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2 23:04:38수정됨
Name   열린음악회
Subject   과분했던 인생 첫 소개팅 이야기 (음슴체 주의)
원래 따른 곳에 썼던 글이라 말투를 양해 부탁드립니다. 중간에 문어체로 바뀌긴 합니다만..

좀 된 얘기입니다.


그 때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모쏠 25살로 전역하고 당시 C모펀드에서 인턴 중이었다. (대학 이름은 별로 안알려짐)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소개팅할래? 그렇게 내 생애 첫 소개팅을 얼떨결에 받게 되었다.

상대는 모대 음대를 다니고 사진상으로는 내게 과분하다 생각할 정도로 꽤 이뻤다. 나이는 내가 대학을 일찍 졸업하고 상대가 재수한 관계로 동갑.

문자 주고받고 다음주 처음으로 만났다. 분위기는 뭐 어색어색했지만 음식도 맛있었고 나도 생각보다 긴장을 덜 해서 말을 잘 했다. 중간중간 어색한 순간이 있었지만 끝날때쯤 내가 떨면서 애프터 제의를 했고 바로 좋다고 받더군. 그쪽에서 말을 놓자고 하고 그날은 헤어졌다.

집에 와서 내가 잘 한건가? 고민하고 문자를 주고받다 잤다. 다음날은 선톡이 오더군. 그때부터 이 여자가 나한테 호감이 있나?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주 내내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내가 문자로는 말주변이 없어 톡을 잘 못하겠었다. 상대방도 조용조용해서 남자랑 별로 톡 못해본 눈치고.. 톡을 통해서는 별로 진전이 없었다. 몇 번 오고가다 좋은 하루 보내란 말이 반복되기만 했고 그렇게 다음번엔 학교 앞에서 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 주는 설레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부장한테 깨지다 다음 주말 그렇게 봤다. 보기 전날 용기를 내 빨리 보고싶다고 보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하였다. 착각이었지만 이 여자랑 연인이 될 것처럼만 느껴졌다.

그녀가 추천해서 간 이자카야는 음식이 그냥 그랬다. 난 내색 안하고 먹었고 농담도 좀 했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연인같지는 않았다. 조금은 어색했고, 연인보단 친구로써 대화 느낌이 있었지만 애써 고작 두번째 만남임을 되내었던 것 같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나는 이상형을 물어봤고, 그녀는 대답하곤 내게 되물었다.

나와서 학교로 올라갈 때 나는 어색함을 느꼈고,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좀 했다. 먹혔는지는 모르겠다. 캠퍼스에서 우리는 잠시 바위에 앉았고, 그녀는 이 자리를 미리 봐 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애인이 생기면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그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그냥 같이 이렇게 캠퍼스에 와 보고 싶었다 했다. 나는 그렇냐면서 내심 되묻길 기다렸지만, 그녀는 되묻지 않았고, 정적 속에 우리는 일어섰다.

그 때부터 나도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꼈던 것 같다. 연못을 보여 준 그녀에게 나는 할 말이 점점 떨어짐을 느꼈고, 이는 곧 내가 나는 여자친구 생기면 호수가에 같이 가고 싶었다라고 뜬금없이 말함으로 표출되었다. 우리는 이 벤취 저 벤취로 자리를 계속 옮겼고,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답답하게 계속 뭔가 말을 꺼내다 쑥스러워 그만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녀는 내가 건축가와 잘 어울린다 했고, 나는 너도 그렇다고, 건축학개론의 수지와 닮았다고 하려 했지만 쑥스러워 뭔가 건축학개론 느낌이다 하고 말았다. 어색함 속에 나는 삼프터는 그래도 제의해 봐야지 하고 용기를 냈는데, 그녀가 먼저 삼프터를 제의해 왔다...

그렇지만 그 톤이 너무나도 샹투적이라, 나는 좀 오히려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타입인가? 사회성이 좀 떨어지나 하곤 생각했지만 나를 좋아한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계속 확신 없이 행동했던 것 같다. 집가는 버스 속에서 우린 어색했고, 나는 음악을 같이 듣자 했다. 곧 우린 헤어졌고, 나는 불확실함 속에 집에 와서는 잘 들어갔는지 문자했다.

그녀에게 온 답은 다음만남이 기대된다는 것. 그리고 바로 잘자라고 왔다. 11시도 안 됐는데 잘 자라니? 걷느라 피곤했나? 뭔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문자를 해도 비슷한 답장이 이어졌고, 점점 길어지는 답장 텀에 나도 뭔가 잘못됨은 느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지? 분명 전의 카톡과 온도차가 느껴지는데, 내가 그 정도로 정 떨어지는 짓 한것은 생각하지 못하겠다. 나는 괜히 남자친구 얘기를 해 내가 부담을 준 건 아닌지, 아니면 식사자리에서 무슨 실수를 한 게 아닌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주도 일을 망쳐버려 깨지고 말았다..

결국 그 주의 후반, 나는 전화를 걸었고, 처음에 조금 긴장해 기쁘게 받는 상대방에 기대를 걸었다 점점 맥이 빠져가는 상대방을 느껴 전화를 끊었다.

