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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10/14 05:50:50
Name   kaestro
Link #1   https://kaestro.github.io/%EC%8B%A0%EB%B3%80%EC%9E%A1%EA%B8%B0/2025/09/28/%EB%82%B4%EA%B0%80-%EB%B0%A5%EC%9D%84-%ED%95%A8%EA%BB%98-%EB%A8%B9%EA%B3%A0-%EC%8B%B6%EC%9D%80-%EC%82%AC%EB%9E%8C.html
Subject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의 정의와 그 예
글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어 나눠서 게재하지 않으면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득이하게 나누어 올립니다.

그랬더니 일단 떠오르는 내용만 분리해서 쪼개놨더니 아무래도 글의 제목이 딱딱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군요.

요즘은 그래도 좀 가볍고 재밌는 글들을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데 오랜만에 뭔소리 하는지 모를 혼자 하고 있는 잡소리입니다.

가능하면 완성까지 보고 싶군요.

다양한 의견 환영하고 혹시라도 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미리 감사드립니다.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연은 기적이라고들 합니다. 수학적으로 60억의 인구가 존재하는 데 그 중에서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 이전으로 더 나아가면 둘 다 수정란이 되는 시점에서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 확률, 시대가 맞을 확률 등의 여러가지의 독립적인 변수들을 합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엄청난 확률을 뚫어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모든 사람간의 인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필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으려나요.

그렇게 엄청난 확률을 뚫고서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인연이라 한다해서 그 모든 것이 좋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 중 어떤 사람과의 인연은 가시가 박힌 장미꽃의 줄기처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인연은 늪과 같이 헤어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며, 때로는 물과 같이 함께하는 것으로도 수용되는 듯한 안락함을 주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연이라는 것은 그 확률적으로 엄청난 것임과 동시에 그 다양함에 대해서도 가히 어떻게 정의내리기 힘든 각각의 개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제가 지금 글의 제목인 ‘내가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집필을 쉬이 내려가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MBTI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려는 세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고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지극히 단순한 16개의 카테고리에 집어넣어 해석하려는 게으름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어를 통해 정의내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거의 주술에 가까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사용자에게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해석을 프레임 내에 끼워맞추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글의 제재로 삼으려 했던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을 정의내리는 것 역시도 그 행위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은 어떤의미로는 굉장히 자가당착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영도씨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밥을 먹는 행위를 통해 삶을 표현합니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사라말은 ‘산다는 것은 계통학적으로 음식의 하위에 있고 분변의 상위에 있다. 음식과 분변 사이에 있는 나는 끊임없이 음식을 모아 나를 만들고, 나를 다시 분변으로 만든다. 그것은 올라가도 내려가서도 안되며 필사적으로 중간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땔깜과 재 사이에 있는 불과 마찬가지의 것으로 그것이 산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먹는다는 행위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구성하는 재료를 모은 다음에 재구축하는 단계의 가장 기초에 해당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에 경험한 것처럼 소위 몸에 좋은 음식을 위주로 먹는다면 몸은 건강하게 변화할 것이고, 제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몸에 좋지 못한 음식만을 먹는다면 몸은 나쁘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의미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과 맞닿아 있으면서 상호보완적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어떤 재료를 활용하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선결 과제로 해결하고, 몸을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적극적인 행위이니까요.

그렇다면 이제서야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나름대로의 거창한 정의를 내리는 데까지 도달했으니,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정의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를 앞에서 자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재료를 취득하는 초입부로 결정했다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그 재료로 어떤 것을 고를 것인지 정하고 그 진행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밌는 것은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단순히 미각, 후각, 촉각만으로 맛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일한 미각을 자극하더라도 푸른 색으로 칠해놓으면 블루 하와이안맛으로, 딸기 색을 칠해두면 딸기맛이라고 느낀다는 속설도 있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죄책감이 드는 상황에서는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행군과 같은 힘든 일을 마치고 나면 컵라면조차 인생 최고의 진미로 기억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식사를, 그리고 한국적인 표현으로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구성하는 재료들의 퀄리티를 좋게 변화시켜주는 사람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정의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와 밥을 먹고 싶어하는가

위에서 얘기한대로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단순하고 명쾌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저 답지 못하다 생각합니다.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는 사람의 수만큼,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표상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대화 주제를 골랐다는 것이 생각보다 발칙하고 제게는 분수넘는 도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제 역량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관찰한 사람들이, 제가 누구와 밥을 먹고 싶어하는 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례정도는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커뮤니티에서 이전에 유머용 화제로 던져지는 주제 중에 ‘$15로 저녁 식사 자리 만들기’를 보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같이 먹고 싶은 대상으로 이재용 삼성 회장에서 시작해 bts와 같은 유명인, 친구, 가족과 같은 다양한 인물들을 각각 일종의 가격을 매겨두고 어떤 사람과 먹을지와 어느 음식을 어떤 장소에서 먹을지에 대해 일종의 가치 판단을 한 뒤에 본인이 생각하는 최적의 구성을 하게 합니다. 단순히 재미로 볼 수도 있지만 해당 주제에 사람들이 내놓는 다양한 답변들은 각각이 어떤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놓는 일종의 자화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다룰 때에 어김없이 가치 판단의 지표로 등장하는 돈은 영화 평론가 이동진씨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돈을 어떻게 쓰느냐만큼 자신을 잘 드러내는 것은 잘 없기’ 때문에 내면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밥을 먹을 때는 그 경험이 일반적으로는 편한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태어날 적부터 존재해 온 오래된 관계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가면으로 감춰두지 않은 상태의 내면을 가장 많이 관찰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조차 기억 못하는 출생아 시절, 유아의 시절부터 시작해 우리는 가족과 보여주기 싫더라도 많은 부분들을 선택하지 못한 채 공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 밖의 존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편안한 관계라고 느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시 말해 가족의 앞에서는 비교적 덜 꾸민 본인으로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연인과 같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과 밥을 먹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최근에 다시 본 아시하라 히나코 작가의 만화 ‘브레드 앤 버터’에서는 현실에서 좌절을 겪고 힘들어 하던 두 남녀가 우연한 기회로 식사를 함께한 뒤에 ‘이 사람과 같이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과 식사를 하고 싶다’는 충동에 청혼을 주고 받게 된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룹니다. 둘은 함께 밥을 먹기만 하는 것으로도 힘이 되는 일은 노력 없이 항상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그럼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유지해 나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노력합니다.

유명인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을 통해 본인도 유명인으로써의 삶에 동경하고 이를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유명인과의 식사를 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비일상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 기회는 굉장히 특별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매체를 통해 누구나 간단하게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시대에 그런 힘을 강화해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전에는 유명인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단순히 많은 무작위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경험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에 끝났던 것에서 더 나아가, 현대에 와서 해당 경험은 본인의 지위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의 종류가 존재하겠습니다만, 각 사람의 가치관과 놓여있는 시대나 상황 등에 따라 그 정의는 다양하게 분화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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