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하다'를 들으면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하급자나 만만한(중립적으로는 편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낱말이라는 겁니다. 물론 아랫 사람 전용이라는 그 자체로는 꼭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이게 또 여성 전용 표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간단치가 않죠. 남성에게 참하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보통은 '믿음직스럽다' 정도겠죠.
그러면 '참하다'는 '믿음직스럽다'의 단순히 여성 전용 동사일까요.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믿음직스럽다'는 완전히 동격인 동업자나 협력자, 친구 사이에서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심지어 캐주얼한 관계라면 상급자에게도 종종 쓰일 수 있죠. '참하다'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빈도와 확률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죠. 이 '양적 차이'가 중요합니다. 쓸 수 있다 쓸 수 없다가 아니라 몇 % 확률로 몇 건의 빈도로 쓸 수 있냐가 중요한 겁니다. 세상은 OX가 아니라 확률 게임이기 때문이죠.
또한 '믿음직스럽다'에는 청자에 대한 화자의 신뢰도가 높아서 어지간한 일은 본인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처리해도 된다는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업자나 상급자 상대로도 쓸 수 있는 거고요. 말하자면 '믿음직스럽다'는 상대의 lead로서의 역량을 인정하는 겁니다. 반면 '참하다'는 그렇지 않고요.
그러면 '참하다'는 '믿음직스럽다'의 단순히 여성 전용 동사일까요.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믿음직스럽다'는 완전히 동격인 동업자나 협력자, 친구 사이에서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심지어 캐주얼한 관계라면 상급자에게도 종종 쓰일 수 있죠. '참하다'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빈도와 확률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죠. 이 '양적 차이'가 중요합니다. 쓸 수 있다 쓸 수 없다가 아니라 몇 % 확률로 몇 건의 빈도로 쓸 수 있냐가 중요한 겁니다. 세상은 OX가 아니라 확률 게임이기 때문이죠.
또한 '믿음직스럽다'에는 청자에 대한 화자의 신뢰도가 높아서 어지간한 일은 본인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처리해도 된다는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업자나 상급자 상대로도 쓸 수 있는 거고요. 말하자면 '믿음직스럽다'는 상대의 lead로서의 역량을 인정하는 겁니다. 반면 '참하다'는 그렇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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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ZUhF8_YQP4
제가 최근에 본 여자중에 가장 <참하다>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모습인데
중요한 게임을 져서 하루종일 시청자들한테 혼나고 담당 선생님한테 혼나고 느즈막한 새벽 겨우 조금의 위로를 받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이 악물고 참으면서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채우고 있는 아이.. ㅋㅋ
나는 너한테 힘들고 싫은걸 가르치고 요구할테지만 너는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줘, 라는 희망을 충족시켜줄 사람..
역겨운 요소... 더 보기
2023 07 11 12 44 34
제가 최근에 본 여자중에 가장 <참하다>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모습인데
중요한 게임을 져서 하루종일 시청자들한테 혼나고 담당 선생님한테 혼나고 느즈막한 새벽 겨우 조금의 위로를 받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이 악물고 참으면서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채우고 있는 아이.. ㅋㅋ
나는 너한테 힘들고 싫은걸 가르치고 요구할테지만 너는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줘, 라는 희망을 충족시켜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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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ZUhF8_YQP4
제가 최근에 본 여자중에 가장 <참하다>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모습인데
중요한 게임을 져서 하루종일 시청자들한테 혼나고 담당 선생님한테 혼나고 느즈막한 새벽 겨우 조금의 위로를 받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이 악물고 참으면서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채우고 있는 아이.. ㅋㅋ
나는 너한테 힘들고 싫은걸 가르치고 요구할테지만 너는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줘, 라는 희망을 충족시켜줄 사람..
역겨운 요소가 분명히 많은데
이상하게 여기에 여성성이 깃들면 묘한 매력이 피어오른단 말이죠.. ㅋ
2023 07 11 12 44 34
제가 최근에 본 여자중에 가장 <참하다>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모습인데
중요한 게임을 져서 하루종일 시청자들한테 혼나고 담당 선생님한테 혼나고 느즈막한 새벽 겨우 조금의 위로를 받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이 악물고 참으면서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채우고 있는 아이.. ㅋㅋ
나는 너한테 힘들고 싫은걸 가르치고 요구할테지만 너는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줘, 라는 희망을 충족시켜줄 사람..
