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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6/15 08:05:49 |
Name | 뤼야 |
Subject | 금서(禁書)읽기 -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
스탕달의 [적과 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소설이란 대로변을 돌아다니는 큰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때로 여러분의 눈에 푸른 창공을 비추지만, 때로는 도로 옆 더럽고 걸죽한 진창을 비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거울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거울이 진창을 비추는데 여러분은 거울을 비난하십니다. 차라리 진창이 있는 도로를, 아니 그보다도 물이 괴어 진창이 생기도록 방치한 도로 감독관을 비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금서가 되어버린 장정일의 책은 진창일까요? 아니면 거울일까요? 독자들이 섣부르고 미성숙한 판단을 할까 저어한 대법원은 이 책이 '진창'이라 판결을 내립니다. 이 소설은 출간 직후 '음대협'에 의해 음란물이란 시비가 일어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 끝에 제재결정이 내려졌고 문화체육부에 의해 판매금지가 되었으며 검찰이 작가를 형사범으로 기소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이 책을 아주 어렵게 구해 읽었습니다. 아직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애인이 구해다 주었지요.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자기 혐오와 모멸감으로 더 이상 창작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중년의 조각가와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전화를 걸어 폰섹스를 나누던 지방의 여고 3학년 여학생이 서로 만나 지방도시와 서울을 오가며 정사를 벌입니다. 항문성교, 구음성교, 사디즘과 마조히즘, 동성애 등 온갖 형태의 성애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어린 시절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헤집어지고 증폭되며 조각가는 더욱 더 자학적인 자기 모멸로 빠져듭니다. 이 소설이 음란하냐구요? 당연히 음란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불쾌합니다. 글은 글 밖의 세상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이루고 있지요. 좀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패턴을 이루는 글쓰기들은 나름의 형이상학과 인성론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가령, 논문쓰기와 소설 쓰기는 세상을 읽고 풀어내는 방식에서부터 현저한 차이를 보이지요. 만약 소설을 논문과 같은 형이상학과 인성론으로 읽으려고 한다면, 땅를 파고 묻어야할 문학작품이 독자의 손을 기다리는 작품보다 더 많을 것은 뻔하지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어떨까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어떻습니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어떻게 고전이 되었을까요? 단순성의 이념을 미덕으로 삼던 학인들의 활동에 대한 반성으로, 복잡성에 대한 감수성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파급된 세상입니다. 이는 인류의 전반적인 성숙을 반영하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사태의 복잡성을 제 모습대로 읽어내되 이를 섣불리 단순화하려는 유혹을 참는 태도는 성숙의 가장 두드러진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자신의 세계에 위협을 주는 차이들이나 예상치 못했던 복잡성을 앞에서 쉽게 당황하거나 잘게 곱씹은 흔적이 없는 반응을 내보이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이러한 미성숙한 반응이 여러 종류의 박해와 살상을 낳았다는 사실은 역사가 넉넉히 입증하는 바 있습니다. 장정일 소설속의 인물들은 현실감이 없습니다. 그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름이 아닌, 'J', 'Y','바지입은 여자'와 같은 명명법을 선보이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지요. 장정일 소설 속의 인물들이 벌이는 엽기적으로 보이는 행각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깊은 회의를 제시합니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이런 말을 했지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요. 장정일 소설 속의 인물들은 바로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헤메는 인간들인 것이지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데 이름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장정일은 소설 속에서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고전적 가치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음험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음험한 꿈을 꾸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제 출근을 해야겠네요. 어제 애인과 곰브로비치의 소설 [포르노그라피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는 잊혀져가는 정정일의 필화가 생각나 몇 자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활기찬 일주일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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