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0/16 23:02:55
Name   Balvenie
Subject   우리는 지금 여성주의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즘 (학교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것 중 하나가 남여간의 대결,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의 여성주의 담론에 반하는 주장의 증가입니다. 오늘도 당장 여성징병 문제로 거하게 키배가 붙었네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여성주의가 융성한 우리 학교, 그 중에서도 가장 하드코어했던 사회과학대학 10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제가 입학했던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면 당장 대자보와 함께 그러한 주장을 한 대상을 성토하는 여론이 조성되었겠죠. 과연 그때에서 지금처럼 변한 것이, 일베와 여혐코드의 유행 때문일까요?

  저는 모든 사회문화적 현상에는 경제적 현상이 선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1학년때 그렇게 많이 들었던 맑스주의와 제 빈곤한 가정형편의 결과물이겠죠. 어쨌거나 저는 모든 사회문화적 현상을 경제적 원인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취업이 *같이 힘들어져서" 그렇습니다.

  제가 입학할때만 해도 취업시장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에 들어간 선배가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과 니가 삼성가기에는 아깝다라는 위로를 동시에 받는,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저는 솔직히 2학년 초까지만 해도 제가 컨설팅, IB, 고시 셋중 하나의 진로로 갈 줄 알았습니다. 취업은 솔직히 말해서 최후의 보루였고요. 하다하다 안되면 삼성은 가겠지~ 라는 말을 하던 시대니까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 이번에 한샘 넣었습니다.

  그 시절-제가 입학했던 시절- 까지만 해도 많은 학우들은 여성주의 담론에 공감했습니다. 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피해를 보고 있고, 남성은 이득을 보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여성주의 운동하시는 분들이 주장하는 여성해방,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차별을 철폐하고 여성의 권리를 되찾아줘도 내가 손해보지는 않았"거든요. 최후의 보루가 대기업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인데요. 이 관점에서 볼 때, 여자가 군대 안가는 것이 좀 배알이 꼴려도 "남자로 보는 이득이 있으니(또는 최소한 손해는 안보고, 보더라도 대기업은 가니까)"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저 한샘 썼다니까요? 영업직으로?

  지금 사회는 완벽한 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평등? 차별의 철폐? 인권? 사람들간의 연대? 그거 하면 취업이 된답니까? 과거에 서울대학교 학우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였다면 지금은 내 옆에 있는 저 학우가 나랑 같이 자소서를 30개쯤 쓸겁니다. 쟤만 없으면 내가 붙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올라가겠네요. 이런 환경에서 여성의 권리를 증진해라? 차별을 철폐해라? 그럼 내가 밥을 못먹는데?

  이런 관점에서 여자가 군대안가는 것은 "내 경쟁자가 내가 2년동안 *뺑이치는 동안 스펙을 쌓는" 매우매우 *같은 일이 됩니다. 그동안 개선된 여러 여성인권들은 오히려 남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기존 가부장적 관습에 의거해서 여성이 보던 이득은 계속 그대로입니다. 여성의 인권을 외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던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그런 것들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지금처럼 "이거 역차별 아니냐" 라는 말이 당연히 튀어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온라인상에서는 메갈이라는 이상한 것들이 씹치, 실잦같은 말을 해대고 있습니다. 악감정이 쌓이죠.

  결국 이런 모든 것들이 맞물려서 대한민국의 여성주의는 황혼기를 맞이했다고 봅니다. 당장 사회대에서도 여성주의가 쇠퇴했고, 밖에서는 더하죠.

  추가로, 현재 메갈리안은 이런 황혼기를 맞이해서 마지막 발악? 회광반조?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대한민국 역대 운동권 역사를 보면 운동 망하기 직전에는 극단주의로 가서 어그로 끌다 망하는게 일상이었습니다. 한총련 망할때도 극단적으로 가다가 연세대 사태로 완전히 망했고..



----------------


학교 커뮤니티에 썼던 글을 한번 올려봅니다. 요즘 여혐/남혐과 관련해서 말이 많던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이 게시판에 등록된 Balvenie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48 기타정도전 25화 4 천하대장군 15/06/07 13047 0
    1742 영화2015년 최고의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 한아 15/12/09 13043 2
    1276 일상/생각우리는 지금 여성주의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74 Balvenie 15/10/16 12997 2
    7476 일상/생각라면만 먹으면 건강에 얼마나 나쁠까요? 21 덕후나이트 18/05/03 12961 0
    1310 기타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23 모모스 15/10/21 12955 5
    458 기타살좀 쪄라 라는 말에 대하여. 22 한신 15/06/28 12953 0
    9151 영화용산 CGV 가는 길(지름길) 8 Cascade 19/05/04 12939 4
    4825 과학/기술물리학/수학 포스터 9 뜻밖의 17/02/10 12919 1
    6986 기타제가 그동안 썼던 볼펜들.jpg 16 김치찌개 18/01/23 12915 2
    1437 철학/종교무인자동차와 도덕적 딜레마 62 눈부심 15/11/03 12907 1
    80 기타[안경이야기] 만약 당신이 오직 단 하나의 안경테를 선택해야 한다면..? 27 스타-로드 15/05/30 12903 5
    1451 영화스파이더맨은 왜 소니에서 알바를 뛰고 있나?... 12 Neandertal 15/11/04 12880 0
    1424 철학/종교[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사상의 흐름 11 삼공파일 15/11/02 12866 0
    246 기타정도전 24화 2 천하대장군 15/06/07 12862 0
    1433 음악초큼 신나는 인디 음악 소개 8 *alchemist* 15/11/02 12857 0
    6730 방송/연예결국 배텐 막내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졌네요...... 40 엉덩이가뜨거워 17/12/07 12854 0
    1359 생활체육메시 : 다차원 플레이어 12 구밀복검 15/10/28 12845 4
    1394 요리/음식생물학적 방법과 화학적 특성을 이용한 디저트와인 7 마르코폴로 15/10/30 12770 2
    2412 영화라일리의 첫 데이트 (인사이드 아웃 외전) 4 Toby 16/03/16 12752 0
    632 역사한일관계보다 더 심각한 중국과 몽골의 관계 10 마르코폴로 15/07/22 12750 1
    719 일상/생각레고 빅뱅이론(21302)이 출시됐습니다. 9 15/08/04 12740 0
    1453 의료/건강배아파서 응급실간 이야기 in Calgary, Alberta, Canada 19 이젠늙었어 15/11/04 12737 0
    199 문화/예술브람스 좋아하세요? - 클래식 입문하기 32 뤼야 15/06/04 12729 0
    3067 게임트위치를 다음팟으로 보기 (이미지, 2MB, 재업) 11 메리메리 16/06/19 12708 4
    1289 생활체육U-17 월드컵 브라질 격파! 게나디 골로프킨 상대 선수 폭행! 12 Neandertal 15/10/19 1270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