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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11/03 22:38:59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Tender is the flesh(2018) - 마르코스는 왜 사람을 먹을까?
(결말 스포일러 주의)  

작가 - Agustina Bazterrica.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동물들을 감염시키고, 문명은 축산업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대다수의 동물들을 인간의 안전을 위해 죽인 뒤에 왔을 먹이사슬 붕괴 아포칼립스의 흐릿한 전경을 뒤로 하고, 사람들이 고기를 포기하지 못해 세운 사회. 인육을 먹는 사회. 추정컨데 바이러스 이후의 '전환기'에 사라진 불법 이민자들과 노숙자들을 가축으로 전락시켜 축산업의 사이클에 넣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설에서는 인육(Human meat)라는 말 대신, Special meat라는 표현을 써요. 음식점에는 "허브로 재운 혀 요리, 김치와 레몬을 뿌린 포테이토가 식감을 더해줘요!" 같은 메뉴가 있습니다. 디스토피아에서도 김치는 반가워요. 가축인들은 육종학적 개량을 얼마간 거친 것 같기는 하나(지능저하), 사료전환율은 여전히 나쁜 것인지 현대의 고기마냥 싸지 않습니다. 그래도 중산층 정도면 접근할 수 있는 선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보여요.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시체를 뒤져서 고기를 얻는 도굴꾼들도 종종 나타나는 데, 그 때문에 사람을 땅에 매장하는 장례문화는 사라집니다.

전 이 소설의 식인이 다른 디스토피아의 식인보다 조금 더 흥미로웠어요. 사람이 사람을 먹을 때, 그 동안 사람의 존엄성과 저울질 되었던 건 인구과밀이나 식량문제(소일렌트 그린)같이 사회 구조에 가해지는 외적 압력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존엄성의 저울 맞은 편에 오른 건 우리들의 고기를 향한 욕망이죠. 먹을 게 부족해서 사람을 먹는 게 아니라. 고기가 먹고 싶어 사람을 먹습니다. 소일렌트 그린처럼 '어쩔 수 없다'며 도망쳐 몸을 숨길 구멍이 없는 만큼, 해결도 탈출도 더 요원해 보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르코스는 지금 사회의 모습을 경멸하지만,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인간 도축장에서 하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는 불쌍한 영혼입니다. 아들의 불운한 죽음과 그의 외도로 결혼 생활은 파탄났죠. 마르코스는 거래처의 농장주로 부터 상등품 가축(First Generation Pure) 암컷을 하나 선물받습니다. 잘 길러서 옆에 두고, 생각이 날 때면 특등품 살을 발라 먹는 용도의 가축이었죠. 마르코스는 가축을 먹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아내, 그리고 사회에 크게 실망감을 느끼며 선물받은 가축과 교감을 나눕니다. 그리고 관계를 가지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르코스는 가축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들꽃 향기와 같은 냄새와 난다며 '재스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어느덧 재스민은 임신을 하였고, 사람과 가축 사이의 임신은 '사람이' 도살장에 끌려 갈 정도의 범죄였기 때문에 마르코스는 이를 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 둘러싼 서스펜스와 갈등이 지난 후,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재스민은 출산을 앞두고 마르코스는 간호사인 아내 세실리아를 부릅니다. 이것 만큼은 숨기고 혼자할 수 없었거든요. 마르코스는 재스민이 낳은 아들을 두고 세실리아에게 말합니다. '이건 우리 아이야.'. 그리고 재스민을 헛간으로 데려가 직접 도살하죠. 세실리아는 그런 마르코스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재스민을 살려뒀으면 더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소설은 그렇게 끝납니다.

끔찍한 세상과 사람들에게 비판적 시선을 보내며, 독자와 함께 디스토피아를 헤쳐나간 마르코스는 왜 재스민을 도축하고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먹었을까요?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어서? 부모가 되어보니 태어난 아들을 지키고 싶어서? 처음 마르코스가 재스민과 관계를 가졌을 때, 어린 아이나 다름없어 '합의'같은 걸 할 수 없을 재스민과 관계를 맺는 모습에서 부터 그가 괴물이란 걸 알아야 했을까요? 폐쇄된 동물원에 나타나는 야생의 들개를 아름답게 보며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떠올린 뒷맛이 찝찝하던데 그 때 예고된 걸까요? 같이 읽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들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전 마르코스가 재스민을 먹은 게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소설의 종반부까지 마르코스는 사회를 거부하고 멀어져 왔습니다. 사냥감을 강간해 죽이며 웃는 사냥꾼들도, 도축의 현장을 모르며 고기를 소비하는 인간들도 전부 상대하는 게 힘들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여동생이 싫고, 파탄난 가정과 멀어진 아내 때문에 힘들고, 이런 끔찍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아버지가 힘듭니다. 우리가 확인하는 마르코스의 인간성, 재스민을 향한 관심과 동정심은 모두 그가 사회성을 잃어나가며 발전합니다.

그리고 출산을 기회로 세실리아와 만나고, 아들을 품에 쥐었을 때, 마르코스는 가족을 회복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 기회를 붙잡고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재스민을 도축함으로서 마르코스의 재사회화는 완성됩니다. 분명 이 사회를 마르코스와 같은 외톨이로 살아가는 건 피곤한 일이었겠죠. 외톨이이기에 발휘할 수 있던 재스민을 향한 공감력은 그의 재사회화로 인해 불필요해졌고요. 마르코스는 정말로 편해졌겠죠.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선 제 아들의 어미를 죽일 수 있어야 하는 사회를 보며, 가축이 아닌 인간들에게도 이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한 윤곽은 분명해집니다. 가축과 가축이 아닌 사람이 아무리 구분되었다고 한들, 도살장에 끌려가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 '종'을 경계로 분명히 나누어진 윤리가 얼마나 흐려졌을 지 쉽게 상상이 가죠. 그리고 그 흐려짐이 사람들의 정신을 얼마나 괴롭혔을까요?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일도 범죄를 증가시키고 그곳의 일꾼들의 정신을 해하는 데, 인육을 만들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매일 쏟아내는 사회는 얼마나 핏빛일까요? 전 소설의 장면들을 상상하며 자꾸만 씌워지는 상상의 붉을 필터를 의식적으로 걷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 필터가 거둘 수가 없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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