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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7 20:23:41수정됨
Name   이그나티우스
Subject   아싸, 찐따,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아싸, 찐따,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초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조'라는 것은 나의 학교생활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선생들이야 조모임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그만큼 평가대상이 줄어드니(조별 결과물만 평가하면 되니까) 자기네들에게는 괜찮은 방법으로 보였을 것이다. 친구가 많은 녀석들도 조모임을 하면 적당히 공부 잘하는 조에 들어가 꿀빨면서 프리라이딩 하면 되니까 좋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아무도 나와 조를 이루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번 '원하는 사람들끼리 조를 짤 것'이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골치가 아팠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일이었다. 버스 맨 뒷자리는 항상 그렇듯 반의 일진들이 차지를 했고, 나머지 자리들은 역시나 예의 '마음에 드는 녀석들 끼리' 자유롭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선생이야 나름 친구들끼리 추억을 만들라고 친절을 베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무도 내 옆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면서 동시에 굴욕감을 느꼈다. 결국 가는 길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로 남겨진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고, 오는 길에는 누군가가 중간에 집에 먼저 갔었는지 반 인원 숫자가 홀수가 되는 바람에 담임선생 옆 자리에 앉아서 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은 참 친절한 곳이다. 옛날옛적에는 신분, 성별, 종족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무언가를 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어지간 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쌍방의 합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할 것을 제안하면, 상대가 그것을 승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남들과 같이 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본이 된다. 물론 합의가 아닌 명령과 규제로 돌아가는 곳도 많지만, 돈과 사람이 오가는 살벌한 사회생활이 아닌 맥주 한 잔 같이 할 수 있을 정도의 말랑말랑한 인간관계에서는 대개 기본이 개인의 의사에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합의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나와 상대를 해줄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자유가 있는 세상의 뒷면에는 모두에게 선택받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외톨이가 된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나도 그렇지만 모두들 자기 자신은 이 외톨이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별로거나 특이한 사람이어도 적어도 한 명쯤은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에는 우리 주위의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신을 팔아야 하는 것인데, 그게 잘 되는 사람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안 되는 사람은 가판대에 쌓여 먼지만 맞다가 재고로 처리되는 물건과 같은 신세가 된다. 물건이야 버리면 그만이지만 자기 인생은 버릴 수가 없으니 더 골치가 아프다.

부모님 세대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세대에는 성적이나 경제적인 배경을 기준으로 친구를 골라야 한다는 압력이 별로 없었다. 그야말로 친구는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녀석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알고 자랐다. 어릴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잔인한 시스템이다. 누구도 함께 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합의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는 가정 위에서는 그런 사람이 나오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연애는 어떤가? 이것도 마찬가지다. 결혼이야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는 내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란 두 사람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사귀고 싶은 사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 사람은 적어도 지금의 내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연애를 못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는 섹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간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버리고 가겠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마음이 편한 사실이 아니다. 이것을 수면 위로 끄집어 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실제로는 그렇게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도 아닐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잔인한 사람이라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이런 사실에서 눈을 돌리려고 한다. 혹여 그러한 불편한 사실이 건져올려진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이고, 대단치 않은 일로 치부된다. 그러니까, 찐따는 다 그럴 만한 놈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찐따 자기책임론'에 따르면 친구를 못 사귀는 것은 사회성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연애와 섹스를 못 하는 것은 이성에게 매력이 없고 '자기관리'를 잘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냉정한 사람들은 "타고난 찐따는 어쩔 수 없다."고 냉소와 비아냥을 보내고, 조금 인정이 있는 사람들은 "노-력하면 누구나 벗어날 수 있다."고 해준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건 결국에는 찐따와 모쏠아다로 계속 남는 것은 그냥 그 녀석이 못나서 그런 것이라는 점에서는 생각이 일치한다.

아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싸와 찐따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결국에는 찐따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서 출발한다. 즉, 이 세상에는 본인이 못나서 모두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구제불능의 사회 부적응자들, 그러니까 '찐따'들이 존재하며, 이런 구제불능의 존재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의미의 '아웃사이더'와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이나 성별, 국적과 같은 종래 문제가 되는 차별에 대해서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관점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공감과 연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약자들을 우리의 무리 안으로 받아들여 서로 같이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이런 주의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잡고, 학계에 진출해서 권위있는 학자가 되고, 종교인이 되고, 언론인이나 연예인이 되어 자신들의 약자 보호 사상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멸종위기의 희귀동물의 권리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도 친구가 없어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구제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기에는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유로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거절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외톨이를 돕자고,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보내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반대로 외톨이들을 양산하는 사람들의 매정함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러한데, 거기에다 대고 목소리를 높여 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싫다는 사람 붙잡고 저 사람은 버림받아 불쌍하니 어쩌니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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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해볼만한 내용이네요.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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