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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5/10/05 19:34:04 |
| Name | meson |
| Subject | 한국의 극우는 왜 자기비하적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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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글과 함께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되는 글입니다. ![]()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경향이 약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극우는 종종 기묘하다고 이야기된다. 물론 한국의 극우는 중국에 대해 강력한 적대감을 보이지만, 이런 적대감은 일본이나 미국에게는 대개 적용되지 않는다. 자민족을 1순위로 삼는 보통의 극우 사상과는 달리, 한국의 극우 사상은 [ 자민족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 미국이나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주장은 일차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혐오와 공포감에 근거하지만, 그 기저에는 분명 자민족의 실력에 대한 의심과 빈약한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극우는 자만이 아니라 [ 자기비하 ]에서 출발하는 극우이다. 자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없기에 자민족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경우가 드물고, 자민족은 주변의 강대국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의식이 대전제로 놓여 있다. 중국에 대한 혐오는 이 전제하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중국에 지배당할 수는 없으므로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자민족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미국과의 친교를 유지해야 하고, 거기에 필요하다면 일본과의 앙금도 털어버려야 한다는 논리는 여기에 기반한다. 왜 이러한 기형적인 인식이 생겨났는가? 아마도 사상의 형성은 역사의 해석에서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 2024년에,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현실에서 폭탄 제조법이나 매머드 사냥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쪽은 대개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넥서스』, 77-78p). 이에 따르면 합리적인 기술자들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신화창조자들이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협력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되어야 하고, 조직화를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불리는데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신화다.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세계관을 제공하며, 여기서 조직의 목표와 매력적인 명분이 따라 나온다.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 아니라 매력이며, 하라리에 따르자면, “진실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그것을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만들면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된다(『넥서스』, 78p). 설령 거짓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수백만 명을 조직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일단 수백만 명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수백 명의 천재들이 등장해 이데올로기의 허점을 변호해줄 것이다. 하지만 허구적인 이데올로기가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이데올로기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나름대로 그럴듯해야 하며 세상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가장 좋은 수단은 예언이지만, 거기에만 의존한다면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신화창조자들은 신비로운 예언을 남발하는 대신, [ 과거를 해석하여 ] 현재를 설명한 다음 거기에 근거해 미래상을 그려내는 수법을 사용하곤 했다. 그 편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History)는 진실 탐구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신화창조자들이 애용하는 금광이 되기도 한다.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관계가 먼저 제시되고, 거기에 고유한 해석과 강조점이 덧붙여지고, 최종적으로는 현재에 대한 진단과 바람직한 미래상이 따라 나온다. 이 과정은 결국 일종의 이야기다. 실제로 사람들은 통계 자료나 서류 목록은 지루해해도 이야기의 형태로 된 정보는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국익은 항상 역사적 내러티브에서 교훈으로 도출된다.”(『넥서스』, 551p) 이것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다. * 위와 같은 조건을 고려한다면, 한반도는 과연 민족적 자부심이 고양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삼한일통 이후 형성된 [ 한국이라는 공동체 ]는 전근대에는 중원과 북방 사이에서, 근대에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한반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정세를 이끌거나 거대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던 적은 없다. 그러므로 역사 해석을 토대로 사상을 정당화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적 자부심을 주장하기란 난망할 것이다. 이 점은 치명적이기에 한국의 극우는 정반대로 선회하기를 택했다. 오늘날 한국의 극우가 지닌 기묘한 인식은 대체로 이러한 역사관에서 유래한다고 여겨진다. 이들의 태도는 자민족의 역사적 궤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에 [ ‘이성’과 ‘합리’ ]를 담지했다고 주장하기에 유리하다. 그리하여 한국의 극우는 자민족의 주체성을 조명하고 역사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려는 시도를 가소롭게 여기며, 자민족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사례들을 강조하면서 민족비하적인 역사 서술을 진실로 위치시키고자 노력하곤 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실제로 자민족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을 인정한다면, 한국 극우의 여러 특징들은 아마도 정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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