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12/07 19:12:31
Name   세뇨르곰
Subject   (픽션) 매봉역 할리스
11/27, 2018, 월요일 매봉역 할리스



글씨가 잘 쓰여지지않을 만큼 손이 얼었다.
날이 추웠다. 온 몸 특히 손이 떨렸다. 추위 때문일까? 아님 아침부터 꼬박 7잔이 넘어가는 커피 때문일까?
혹은 아까부터 30분 단위로 칼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태운, 버려야만 하는 안좋은 습관 때문일까.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담배갑 속에 손을 넣었다. 휑했다.
손가락을 담배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너번 움직여보았다.
여전히 손가락에 걸리는게 없다. 아까 피웠던 담배가 마지막이었다.
아침에 산 담배 한갑을 날이 뉘엿뉘엿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에 아작을 냈다.
원래 하루 한갑을 다 피우지 않았는데.. 씁쓸함이 밀려왔다.

매봉역 할리스는 근래에 찾은 최고의 카페다. 주차공간이 많다.
바로 앞엔 무료주차가 아니더라도 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이 있다.
왕복 4차선 갓길에 불법주차된 차와 공영주차장이 얽혀있다.
돈내고 주차하는 선량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또한 할리스 매봉점은 평일엔 새벽 1시, 금요일 주말엔 24시간 오픈되어 있다.
근처 카페들에 비해 넓은 주차공간, 긴 영업시간 외에도 바로 옆 건물에 다소 생뚱맞은 느낌으로 편의점이 있다.
그 자리에 카페나 하시지.. 괜한 어줍잖은 충고를 하면서도 담배가 떨어질 때마다 코트도 카페에 벗어두고, 담배를 사러가곤 했다.

클라우드 나인 1미리요. 평소에 피는 담배가 아닌, 예전 대통령께서 귀향하시고 즐겨 태우시던 담배를 골랐다.
자전거 타실때도 피우셨던거 같은데, 검찰조사 직전에도 피우셨었나?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포장지를 뜯고 담배 하나를 입에 무는 순간,
"쿵-덕" 둔탁한 소리와 함꼐 낮은 비명,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원상태로 복귀시켰다.
아스팔트 1차선엔 꽤나 두툼한 검정 패딩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뒹굴고 계셨고, 02번 마을버스가 비상등을 켜고 있었다.
어둑해진 시간대, 과속으로 좌회전을 하는 버스, 횡단보도를 20m 앞에 두고 무단횡단한 검은 패딩의 아저씨..
한 가지 조건만 달랐어도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과
머리를 땅에 찧으셔서 피가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긴 힘들었다.

고개를 재차 슬그머니 돌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 바닥에 피는 없었다.
그래도 충격은 컸나보다. 버스승객들이 버스에서 다 내릴떄까지도 아저씨는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워있었다.
앰뷸런스를 부르는 누군가의 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아저씨는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못한체, 누운상태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려한다.

물었던 담배에 불을 붙인다. 빨갛게 재가 타들어간다.
뭐가 그리 급해서 횡단보도 20m를 놔두고 무리하게 건너다 저런 화를 입을까.
아스팔트 위에선 뭐가 또 그리 절실할까. 얼굴엔 후회가 가득한 표정을 짓으면서도.

급한마음, 후회의 표정을 뒤로 하고, 오지 않는 그녀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다.
15분 후, 아스팔트에는 외로이 사고표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별거 없는 픽션 한줄입니다.



3
    이 게시판에 등록된 세뇨르곰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074 일상/생각자아비판 - 커뮤니티의 유혹 7 epic 18/02/09 5470 17
    7064 일상/생각나를 연애하게 하라 16 죽음의다섯손가락 18/02/07 6098 7
    7047 일상/생각노력에 대한 단상. 3 epic 18/02/04 4694 4
    7044 일상/생각구국의 강철대오 16 tannenbaum 18/02/04 6130 10
    7041 일상/생각종교로서의 코인, 자산으로서의 코인, 기술로서의.. 4 hojai 18/02/03 5322 3
    7040 일상/생각공부하다한 잡생각입니다. 10 성공의날을기쁘게 18/02/03 4194 0
    7037 일상/생각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9 tannenbaum 18/02/02 5305 24
    7024 일상/생각니니즈 이모티콘 넘 귀여운거 아닌가요 6 아이오에 18/01/30 13217 0
    7014 일상/생각감성가뭄 13 바람바람 18/01/28 3871 1
    7013 일상/생각한가로운 일요일, 집주인과의 푸닥거리 4 메존일각 18/01/28 4598 1
    6991 일상/생각[펌]커뮤니티에서 남 선동하면서 주도적으로 악플몰이하던 사람 현실 모습 알고 소름돋은 후기 9 라밤바바밤바 18/01/24 5525 0
    6987 일상/생각장모님을 떠나보내며 17 기쁨평안 18/01/23 5229 25
    6984 일상/생각끄적임 2 무더니 18/01/23 3626 0
    6979 일상/생각[펌] 이름이 예쁘면 사람도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11 라밤바바밤바 18/01/21 9395 8
    6978 일상/생각포맷과 탄띠 10 quip 18/01/21 5348 13
    6959 일상/생각방금 전 모 할머니와의 대화 10 메존일각 18/01/17 4070 4
    6949 일상/생각이불킥하게 만드는 이야기. 28 HanaBi 18/01/16 4820 20
    6939 일상/생각2년간 썼던 스마트폰 바꾸었습니다. 7 집에가고파요 18/01/13 4973 0
    6933 일상/생각날이 얼마나 추우면 물도모자라서 창문까지 6 제천대성 18/01/12 4961 0
    6919 일상/생각재능을 나누는 이들에게 감사를. 13 세인트 18/01/09 4759 17
    6918 일상/생각60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딸 뿐만은 아닌것 같다 7 그렇다고 했다 18/01/09 5493 3
    6915 일상/생각타미플루의 추억;; 14 켈로그김 18/01/08 4855 2
    6909 일상/생각친구랑 싸웠어요. 15 풉키풉키 18/01/06 5688 0
    6908 일상/생각하루지난 델리만쥬~ 5 호리호리 18/01/06 7748 0
    6898 일상/생각외국어를 공부하는 어른의 시간 5 quip 18/01/04 4856 18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