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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28 22:41:44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우울증을 위한 치료약 - 샤또 샤스스플린


보르도는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 중 부르고뉴와 함께 가장 인지도가 높은 지역 입니다.

이번에는 그 보르도 내에 위치한 메독지역의 와인인 샤또 샤스스플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샤스스플린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보르도 와인의 체계에 대해서 가볍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와인입니다. 그랑크뤼라는 독특한 등급체계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보르도의 메독지역은 소테른(샤또 디켐이라는 디저트와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그랑크뤼 등급이 분류된 곳입니다. 
1855년 만국박람회 당시 나폴레옹 3세의 명에 의해 5단계의 세부등급을 지닌 그랑크뤼클라셰라는 등급체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등급체계는 오늘날까지 거의 변화없이 이어집니다. 
생떼밀리옹 지역의 크랑크뤼가 10년에 한번씩 심사를 통해 재분류과정을 거치는 것과 다르게 
메독의 그랑크뤼는 1973년 샤또무통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선 것 이외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메독지역에서 1855년 등급제정 당시 미처 등록하지 못했거나, 
등급체계가 만들어지고 난 뒤 와인 생산을 시작한 생산자들 중 품질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같은 불만에도 그랑크뤼 등급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1932년 소외된 444개의 와이너리가 별도로 등급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기에 이릅니다. 이 것이 바로 크뤼 부르주아죠.
이 분류가 시작될 당시에는 세부적으로 부르주아, 쉬페리외르, 엑셀시오넬의 3개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등급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의 문제등으로 분쟁이 발생하면서 근래에 들어서는 세부등급은 사라지고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으로 통합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샤스스플린은 이 크뤼 부르주아체계에서 최상위 9개의 와인을 지칭하던 엑셀시오넬 등급에 속해있었던 와인입니다.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책에 등장하여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와인이죠, 이 와인의 이름을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우울함을 몰아내다', '슬픔을 떨쳐버리다'는 뜻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책에서는 좀 더 낭만적으로 '슬픔이여 안녕'이라 명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이 이름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조금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이름이긴
하지만 기억에도 확실히 남고 어감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만화에서는 샤스스플린이 보르도 그랑크뤼 5등급와인보다 더 낮은 부르주아급 와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이야깁니다.
그랑크뤼가 크뤼부르주아에 비해서 공신력과 명성에서 앞서긴 하지만 두 등급은 서로 다른 체계이고 샤스스플린의 경우 보통 그랑크뤼 5등급 와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 샤스스플린의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두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영국시인 바이런이 이 와인의 맛에 감탄하면서 '우울함을 쫓아버릴 굉장한 약'이라고 말했고 
거기에 영감을 얻어서 와인의 이름을 명명했다는 설입니다.
두번째로 프랑스시인 보들레르가 이 와인을 마시고 나서 우울함을 떨쳐냈고, 
그 후에 이 와이너리에 샤스스플린이라는 이름을 헌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쪽이든 이 와인이 가지고 있는 우울함을 날려버릴 정도의 훌륭한 맛과 향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개인적인 편견이겠지만 '슬픔이여 안녕'과 같은 낭만과 오글거림이 공존하는 이름을 붙여줄 사람이라면 프랑스인일 것 같다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이 와인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들과 인연이 깊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매년 레이블에 유명한 시인의 시에서 시구를 발췌해서 새겨넣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제가 먹어본 2004년 빈티지의 경우 랭보의 연인이었던 폴 베를렌의 시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이 서글픔은 무엇인가' 라는 뜻이라더군요. 
후에 와인 가게을 배회하다 얼핏 스쳐본 이 와인의 레이블에는 빅토르위고의 시구가 적혀있더군요.

저에게 있어 음식과 술의 맛을 완성시키는 것은 그 본연의 맛과 더불어 그 것들의 뒤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샤또 마고가 손녀의 이름을 마고로 지을 정도로 그 와인을 사랑한 헤밍웨이에 의해 완성되었고, 
몽라쉐가 와인을 마실때마다 모자를 벗어 최상의 찬사를 보낸 뒤마의 이야기로 완성된 것처럼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샤스스플린 또한 최고의 와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와인 한병에 담긴 이야기로 술 마시는 내내 즐거울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 슬픔에 빠져있는 지인이 있다면 이 술을 같이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상으로 '슬픔이여 안녕' 샤또 샤스스플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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