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6/07/02 13:50:27 |
Name | 드라카 |
Subject | [32주차] 씨앗 |
합평 받고 싶은 부분 무엇이든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 주제가 연재글이라 예전에 구상만 해놓고 만 소설의 첫 도입부를 써 봤습니다. 구상만 했던 이유는 완결까지 다 쓸 자신이 없어서 그냥 묵혀놨던 건데 막상 써놓고 보니 더 쓰고 싶어지네요ㅎㅎ 하지만 난 파워 야근러라 안될꺼야...흑흑 본문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아니거나. 두 경우 모두 끔찍한 일이다. - 아서 C. 클라크 – 에디는 약간의 과대 망상증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길을 걷다가 뒤에서 나타난 자전거에 부딪혀 귀를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이 청각을 잃지는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느껴지는 이명 때문에 섬세한 유리섬유 같은 예민한 성격이만들어졌다. 사소한 일도 집요하리만큼 신경 써서 처리했고 시종일관 언젠가 큰 위험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는피해망상 때문에 늘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그렇게 불안해질 때면 이명이 더욱 커져 마치 공습경보를 알리는사이렌처럼 고막을 쑤셔대곤 했다. 그는 그렇게 정신병원에 수감돼 평생을 미치광이처럼 불안감에 떨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결같이 그의 곁에서 괜찮다며 다독여준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었고 그는 그 밧줄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불안증세는 많이 호전되어 일상 생활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고 오히려 매사 모든 일에 대비하는 꼼꼼한 성격으로 고요한 크리스마스 밤. 대부분의 직원들이 휴가를 내고 집에서 흥겨운 캐롤송과 함께 파티를 만끽할 무렵, 에디는 평소처럼 발전소에서 당직 안전점검 체크리스트에 적힌 빽빽한 검사 항목을 점검한 뒤 당직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자 패스트 푸드점에서 사온 햄버거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굵은 사인펜으로 쓴 글이 적혀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티키티키 에디. 일도 좋지만 가끔은 쉬어요. 괜찮다면 토요일에 같이 저녁 어때요?. 쉬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줄게요. 당신의 좀 놀 줄 아는 직장동료캐리.’ 평소 자신의 꼼꼼한 성격을 놀리기 좋아하는 여자 캐리였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점검여부를 물어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틱틱대는 것 같다며 붙여준 티키티키 에디라는 별명은 그도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제법 괜찮은 여자였다. 자신의 꼼꼼한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일 얘기로도 말이 잘 통하는 여자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같이 저녁에 데이트해도 좋을 것 같았다. 놓여있는 식은 햄버거를 먹으며 어두워진 창 밖을 바라보았다. 라디오에선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는 흥겨운 캐롤송이 흘러나왔지만 에디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불안해졌다. 분명 모든 체크리스트를 두 번씩 꼼꼼하게 점검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애써 고질적인 불안증세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또 다시 공습경보 사이렌처럼 울려대는 이명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햄버거를 먹는 대로 다시 한번 시설을 돌아보기로 결심하는 중에 문득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창문 너머 밤 하늘에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손전등으로 장난을 치는 걸까? 눈을 찌푸리고 집중해서 바라본 그는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행성 충돌 영화에서나 보던 거대한 운석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수천만 톤의 핵물질이 저장되어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향해서. 에디는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를 떨어뜨린 채 그 동안 자신의 불안증세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한창 긴장하며 큰 시험을 앞두고 있다가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긴장이 풀리고 이완되듯, 실존하는 거대한 위험 앞에 직면하자 수십 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불안증세는 깨끗이 사라지고 오히려 평온함이 찾아온 것이다. 수십 년간 그를 괴롭히던 이명도 깨끗이 사라져 고요한 가운데 에디는 얼빠진 미소를 띤 채로 체르노빌에 이어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에 휩싸였다.
주홍빛 불기둥이 맹렬한 기세로 솟아오르며 어두운 밤 하늘을 수백 킬로미터 밖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빛냈다.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서 선물 상자를 열어보던 한 아이는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묵직한 진동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울음을 터뜨렸다. 번화가의 고층 빌딩에서 잔잔한 재즈와 함께 식사를 즐기던 한 커플은 포크위에 들려있는 스테이크 조각에서 소스가 떨어지는 것도 잊은 채 창문 너머로 밤하늘을 눈부시게 밝히는 거대한 주황빛 버섯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소방대원은 갑작스럽게 폭주하는 전화신고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며 거리를 바라보니 어둡고 고요했던 밤 거리가 밝게 빛나며 주차돼있던 자동차들이 일제히 라이트를 깜빡이며 경보음을 울렸다. 엇박자로 반짝이는 자동차 조명과 “좆 같은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군.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소방대원은 다음날 저녁까지도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운석 충돌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 그렇게 그 정체불명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주 거대하게.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