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1/21 08:01:11
Name   SKT Faker
Subject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때 우리는 정말 절친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그 친구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같은 모임에 있었고, 서로 마음이 잘 맞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관점이 조금 달랐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바라보는 곳은 같았으니까. 그래서 서로의 다름마저도 우리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공감해주고, 그 속에서 우린 더 깊어졌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모임을 떠났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별일 아닌 듯이 함께 만나고 대화했다. 여전히 웃고, 이야기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바라보는 곳이 나와 달라졌다는 것을.

그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삶의 무게를 나누지 못하고, 일상에서 소소한 것들로만 이어졌다. 예전처럼 깊이 있는 대화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느꼈다. 이 친구와 더는 서로의 삶을 온전히 나눌 수 없겠구나 하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코로나 이후 더 바빠졌다. 만남은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3~4개월에 한 번, 결국 1년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었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나에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우리 진짜 베프 맞아? 연락도 잘 안 되고, 왜 이렇게 바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바빠서 연락을 못 한 것도 사실이고, 사람들을 잘 못 만나는 것도 맞지만… 그게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밥을 먹고 헤어지며 앞으로 더 자주 보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때 그렇게 친했던 우리인데, 어디서부터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그 궤적을 되짚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 궤적을 돌아가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의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젠 잘 모르겠다.



1
  • 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648 일상/생각나는 나와 결혼한다? 비혼식의 혼돈 15 sisyphus 20/06/03 5450 0
10729 일상/생각머리 아픈 질문. 자유주의자에게 학문이란? 19 sisyphus 20/06/29 4953 0
10768 일상/생각인국공을 보며. 시간을 변수로 삼지 못하는 인간. 5 sisyphus 20/07/11 4602 9
10810 철학/종교반대급부라는 도덕적 의무감과 증여 사회 sisyphus 20/07/23 4381 6
11153 철학/종교천륜에 도전하는 과학,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철학 28 sisyphus 20/11/19 5415 4
11201 일상/생각논리의 모순성. 일관성에 대한 고찰 8 sisyphus 20/12/08 4176 1
12005 일상/생각사람이 바뀌는 순간 15 sisyphus 21/08/22 4260 2
12208 도서/문학"사랑은 전문가들의 게임일 뿐" 우엘벡의 설거지론 (수정) 21 sisyphus 21/10/26 5415 3
12352 일상/생각뜻하지 않게 다가온 자가검열시대 6 sisyphus 21/12/15 4077 1
14747 일상/생각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sisyphus 24/06/17 947 2
10446 일상/생각넷플릭스 보는게 힘이 드네요 40 SKT Faker 20/04/01 5681 0
15057 일상/생각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3 SKT Faker 24/11/21 715 1
575 생활체육[KBS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축구 인생 2막을 위하여 8 smile 15/07/12 7068 0
2648 영화나만이 없는 거리 (애니메이션), 드라마 시그널 보신 분에게 추천합니다 4 Smiling Killy 16/04/20 9101 1
3503 게임[LOL] 포탑 퍼스트 블러드는 어느 정도의 골드인가 6 Smiling Killy 16/08/12 10171 3
4607 창작자작 수수께끼 : 사과, 배, 복숭아 12 SNUeng 17/01/12 4056 0
4611 일상/생각9켤레의 업적으로 남은 사내 7 SNUeng 17/01/13 4210 5
8203 과학/기술파인만이 얘기하는 물리 vs 수학 21 Sophie 18/09/11 13679 1
8351 과학/기술[확률론] 당신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 - 의사들도 잘 모르는 사실 12 Sophie 18/10/11 6995 10
14369 일상/생각아보카도 토스트 개발한 쉐프의 죽음 8 Soporatif 23/12/31 1914 19
33 기타가입했습니다. 2 soul 15/05/30 8361 0
321 기타메르스 지역전파 우려 4 soul 15/06/13 7711 0
2406 일상/생각차를 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8 soul 16/03/15 4674 0
5949 일상/생각가난했던 젊은날 24 soul 17/07/14 4837 19
6136 일상/생각8월 22일부터 서울, 세종, 과천 6억이하 주택에도 LTV 40% 적용합니다. 127 soul 17/08/21 6008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