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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4/11 23:39:43
Name   우롱버블티
Subject   스윗소로우 이야기
얼마전에 제가 좋아하는 스윗소로우가 새 노래를 냈어요.
세상에 노래가 너무 좋아요!
게으르고, 소심한 팬이지만, 새벽에 노래를 들으니 갑자기 빠심이 넘쳐나요.
예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인데 오늘 감상을 덧붙여서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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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비친 스윗소로우 이야기.  어 우리 전혀 안 이런데, 하고 그들이 싫어할수도 있을 것 같아 이야기를 하기 망설여진다. 그래도 10여년을 지켜봤으면 10여년동안 '내가 본'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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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스윗소로우를 좋아한다고 하면, 스윗..뭐라구? 스윗소로우가 누구야? 근데 왜 그 사람들은 티비에 안 나와? 왜 활동을 안 해? 같은 말을 듣곤 했다. 그 때가 데뷔 3,4년차였는데. 그런데 오늘 복면가왕에서 호진옹이 가면을 벗으니 방청객들이 다들 아 스윗소로우! 하면서 반가워했다. 연예인 패널들도 어벙벙해하는 기색 없이 와! 스윗소로우네! 내가 맞췄어! 하고 반가워했다. 누구야? 하고 수군수군 묻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가 스윗소로우를 안다. 슈스인 것 같지는 않은데ㅋㅋ 신기하게 모두가 스윗소로우를 안다. 내가 스윗소로우 이야기를 하면 아~스윗소로우? 하고 답한다. 가요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아~스윗소로우? 하고 아는 척을 해준다.

굉장한 히트를 한 적은 없지만, 누구나 반가워 하는 가수가 되었다는 게 너무 좋다. 데뷔 3년차에 신인 오디션인 쇼바이벌을 나가고, 무한도전 가요제를 거쳐서, 불후의 명곡에서, 나가수에서 온갖 좋은 무대들을 보여주면서, 텐텐, 정희, 오발, 라디오에서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2집, 2.5집, 3집 4집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와줘서, 내가 계속 팬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물론 모두가 사랑하는 히트곡들을 만드는 것도 대단하다. 하지만 히트곡 하나 없이도 모두가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것도 대단하다. 팬심 쬐금 섞어서, 히트곡 없이 이렇게 롱런한 것이 내겐 쬐금 더 대단해보인다.ㅋㅋ 거꾸로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만큼 끊임없이 노래해왔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다들 어디선가 보고듣고 기억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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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집이 나왔을 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리뷰가 있다. '이 앨범의 유일한 특색은 요즘 보기 드문 남성 보컬 그룹의 앨범이라는 것'이라며 '스윗소로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남성 보컬 그룹 중 유일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했다. 그들더러 지극히 평범한 남성 보컬 그룹이라고 평했다.(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대충 비슷한 문맥이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려 하니 리뷰란이 통째로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맘에 안드는 평이지만, 뭐 사실 살아남는 게 신기한 그룹이기는 하다. 굉장한 불후의 명곡을 써내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오빠들 미안...), 예능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소름돋는 넘사벽 가창력을 가진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그룹'이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 사라질 것만 같은. 하지만 12년이 쌓였다. '12년차 평범한 남성 그룹'은 더이상 평범하지 않다. 12년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화음을 쌓고 노래를 들려주면서 결국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기보다는 항상 그 곳에 버티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여기에 쓰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들과 노래가 쌓였다. '남성 보컬 그룹'은 따라할 수 있어도 시간은 따라할 수 없다.

난 그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존경스럽고, 하필 이런 가수를 좋아해서 즐겁고, 뭣보다 고맙다. 일상에 치여 살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저어기에 항상 그들이 있었고 그들의 노래가 있었다. 그들의 전부를 알지는 못하지만, 아주 많은 이야기들과 노래를 기억한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검색창에 스윗소로우를 치면, 어느날은 스케치북에 나와서 희열옹 노래를 가지고 쓸고퀄 장난을 치며 놀리는 걸 봤고, 어느날엔 소원을 말해봐와 팝송을 완벽하게 섞은, 음 하나하나 예쁜 아카펠라 영상을 봤다. 라디오를 할 땐 '여고생의 위는 위대하다' 따위 가사로 쓸고퀄 노래를 만들면서 자기들끼리 낄낄 거리는 걸 맨날 맨날 들었다.ㅋㅋ 불후의 명곡엔 어찌나 자주 나오는지, 나도 모르는 새 나와서 또 레전드 무대를 찍고 가곤 한다. 문득 생각나 찾아보면 비장한 무대, 부드러운 아카펠라 무대, 재치 넘치고 귀여운 무대, 흥이 넘치는 트로트, 뉴욕 재즈바 등등 새로운 레전드 무대가 하나둘씩 새롭게 덧붙여져 있다. 그 와중에도 (가볍게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열심히 만들었을) 새 노래들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내놓는다. 새 노래를 발견하면 막 신나서 새 노래를 듣는다. 어떤 건 너무 스윗소로우 같아서 혼자 킄킄 웃으면서 들었었고, 어떤 건 깜짝 놀랄정도로 부드러운 발라드였고, 어떤 건 신나서 맨날 노동요로 깔아놓고 일을 하곤 한다.

