 그칠 뿐이면 나는 보람을 위해 성취를 위해, 성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미래에는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 과제를 끝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짐승들을 그리고 짐승 같은 고대인들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차라리 열망이 없는 것이 낫다는 유혹이 유독 진했다. 나와 같은 궤변론자가 또 있을까.

“그렇지……”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올렸다. 나는 확인을 하려 했다. 정말 노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를. 그 노숙자는 실소를 머금으며 이리 말했다.

“인문학이 무슨 밥 먹여주나?”

짓궂기는 하여도 묘하게 슬픈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이제야 이 노숙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어련할까요? 학자님.

밀 농사하는 사람들 <끝>



후기 

 여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은 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밖에 못하겠습니다. 정말로요, 무슨 선물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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