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5/01 15:12:37수정됨
Name   시뮬라시옹
Subject   불나방(上)
=> 읽어주는 에세이~!

'나 불나방이 될 거야. 비록 내 목표의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일단은 그쪽으로 가볼래'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날의 한 밤중이었다. 언제부터였을지 모를 나의 우울증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잠시 지나가는 거라고, 누구나 앓는 성장통일 것이라는 희망과는 달리, 불안정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 속에 점점 지하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내면의 상처와 자존감은 나를 삶의 종착점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모름지기 내 인생에도 끝이 있을 터였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인생의 끝은 행복하면서도 슬픈, 일종의 알싸한 맛의 마라탕과 같은 것이었다.
내 인생은 행복했다고. 그렇지만 결코 달지만은 않았다고. 중간중간 맵기도 했지만 불행한 인생은 아니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인생의 종착점은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진짜 내 인생의 종착점은 무(無)를 향한 추종 혹은 숭배였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백지조차 아니라 없을 무, 존재하지 아니한 것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있어 유(有)라는 가치는 그 어떠한 것보다 소중할 터이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이지,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온 우울증은 그러한 본능마저 거부하게 만들었다.

겹겹이 쌓인 부정적인 기억들과 환경,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남기고 간 감정이 굳고 세월에 마모되어 생긴 거대하고 날카로운 바늘은
마지막 장벽까지 뚫어 버렸다. 뚫린 장벽들은 바늘에 꿰매진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실에서 배어 나온 독에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정의 힘을 기대할 수 없게 된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하며 살아 버티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한 마음에게 있어 無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유가 주는 것에 비하여 무를 택했을 때 얻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러자 나라는 존재를 지속하는 문제가 아주 간단한 Yes or No 선택지 정도로 느껴졌다. 동전을 던져 앞과 뒤 중 어떠한 면으로
떨어지게 될 것인가? 에 내 죽음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나라는 존재에게 있어 '유'의 가치는 무가치했다.

이제 죽음은 시간문제였다. 조금 더 확실하게 죽을 방법을 찾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반적인 루트로는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만난 지 오래된 중학교 동창 친구에 전화가 온 것이다.
아직 확실하게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그렇게 동창 친구가 마련한 술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
간단한 에세이에요.아마 상 중 하로 나뉘거나 상 하로 나뉠 것 같은데
이건 상편입니다.참고로 글쓰기 플랫폼 '씀'에도 올려놨어용.
갤럭시탭S6 키보드커버랑 함께 썼다능 ㅎ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15 과학/기술불멸의 세포 15 모모스 15/10/09 11732 9
    4228 의료/건강불면증과 잠 못 드는 청와대 8 모모스 16/11/25 9143 2
    14544 의료/건강불면증 개선에 도움되는 멜라토닌 효능 11 후랑키 24/03/19 2652 1
    2565 일상/생각불면증 4 nickyo 16/04/07 3263 1
    4652 도서/문학불륜 예술의 진실을 보고 멘붕한 이야기. 18 와인하우스 17/01/18 4837 6
    13105 영화불렛트레인은 데드풀2가 아니다. 4 활활태워라 22/08/24 2934 0
    10571 일상/생각불나방(하) => 불나방 에세이 전체 합본 4 시뮬라시옹 20/05/10 3973 2
    10569 일상/생각불나방(중_b) 시뮬라시옹 20/05/09 3644 2
    10558 일상/생각불나방(중_a) 2 시뮬라시옹 20/05/07 3302 1
    10537 일상/생각불나방(上) 3 시뮬라시옹 20/05/01 3589 4
    12785 기타불금인데 2 그린티넷 22/05/06 2514 1
    650 기타불금에 장기 묘수풀이 한수..(해답없는 문제) 29 위솝 15/07/24 6440 0
    5202 창작불결한 글. (1) 5 세인트 17/03/16 3160 3
    3037 게임불가능이 아니다, 명백한 가능성! 오버워치 PC방 점유율 역전 사정권에 들어오다. 19 곧내려갈게요 16/06/16 6011 0
    12688 오프모임분홍차넷 졸업과 새로운 입학의 건 172 Profit(Profit) 22/04/01 7026 108
    3533 철학/종교분할뇌 문제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 35 April_fool 16/08/18 6077 0
    1027 일상/생각분탕질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 20 王天君 15/09/18 11410 0
    12630 일상/생각분위기 바뀌는거 걱정되네요. 24 Picard 22/03/15 4792 4
    3833 일상/생각분사난(忿思難) 8 기아트윈스 16/10/05 4063 1
    2443 일상/생각분명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4 NightBAya 16/03/21 3591 0
    4597 의료/건강분노 - 화를 다스리는 법 15 Liebe 17/01/11 6712 1
    9770 정치북핵문제 언제쯤 결판이 날까요? 10 로냐프 19/10/03 3506 0
    7456 정치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와 남북정상회담 by 김영환 5 뒷장 18/04/29 4383 3
    9987 기타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관해 알아보자 11 DX루카포드 19/11/14 4383 10
    8855 사회북한은 어떻게 될까 - 어느 영국인의 관점 83 기아트윈스 19/02/12 7591 7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