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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04 13:29:27
Name   랍상소우총
Subject   글로 배운 연애는 어렵다.
피잘에서도 안 써본 글을 여기 와서 쓰네요.

저는 시간이 많습니다. 소속은 대학원생이지만 잉여가 되기에는 얼마든지 많은 방법이 있으니 왜 대학원생이 잉여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합시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성동지와 100일전쟁 비슷한 걸 치른 기억은 있네요. 그것도 연애라면 연애지만..그 때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변기를 부여잡고 저녁식사 메뉴를 곱씹어보면서 '토나오게 힘들다.' 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네. 정말 많이 힘들면 토가 나옵니다. 어쨌거나 그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합니다.

솔로의 즐거움도 몇 년 지나니 온데간데 없고, 잉여인 마당에 여자친구도 없으니 하루하루가 똥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사는 중이었습니다. 괜찮은 여자는 임자가 있고 나한테 들이대는 여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 죄송.. 여자랑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 여사친은 한 트럭인데, 성격상 어장보다는 철벽치기에 능한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이 사람이 나를 남자로 보는 낌새가 보일라 치면 철벽을 쿵쾅쿵쾅 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거리조절에는 참 능숙한 것 같습니다. 필요없는 재주죠. 그러는 주제에 연애하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징징대면서 바람직한 솔로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그 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원래 안면이 있던 선배였는데, 밥을 먹자는군요?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수락했습니다.

제가 의외의 곳에서 오지랖이 넓습니다. 만나기 전에 해외를 갔다올 일이 있었기에, 뭐 사 올 거 없냐고 물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있었고 뷰러를 하나 사다주기로 했습니다. 한국보다 현지에서 싸다면서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제가 다닌 여행지나 면세점에서 그걸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그냥 못 사왔다고 하면 될 일을 왠지 혼자 미안해져서 한국에 돌아와서 그 물건을-_-;;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물론 한국어 택 따위는 없었고요. 사는 김에 얼마 안 하는 뷰러 리필까지 센스있게(!) 구매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여기부터 저의 호구력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만나기도 전인데!

그렇게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습니다. 최근에 안 그래도 외롭다 보니 만나면서 이 사람이 나의 까다로운 기준에 맞는 사람인지를, 소개팅하는 것마냥, 물론 티는 안 내면서 스캐닝을 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결격사유가 없는, 거의 제 이상형에 가까운 분이더라고요. 흥미로웠습니다. 몇 시간 정도 같이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후식도 잘 먹었습니다.

돌아오고 나니 생각이 납니다. 머리를 계속 맴도는 건 아니고 그냥 소개팅 후에 애프터를 하고 싶은 그런? 살짝 뜨뜻미지근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괜히 같이 보고싶었던 영화를 찾아봅니다. 제가 마이너한 영화 하나가 보고싶었는데 놓쳐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분도 놓쳤다고 아쉬워했거든요. 혹시나 작은 영화관에 남아있지는 않을까 뒤져보았습니다.

이미 오래 지난 영화라 큰 극장은 다 내렸고, 나머지 있는 시간은 서로의 시간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그 분은 잉여인 저와는 다르게 주말밖에 시간이 안 되는 분이었거든요. 에라이..그냥 혼자 보러 가야겠다. 내가 뭐 이렇지..하는 찰나!

우리의 구글신께서 저에게 한 줄기 빛을 내려주셨습니다.

음..교회 갈 시간이네요? 반응이 좋으면 이어서 쓰고 아니면 일기장에나 끄적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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