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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3/09 04:09:59
Name   틸트
Subject   [17주차] 닭처럼 날아간 사람들
하늘 가까운 곳에도 사람이 살아. 그렇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닭이 하늘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저 닭이 나는 걸 보여 줄까? 그렇게 웃으며 형은 닭을 후려 찼다. 닭은 잘 날아갔다.

일곱 문장 중에 마지막 네 문장은 사실이고 앞의 세 문장은 내가 만든 것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사람들은 산동네에 살거나 분지에 살았다. 서울이란 산과 산으로 이루어진 그런 곳이니까. 어린 시절 커다란 산이 내려앉고 평지가 되고 그 위에 산보다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산동네는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닭을 키우고 또 도박을 했다. 도박판에 자주 알짱거리던 머리가 굵은 동네 형은 닭을 날 수 있게 할 수 있던 그 형은 실종되었다. 도박 빚을 많이 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종되지 않은 사람들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의 유년기를 기억하시나요. 당신의 유년기의 사람들은 어디로 날아갔나요. 날아가지 않았다면 다행입니다. 당신은 마치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군요. 부러운 일입니다.

국민학교 앞 골목에서는 나사에서 만들었다는 망원경과 조잡한 만화책, 그리고 병아리를 파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탄을 몰아내야 한다는 아주머니들이 학교 앞 대로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아리를 팔던 그들은 사탄이었을까. 그래서 골목으로 밀려난 걸까. 다른 골목에서 형들은 본드를 불었다. 그리고 가장 으쓱한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아이들을 털었다. 그들이야말로 사탄일까. 주로 산동네에 살던 아이들이 분지의 아이들을 털었다. 가난이 악이 된 시대이니 우리는 편하게 그들을 사탄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어떤 어린 악마들은 병아리를 키웠다. 병아리는 닭이 되었다. 대부분의 간단한 과학적 사실들이 그렇듯, 이를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경탄스러운 일이었다. 호박잎과 토마토 넝쿨과 달팽이와 지렁이. 당신의 서울은 어땠는지요. 이십 년쯤 전 아이엠에프가 오기 조금 전 나의 서울은 이러하였습니다. 아아 나 살던 고향이여.

나는 이 년쯤 전에 나 살던 고향을 가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살던 그러나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은 그 집의 물성은 멀쩡했습니다. 나는 분지의 주민이었으니까. 나는 산에 살던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요 산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사탄인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산동네 친구들에게 참 많이 맞고 참 많이 뜯겼지만 말입니다. 좋은 친구 하나가 떠올라 친구가 살던 집에 올라가봤습니다. 그러니까 대학 시절, 정의를 외치며 지켜내고야 말겠다 맹세했던 철거민 촌 바로 옆 동네 말이지요. 거기는 수십 년 동안 그냥 산동네였습니다. 이십년 전처럼 십년 전에도 산동네였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닭을 키우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래서 나는 이 년 전에도 그 동네가 멀쩡하게 남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더군요.

그곳은 이제 산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집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이제 산에 살던 사람들을 내보냈으니 산은 낮아질 것이고 아파트가 들어서겠지요. 하늘 가까운 곳에도 사람이 살아. 그렇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보여줄까? 하고 누군가 그들의 엉덩이를 팡, 후려차서 그들이 어디론가 날아간 건 아닐까요? 이십 년쯤 전에 하늘을 날아간 닭처럼 말입니다. 대부분의 간단한 과학적 사실들이 그렇듯, 이를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경탄스러운 일이지요.


-
반갑습니다.



3
  • 잘 읽었습니다.


까페레인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저도 얼마전 고향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요. 어릴적 친구들 다 자라서 다시 보니 반갑고 재밌고 설레고 그랬어요. 꼭 그 때 감정을 이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alchemist*
그러게요. 누군가에게 뻥...
재건축, 재개발 일도 해봤습니다만, 사실 도시 재생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는 한데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결국은 돈이라.. 아아...
얼그레이
특유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전에 뵌적 없었던 분이라 궁금해서 홍차넷을 뒤져봤는데 첫 글이신 것 같아요.

난쏘공의 편린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린시절의 일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세번째 문단에서 후반에 \'분지\'가 나오지 않았으면 저랑 같은 동네 사셨나 했었을 것 같아요. ㅎㅎ 그만큼 공감이 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묘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늘 가까운 곳에도 사람이 살아. 그렇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닭이 하늘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저 닭이 나는 걸 보여 줄까? 그렇게 웃으며 형은 닭을 후... 더 보기
특유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전에 뵌적 없었던 분이라 궁금해서 홍차넷을 뒤져봤는데 첫 글이신 것 같아요.

난쏘공의 편린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린시절의 일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세번째 문단에서 후반에 \'분지\'가 나오지 않았으면 저랑 같은 동네 사셨나 했었을 것 같아요. ㅎㅎ 그만큼 공감이 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묘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늘 가까운 곳에도 사람이 살아. 그렇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닭이 하늘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저 닭이 나는 걸 보여 줄까? 그렇게 웃으며 형은 닭을 후려 찼다. 닭은 잘 날아갔다.

일곱 문장 중에 마지막 네 문장은 사실이고 앞의 세 문장은 내가 만든 것이다. \'
앞의 이 부분은 정말 감탄해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필력이 어마무시하네요...ㄷㄷ 어디있다 이제 나타나셨나요 ㅠㅠ

마지막 두문단에서는 어조가 \'~습니다.\'로 바뀌게 되는데, 글의 분위기에 환기를 시켜주면서도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닭\'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각각의 소재나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버리는 문장이 없었던, 그 중에서도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이라고 생각듭니다.

좋은 글 보게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글 써주세요. 헤헤
지난 주제도 좋고 앞으로 나올 주제도 좋습니다요.(질척질척)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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