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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31 23:33:36
Name   다시갑시다
Subject   할로윈이라 생각난 사탕 이야기
몇년전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기 직전 (할로윈이 아니네?!) 좋아하는 다이너에 가서 혼자 브런치를 먹고 카운터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집어들고 나왔어요. 사탕을 손에쥐고 차로 걸어가는데 어떤 꼬마숙녀분이 절 빤히 쳐다보더라구요. 엄마랑 동생이랑 산책나왔는데 엄마가 동생에 신경쓰는 동안 한블럭 정도 혼자 앞으로 걸어나온것 같더라구요.


"하이",
인사를하니까 눈은 고정시키고 고개를 까딱합니다

"손에 뭐에요?"
아...ㅋㅋㅋ

"저기 식당에서 받은 캔디케인이에요. 먹고싶어요?"
[끄덕뜨덕] (침 흐르겠다... ㅋㅋ)

"내가 주는거지만, 엄마한테 허락 받고 먹어야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무표정] 메리 크리스마스..." (실망했나 ㅋㅋㅋ)

사탕을 건네주고서 계속 걸어가는데 어머니로 보이는분이랑 딸이랑 이야기를 하는걸 멀리서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그거 뭐니? 사탕? 어디서 낫어? (절 가르킨듯) 음? 음... 일단 엄마한테 줄래? 나중에 집에가서 줄게..."


차에 들어가면서 여러 생각이들더라구요.

일단 어린아이가 너무 이쁘고 귀여웠어요. 조카들 생각도 많이나고, 눈을 보니까 사탕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엄마가 허락은 안해줄것 같은데, 욕망과 절제가 충돌하는 동공지진이 ㅋㅋ

근데 동시에 마음이 좀 불편하고 미안하기도하더라구요.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 제 마음대로 사탕을 준거에요.

이 아이가 혹시나 단걸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서 부모님이 고생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집에서 단것을 못먹는데 제가 가정의 규율은 생각도 안하고 침범한거죠.

또 이걸 밖에서보면, 부모님이 잠깐 신경을 못쓴 사이에, 모르는 젊은 아시아계남성이 어린 백인여자아이에게 뜬금없이 사탕을 준겁니다...
제가 흉악한의도를 지니고 접근했다고 생각했어도 그순간 어떻게 반론하기 어려운 상황이였겠죠.
그 동네에 이미 몇년 살긴했었지만,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전 학교를 위해 동네에있는거니까 곧 떠날 외부인이죠. 
동네토박이들 입장에서는 특히나 이런일에 대해서 절 신뢰하기 힘들수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에 도착할즈음 되니까 조금 기다려서 어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은 다음에 사탕을 주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거죠.


미국은 오늘 할로윈이라서 수많은 아이들이 trick or treat하러 다닐거에요. 온동네 꼬마들이 코스튬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사탕 얻어먹으러 다니겠죠.
참 행복한 밤이에요. 아직까지는 미국이 한국보다 아이들의 수퍼비젼이랑 보호에 더 엄격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일년중 오늘만은 다같이 이웃을 믿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떠돌수있게 내보내는거죠. 근데 이런 특수한 상황을 악용하여 범죄를 할로윈에 맞추어 계획하는 경우도 많다고해요. 부모가 되면 언제나 마음한켠에 떨칠수 없는 두려움이 자리잡는다는게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생각해볼수있었어요.

할로윈캔디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명절에 꼬마아이에게 선물을 해줄수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 부모님 머리속에 스쳐갔을 수많은 생각들중 일부가 제 머리속에도 들어오니까 아직도 죄송해요. 결국엔 아이가 사탕을 맛있게 먹고, 먹고 아프지 않고 행복해하는 아이를 본 부모님도 한시름 놓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합니다. 크리스마스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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