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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20/04/23 17:54:4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7257
아까 고려대가 김영삼 개망신 준 이야기 한 게 떠올라서..
당시의 사연은 위 링크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4자 필승론은 선거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아전인수 격인 논리였고, 더구나 6월항쟁이라는 거대한 시대조류를 도외시하고 지역감정만을 토대로 한 계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논리대로라면 양김 단일화는 필요 없고, 오히려 분열되어 있는 게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 때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병곤이 나섰다.. 재야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독재 군중집회를 전국 주요도시를 돌며 개최하고, 이 집회에 양 김을 앞장세우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보다 국민의 대중의 지지를 더 받는 후보가 가려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단일화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계였다.

..그러나 이런 민청련의 계획은 다음 날 김대중 측의 전격적인 분당 발표로 좌절됐다. 10월 26일 김대중 캠프는 '고대집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확인했고, 분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이틀 후 10월 28일 김대중은 자신의 대통령 출마와 이를 위한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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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zenico
쫀심은 사리판단을 흐리는 법...
코리몬테아스
민주화후 군사독재 후신들한테 정권준 나라들은 비슷비슷하게 돌아가지 않나 싶어요 ㅋㅋ..
구밀복검
ㅋㅋ 그래도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면서 나름 각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적절하게 자기 몫 하고 가지 않았나 싶어요. 노태우는 관료 사회의 연속성을 군정과 민정의 브릿지로서 기능하며 제공했고.. 김영삼은 지연된 적폐 청산을 차기 정권의 정통성을 가지고서 수행했고.. 김대중은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타이밍에 미국식 가치와 야당의 제도권화를 이뤘고. 의도하고 한 건 아니겠지만 후대인으로서 보기엔 총체적으로는 순리를 이뤘다 싶어요. 물론 그 사이에 난항도 많았지만 ㅋ