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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9/08 03:09:52
Name   알료사
Subject   그때 미안했어요. 정말로.
한 6년 전쯤인가..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단둘이 오프만남을 가지고 꽤 괜찮은 감정을 가지게 된 분과 어처구니없이 틀어지게 된 일이 있었어요.

그분이 서평을 하나 썼는데 데이트폭력에 관한 소설이었습니다. 당연히 남자 등장인물의 데이트폭력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었죠. 저도 호기심에 그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아마 그분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겁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 감상으로는 그 책에서 어떤 폭력이 있었다는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런 의견을 내어 그분과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논쟁은 그분이 쓴 온라인상의 서평게시물에 댓글로 이루어졌어요.

며칠 후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었는데 하루 전날 톡이 오더라구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보겠다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영화 보는데 비오는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 논쟁 때문이구나. 끝났구나.

그분을 처음 만날 때 그분이 여자인줄도 몰랐습니다. 여자인걸 숨기고 저한테 만나자고 했어요. 술한잔 사겠다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분이 다가와서는 알료사씨 맞으시죠? 라고 물어와서 저를 놀래켰죠. 지금 돌이켜 회상하면서도 그날 하루가 거짓말 같아요. 아무리 온라인상으로 교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첫 만남에 그토록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분은 그때까지도, 그 이후로도 없었어요. 1차는 부대찌개를 먹고 2차로 호프집을 갔는데 칸막이가 약간 폐쇄적으로 되어있어서 살짝 룸카페 느낌도 드는 곳이었습니다. 도무지 왜 내가 지금 여자를 만나고 있는건지 이럴땐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건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그분은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야구 얘기도 하고.. (넥센 팬이었어요) 스타 이야기도 하고..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건과 떡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머리를 짧게 깍은 사진이 붙어있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우리 아빠는 나를 남자로 키우고 싶어했다는 이야기.. 외국에 나가있는 남자친구 이야기.. 약간은 키배꾼 기질이 있었던 그분이 200플을 넘겼던 키배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끄럽다며 얼굴이 빨개지던 일과 뒤늦게 마음이 풀어진 제가 늘어놓는 이런저런 헛소리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계속 웃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고 맞장구치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요.  

너무 분위기가 좋았어서 막차 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제가 조심스럽게 3차를 제안했는데 늦었다면서 귀가했어요. 차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와서는 카톡 보냈습니다.

'오늘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 안했죠.'

그랬더니 아까 잠깐 언급만 했던 남친 얘기를 자세히 하더라구요. 좀 안좋은 시기였던거 같아요.

'그 얘기 하고 싶어하는거 같았어요. 먼저 물어보려다가.. 계속 다른 얘기 하시길래..'

그렇게 하소연 들어주다가 잠들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영화를 같이 보자 합니다.

영화표 <두장이> <어쩌다 생겼다>면서,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괜찮으시다면> 뭐 이런 사족을 줄줄이 달아서..  

그냥 영화 보자면 알았다고 할텐데.. 처음에 만나자고 한 용기는 어디간건지.. ㅋ

그런데 또 막상 승락하니 너무 노골적으로 기뻐하는걸 티내서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는데..

뭐.. 그 약속이 위에 적었다시피 없었던 일로 되었고,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이 이후가 나빴습니다..

영화보러 못간다는 톡을 받았을 때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저는 제가 쿨하게 마음 접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몇 개월이 이어졌어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불을 찹니다.

그분이 쓰는 서평마다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서평뿐만 아니라 어떤 의견이 담긴 글에도 마찬가지로..

물론 실제로 그분과 제가 의견이 자주 갈렸던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저에게 관대하게 봐주어도 그때 저의 행동은 악의적인 스토킹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그런 저의 지분거림에 대해서 그분은 예의를 갖추어 토론에 임해 주셨고, 개인적인 카톡도 그럭저럭 이어 갔습니다만,

카톡에서는 말을 놓았던 그분이 다시 존댓말을 쓰던 날, 그제서야 저는 제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걸 깨닫고 그 추태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정말 불쾌한 경험을 안겨준 그분께 말로는 사과를 여러 번 했지만 그런 말로 바뀌는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진작에 제 행동을 바꿨어야 하는 건데..

온라인에서 쓸데없이 쌈질하는 버릇은 예전부터 고치고 싶어도 잘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 일 이후로 그래도 크게 후회하고 나름 긴 시간동안 노력해서

지금은 그때에 비해 코딱지만큼은 나아진거 같아요. 그래도 아직 멀었습니다. 당장 최근의 여사님 일만 보아도 그렇고..

현재 여친과의 관계에서도 언제 나쁜 버릇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 하고 있어요..

항상 그때의 일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고, 사실 1년 전쯤에 옆동네에 이 이야기를 쓰다가 글이 이어지지 않아 절단신공으로 미뤄 놓은 채 오늘에서야 홍차넷에 마무리를 짓네요..

진짜 마무리는 제가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그분도 어쩌면 홍차넷 회원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데 회원이더라도 눈팅족일겁니다.. 글을 썼다면 제가 못 알아볼 리가 없어요.. 그만큼 그분의 글을 제가 우러러 보았었으니까요..

이 얘기를 원래 타임라인에 적고 있었다는걸 믿으시겠습니까? 아이고야 ㅋㅋ 이걸 어떻게 500자로 얘기해 ㅋㅋㅋ  




17
  • 그녀 나왔으면
  • 그녀 나오세요!!


*alchemist*
그런 이불킥 기억이야 뭐... 다들 뭐... ㅠㅠ
이제 그 분이 나와서 다른 이야길 해주실 차례....쿨럭
二ッキョウ니쿄
그댈 마주하는건 아직 힘들어 그때 그 기억이 나를 괴롭게하네 행여 나와는 제발 마주치지 말아요 하나도 괜찮지 않어 그러니 우리 우연이라도 그때의 맘 그날의 밤 떠오르게는 하지마요~
사악군
저도 이노래 참 좋아해요..흐흐
사이버 포뮬러
마성의 알료사님..
리니시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이 몰랐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ㅋㅋㅋ
저도 비슷하게 이불 킥 할만한 일들도 있었네요.
그 여자분은 뭔가 한번 더 상처 받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ㅠㅠ
마르코폴로
저도 이불킥 할 법한 기억이 문득 떠올라 괴롭네요. 타인을 만나면서 자기 바닥을 드러낸 일 만큼 부끄러운 경험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 기억이 뜻하지 않게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민망함에 낯을 붉히곤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마성의 알료사님
온라인에서는 생각하는 바를 말하려해도 다 전달하거나 잘 설명하기도 전에 싸움이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이야기에 반박하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습관적(기술적?)으로 비아냥거리거나 하찮다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때문인 듯 합니다. 자주 접하다 보니 저도 지지 않으려고 그런 방식에 매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온라인의 문화가 되버린 건지... 저도 부끄러운 일이 많네요.

뒤돌아보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건 이불킥 감이기도 하지만 반동의 발판이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바로!!) 저도 매일 같이 이불킥합니다.

그나저나 역시 소문으로만 듣던 마성의 알료사님...
삼공파일
여기서 잠깐)
[마성의 알료사]는 삼공파일이 론칭한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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