역겨운 요소가 분명히 많은데
이상하게 여기에 여성성이 깃들면 묘한 매력이 피어오른단 말이죠.. ㅋ
ㅋㅋ 주니어의 매력이란 게 있죠. 여성 주니어도 그럴 수 있고요.
남성 주니어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면/여성 시니어의 '믿음직스러움'도 동등하게 인정된다면 그럭저럭 문제는 없다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듯 싶군요.
소년에게 참하다고 하지 않는 건 갠적으로 소년에게 어느 정도 다들 위협감을 받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재력 있는 이놈이 참하게 잘 크면 참해지는 게 아니라 날 잡아먹겠지 생각하는 거죠. 바꿔 말하면 여성을 '안전지대'로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남성 주니어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면/여성 시니어의 '믿음직스러움'도 동등하게 인정된다면 그럭저럭 문제는 없다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듯 싶군요.
소년에게 참하다고 하지 않는 건 갠적으로 소년에게 어느 정도 다들 위협감을 받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재력 있는 이놈이 참하게 잘 크면 참해지는 게 아니라 날 잡아먹겠지 생각하는 거죠. 바꿔 말하면 여성을 '안전지대'로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1. '믿음직한 외모' 같은 표현만 해도 대단히 흔한, 적어도 시킨 일 잘한다, 일 열심히 한다는 의미로 '순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양적으로 많을 것 같습니다. 즉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있다고 볼 수 있음.
2.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없다손 치더라도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요는 '참하다'가 편성적으로 쓰인다는 건데, 왜 편성적으로 쓰이는지 결국 따져 보면 '여성적 덕목'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근데 그 '여성적 덕목'이란 게 결국은 현모양처 착실한 며느리 노릇이 성역할의 디폴트로 되어 ... 더 보기
2.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없다손 치더라도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요는 '참하다'가 편성적으로 쓰인다는 건데, 왜 편성적으로 쓰이는지 결국 따져 보면 '여성적 덕목'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근데 그 '여성적 덕목'이란 게 결국은 현모양처 착실한 며느리 노릇이 성역할의 디폴트로 되어 ... 더 보기
1. '믿음직한 외모' 같은 표현만 해도 대단히 흔한, 적어도 시킨 일 잘한다, 일 열심히 한다는 의미로 '순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양적으로 많을 것 같습니다. 즉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있다고 볼 수 있음.
2.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없다손 치더라도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요는 '참하다'가 편성적으로 쓰인다는 건데, 왜 편성적으로 쓰이는지 결국 따져 보면 '여성적 덕목'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근데 그 '여성적 덕목'이란 게 결국은 현모양처 착실한 며느리 노릇이 성역할의 디폴트로 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인 거고. 외모평가는 결국 그래서 핵심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성역할을 잘 수행할 것 같이 생긴 '외모'인 거니까요. 이미지고 외피를 지칭하는 거죠.
이렇게 보면 '참하다'가 청년층으로 내려올수록 점점 사용량이 줄면서 어르신용 단어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일관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2. 믿음직스럽다에 외모평가적 연동이 없다손 치더라도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요는 '참하다'가 편성적으로 쓰인다는 건데, 왜 편성적으로 쓰이는지 결국 따져 보면 '여성적 덕목'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근데 그 '여성적 덕목'이란 게 결국은 현모양처 착실한 며느리 노릇이 성역할의 디폴트로 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인 거고. 외모평가는 결국 그래서 핵심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성역할을 잘 수행할 것 같이 생긴 '외모'인 거니까요. 이미지고 외피를 지칭하는 거죠.
이렇게 보면 '참하다'가 청년층으로 내려올수록 점점 사용량이 줄면서 어르신용 단어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일관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뭐 그래서 요즘은 자연스럽게 잘 안 쓰죠. 굳이 이런 미묘한 사안을 따지지 않아도 구태의연한 표현이란 인상 확 주니. 그러면 '왜 구태의연한 표현이 되었을까?'를 따져볼 수 있고 따져 들어가면 결국 본문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거라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