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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9/24 10:24:45 |
Name | 눈부심 |
Subject | 너무 어려운 질문 |
리차드 파인만(1918~1988)은 미국의 물리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물리학에서의 거대한 업적과 함께 여성편력이 대단했던 것으로도 유명해요. 인터뷰어가 파인만에게 자석이 왜 붙냐는 질문 하나 했다가 그 질문이 얼마나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인지에 대한 장황한 연설을 듣게 되는.. 저는 물리학의 '물'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번역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대충 메세지는 전달될 거예요. 질문자 : 자석을 두 개 가까이 가져가면 서로 밀어내고 방향을 바꿔서 가져가면 서로 붙어버리는데요. 그런 느낌은 왜 그런거죠? 파인만 : 그런 느낌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질문자 : 자석 사이에 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파인만 : 내 말을 들어 봐요. 느낌이라니 물론 그런 느낌이야 있죠.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질문자 : 그러니까 제가 알고 싶은 건 자석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는 겁니다. 파인만 : 서로 밀어내고 있죠. 질문자 : 그럼 그게 왜 그러는 거며 어떻게 그러는 겁니까? 파인만 : 그러니까 당신은.. 질문자 : 이건 충분히 제기할 만한 질문인데요. 파인만 : 물론이죠.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왜'냐고 물을 때 '왜'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컨데, 고모가 병원에 있습니다. 왜냐면 얼음판에서 미끄러져서 엉덩뼈가 부러졌기 때문이죠. 보통 이 정도의 대답으로 충분하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행성에서 온 완전 딴 세계의 이방인에게는 왜 엉덩뼈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병원엔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요? 물론 남편이 보고 병원에 연락했겠죠. 이 정도면 보통 사람들은 이해를 합니다. 왜냐는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당연한 상식을 전제해 놓고 설명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질문은 많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 남편은 병원에 연락을 했느냐? 왜냐면 남편은 아내의 안녕을 도모하는 사람이니까요. 모든 남편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 이제 보시다시피 뭔가 굉장히 복잡하고 겉잡을 수 없이 심오해지는 것을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왜 얼음 위에서 미끄러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미끄럽기 때문이죠. 이거 모르는 사람 없죠. 근데 얼음이 왜 미끄럽냐고 묻는다면.. 그 참 재밌어 지죠. 얼음이야 엄청 미끄럽죠. 그런데 당신은 얼음은 미끄럽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에 만족할 수도 있는 것이고 왜 미끄럽냐고 물어 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기름도 미끄럽지만 기름은 자체가 축축한 듯 미끌거리죠. 근데 얼음은 딱딱한데도 미끄러워요. 그런 건 흔치 않죠. 딱딱한 고체의 얼음이 왜 미끄러우냐면 얼음 위에 서면 그 압력으로 순간 얼음이 녹아서 순간적으로 물로 변해 미끌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딴 건 안 변하는데 왜 얼음은 그러냐. 왜냐면 물이 얼음이 되면 부피가 늘어나는데 압력을 가하면 부피가 줄어들려고 하는 성향 때문에 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물이 얼면 왜 부피가 늘어나느냐. 제가 자금.. '왜'라는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중이에요. 들으셨다시피 왜냐고 물으면 물을수록 점점 흥미로운 구석이 생겨요. 심지어는 미끄러지면 왜 아래로 넘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어요. 그럼 또 중력얘기를 꺼내야 하죠. 자석은 왜 서로 밀어내느냐라는 질문에는 여러가지 수준의 대답이 있을 수 있어요. 당신이 물리학과 학생이냐 그냥 보통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물리학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자석 사이에 자기력이 있기 때문에 서로 밀어내는 것이라는 겁니다. 근데 그게 참 이상하거든요. 다른 물건들 사이에선 그런 힘을 느낄 수가 없어요. 전자기력이란 것도 있는데 이것도 참 희한한 겁니다. 우리가 의자를 손으로 밀면 의자는 손을 밀어내서 의자를 통과하지 않는데 이걸 당연하게들 생각하죠. 이것도 정확하게는 전자기력, 내지 더욱 정확하게는 자기력 때문이에요. 자석이 서로 밀어내듯 이런 밀어내는 힘이 바로 우리 손가락을 의자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과 같은 거예요. 모든 건 엄청나게 작은 단위의 전자기력으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뭐 다른 종류의 힘도 있지만 전자기력과 연관이 있죠. 제가 설명할 수 없는 자기력, 전자기력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물어 본 '왜 밀어내느냐'에 대해 답을 하기 위한 시발점입니다. 손으로 의자를 통과하지 못하는 걸 당연히 생각들 하지만 왜 그러냐고 물으면 복잡해지듯이 왜 자석이 서로 밀어내냐고 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라블라블라블라. 당신이 물은 자석의 끌림이란 것은 제가 당신이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수준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블라블라블라. 그래서 자석이 왜 서로 끌어당기느냐고 물으시면 제가 대답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요. 블라블라블라. * * * 네 박사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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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본질을 이렇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파인만이 이렇게까지 대중적인 과학자로 이름을 날리는데 한몫한 것 같아요. 대부분 물리학자들은 이런 인터뷰 같은 건 하지도 않거니와 받았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경멸하고 씹거나 맥스웰 공식이나 읊어줬을 겁니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 관계, 인과 관계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적인 이해와 과학적인 이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남편이 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갔냐는 질문에, 남편이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더 보기
사람은 원인과 결과 관계, 인과 관계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적인 이해와 과학적인 이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남편이 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갔냐는 질문에, 남편이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더 보기