결국 나는 이 여자가 나에게 흥미 없음을 그 때 깨달은 것 같다. 나는 우리가 만나긴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한번 떠보듯 만나자 했을 땐 바로 만난다고 답장이 오긴 했는데, 점점 답장 시간도 길어지고.. 나도 마음을 정리했다.

그 다음주 만남은 비가 내렸는데, 우린 양고기집을 갔다.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진 않았고, 음식도 맛있었다. 그녀는 음식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앞전에 내가 샀으니.. 나는 부담주기 않기를 목표로 철저히 친구처럼 접근했고, 대화는 어느정도 했던 것 같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나는 다음에 맛있는 곳이 있는데, 다음 주말에 같이 갈지 물었고, 그녀는 바로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안 된다고 했다(어느 요일인지도 말 안했는데 말이다!)

나는 여기서 끝임을 느꼈지만, 그래도 용기 내 다음 주중은 어떻냐 물었고, 그녀는 또 알수 없게도, 다음 주중은 괜찮다고 했다. 음식점을 나와 우리는 우산을 같이 쓰고 걸었고, 카페에서 같이 차를 마셨다.

여기서 나는 더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좋다.. 대화하는 게 즐겁다... 근데... 근데 친구 같다하고 답했고, 나는 그래도 우리가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인데, 혹시 이 관계를 친구 이상으로 발전시킬 의사가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친구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는 친구를 만난다 생각하고 나왔다 했다. 이 말이 핑계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긴장이 풀려 이젠 정말 친구 대하듯 대했고, 그 이후 분위기는 편했던 것 같다. 다음에 그래도 그 음식점을 가자고 나는 말했고, 그녀도 그러겠다고 했다.

우린 정말 그 음식점을 가기 직전까지 갔다. 메뉴까지 골랐었다. 다만 그 직전 내가 가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 했고, 다음에 가자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갖고 나를 대했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감정선이 나와 다른 것 같다라는 생각은 했다. 그녀가 연애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했고, 넷플릭스는 로맨스물로 채워져 있는 걸 봐선. 나는 다만 왜 갑자기 마음이 그렇게 바뀌었을지, 궁금할 뿐이다.



8
  • 양고기 마이쪙.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653 일상/생각흑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국가 미국 16 가람 20/06/05 5968 59
10648 일상/생각나는 나와 결혼한다? 비혼식의 혼돈 15 sisyphus 20/06/03 5436 0
10645 일상/생각군대 다녀온 복학생 20 명이 한 반이 되면 생기는 일 5 네임드 20/06/03 4291 3
10644 일상/생각과분했던 인생 첫 소개팅 이야기 (음슴체 주의) 8 열린음악회 20/06/02 5008 8
10640 일상/생각베네주엘라 차베스의 좌절..... 23 쿠쿠z 20/06/01 4324 1
10636 일상/생각비혼이라는 설익은 거짓말 13 sisyphus 20/06/01 4290 4
10634 일상/생각노약자석으로 보는 도덕의 외주화가 불러오는 폐단 6 sisyphus 20/05/30 3732 2
10627 일상/생각학교에 근무하면서 요즘 느낀점 30 당당 20/05/28 5345 28
10624 일상/생각한국 조직문화에 대한 인식의 세대 차이 17 cogitate 20/05/26 4062 2
10619 일상/생각슈바와 신딸기. 22 Schweigen 20/05/26 3686 33
10606 일상/생각동시성의 상대성 6 시뮬라시옹 20/05/21 4100 2
10599 일상/생각한 다리 건너 성공한 사람들 2 이그나티우스 20/05/19 4162 3
10592 일상/생각웃음이 나오는 맛 11 지옥길은친절만땅 20/05/17 4379 11
10591 일상/생각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에 대한 반성, 무식함에 대한 고백 18 메존일각 20/05/16 5235 45
10584 일상/생각롤하다 보면 박살나는 날도 있는거지 4 호타루 20/05/14 3839 0
10582 일상/생각TWS i7 미니를 사긴 했는데. 2 집에가고파요 20/05/13 4375 0
10580 일상/생각제주도에서의 삶 12 사이시옷 20/05/13 4581 26
10579 일상/생각작년 한 해를 겪으며 생존해온 이야기 21 shadowtaki 20/05/13 5027 22
10571 일상/생각불나방(하) => 불나방 에세이 전체 합본 4 시뮬라시옹 20/05/10 3962 2
10569 일상/생각불나방(중_b) 시뮬라시옹 20/05/09 3634 2
10559 일상/생각아버지 4 호라타래 20/05/07 3661 18
10558 일상/생각불나방(중_a) 2 시뮬라시옹 20/05/07 3291 1
10557 일상/생각엄마 4 사이시옷 20/05/07 3717 15
10556 일상/생각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9 켈로그김 20/05/06 4161 31
10552 일상/생각온라인 수업하는 딸에게 빼앗긴 것들 10 집에가고파요 20/05/05 5147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