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5/07 15:00:26수정됨
Name   시뮬라시옹
Subject   불나방(중_a)
https://kongcha.net/?b=3&n=10537 => [불나방 상편]



"씁...... 어쩌지....?"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길에, 문득 일찍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안에 들어가 있을까? 아니면 밖에 나와 있을까?

아주 소심한 이들이 아니라면 고민할 리 없는 질문을 속으로 되뇌는 나를 보면서 나 자신이 싫었다.
반전이라면 나는 소심함 때문에 그러한 고민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고민케 한 것은 담배였다.

우울증이 시작했을 때 처음 저지른 일탈이자, 죽음을 향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이었다.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의 이기심,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해주는 담배냄새. 가족들과 본인의 건강에 대한 안중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 물건. 나하고는 평생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한 물건이 어느새 자꾸만 내 머릿속을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죽음을 향한 욕망을 느낀 나에게 있어 미래에 대한 경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담배는 내 호흡을 타고, 내 폐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혈관을 타고, 내 마음을 태웠다.
자기 파괴행위를 용납하고 그것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것은 지금의 나의 상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울수록 점점 짧아지는 담배를 보며, 내 삶도 끝을 향해 감을 느꼈다.
담배를 태울수록 사라졌고, 사라질수록 태웠다.

일찍 도착한 나는,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대를 입에 문 채, 가게 근처 골목 구석으로 들어간다.
한 때는 나였을, 옅은 담배냄새에 저 멀리서부터 미간을 찌푸리는 행인들을 보며 그들에게 미안하면서도 화가 나고,
그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옴을 반복하려는 찰나에, 니코틴은 두뇌의 혈관을 비집고 들어가 날 어지럽게 한다.
어느새 모두 잊고 멍하니, 밝은 달을 쳐다보며 눈물이 차오름을 느꼈다.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새끼 담배 피우냐? 끊어 인마!" 친구의 한 마디에
나는 멋쩍은 기분이 들어, 담배를 껐다.

"와 씨 너 같은 놈도 담배를 피우냐? 빨리 들어가자 춥다."
친구의 그 한 마디는 아마도 중학교 시절 모범생 이미지였던 나의 모습과 담배가 어울리지 않아,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했다. 누군가는 "왜 피는데? 무슨 일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그러나 원했던 한 마디가 너무 이상적이어서였을까 그러한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우린 가게에 들어섰고, 가게 안은 조용했다.
우리는 음식을 시키고,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곧 할 말이 떨어졌다. 서로 만나지 못했던 기간은 그 사이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음을 뜻함과
동시에 거리감을 뜻했기 때문이라.

"있지 나 요즘..."


- 계속....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아마 중_a 중_b 하 로 끝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946 일상/생각바보 바보 바아~보 16 OshiN 16/06/03 3149 4
    2799 일상/생각[회고록] 잘못된 암기. 13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13 3149 1
    10558 일상/생각불나방(중_a) 2 시뮬라시옹 20/05/07 3149 1
    3120 기타기다림 4 새의선물 16/06/25 3150 1
    5273 IT/컴퓨터애플 시총 7300억 달러 돌파.. 꿈의 1조를 달성할까? 2 Leeka 17/03/23 3150 0
    6462 음악[팝송] 벡(Beck) 새 앨범 "Colors" 4 김치찌개 17/10/24 3150 1
    12198 게임[LOL] 10월 24일 일요일 오늘의 일정 2 발그레 아이네꼬 21/10/23 3150 1
    12577 영화[스포일러 주의]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정주행 후기 11 눈시 22/03/04 3150 4
    8029 스포츠180809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에릭 테임즈 시즌 16호 솔로 홈런) 김치찌개 18/08/10 3151 0
    13610 일상/생각이상한 판결들에 대해 21 커피를줄이자 23/03/01 3151 0
    13217 일상/생각와이프가 행보관처럼 느껴져요. 8 큐리스 22/10/11 3152 0
    8682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2) 김치찌개 18/12/26 3153 0
    12806 경제부동산 시장에 대한 다양한 개인 잡담 5 Leeka 22/05/12 3154 6
    4421 일상/생각1년 만에 휴식 후 복직 3 고민하는후니 16/12/21 3155 2
    11904 정치류여해와 이은재는 복당될까? 13 Picard 21/07/21 3156 0
    5055 음악하루 한곡 034. ClariS - ひらひらひらら 4 하늘깃 17/03/02 3157 0
    8546 스포츠181119 오늘의 NBA(르브론 제임스 51득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 1 김치찌개 18/11/20 3157 1
    13629 일상/생각백인에게 공격당했습니다. 27 덕후나이트 23/03/09 3157 0
    6178 일상/생각내 인생을 다시 설계해보기 4 벤젠 C6H6 17/08/27 3158 6
    12916 기타식곤증은 정녕 답이 없는걸까요..? 너무 심하네요 21 셀레네 22/06/14 3158 0
    12716 도서/문학[그림책] 누가 진짜 엄마야? 3 늘쩡 22/04/13 3159 12
    6938 스포츠180112 오늘의 NBA(르브론 제임스 26득점) 김치찌개 18/01/13 3160 1
    13606 정치재밌네요... 이재명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 36 Picard 23/02/28 3160 0
    5265 창작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글 10 열대어 17/03/22 3161 6
    5594 방송/연예추천 사극(?) 8 피아니시모 17/05/09 3162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