물리학의 본질을 이렇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파인만이 이렇게까지 대중적인 과학자로 이름을 날리는데 한몫한 것 같아요. 대부분 물리학자들은 이런 인터뷰 같은 건 하지도 않거니와 받았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경멸하고 씹거나 맥스웰 공식이나 읊어줬을 겁니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 관계, 인과 관계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적인 이해와 과학적인 이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남편이 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갔냐는 질문에, 남편이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는 어떤 맥락적이고 서사적인 관계가 깔려 있지만, 얼음을 밟았을 때 미끄러지는 역학적 관계는 우리가 서사적 진술을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과학은 이 현상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도구인데 일반인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을 포기하지 못하죠. 물과 얼음의 부피관계 때문에 호수가 꼭대기부터 얼어서 물고기가 겨울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치 물이 물고기가 겨울에 죽지 않도록 꼭대기에서부터 언다고 이해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걸 과학의 신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귀찮아서 대충 아무 얘기나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여도 대중에게 과학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깊은 고민이 있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 관계, 인과 관계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적인 이해와 과학적인 이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남편이 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갔냐는 질문에, 남편이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는 어떤 맥락적이고 서사적인 관계가 깔려 있지만, 얼음을 밟았을 때 미끄러지는 역학적 관계는 우리가 서사적 진술을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과학은 이 현상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도구인데 일반인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을 포기하지 못하죠. 물과 얼음의 부피관계 때문에 호수가 꼭대기부터 얼어서 물고기가 겨울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치 물이 물고기가 겨울에 죽지 않도록 꼭대기에서부터 언다고 이해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걸 과학의 신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귀찮아서 대충 아무 얘기나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여도 대중에게 과학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깊은 고민이 있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뭐 그렇기는 한데, 별개로 교양 있는 지식인들의 언어 구사력은 상당 부분 거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발화는 대개 지식인 세계 특유의 언어관행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용법으로 구성되어 있곤하죠. 즉, 지식인 카르텔의 컨센서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를 두고 땅 짚고 헤엄치기며 온실적인 발화라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의 이해 수준이 높아야만, 더불어 상대방이 의사소통에 쓰이는 약호를 알고 있어야만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데에... 더 보기
뭐 그렇기는 한데, 별개로 교양 있는 지식인들의 언어 구사력은 상당 부분 거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발화는 대개 지식인 세계 특유의 언어관행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용법으로 구성되어 있곤하죠. 즉, 지식인 카르텔의 컨센서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를 두고 땅 짚고 헤엄치기며 온실적인 발화라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의 이해 수준이 높아야만, 더불어 상대방이 의사소통에 쓰이는 약호를 알고 있어야만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어 통역이 필요한 이는 결코 좋은 발화자라고 볼 수 없겠지요. 지식인 집단 내에서는 \'현명한 이와 대화하는 것은 즐겁다\'라는 식으로 정교한 논변을 해내는 이가 해당 집단 밖의 일상생활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하는 것 역시도 그래서일 테고.. 결국 오롯한 자기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냥 친구빨 지인빨 동료빨 독자빨 받아서 유창한 거고, 그만큼 허약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아무나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것, 불확실한 상대의 이해력이 아니라 오로지 확실한 자기 자신의 언어 구사력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마음가짐이겠지요. 그 점에서 파인만처럼 누군가의 통역 없이 스스로의 힘만 가지고 남에게 자신의 견해를 막힘없이 전달 가능한 사람이 찬탄 받을만한 것이고..
그러고 보면 파인만은 항상 과학의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을 [빨간 책](Lectures on Physics)을 만든 것이라고 하기도 했고, 교과서 선정 위원회에 들어가서 사서 고생을 하기도 했고, 브라질 안식년 시절에 브라질 과학 교육에 대해 신랄하게 까기도 했고요. 평소에 그런 고민을 해 왔기 때문에 저런 심원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특히 이 영상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해하는 이의 지식 수준... 더 보기
특히 이 영상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해하는 이의 지식 수준... 더 보기
그러고 보면 파인만은 항상 과학의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을 [빨간 책](Lectures on Physics)을 만든 것이라고 하기도 했고, 교과서 선정 위원회에 들어가서 사서 고생을 하기도 했고, 브라질 안식년 시절에 브라질 과학 교육에 대해 신랄하게 까기도 했고요. 평소에 그런 고민을 해 왔기 때문에 저런 심원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특히 이 영상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해하는 이의 지식 수준에 따른 전달 내용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아이에게 물리학을 가르칠 때도 상대성이론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영상을 봤는데(예를 들면 50km+80km=130km이라고 고전에서는 가르치지만 사실은 소수점 한참 아래만큼 변화가 있다거나. 그런데 찾아보니 지금은 영상이 지워졌네요.) 파인만 영상을 보니 제 생각이 파인만 쪽에 가깝네요.
특히 이 영상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해하는 이의 지식 수준에 따른 전달 내용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아이에게 물리학을 가르칠 때도 상대성이론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영상을 봤는데(예를 들면 50km+80km=130km이라고 고전에서는 가르치지만 사실은 소수점 한참 아래만큼 변화가 있다거나. 그런데 찾아보니 지금은 영상이 지워졌네요.) 파인만 영상을 보니 제 생각이 파인만 쪽에 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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