(오늘도 여전히, 열흘 전에 나온 신곡을 듣고, 음방 무대(!)를 보고, 얼마전 스케치북에 나와서 희열옹이랑 또 부장님 개그-쓸고퀄 화음으로 애국가 부르기- 따위를 하면서 노는 걸 보고 있다.)

쩌어기 있는 그들을 항상 찾아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아무리 그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해도 난 그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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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을 보니까 요즘 약간 시들했던 빠심이 솟구쳐서 주절주절. 개인적으로 복면가왕에 우진옵이 나왔음 좋겠다. 우진옵 노래를 들으면 다들 깜짝 놀랄 거다. 저렇게 낮은 목소리로 멋있게 노래하는 가수가 있었어? 하고.송우진의 미친 저음-가요계에서 겁나 독보적인 베이스-의 매력이 널리널리 알려져야 하는데 말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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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작년 복면가왕을 보다가 빠심이 솟구쳐서 적은 글인데, 새벽에 새로나온 노래를 듣다보니 빼먹은 말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변함없이 꾸준'하지만, '변함없지'는 않다. 항상 더, 더더더 좋은 노래를 들려준다. 무대는 더더 멋있어진다. 이전 모습이 덜 좋지는 않은데, 다음 모습은 더 좋다. 물론 외모와 패션은 말할 것도 없(...)1집 때 무대 사실 잘 못보겠다. 노래는 잘 부르는데 못보겠어(...)(오빠들 미안22..)

꼭 20대에 만든 1집의 불안하고 던지는 듯한 외침을 사랑하지만, 쓸쓸함, 공허함, 불안함, 따뜻함이 온전히 전해지는 4집도 사랑한다.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깊이가 더해져간다는 건 내가 잘 알겠다. 사람들은 종종 풋풋하고 패기로울 때 나오는 노래들이 최고라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글쎄, 난 1집 '어떤 오후'의 쓸쓸함을 사랑하지만,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게 쓸쓸함을 노래하는 4집 '겨울 여행'도 그만큼 사랑한다. 1집 Sunshine이 옆에 있는 재수생 친구를 위로하는 듯하다면 3집 Dear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 사람들과 멀어지는 게 당연해진 나이에, 당연하게 외로운 일상마저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두 노래 모두 사랑하지만, 3집 Dear을 처음 듣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 노래라고 생각했다. 화음이 뒤섞이는 1집 'Sweet Sorrow'를 뛰어넘는 노래는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4집 '겨울 여행'의 불안한 화음은 소름돋을 정도로 좋았다.

이 뿐일까. 신인 때 '쇼바이벌' 무대와 지금 '불후의 명곡' 무대들은 정말 천지차이다. 사실 개개인의 솔로는 별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고(오빠들 미안33...) 2집 즈음에 선보이던 솔로곡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나온 성진환 솔로 앨범은, 아, 이렇게 솔직하고 따뜻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예전에 호진옹이 좀 너무 트로트처럼 부른다고도 생각했는데, 작년 복면가왕에서는, 패널 말대로 내려놓고 슬픔을 그대로 던지는 듯했다. 한 한달은 매일매일 음원을 들었다. 아 이십 년 동안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면 저렇게 노래를 부르게 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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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을 떠올린 건 신보 '짜리리릿'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스윗소로우가 봄 노래를 부른다고 하면 떠오르는 발랄하고 신나는 화음, 달달하기만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또 새로운 화음. 또 새로운 분위기. 그들은 앨범에다가 '이때껏 해오던 스타일과는 다르게 좀 더 신선하게' '좀 더 가벼운 듯, 기쁜 듯, 설레는 듯, 하지만 멋있게 화음을 쌓아서' 만들었다고 써놨다. 음알못이라 내 말로는 설명이 잘 안되는데, 아무튼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진짜로 '좀 더 신선하고, 가볍고, 기쁘고, 설레는' 기분이 든다. 그들에 대해서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한 발짝 나갈 줄은 몰랐다.

신곡을 부르는 무대엔 경쾌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지극히 스윗소로우스러운 무대. 하지만 새로운.

항상 다음 모습이 더 좋은 건 그들이 항상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일테다. 항상 고민을 거듭하며 노래를 만들고,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일테다. 친구는 분 바른 사람들은 믿는 거 아니라고 그랬는데ㅋㅋ 글쎄 결과물들이 있는걸? 무대들이, 노래들이 그걸 보여주는 걸? 맨날 그런 무대들과 노래들을 보고 듣는데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겠어? 그것도 10년 넘게? 그러니까 난 믿는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는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고개 돌릴 때마다 쩌어기 있어서 즐거움도 주고 위로도 주고 달콤함도 주고 씁쓸함도 줬으면 좋겠다. 앨범도 사고 음원도 개별곡으로 사고ㅋㅋ 이제 돈도 버니까 더 많이많이 살테니까 항상 있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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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소로우 - 겨울 여행 (EBS 스페이스 공감)

신곡은 아니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요.
스윗소로우 하면 보통 달달한 노래들을 떠올리죠. 이런 모습은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전 쌉싸름한 스윗소로우를 가장 좋아합니다.ㅎㅎ






5
  •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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